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이 아니지 / 호어스트 에버스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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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다. 너무나 고요하고 고요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인 독서실에서 남들이 땀흘려 공부할 때 속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틀어막고 억제된 '킥킥'을 반복하며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읽던 신림동 시절...
이야호! 그 호어스트 에버스를 다시 만나 이번에는 대놓고 깔깔깔 웃어줬다. 특유의 기발한 유머에 완숙함과 깊은 통찰이 더해졌다. 대체 이건 뭐지? 싶은 막무가내 상황에 어이상실과 실소와 요절복통을 오가다 보면 다소 별스럽되 누구나의 숨겨진 욕망과 공감에 가 닿는 그의 통찰을 만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속해 있으나 가끔은 현실을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것이거나 저것이 아닌 다른 어떤 삶도 가능하다는 꿈을 허허실실 킬킬거리며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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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어스트 에버스, 헤드뱅잉을 꿈꾸는 이 매력적인 대머리 아저씨를 처음 만난 것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이었다. 베를린을 욕하며 베를린을 사랑하는 이 삐딱한 독신남이 이번에는 여자 친구와 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여전하시다. 빈 샴푸통에 마요네즈를 넣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창의성을 일취월장 시키는 육아 비법을 갖고 있으며, 벼룩시장에서 천천히 사람의 마음을 녹여 싸게 물건을 구입하는 처세술을 부리려다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일이 다반사이시다. 20년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와는 소식이 끊겼지만 그 어머니에게서는 매년 치커리 소시지를 택배로 받는다. 맛있다는 예의성 발언이 가져 온 20년의 결과를 딸아이가 데리고 올 남자친구에게 유산처럼 물려줄 날을 꿈꾸며.
주변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침소봉대의 과장법으로 확장시켜 희화화시키면서 삐딱한 시선으로 삐딱한 농담을 툭툭 던지지만 냉소적이지 않다. 굳이 착하게 살 생각 따위 없다. 멍청하게 살 생각은 없지만 멍청이 취급도 받는다. 삐딱하게 다른 사람을 조롱하지만 정작 본인이 조롱거리가 되어 바이킹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훨씬 더 영악하니까.
‘일상의 책임’이라는 에피소드를 잠깐 건드리자.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복도에 시체 한 구가 누워 있다. 이 시체를 신고하면 이런저런 불편한 일에 휘말릴 게 뻔하니까 다른 이웃이 발견하고 신고하기를 기다린다. 이웃이 신고를 하지 않으니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왜 신고를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그런데 이 시체가 일어나 벨을 누른다. 어느 구역에서 시체가 빨리 발견되는지를 조사하는 조사원이다.
아, 정의롭지 않아서 좋고 사악하지 않아서 좋다. 나 하나 편하자고 꾀를 내지만 그 꾀에 넘어가서 좋고, 성공 따위 추구하지 않아서 좋고, 우울과 비련 따위 개나 줘버려서 좋다. 헤드뱅잉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대머리가 되었지만 언젠가 틀림없이 헤드뱅잉을 할 것 같아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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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호어스트 에버스의 책은 처음이다. 독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였고 택시기사와 집배원으로 일하다가 만담가로 활동하게 되었단다. 만담의 정확한 뜻을 알고싶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세상이나 인정을 비판ㆍ풍자하는 이야기를 함. 또는 그 이야기. >라고 한다.
책 날개에 소개 된 저자의 경력을 보니 독일 만담가 대상, 독일 소극장 배우상 등 여러상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독일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내가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은 작가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주제로 코메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맛깔스런 입담이랄까 역량에 한번 책을 읽기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기 어려운 책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이다. 나역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시간 동안 더위도 잊고 책을 읽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웃을 일이 없다>고 하는 연령층(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머가 넘치는 작가가 있다는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외국작가이긴 하지만 그가 코미디의 주제로 삼은 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일어날 만한 것들이기에 독자들은 그저 공감하며 웃으면 될 것이다.
작가가 주제로 삼은것이 일상이긴해도 몇몇 코미디에서는 요즘의 지나친 컴퓨터와 인터넷 의존, 기계의 발달에 대한 경고등도 유머있게 풀어냈다. <메일로 보낸 소시지빵> <유튜브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건 기계가 더 잘해요>등의 제목의 코미디가 그랬다. 특히 <그런건 기계가 더 잘해요> 편에 나오는
다음 문장은 그냥 웃고 넘기기엔 뼈(?) 있는 얘기다.
<..모든 기술 발전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할수있다 그래서 어느날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일한다고 우기면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건 기계가 더 잘합니다 본문 P243 >
<게으른 로맨티스트 호어스트 에버스의 고품격 B급 코미디> 를 읽으면서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잊어보는 것도 나름 경제적인 피서법의 한가지로 생각된다. 이 말을 작가 호어스트 에버스가 들었다면 얼마나 흐뭇해 할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한동안은 자기 딸이랑 여자친구를 비롯하여 친구와 동네사람들에게까지 자랑하고 다니지 않을까. 작가는 오늘같이 더운날에 나를 사로잡았다는 이유 한가지만으로도 대단한 만담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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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경쾌하고 통쾌한 소설이다. 기상천외하고 재기발랄하다. 엉뚱하기도 하고 뜬금없기도 하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 실없는 것 같으면서도 실실 웃음을 준다. 글들은 숨 가쁜 반전과 반전으로 넘친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처음이기에 네이버에 물어 본다. 네이버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시중에서 놀고 있다고 알려 준다.
호어스트 에베스, 그는 독일인으로서 베를린에서 살고 있단다. 그는 평소에 독일의 술집인 ‘크나이페’라는 곳을 자주 충립하며, 많은 시간 이 곳에서 소일하면서 많은 사건을 만드는 사람으로 소개해 주고 있다.
이 책 제목,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는 저자가 20대 초반 몇 주를 함께 보낸 ‘카차라’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변덕이 죽끓듯 하고 다혈질이어서 관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고 어려웠다고 술회한다.
그런 썩 유쾌하지 못한 추억을 가진 여자의 한 말을 왜 이 책 제목으로 원용했을까? 그 사연 또한 엉뚱하다. 그녀가 그 말을 한 이유가, ‘안 그러면 날 오래 참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에 아예 사랑하라고 했다는 확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말이 많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견딜 수 없도록 힘들 때마다 ‘사랑’만이 해결책임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아래와 같은 소제목으로 되어 있다.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 몰락의 개화, 큰 기대, 재능과 현실,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여의사 앞에서 ‘성욕이 끓어 넘치던 사춘기’ 얘기를 하다가 면박을 당하고 능청을 떠는 엉뚱 상큼한 에피소드, 크리스마스 때 독일 북부 노인들이 부르는 ‘해마다 농부는 옆 마을 아낙네한테 건너가 끙끙 힘을 쓰고 있네’와 같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기발한 파격이 신선한 충격을 주는 정도다.
이 책은 모두 이런 분위기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특히 맨 마지막에 실린 ‘인생은 랄랄라 팔랑귀 처럼’ 은 가장 상징적이라고 할만하다.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전체 승객과 함께 벌어진 헤프닝은 한 바탕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쾌감을 준다.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내가 책에 쓰는 이야기는 전부 완벽한 진실이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100퍼센트 진실이다]고 말한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100 믿어야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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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정도의 육성은 여러번 터진다. 에세이를 보면서 이런 일은 사실 흔치 않은데. 동네 애들까지 수영장에 데리고 갔을 때의 에피소드는 진짜 웃김. 컴퓨터가 말썽일 때는 되기를 고대하며 죽치고 기다리라는 조언 같은 건 보너스. 번역된 게 이 정도면 원어민이 원서로 읽을 경우 진짜 빵빵 터지겠다 싶은 생각도 들더라.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도 누군가 이런 만담 같은 에세이를 좀 내줬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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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라는 책 제목 때문이다.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남들 앞에서 당당하거나 자신감이 넘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당당히 자신을 어필하는 책 제목을 읽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하며 남들 앞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이 뭘 믿고(?)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지 그의 속내와 일상을 엿보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펼쳐 들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둔 꽤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그의 생활을 조금만 엿보더라도 그가 남들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엉뚱하거나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실없는 모습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서 당당하고 유쾌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예로 들자면 그가 다른 부부의 분위기에 휩쓸려 생각지도 않게 그네들의 아이를 돌보게 되는 ─ 아이들과 수영장을 가거나, 해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 상황에서 충분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법도 한데도 그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무리 속 좋은 그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그들에게 복수를 위해 즐거웠다는 말을 남겨두기도 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내년에도 그가 아이들을 돌봐야 것이 불 보듯 뻔한데 말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돼도 유쾌함으로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가끔은 남들과는 다른 그의 행동 ─ 죽은 쥐를 주문한 적이 없는지 방안으로 들고 와서 물어보거나, 범인이 이웃이 키우는 고양이라는 것을 알고 생각지도 못한 해결 방법을 제안하는 모습 ─ 에 주변 사람은 물론 읽는 나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렇게 그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고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것을 그의 입을 통해 알게 될 때면 그만의 철학에 감탄할 때가 있다. 그리 특별해 보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재미와 철학을 찾는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지금에서야 알았는데 내가 독일식 개그 코드에 좀 맞는 듯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빅웃음은 아니지만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한편으로 지금 내가 사는 지금의 방식은 즐겁고 유쾌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저래 유익하고 즐거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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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상을 지내다보면 이렇게 사는게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잘 살고, 성공하는 것 같은데 내 인생시계만 느리게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들기 때문이다.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에서는 특별할 것 없지만 평범한 일생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매일 금요일 같지는 않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마냥 달릴지, 죽치고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헷갈린다. 줏대 없이 팔랑거리다 보니 몸만 피곤하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다. 그렇게 나쁘진 않다. 가끔은 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보기도 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면 그런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이루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 생각하며 내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해준적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인생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에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를 사십대 아저씨의 목소리로 이야기해준다. 아무래도 외국책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그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지만 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한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생이 매일 금요일 같지는 않다는 것 하지만 그대로 살아가도 내 인생이기에 사랑해줘야한다는 것, 그 하나만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있고 고마운 책이었다.
처음 책을 접할때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저 재미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면 나와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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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라는 제목은 자뻑의 수준이 아주 뻑가는 사람의 잘난체가 아니다. 이 말은 작가가 젊은 시절 사귀었던 괴팍한 여인이 그에게 한 말이다. 다혈질에 변덕이 죽 끓 듯 했던 그녀는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날 오래 참지 못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작가는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일면 쿨해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무심해보이기도 하다. 일상이 농담처럼 실없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키득키득 어이없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깊이의 사색으로 빠져들게 한다.
새벽 4시 20분. 느닷없이 30초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놀라 깬 작가와 같이 사는 여자 친구는 30분 동안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딸이 밝혀낸 소리의 근원은 화재경보기였다. 온 집에 울려대던 소리는 각 방마다 설치한 화재경보기의 배터리가 동시에 다 닳아서였다. 여자친구와 딸은 자러 들어갔지만 작가는 화재경보기의 배터리를 다 떼어 낸 순간에 불이날 수 있다는 상상으로 심란하다. 그렇다고 배터리를 다시 끼우면 소리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스스로 살아있는 화재경보기가 되기로 한다. 그러다가 예전에 존재하던 화재 감시요원을 생각한다. 밤에 화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화재 감시요원이 그만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촛불이 넘어져서 대형화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서 세계3대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 블루스','스탠다드','푸어 비치'에게로 간다. 이들은 늘 자신들은 화재나 사고등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며 그저 일종의 알람 경보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예전 화재 감시요원과 이들이 같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피로를 선사하는 것은 화재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공포와 알람 경보기의 계속되는 경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 내 뜻대로 상황이 혹은 사람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견딜 수 없이 힘든 삶이라는 데 좌절한다. 아주 사소하게는 짜증과 욕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는 사랑만이 도움이 된다. 심지어는 암이라는 질병도, 가난이라는 상황도. 그렇게 사랑하다보면 보다 의연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다른 길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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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만국공통의 '보약'이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수단, 즉 각 나라마다의 '
웃음코드'는 그 나라의 문화와 대중매채의 역활에 의해서, 조금씩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사실
인데, 예를 들면 한국에는 '극장형 코너'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코미디를 펼치는 방식, 일본에
는 상황과 실수를 지적하고 파고드는 つっこみ(츳코미)의 존재, 북미와 유럽에는 이른바 일
인 코미디 '만담가' '재담꾼' 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이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도 과거 김재동씨와 같은 일인 만담가가 대단한 활약을 했고, 또 만에 하나 절대적
인 웃음코드가 존대한다면, 이 책처럼 '독일식 코미디'를 다루는 책이 한글로 번역될 이유가 전
혀 없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 책을 번역한 출판사의 관계자는 '웃음에는 국경이 없다.'는 믿음
을 그 누구보다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인물일 것이다.
앞서 잠깐 설명하였지만, 웃음을 위해서 사용되는 '방식'은 분명 각 나라의 문화마다 조금씩 차
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독일식 코미디는 어떠한 차이점이 존재할까? (저자 특유의 개
성 일수도 있지만) 이 책에 주를 이루는 코미디는 일종의 만담수준의 '재담꾼'의 매력이 돋보이
는 것이며, 그 소재는 저자 자신이 일상에서 겪은 일화를 토대로 이야기를 푸풀리거나,각색한
일상 코미디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번역한 역자는 외국의 코미디의 본질은 '일상'
이며, 이는 억지로 설정을 만들어 웃기는 동양의 코미디보다는 수수하지만, 일상에서 웃을 수
있는 여유와 계기를 마련 한다는 일면에선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
고, 또 자신도 '지하철에서 원고를 들고 낄낄 거리다 사방에서, '정신줄 놓은 것 아니야?' 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는 일종의 체험기도 (후기로)적어 넣었다.
술집에서 주변 사람들과 만담을 나눈 이야기, 자기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이야기, 자신
의 딸과, 주변 아이들을 데리고 도심 수영장에 갔던 이야기, 중고시장에서 쓸데없는 잡동사니
를 샀다고 딸과 아내에게 바가지를 박박 긁힌 이야기 까지... 생각하여 보면, 저자가 나열하는
웃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생활형 코미디' 로서 수수하기 짝이 없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역자의 주장대로 유럽의 코미디는 순간이 아니라, 일상을 살면서, (사소한 일에
도) 웃음을 발견하게 하는 코미디 이며, 그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결국 일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내공을 길러낸다. (그 증거로 한국에선 길가에서 크게 웃으면 '민패' 라며 따가운
시선을 받지만, 외국에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오히려 같이 따라 웃어주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나는 과거,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무엇이 재미있어서, 계속 웃
음을 지으면서 다니는 걸까?''과연 무엇이 그들을 웃게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그 해답을 발견했다는 개인적인 성과를 이루어 냈다. '평범
함에 감사하고, 또 재미를 발견하는 독일식의 삶...' 참으로 부러운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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