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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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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심판 포청천’이 야구계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근미래. 20년 전 고교야구 시합에서 있었던 오심에 항의하기 위해 포청천을 찾아가 항소하고 대항하다가 1급 훌리건으로 낙인찍힌 전직 야구선수.
절대권력이 군림하는 야구계에서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세상이 있다. 때로는 엉뚱한 오심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 삶이 그렇다. 때로는 엉뚱한 오해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한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의 인생이 엉뚱한 오심 때문에 송두리째 바뀐다면, 과연 그 심판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인생들은 너무도 우리를 힘들게 한다.
선거철이 한창이다. 그들을 절대권력이라는 틀 안으로 넣어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처음에는 분명, 올바른 뜻을 펼치려던 사람도 절대권력이 자신의 손 안으로 다가오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도 씁쓸한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세상이지만, 말이 되는 세상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처음 시작하는 마음, 처음 시작하는 그때, 그때의 마음을 버린다면, 권력이 손안에 있게 되면, 결국 그 절대권력이란 함정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다. 그 끝은 절망의 나락이고, 그 나락은 다시 올라오기 힘든, 벼랑의 저편이다.
그 마음이 사라진다면, 다시 올라오기 위해선, 새들이 그들을 실어나르는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 삶의 끝, 그 끝에 내가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 끝에 절망의 끝과 희망의 실현이 함께 있을 테니까.
-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연합뉴스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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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K 최홍훈 장편소설 연합뉴스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야구를 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고 그런 점이 오히려 책의 흥미를 돋워주었다. 심판의 판정 하나에 스트라이크냐 볼이냐가 판가름 되는 상황, 심판은 경기에 있어 제 3의 선수라 해도 무방하다. 야구를 소재 삼아 절대 권력과 공정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훌리건의 이야기를 펼쳐낸 작가의 기발함과 유쾌함은 최고다. 오랜 만에 시원한 사이다 같은 소설을 읽게 되어 기쁘다.
6손 투수인 아버지는 스트라이크존으로 정확하게 볼을 던졌음에 심판관 포청천은 볼을 선언한다. 그로 인해 경기는 패하고 만다. 사실 강한 어필을 해야 함에도 육손 투수는 그대로 물러나고 야구인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항의하고 잘못된 판정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게 맞지만 육손 투수인 아버지는 절대 권력자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부당함에 복종하고 만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항소를 권유하고 옛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지만 누구도 그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연좌제에 처하게 되는 소설의 화자. 야구장의 문은 좁아지고 발야구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포청천 쪽으로 전향하는 훌리건도 생겨난다. 뭐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는 모습이니까. 육손의 아버지는 ‘비전향’ 훌리건이다.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포청천을 찾아가 항소하고 포청천 사인볼을 창문으로 던짐으로써 야구와 다시 가까워진다. 불공정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시대.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 작가의 소설이 2013년에 발표되었으니 그때의 대한민국을 떠올려보면 소설의 본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합리한 편견에 불복종하면 불리해지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되고 돌직구가 바꿔놓은 세상은 다시 상처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권력자의 힘은 세상을 평정하고 그들에게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노조차 모르고 평화롭다. 모든 일이 그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훌리건K.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꼼수다.’ 방송을 열심히 들었던 오래 전 그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훌리건 생활을 했던 그 사람들이 생각났다. 굴뚝 위에서 시위하던 노동자, 진실을 알려 달라 외치는 사람들, 가진 힘이 없어 핍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분노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정의를 위해 힘써왔는가?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힘은 민주주의 현실을 풍자함에 야구라는 세계를 접목시켜 긴장감을 고조시켰기에 가능했다. 소설적 재미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이 책은 큰 힘을 보여주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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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의 부당함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작가 <최홍훈>의 <훌리건K> (연합뉴스 펴냄>은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공동제정한 제1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으로 육손의 전직 고교야구 선수가 20년 전 시합에서 있었던 오심을 잊지 못하고 야구계의 절대권력인 국민심판 포청천에게 항의하는 이야기를 야구라는 스포츠 세계로 끌고 들어와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9회말 동점 상황에서 본인은 분명 스트라이크를 던졌음에도 절대권력자 심판관 포청천은 볼을 선언하고 팀은 패배하고 만다. 이후 육손 투수는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절대권력자인 심판관 포청천의 판결에 항의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공정하지 못한 판결에 불복종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아들은 야구선수로서 삶이 끝난 아버지와 부당함에 자신있게 항의의 목소리를 내는 어머니의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육손으로 야구라는 세계에서 투수로서 활동하던 아버지는 스트라이크가 볼로 판정나면서 부당하게 선수생활을 그만두지만 몇년이 지난 이후에도 육손의 손가락 하나가 포청천의 명령에 의해 개작두에 잘려나가는 악몽에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잔듸를 관리하던 중 만난 "운동권의 전설"로 불리던 여인을 만나고 체포되던 그날 나를 잉태한다. 특사로 풀려난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고 불공정한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에서 항소를 결심하지만 옛 동료들은 그를 외면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지되었던 야구장을 찾게 되고 아버지는 야구장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만 어머니는 출입을 금지당하고 아버지는 게속되는 오심에 분개한다. 경기도중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포청천을 만나게 되고 아버지를 불손한 죄로 처리하려던 시도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야구공에 포청천의 싸인을 받게 된다. 별다른 죄를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야구공이 세균 테러를 가하기 위한 것으로 음모도 꾸민다. 어디서 많은 본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훌리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 뒤었어. 판관으로 등극한 그는 갑자기 편집증적인 겁쟁이가 되고 말았어. "겁쟁이라고요? 포대인이 두려워하는 것도 있나요?" 아버지가 물었다. "포청천도 사람인데 약점이 왜 없겠나?' "그게 뭔데요?" "아리랑 볼." "네?" "농담이야. 그가 진정 두려워하는 건 우리 훌리건들이야. 훌리건에 대한 편집증적인 핍박과 박해는 두려움에 대한 반증일 뿐이지. 세상에, 그는 치어리더의 빤스 무늬나 마스코트의 방귀소리마저 두려워할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렸어." "신경쇠약이라고요?" 아버지가 물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비 오는 날 포청천이 경기를 취소하는 이유도 실은 우울증이 심해서란 말이 있어. 공손 선생이 정신과 주치의를 겸한다는 소문까지 항간에 떠돌고 있지. 훌리건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그는 훌리건들을 부려워하고 있단 말이야. 절대권력이 노이로제에 걸린 셈이지. - 본문 중에서 -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연좌제 적용을 받게 되고 야구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들은 발야구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절대권력은 아버지에게 전향을 권유하지만 끝까지 '비전향 홀리건'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야구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기발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하는 이 소설은 야구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로 삼고 있는 야구계에서의 실화를 별도 주석으로 담고 있어 흥미는 더해진다. 이 처럼 우리 사회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모습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뚝심있게 담아내는 작가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치가 수림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충분하다. 2013년도에 출간 된 이 작품을 만난 것도 행운이 아닐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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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야구가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 룰도 모르겠고 시간은 길기만 하고 재미있는지 딱히 모르겠다. 올해도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다들 웃고 울고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나로써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야구소설. 좋아하는 작가인 박범신, 정이현이 심사위원으로 뽑은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만든 문학상. 제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훌리건K 야구에 대해 이해 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정이가기 시작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야구 경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다. 사건이나 단어의 각주도 제법 자세하고 위트 있다. 야구계의 절대적 국민심판 포청천이 군림하는 가까운 미래가 소설의 배경인데 그의 판결에 약간이라도 반기를 들면 훌리건으로 간주되어 특별 관리를 당하게 된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훌리건은 거주이동의 자유까지 모든 것을 통제 당하고 관리당하며 살게 된다. 전설적인 훌리건이 된 K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아들이 대신 이야기해준다. 야구의 오심, 승부조작. 정당한 항의. 그러한 투쟁의 과정에 대한 서술인데, 이것은 전체주의에 대한 풍자와 독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스포츠 승부조작까지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훌리건이 왜 훌리건이 될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들을 단순히 스포츠맨쉽을 위배하는 저속적인 행동을 하는 반사회적 인물들이라고 규정할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렇게 분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는 문제이다. 야구가 절대 권력으로 풍미하는 시대에 훌리건이라는 건 모든 사회생활의 박탈을 의미한다. 하층민이 되어 살아가는 가족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당당하다. 그러한 삶의 자세는 정말 본받고 싶다. 야구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은 생겼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아얘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겠다. 작가의 말처럼 야구선수가 그 하나의 공을 던지기 위해 얼마나 고분분투 했을지를 생각하며...... 63쪽 “형은 야구를 잊었을지 모르지만, 야구는 형을 잊지 못했나보지. 그래서 이렇게 야구공이 제 발로 나타났는지 몰라. 그래 맞아. 그날의 오심을 잊지 못한 야구공의 꿈을 형이 대신 꾼 거야. 야구공은 꿈을 꿀 수 없으니까. 그때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정당한 항의를 하지 못한 형을 원망하며 원통함을 호소하는 거야.” “야구공은 항의할 수 없잖아. 항의를 할 수 있는 건 야구선수뿐이잖아. 한번 야구선수는 영원한 야구선수야.” 98쪽 투수가 던지는 공은 그 선수의 운명이다. 투구할 때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몸을 비트는 까닭은 지름 7.23센티미터의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던지기 때문이다. 야구공에 새겨진 108개의 실밥을 괜히 백팔번뇌라 부르는 게 아니다. 124쪽 "진정한 야구광이라면 단순희 야구를 관람하러 야구장에 오지 않잖앙. 야구장을 찾아오는 것은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관중은 열두번째 선수라는 격언도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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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책을 열면서 엄청 궁금했다. 마치 무협소설 같은 제목의 표지와 야구공 그림을 보면서 책장을 펼쳐들고 읽어내려가면서 야구팬이 이 책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궁금해졌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들 뿐이다. 야구심판인 포청천이 만든 세상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세계가 싫어서, 혹은 원래의 야구를 좋아해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훌리건이 되는 사람들. 아무리 막장의 심판을 해도 포청천이 가진 권력은 엄청나다. 육손이인 아버지, 9회말 2아웃에서 마지막 공을 분명히 스트라이크로 던졌는데 심판의 판정은 볼, 꿈에서도 자신의 손을 개작두로 잘리는 꿈을 꾸는 야구선수였다.
12년전의 그 마지막 공을 던지는 꿈을 계속 꾸는 아버지, 시민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던 엄마. 이 두 사람이 아버지가 공을 던졌던 그 날의 투구가 진짜 스트라이크였다는 것을 이의 제기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이 흥미진진하다. 훌리건들은 포청천이 지배한 야구세계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들었으면 야구장 근처에도 갈 수 없고 자잘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새로운 계층으로 생겨났다. 포청천은 마치 대통령, 아니 과거의 전제군주 같은 모습으로 야구와 세계를 지배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어쩌면 현실세계에도 야구는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혹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밑바닥에게 무언가를 조작하고, 만들어가고, 장악해가는 집단들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무언가를 어디서부터 바꿔가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그런 세계를 조정하는 집단 말이다.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그 집단에 끌려서 멋모르고 동조하거나, 혹은 지배당하는지. 어쩌면 히틀러가 만들었던 나찌나, 지금의 유튜버들도 비슷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엄마와 아빠는 마지막 1시간을 남겨두고 포청천을 만나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늘 우유부단, 엄마에게 이끌려가던 아빠가 마지막 포청천을 만나게 되면서 스스로 결정을 하게 된다. 자기가 마지막에 던졌던 스트라이크가 왜 볼이 되었는지 묻고, 그에 정확하 반박하기까지 아빠는 한 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포청천이 있던 건물에 공을 던지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어쩌면 많은 순간 우리는 나보다 큰 권력에 대항하거나,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심지어는 회사에서 상사가 내린 결정이 아무리 틀리다고 생각해도 이의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부하직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다수가 거기에 동조한다고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훌리건들처럼 한 번 낙인찍히면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는 것은 소설속이나 현실이나 똑같다.
다행히 주인공은 마지막 야구공을 던짐으로써 무리에서 나와 당당히 훌리건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어쩌면 무언가를 극복하거나, 승리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완전히 잊거나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길만큼 대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을 맏닥뜨려도 그 전처럼 물러서거나 도망치지 않고 마주 대할 수 있을만큼 한 발 내디디게 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육손이 야구선수인 아빠와, 겁없이 달려드는 엄마같은 사람처럼 말이다.
밤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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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야구소설'로 보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때 이미 야구를 못하게 된 중년의 아저씨이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근미래의 야구 경기라는 것은 지금의 야구와는 많이 다르다. 룰도 그렇고,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 경기를 지배하는 이상한 스포츠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단순히 '야구'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야구팬보다는 야구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더 재미있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가 죽었다"라는, 야구팬의 심장에 빈볼을 던지는 듯한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훌리건 K>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배경은 가까운 미래. 고등학교 때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받아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던 한 육손 투수가 당시의 야구 심판이자 현재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판관 포청천에게 항소를 하는 내용이다. 줄거리가 간단한 만큼 소설은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소설보다는 웹툰이라는 형식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이 소설은 재미있고,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각화된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바로 90년대 우리에게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의 통쾌함을 보여준 드라마 '판관 포청천' 속 인물들이다. <훌리건 K> 속에서 절대권력을 쥐고 흔드는 이가 왜 포청천이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드라마 속에서 부마에게조차 공정한 판결을 내리던 꼿꼿한 법 집행자의 상징인 포청천은 이 소설 속에서 부패한 권력의 화신이 되어 있다. 그래서 소설 중반까지 포청천이라는 캐릭터에는 쉽게 몰입되지 않았다. 쓸데없이 수식이 많은 문장이 종종 눈에 띄고,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긴 주석은 읽다 보면 소설의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사소하다. 왜냐하면 작가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돌직구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에 대한 한 소시민의 작지만 거대한 반란. 그 결말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말과 관계없이 그는 이미 영웅이다. 두려워서 외면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정의를 당당히 내세웠기 때문이다. 나는 심판의 권위에 불복하는 야구선수를 보며 통쾌함을 느꼈던 거야. 오심에 대한 한 선수의 불복종이 야구를 지켜낸 거야.(213쪽)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라 체념하며 현실을 외면하거나 마치 수퍼맨처럼 초인적인 존재가 되어 현실을 뒤엎는 것만이 부당한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정의를 내보일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절대권력의 무게에 짓밟히지 않고 사는 방법일 것이다. <훌리건 K>는 현실에 무조건 굴복하지 말라고,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9회말 2아웃 동점 상황에서도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면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야구고, 그것이 인생이다. 원문 주소 : http://cafe.naver.com/cine035/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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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건 K’는 ‘국민심판 포청천’이 야구계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근미래를 소설의 배경으로 20년 전 고교야구 시합에서 있었던 오심에 항의하기 위해 포청천을 찾아가 항소하고 대항하다가 1급 훌리건으로 낙인찍힌 전직 야구선수의 파란만장한 분투기다. 절대권력이 군림하는 야구계를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설정해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불공정을 풍자하는 한편 야구에 대한 정보와 언어를 디테일한 묘사와 함께 재치와 위트넘치는 문체로 그려낸다. 훌리건이 아닌 야구에 관한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되지만 육손투수인 K를 중심으로 한 소수자와 그에 대한 차별을 작가 특유의 뚝심으로 문제삼고 있다. ‘절대 권력’이라는 지배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국민심판 '포청천'의 의도적이면서 정치적인 오심으로 야구선수 생명을 마감한 아버지 ‘훌리건 K’의 삶을 통해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려는 소수자들의 저항방식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훌리건으로 낙인 찍히는 과정을 작가는 아들의 목소리로 시종일관 유쾌하게 풀어내며 불공정한 사회 속 소시민의 대항을 재기 발랄하게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포청천'을 기억한다면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포청천은 물론 공손 선생과 왕조, 마한, 장룡, 조호처럼 공정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추억의 인물들이 줄줄이 불공정의 마스코트로 등장해 웃음을 배가한다.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작품 속의 각주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야구라는 대중적인 스포츠를 통해절대 권력과 힘없는 소수자들의 대립을 통해 우리내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는 소설이다. 복잡한 요즘의 세태에 맞물려 읽는내내 현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글을 이어가는 작가의 언어는 재치가 넘치고, 심각하고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섬세하고, 유쾌한 필체로 풀어가고 있다. 약간 비꼬는듯한 유머라고 해야할까? 보는 내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처음 읽어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야구를 몰라도, 야구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우리 사회의 절대권력과 그에 맞서는 시민사회의 모습을 절절히 보여주고 있어서 보는 내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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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죽었다 너무나 발칙한(?) 이 문장으로 시작된 소설은 한 명심판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소설의 주인공이 야구장에서 영원히 출입금지당한 훌리건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설적 허구는 늘 시대상을 반영한다. 학창시절 배웠던 이 흔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설명하기엔 많은 게 부족하지만. 영화 내츄럴의 마지막 엔딩처럼 통쾌함을 날려주지만, 비수같이 차거운 현실도 외면하지 않는 그런 소설. 훌리건 K. 책 속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는 소설을 스포일러하는 것 같아서 감히 권해본다. 그냥 한번 읽어보세요~ <출처 본인 블로그 http://tillt.tistory.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