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등장이 화려했던만큼 그 종말도 비극적이었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공산주의 지도자에서 미제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던 이정 박헌영. 그의 삶은 오랜 시간 역사에 포섭되지 못한 채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 머물렀다.
누구에게나 왠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동하고 자꾸 알고 싶은 분야가 있다. 내게는 이들의 삶이 그런 매혹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나 의의와 한계 등 거창하고 그럴싸한 명분 이전에 마냥 그들의 인생이 궁금한 것이다. 상당 부분 통속적이고 호사가적인 관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권력의 정점에서 바닥으로 급격한 몰락이 불러일으키는 아찔한 현기증이 그렇고, 남과 북 모두로부터 완벽하게 잊혀지고 버림받은 패자의 운명이 그렇고, 공개되지 못한 은밀함과 복구될 수 없는 공백의 틈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상상력이 그렇다.
여기에는 개인사도 한 몫 거들었음이 사실이다. 우리들은 20대 초반에 <태백산맥> <남부군> <지리산의 딸> 등을 열심히 읽었고, 한국 전쟁이후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멸종한 좌파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관심과 역사적 복원이 조금씩이나마 공개되기 시작한 게 아마도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조공, 남로당, 남부군, 박헌영, 이현상, 이주하, 김삼룡, 이강국 등은 묘한 설레임과 동경을 동반하는 이름이었다.
이 와중에 월북한 작은할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집안의 천재였다던 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한밤중 형에게 북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어둠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덕분에 오래도록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는 할머니의 고백은 그들을 좀 더 가깝게 혹은 더 미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검증된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박헌영의 일대기를 기록한 일종의 자료집이다. 동시에 현재 박헌영 연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기 위해서 일차적인 자료 정리가 선결과제라고 한다면 그의 사후 거의 50년 만에 일차적 자료가 정리된 셈이다.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머지않은 날 박헌영 평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한국공산주의 운동사>는 끝없는 분파주의(분파주의는 비단 좌파의 문제만은 아니었지만)와 스탈린을 정점으로 구축된 코민테른에 대한 절대 복종의 자세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반드시 대립되는 이데올로기는 아님에도, 또 서구의 민족주의와 조선의 민족주의는 그 성격이 동일하다고 볼 수 없음에도 서구 중심적인 또는 유럽 중심적인 소련의 태도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동시에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 태도 역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해방 당시 좌파가 주도적 세력이었고 민중의 심정적 지지도 좌파적 상상력에 기울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소 강대국의 개입과 그에 따른 분단, 신탁 통치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에서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과 소련이 한국을 떠났다면 좌익 정권이 재빨리 권력을 접수했을 것이고, 베트남이 그랬듯이, 또 다른 의미의 내전이 발생했겠지만, 그것은 한국전쟁과 4월 혁명과 광주민주항쟁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역사란 현재를 설명하는 거울이며 미래는 과거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