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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5학년 현우는 울지 않고 참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 누구보다 잘 안다. 울면 지는 거라고, 울면 인정해 버리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몰아부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온통 가슴팍이 먹먹하다. 생명을 주었듯이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그것도 가족을 데려가 버리면 남은 사람은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부모를 잃는다는 건 온 우주를 다 잃는다는 것과 같다. 한순간에 깨져 버린 행복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그러고 보면 아무 일도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낸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이 느껴진다.
말썽장이 현우네가 개구리 알을 체집하기 위해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던 날 교통사고가 나면서 아빠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 채로 의식이 없다. 외할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시며 엄마의 약값을 대지만 형편이 어려운 현우는 급식비를 안 내고 밥을 먹는다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호로자식이라는 놀림 앞에 가슴에 폭풍이 이는 현우는 종호 아빠처럼 자신을 놀린 아이들을 혼내 줄 아빠가 없어서 외롭고 슬프다. 그럴 때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아빠에게 편지를 쓴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는다.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 정말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 그 이름이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머리 속에서 흐릿해져 간다. 추억의 힘은 이렇게 약한 걸까? 그래도 엄마는 현우 옆에서 숨을 쉬고 있으니 다행이다. 바보 같이 눈도 못 맞추고 말도 못하지만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손을 쥐고 있으면 따뜻하니까.
종이학을 접는 현우의 마음 속에서 같이 울지 않은 독자가 몇이나 될까?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운명 앞에 마음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라고 하나같이 같은 심정으로 목을 놓아 정말 실컷 울었다.
김밥을 사 줄 사람이 없어서 체험 학습에 못 가고 병실로 엄마를 찾아 온 현우. 엄마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제발 일어나라고 깨어나라고 그러면 세상 제일 가는 효자가 되겠다고 약속하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현우의 약속은 그냥 툭 뱉어 내는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신은 이럴 때 현우의 손을 잡아 줘야 되는 게 아닌가!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현우의 엄마는 죽음 목전에 와 있다. 종이학을 천 마리만 접고 그만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현우는 한 달 안에 만 마리를 접겠다고 결심한다. 손이 부르트고 목이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엄마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못 할까!
현우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가 보여준 모습은 위대한 모정의 드라마다. 제 목숨을 버리더라도 딸을 살리기 위한 극진한 정성이 바로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눈 못보는 맹구 아저씨에게 눈을 기증하는 그 마음은 그래서 더 눈물겹다. 힘든 순간 돈보다 마음으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맹구 아저씨께 현우는 눈이 되어 주었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니까.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현우니까 현우는 두고두고 살면서 그 마음에 진 빗을 갚아나갈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 마음을 나눠주는, 어깨를 빌려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살만한 거겠지.)
종이학이 힘차게 날아올라 제발 현우의 소원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현우가 이제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급식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고 숙제도 제대로 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다는 현우의 바람이 부디 지금 이 순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번듯한 행복은 아니더라도 소풍가는 날 엄마가 싸 주는 김밥 정도는 먹게 해 주어야 공평한 세상일 테니까. 하느님! 들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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