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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세이렌): 열 개의 단편, 열 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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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단편이 실린 <세이렌>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하룻밤에 열 개의 꿈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아내에게 마치 꿈 이야기를 하듯 이 책에 대해서 말했고, 아내마저 이 책을 다 읽고 난 어느 일요일 오후에 잠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때, <세이렌>은 좀 어지럽지 않니?” - 나. “어지럽다니 무슨 말이지?” - 아내. “<라벨 2013년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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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단편이 실린 <세이렌>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하룻밤에 열 개의 꿈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나는 아내에게 마치 꿈 이야기를 하듯 이 책에 대해서 말했고, 아내마저 이 책을 다 읽고 난 어느 일요일 오후에 잠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때, <세이렌>은 좀 어지럽지 않니?” - 나. “어지럽다니 무슨 말이지?” - 아내. “<라벨 2013년의 기억>에는 2030년의 세상이 나오고, <발>에는 조선시대일 것 같은 먼 과거도 나오잖아. <미호>에는 아시아 어느 구석나라일 것 같은 국경도시가 나오는가 하면, <삼장법사의 주문>에는 메리메리 섬이라는 확인불명의 지명도 나오고 말이야. 아, 어지러워!” -.-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고 짐작되는 배경도 있잖아?” ^^;; “음, 그렇긴 하지. 근데 비현실적이라는 건 마찬가지 같아. 비현실적인 상상 속의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래도 뭔가 보편타당한 주제랄까 그런 걸 담고 있는 것 같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이는 배경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엽기적일 만큼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말이지. <중독>에서 남자가 여자를 죽이는 방식이라든지, <세이렌>에서 여자가 남자를 스토킹(?)하는 모습이라든지. 어쨌든 나로서는 참 비현실적이야!” “비현실적이라고? 그 말 대신 ‘판타지’라고 하면 어때?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 못 봤어? 요즘엔 판타지가 뜨고 있다는데.” “그럼 <세이렌>에 나오는 SF적인 장면이나 무협영화 같은 묘사가 의도된 설정이라 그거지?” “글쎄,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세이렌>의 단편들은 판타지적 요소를 장치로서 사용할 뿐이고, 그 장치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따로 있는 것 같아.” “그게 뭘까?” “사랑 아닐까?” ^^;; “오, 사랑!” “응, 사랑.” “하지만 사랑치고는 하나같이 우울하군.” “염세적이랄까, 패배적인 시각도 드러나는 것 같고. 미국 사람들 하는 말로 루저(loser)의 정서가 베어있는 거 같아.” “하하,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하지만 사실 인간 종족의 사랑이란 것이 종국에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노래가사에도 있잖니, ‘아름다운 죄’라고 말이야.” “그래 그런 그렇다 치고, 이제 저녁 밥 먹자. OK?" 우리는 고등어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TV에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가 나오고 있었다. 문득, 동지나해 어딘가를 화려하게 유영하던 등 푸른 생선을 잡아다가 소금을 뿌려 구워먹는 것이라든가 다 큰 어른들이 말도 안 되는 퀴즈문제를 풀고 있는 오락프로라든가 하는 것들이 참 ‘비현실적으로’, 아니 ‘판타지’의 한 장면처럼 낯설어지는 듯싶었다.
r******a 2004.05.11.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