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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일상에서 한 사람의 모습은 그저 처세나 임기응변, 인간성, 지적수준 등 삶의 기교와도 같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만 드러날 뿐 그에게서 철학적 울림과도 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은 자연의 품에 안긴 고독한 영혼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뒤섞이며, 홀연 자신을 잊은 채 자연과 하나 되기에 이른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하지만 자연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우리에게 말과 글로 전하지 않는 한 그것은 전설처럼 떠돌 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체험이 아닌, 한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만남,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한 응시, 자신의 총체적인 삶을 계획하는 밑그림, 그 모든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이 비로소 자연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인식하는 황홀한 경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아닌, 영혼과 자연의 강한 입맞춤이어야 한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p.36)
<헤세의 여행>은 가볍고 경박한,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행에 대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들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에서의 일시적 해방, 이제껏 가본 적 없는 어느 바닷가의 일출, 고지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광, 오직 그것만이 다인 양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진을 찍어대는 현대인의 여행은 그것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소만 바뀐 일상에 가깝다고 느끼게 한다.
사실 유럽의 작가 중에 헤세만큼 동양적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외삼촌이 불교연구의 대가였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가 동양적인 사고의 유럽 작가가 된 데에는 수없이 많았던 여행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목적이자 전부였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여행은 단순히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순수의 자신에게 이르는 고행의 한 방편으로 여겼던 듯하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p.33)
헤세의 여행은 일견 구도자의 그것처럼 따분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자신의 글에서 솔직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낭송을 목적으로, 때로는 휴식을 목적으로, 집필을 목적으로, 또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계속되었던 여행에서 그가 품었던 소회는 우리가 갖는 여행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여행 중에 남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글 속에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신을 살피는 대문호의 겸손함이 묻어난다.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포자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p.437)
헤세의 여정은 니탈리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보덴 호수, 뉘른베르크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지만, 그의 여행은 언제나 자연과 자기 자신, 인간과 삶에 대한 관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속에 있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라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헤세의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 <헤세의 여행>은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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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비가 촐촐히 내리고 간간이 바람이 불어 스산함이 밀려들 때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고 싶은 열망이 강해진다. 한 달 남짓 네팔로 단체 배낭여행을 함께 떠났던 카페에서는 다음 여행 일정을 올리며 마음 내어 인도로 가보자고 손짓한다. 올해는 영혼과 마음의 도시 델리로 들어가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힌두교 인들의 성소로 알려진 바라나시, 사르나트, 코치, 마이소르 등을 돌아 첸나이에서 귀국하는 한 달 일정으로 예정돼 있어 가슴이 요동을 쳤다.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갈수록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강렬해지는 만큼 보충수업만 빠질 수 있다면 용기를 내어 떠날 수 있을 텐데 가고 싶은 생각에 마음만 앞선다.
‘심장이 느긋하게 뛰는 사람만이 앉아서 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방랑자는 번번이 기대가 빗나가도 여행의 수고와 고난을 견뎌낸다. 방랑의 온갖 고통스러움이 고향의 계곡에서 평화를 찾는 것보다 더 편안할지니.’ 헤세가 인도 여행의 서문에 작성한 구절을 보니 규율에 매여 살기보다는 전근대적인 여행 방식으로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로 살고 싶은 그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독서와 그림을 좋아했던 헤세는 서구적인 취향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커 보였다. 정주하여 은둔자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을 병행하면서도 너머 세상을 동경하며 살아갈 때가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생활하던 헤세는 1901년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 등을 돌아보고 독일의 뉘른베르크를 거쳐 스위스의 작은 마을 테신에서 노후를 보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환경에 놓이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여행은 무의미하여 보일 테지만 현지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 사회 문화적 상황을 이해하며 여행자로서 인간 미 있는 관계를 맺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여행은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여행지에서 현지인들과 정신적인 교류를 행할 때 체득하는 일상으로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 헤세 역시 정신적인 소통 속에 가치 있는 체험이 가능함을 알아차리고 관계 형성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 갔다. 물량적인 생활을 중시하며 속물적인 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일상을 잇는 생활에서 탈피해특정한 내용과 의미를 지닌 확고한 체험이 가능한 여행을 선호했다. 낯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현상에 담긴 이면을 꿰뚫기 위한 시선을 모으는 일을 시작으로 체험한 일들을 실천하는 생활로 이을 수 있어야 한다고 헤세는 말하였다.
아시아 여행은 원시림에서 풍기는 강렬한 생명력과 호흡하는 종교 속에 깃든 구도자적인 삶의 자세는 저자의 작품 속에서 재해석되어 창조되었다. 삶의 근원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사유하는 가운데 이동하며 계속되었다. 스무 살 청춘과 이별한다는 심정으로 안락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환멸감으로 회한이 들 때면 나만의 방에서 정적을 벗하며 은둔을 즐겼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내적 자아의 부름대로 보덴 호에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할 때마다 조그만 수첩에 메모하면서 체험 욕심이 컸던 자신과 맞닥뜨리며 그 욕구를 충족시켜갔다.
삶에 지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며 단 며칠이라도 시름없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레이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수상 가옥 도시 팔렘방의 이색적인 풍경은 만조와 간조 때가 상이하여 대별되는 양상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보였지만 현지인들은 이 역시 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이며 생활하고 있었다. 스리랑카 중부의 도시 캔디에 위치한 사원과 아름다운 삼림을 찾고 싶은 열망이 큰 이유는 오래된 석굴 불교 사원을 참배할 수 있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수정으로 조각된 불상의 매혹적인 모습에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헤세는 무엇보다 현지에서 만나는 인간들의 부딪침에 의미를 두고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인간적인 소통에 적극성을 띨 때 여행은 비로소 체험하는 여행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말은 잘 안 통하여도 몸짓으로 덧칠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인류애를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여행의 묘미를 재발견하며 유목민적 성량을 잠재우지 못한 채 유럽과 아시아를 떠돌며 살았던 작가의 여행 궤적은 또 다른 꿈을 불러일으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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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헤세, 여행하다. 글쓰다. [헤세의 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적은 스위스라고 한다. 독일과 스위스는 서로 이웃한 국가다.
그의 삶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기보다 정처없이 옮겨가며 이어져 왔다. 어디가 그의 진정한 고향인지는 그 자신만이 짚을 수 있으리라. 꽤 오랜 기간동안 작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글을 썼기에 그의 흔적을 알아보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읽어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그가 지내온 이력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사춘기 때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청춘의 문을 막 들어서려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장은 매혹 그 자체일 것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등등. 앞날이 막막하고 속시원한 대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시기에 있던 나에게 헤세는 그 당시의 꽉 막힌 심정을 읽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청소년들과는 이상하게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첫사랑의 실패를 이야기했고 학교 안에서의 거친 반항을 실천했으며 동성간의 막연한 끌림도 문학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는 그 유명한 구절을 곱씹으며 아프락사스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기도 했다. 만년의 헤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유리알 유희> 또한 헤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그 스스로 이룩한 사상의 완결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웬만큼 겪고 나서는 헤세에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되었고 딱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열의도 사그라들었다. 최근, 헤세의 헤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게 되면서 소설가로서의 헤세, 나의 청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헤세가 아닌 인간적인 헤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헤세는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다가왔다.
헤세의 진면목을 이로써 보게 되었다고 만족하던 그 때,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
위대한 작가로서의 헤세,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로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헤세를 거의 우러르기까지 했던 독자로서의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여인들과 짝을 이룬 헤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여행을 떠났던 헤세.
이제 인간 헤세에 대해 실망했던 내게 "헤세의 여행"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1904년의 <여행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여행을 대하는 헤세의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36
여행의 목적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며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목동의 눈초리나 피스토야의 소가족과의 경험 등 여행의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들도 첨가된다고...
이 책에는 1901년 최초의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1904년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 등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기록들이 주루룩 등장한다.
아름다운 목사관 앞을 지나가며 헤세는 그리움과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다. 밖에서만 보았을 뿐 그 안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이 목사관에 대해 나는 언젠가 진짜 고향 같은 향수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지낸 곳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말이다. 이곳에서 15분 동안은 정말이지 아이였고 행복했으니까. -302
이 집에 산다 해도 목사로 살지는 못할 것이고, 지금처럼 정처 없이 무해한 방랑자로 살 것이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학자가 되고, 때로는 미식가가 되고, 때로는 지극히 게을러져서 술독에 빠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아가씨에게 빠져 있기도 하겠지. 때로는 시인이나 광대가 되고, 이따금 가난한 마음에 불안과 아픔을 담고 향수병을 앓을지도 모른다. -30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방랑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자살 시도를 한 후, 서점에서 일하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헤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길고 긴 생애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아내는 세 명이나 된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방랑자로서의 삶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모순 투성이의 삶 속에서 무척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별로 여행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 주민이자 서재에만 틀어박혀 사는 문필가에게는 다다음달 12일에 이런저런 도시에서 마지못해 낭송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끔찍한 일이다. (...)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388
무지 까칠한 작가였지만 그의 문체는 무척 아름답고 묘사는 섬세하다. 무수한 여행을 통해 그가 얻은 것들은 그의 문학 혹은 에세이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여행시기에 맞추어 그가 쓴 글들(여행기 외에 소설, 기고문 등)을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그의 여행기와 수기 등을 통해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인간 헤세와 문학작품 작가로서의 헤세를 연관시키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데미안의 작가로서의 헤세만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랜 인생을 산 작가, 혹은 인생 선배의 녹록지 않은 연륜이 들어 있는 글들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그리 후회스럽지는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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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헤르만 헤세의 책을 만났던 것은 어떤 책을 구입하면서 덤으로 제공된 <정원일의 즐거움>이라는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사실 그 책은 읽을 당시에는 큰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다른 감정들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근래에 들어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두 편의 소설을 만나게 되면서 헤르만 헤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에세이로는 두 번째, <헤세의 여행>을 통해 소설이 아닌 작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여행, 헤세 역시 여행을 꿈꾼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24세부터 50세까지 쓴 여행과 소풍, 글쓰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행에 대한 기록, 그리고 작가가 24세부터 50세까지 긴 기간 동안 써왔던 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작가의 변하는 감정이나 인생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부분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 1901년, 24세의 헤세의 이야기에서 1927년까지 보덴 호, 이탈리아, 아시아, 테신, 뉘른베트크 등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내용들이다. 이 책이 <헤세의 여행>이라 해서 각 나라나 지역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여행을 하고 여행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헤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여행과 여행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한다.
'도시인이 여행하는 것은 여름에 도시가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가 여행하는 것은 공기를 바꾸고, 다른 환경과 사람들을 봄으로써 일에 지친 피로를 풀고 푹 쉬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p.32' 라고 말하는 헤세의 글에서 지금의 우리가 여행을 원하는 이유와 다를 것이 없다. 헤세는 누군가가 유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 여행을 하는지 안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떠나고 싶어서 떠났지만 집이 그리워지는, 내가 있었던 것이 그리워 지는 것에 대해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무척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풍경을 원하고 공기가 좋은 장소를 찾는 여행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며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고 말한다. 헤세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벓 체험이 아닐까 싶다.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의 체험이 중요하다. 일상의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으며 호기심의 충족이 아닌 다양한 진리와 법칙을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가까운 고행은 내게 너무 서늘하고, 너무 딱딱하며 분명하게, 안개나 비밀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저 건너편에는 모든 것이 무척 부드러운 색조를 띠고 있었고, 듣기 좋은 음향, 수수께끼, 유혹으로 넘쳐흘렀다. 나는 그 이후로 방랑자가 되었고, 안개에 싸인 온갖 저 머나먼 언덕 위에 서 있었다. -p.48
그때 두 개의 벽 가득 책들이 놓여 있었다. 모든 책은 좋은 시절이나 나쁜 시절에 돈을 아껴 조금씩 모은 아름다운 보물이었다. - p.72
나는 우리 모두가 한때 소년으로서, 대담하고 뻔뻔한 소년으로서 삶에 관해 우리의 당연한 권리로 기대했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 중 실제로 실현된 것은 얼마나 형편없이 적었던가. 그렇지만 삶은 살만하고 아름답다. -p.78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늘 아름다운 것이 넘쳐난다. 모든 기쁨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은 그것이 과분하게 오고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p.102
헤세가 여행을 하며 본 갖가지 종류의 삶, 좀 더 가난한 나라들을 여행하기로 마음먹기도 하지만 긴 시간 동안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여행이라는 제목에 따른 각 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헤르만 헤세의 생각과 문장들이었다. 처음에는 역시 처음 만났던 에세이처럼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글 속에 담긴 마음에 하나하나 와 닿는 헤세의 생각들을 만나 즐거운 헤세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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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즐겨읽는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을 책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은 방안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여행이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다는 점도 여행 서적을 자꾸 찾아읽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 책 『헤세의 여행』은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독특한 인상을 준 책이다. 같은 여행이어도 작가의 여행은 바라보는 시각이 좀더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일반인으로서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잘 잡아내기에 언급한 내용을 읽고 나서야 '아!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깨닫게 된다. 유명한 작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궁금한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독서 목록에 넣어두었다.
이 책은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인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이다. 얼마전『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통해 괴테가 1786년 9월부터 1788년 6월까지 약 20개월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메모한 글을 읽어보며 그 시대의 여행을 짐작해보았다면, 지금은 『헤세의 여행』을 통해 헤르만 헤세의 눈으로 스위스, 남독일, 이탈리아, 아시아 여행지와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것이다. (21쪽) 여행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생소한 환경에 자신을 던져두고 내면과 외면 모두 성장하게 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여행서적을 즐겨 찾아 읽고 있기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행기는 다양하게 많이 접해보았다. 패턴이 어느 정도 비슷하게 흘러가기에 이제는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며, 외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 어떻게 느껴졌는지, 여행을 하는 자신의 내면은 어떤 모습인지, 이 책 『헤세의 여행』을 통해 그 시대에 여행을 하며 다른 세상을 바라본 모습과 인간으로서의 생각을 살펴보게 된다.
이 책은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어치우게 되는 책은 아니다. 은은하게 음미하며 서서히 읽어나가게 되는 책이다. 시대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테다. 같은 시대에 살아가도 세대차이를 느끼는데,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데다가 국적까지 다르니 살짝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래도 헤세의 여행을 바라보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고, 내면을 바라보는 방법이나 세상을 사는 방식 등은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관심있게 보게 된 부분은 인도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동양인이며 인도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서양인이 바라본 인도의 모습과 비교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헤세의 여행을 통해 그동안 지나온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기도 했고, 낯설고 이국적인 나라를 여행할 때에 헤세가 느낀 것과 비교하며 내가 느꼈던 점을 떠올리기도 했다. 문학의 거성이 그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 닳도록 다니고 사유하며 얻어지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기대와는 약간 다른 느낌의 책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책이어서 읽어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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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한 오류다.(p.13)
나들이 혹은 여행을 떠나보면 카메라를 들고 연방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됩니다. 곳곳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넘쳐 나다보니 그들을 피해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카메라 없이 빈손인 여행객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니 ‘전 국민 사진작가 시대’란 표현은 빈말이 아닙니다. 저 역시 여행 중 기억하고 싶은 장소에서 동행한 이들과의 사진 한 컷을 남기는 순간을 빼놓지 않습니다. 훗날 사진 한 장이 그 시간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는데 일조하리란 기대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진 찍기 적당한 장소를 찾고 마음에 드는 한 컷을 손에 쥐면 모든 게 완벽해 진 듯 안심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여행의 목적이 ‘사진 찍기’인 양 말이죠.
그런데 전 국민이 사진 찍기 열풍에 빠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보관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더 큽니다. ‘나 여기까지 다녀왔다’며 자랑하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담긴, 의도된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행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책(p.21) 『헤세의 여행(2014.07.25.연암서가)』을 읽으며 여행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지금껏 여행을 떠날 때면 우선 여행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부터 확인했습니다. 가끔은 이와 반대로 유명 관광명소로 가기 위해 여행지를 결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낯선 거리에서 경험하게 될 생소한 체험보다 무엇을 보고 먹을지, 숙박 장소르르 결정하는 계획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치 있는 여행'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헤르만 헤세는 『헤세의 여행』에서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내면의 발견, 내적 본질의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여행이라는 시류에 목적 없이 동승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떠나는 행위에만 집착하지 말고 여행지에서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성장과 변화의 발판으로 삼으라고 조언합니다. 여행이 주는 긍정적인 힘이 강조되면서 인간의 삶 속에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헤세의 글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헤르만 헤세가 여행을 통해 성장과 변화의 씨앗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그의 여행이 유쾌하고 즐거웠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나 헤세의 조언대로 다음 여행을 떠날 때는 카메라는 잠시 내려놓고 조그만 수첩 하나 들고 길을 나서렵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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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유명한 여행지를 찾듯이 책을 고를 때에도 누군가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책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은 학창시절에 즐겨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는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소설은 새로운 창조의 결과물이라면 에세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헤세의 여행>은 헤르만 헤세가 24세부터 50세까지 쓴 에세이 중 여행이나 소풍에 관한 글과 여러 나라의 여행을 기록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근래 여행을 주제로 한 TV프로그램이나 여행관련 서적이 많아지다보니 멀게만 느껴지던 유럽 여러 나라들까지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아름답고 멋진 자연풍경이나 이국적인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눈으로만 즐기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대부분 생각으로 그칠 때가 더 많다. 그만큼 여행을 실제로 떠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일반적인 여행은 여름철에 떠나는 피서나 주말여행 등 짧은 기간 집을 떠나는 경우를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한다기 보다는 그냥 단순히 쉬고 즐긴다는 개념이 더 강한 것 같다. 누구 말처럼 여행은 하나의 유행이고, 남들에게 과시하기 좋은 주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헤세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여행지가 어디이고, 무엇을 체험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위대한 작가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장거리 여행은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악취와 모기에 시달리고 깨끗한 물에서 목욕할 수도 없는 괴로운 상황에 처하면 여행은 고행이 된다. 하지만 집에서 누리는 안락하고 편안함을 포기한 채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행의 낭만이란 절반은 다름 아닌 모험에 대한 기대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에로틱한 것을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 해소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이다. 우리 같은 방랑자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랑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데 익숙하다. 또 원래는 여자에게 향했던 그 사랑을 놀이하듯 마을과 산, 호수와 협곡, 길가의 아이들, 다리 밑의 거지, 목초지의 소, 새와 나비에게 나누어주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사랑을 그 대상으로부터 떼어낸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로 충분하다. 마치 우리가 방랑 중에 목적지를 찾지 않고 단지 방랑 자체의 즐거움과 길 위의 생활을 추구하듯이." (292P) 헤세의 여행만이 가치있는 여행은 아닐 것이다. 여행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행자 자신뿐이다. 아직 여행의 참다운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한 한 사람에게는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렌다. 비록 여름휴가는 피곤의 연속이었지만 그것 또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여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작열하고 찌는 듯이 더운 누런색 밭들, 높고 시원하며 말없는 숲, 그리고 많은 노 젓는 날들. 노 젓는 날 말이다!" - <여름이 오는 길목에(1905)> (91p) 헤세처럼 우리의 남은 여름을 제대로 즐겨야겠다. 헤세의 여행이지만 머리말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 공감이 간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다. 어디로 떠난다는 의미보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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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현재 삶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낯선 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세의 여행>은 단지, 여행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이것을 행하기 앞서 왜 그곳을 가려하는지 더불어, 어떠한 마음으로 가야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굳이 저자가 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까? 그냥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고 오면 안될까? 물론, 가능하죠. 하지만, 여행의 더 큰 의미를 두기 위해선 우리는 '여행의 목적'를 가져야 합니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고 말합니다. 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정신적은 휴식이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문장입니다.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좋지만 그곳에 있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까진 어쩌면 우린 여행의 참 뜻을 알기 힘들거 같아요.
여행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것이라 하죠. 문득, 혼자 여행했던 날을 생각하니 혼자였기에 당황스러웠던 일 그리고, 무서웠던 일 등 떠오르면서 자꾸 다른 나를 찾고 싶었답니다. 여전히, 여행은 저에게 있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이 시간의 끝은 없는거 같네요.
또한, <헤세의 여행>엔 헤르만 헤세가 썼던 작품에 대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인간은 주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어쩌면 부정적인 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 번 스친 모든 것은 무의식으로 남겨지나 봅니다. 그것이 토대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요. 헤세의 작품은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는 없으나 왜 이러한 소설이 출간 되었는지는 여행 에세이에서 알게 되었답니다.
특히, 아시아권 여행은 유럽과 다른 또 하나의 느낌을 선사했답니다. 여행자들은 말하죠 꼭 인도로 여행을 가보라고....도대체 무엇이 그곳에 있길래 모두들 권유를 하는 것일까요. 과거와 현재가 움직이고 있는 곳. 전 , 사실 인도 여행은 딱히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행자에게 보여지는 현지인들의 삶을 왠지 미화시키는 것 같거든요. 신분제도로 인해 감옥 아닌 감옥에 살고 있는 삶. 그 자체만으로 힘들텐데 말이죠. 이들은 꿈 자체를 꿀 수 없잖습니까.
나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달라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헤세 역시 아시아권 여행을 통해 유럽인들에게서 느끼지 못한 수 많은 감정들을 배웠다는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을 다른 이게게는 여행 그 자체만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여행'. 헤르만 헤세는 전자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다르게 인문학이 다소 풍기는 <헤세의 여행>. 그렇기에 쉽게 피부로 와 닿지는 못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단기간이 아니라 한 두달이라도 좋으니 음미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전 읽었던 순간에 미처 만나지 못했던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간격을 두어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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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수많은 나라를 여행할수는 없기에 대리만족을 하듯 왠만한 여행에세이는 기회만 되면 무작정 읽어대곤 했다. 그래서 사실 어쩌면 '헤세'의 이름보다도 '여행'이라는 책의 제목에 더 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헤세가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와 아시아를 여행하며 기록한 글들을 편역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여행에세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런 책과는 또 다르다는 뜻이다. 처음 '편역'된 글이라는 것을 알고 슬그머니 책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었지만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니 확실히 다른 여행에세이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또 그 다른 이유때문에 이 책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것을 단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상의 단조로움과 익숙함에서 벗어나고 일상의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위해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곳으로 떠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헤세 역시 여행을 체험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워지고 타인과 다른 세상을 이해하며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을 느끼고 깨달았다. 헤세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에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다른 세계의 풍경을 인문학적으로 살펴보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내가 봤던 수많은 풍경들보다는 찍어 놓은 사진들을 분류하면서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찾아보곤 한다. 실제로 많은 곳에 대한 기억보다는 후에 다시 찾아보며 기억을 되새겨보게 되는 곳이 많다. 내가 바라봤던 이국적인 풍경과 건축, 문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여행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 역시 내 여행의 기록을 하게 될 때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느낌들을 적어놓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만났던 낯선 풍경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라거나 문화적인 충격이라거나 새로운 깨달음 같은 것들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소매치기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가방을 움켜쥐고 다니다가 유명관광지임에도 그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례객이며 밤 늦은 시간에도 동네를 걸어다녀볼 수 있는 장소에서 느꼈던 평화로움은 나 자신의 각박한 시선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하리라 지레짐작하며 나도 나자신의 것만 챙기며 욕심을 부리고 있는데 누군가 낯선이에게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존중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도 역시 나 자신의 선입견과 부정적인 생각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세의 여행을 읽다보면 나의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게된다.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한 오류다. ..... 그런데 그는 그 자연으로부터 가장 피상적인 것, 가장 비본질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며, 가장 좋은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길가에 놓아두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런 자는 보고 찾아내며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42)
솔직히 서평도서로 제공을 받은 책이기 때문에 여유있게 마음내키는대로, 책을 집어들어 펼쳐지는대로 헤세의 눈길을 좇아 그가 바라보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더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내가 어느 곳으론가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의 시선은 많이 달라져있게 될까? 그때쯤 다시 헤세의 여행을 읽게 된다면 지금의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깊이를 깨닫게 될까? 괜히 더한 아쉬움이 남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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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는 리뷰를 올린 후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편이다. 자칫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올려 놓은 리뷰를 먼저 보았다. 내 독서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확인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이미 등록되어 있는 리뷰들은 아주 좋은 책이라는 평을 보이고 있었으며, 내 당혹스러움은 한겹 더하게 되었다.
헤세의 글은 좋았으리라, 그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어 원문을 읽는다면, 나았을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소제목들과 글의 흐름으로 본다면 상당히 우아하면서도 아늑한 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헤세가 들려 주는 내면의 목소리도 상당히 감동스러울 텐데, 그러나 나는 끝내 집중하지 못했다. 문장에 걸리고 단어에 걸리면서 글로부터 자꾸만 튕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번역 부분에 의심이 들 정도로.
이 부분에서만 그렇겠지, 내 습관이 잘못 되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 다음 장을 읽어 보면 괜찮을 거야......
나는 밤을 단호히 거절하려 하지 않았다.(75쪽) 여관은 평판과 다름없음이 입증되었다.(127쪽) 자연은 조심스레 보살피지 않고 이곳에선 아낄 필요가 없다.(212-213쪽) 낯선 먼 땅이 다시 내게 속하고, 외지가 고향이 되었다.(321쪽) 이제 나는 세상으로 여행 떠나는 것이 아니었고, 우월감을 지니고 뒤에 남은 이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470쪽)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내가 읽어내지 못하는 문장들. 내가 알고 있는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들. 여행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글 밖에서 자꾸만 투덜거리고 있는 나.
그래서 나는 책을 덮기로 했다. 아쉽다. 잘 읽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이것은 다음에 다시 읽어 본다고 나아질 상황은 아닐 것 같아 그게 또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