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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을 읽고 임꺽정과 벽초에 홀딱 빠진 사람이 나 뿐 만은 아니었다. 《벽초, 임꺽정 그리고 나》란 제목은 《임꺽정》을 읽고 난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저자는 벽초가 《임꺽정》을 순 조선정조로 지었다고 했지만 《수호지》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은 것인지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비슷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 하나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된 단편으로 읽어도 무방하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장편이 되는 구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임꺽정은 노지심, 곽오주는 무송, 황천왕동이는 신행태보 대종, 서림은 지다성 오용 등과 차례로 비교하여 《수호지》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벽초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벽초가 신학문을 배웠고, 동경유학시절 엄청난 독서열로 서구의 작품들을 읽었다해도 어린 시절 즐겨읽었던 《삼국지》와 《수호지》를 잊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홍기삼이 쓴 《홍명희 어느 민족주의자의 생애》http://blog.yes24.com/document/7621758에서는 《임꺽정》의 <봉단편>을 또 춘향전과 비슷하다고 쓰고 있으니 《임꺽정》이라는 방대한 텍스트속에서 독자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또 다양한 방면에서 토론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또 《임꺽정》마니아들이 생기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벽초를 좋아한 탓인지 벽초와 닮은 점이 있다. 벽초가 《임꺽정》에서 임꺽정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로 책 한권 반의 분량을 채우고, 갖바치 양주팔의 산천순례를 핑계삼아 백두에서 한라까지 국내명산들을 소개하며, 그곳에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들로 한도 끝도없이 뻗어가는 글쓰기를 하고 있듯이 저자도 벽초가 조선삼재로 손꼽혔다며 천재론, 임꺽정이 도둑이라며 도둑의 계보에서 시작하여 김지하의 오적까지, 역적에서 영웅의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달리다가 벽초가 《임꺽정》을 자모산성편을 쓰다만 것처럼 기생과 술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갑작스레 마치며 벽초처럼 본인도 책을 미완성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하니 벽초를 너무 사랑하는 병에 걸린 것에 틀림없다.
나는 《임꺽정》을 읽으면서 벽초가 백두산 처녀총각인 황운총과 황천왕동이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보았으며 갖바치 양주팔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이미 초월한 신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벽초의 관조적 삶의 태도를 보건대 갖바치 양주팔이 곧 벽초 자신이라고 보았다. 그 근거로서 양주팔과 벽초의 인생의 각 시기를 비교하였다. 양주팔의 함흥시절은 벽초의 동경유학시절, 서울시절은 벽초가 귀국하여 중국으로 가기 전까지, 산천유람은 벽초가 중국과 남양을 떠돌던 시절, 양주팔이 다시 서울로 와서 조광조와 교류하며 임꺽정을 가르치던 때는 벽초의 정치활동 시기, 출가해서 병해대사가 된 것은 벽초가 일제의 압박으로 칩거하던 시절과 대응시켜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벽초가 구한말에 명문세족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지조있는 선비로 살기위해 일평생 힘겹게 노력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병해대사처럼 속세를 떠나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차라리 학문을 모르고 백두산 처녀총각처럼 순수한 자연인으로 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난세가 아니었더라면 벽초라는 위대한 인물이 학문으로나 문학으로나 역사에 더 큰 발자취를 남겼을터인데 우리의 슬픈 역사가 서글프고,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으로 또 해방정국의 사상논쟁으로 희생되었을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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