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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꿈꾸며..
"유토피아를 꿈꾸며.." 내용보기
예전에 타임슬립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영화도 찾아보고 그런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이 대략 그것과 비슷합니다. (방법만 비슷합니다.. 내용은 전혀 다르죠) 주인공이 꾼 꿈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19세기 후반의 영국에 사는 주인공이 꿈에서 사회주의가 완벽하게 구현된 22세기 영국으로 옮겨가 몇일 머무르면서 여행다니고 그곳에 사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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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타임슬립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영화도 찾아보고 그런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이 대략 그것과 비슷합니다. (방법만 비슷합니다.. 내용은 전혀 다르죠) 주인공이 꾼 꿈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19세기 후반의 영국에 사는 주인공이 꿈에서 사회주의가 완벽하게 구현된 22세기 영국으로 옮겨가 몇일 머무르면서 여행다니고 그곳에 사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독자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행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주인공이 돌아보는 곳곳에 대한 묘사나 이 책의 주요 등장 인물인 해먼드 노인과 나누는 대화를 봤을 때, 그리고 그 부분이 차지하는 전체 책에서의 분량을 생각해보면 사회과학서적에 가깝다고 보는 게 더 맞을 듯 합니다.

 

저자인 William Morris는 1800년대 초기 영국 사회주의에 있어서 원류로 평가받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본문 뒤에 역자가 붙인 모리스의 사상과 생애에 관한 짧은 평전이 있는데, 나름대로 뚜렷한 사상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 스스로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으면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자각시키는 일종의 '교육'을 사명으로 삼았던 사람인데요. 이 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지 싶습니다.

공해에 찌들고 원치않는 노동에 시달리며 가진 자로부터의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야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계급에 대비하여, 주인공이 꿈 속에서 본 세상에서의 사람과 자연은 깨끗한 물과 공기, 숲 속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즐거운 노동을 하며 모두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필요한 만큼 쓰는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입니다. 주인공이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본 것들 및 해먼드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사유재산과 화폐제도가 철폐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그 사회에서는 어떻게 사회제도가 운영되고 굴러가는지, 사람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중재하는지, 사랑과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변하였는지도 묘사합니다.

이 책이 그런 유토피아적인 세상을 단지 '꿈'꾼 것만은 아니라는 게, 주인공과 해먼드 노인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갈 수 있었는가, 즉 혁명과정에 대한 묘사가 꽤 상세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완벽한 이론서는 아닐지라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주인공이 21세기 영국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실제 살고 있는 19세기 영국의 비참한 현실을 그것과 끊임없이 대조시켜가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리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 가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윌리엄 모리스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사회주의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장에서는 100명의 노동자를 엄하게 부린 대자본가였다는 사실은 좀 깹니다. -_-;; 언행일치라는 게 그렇게 힘들군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이 갖는 한계가 나온 것 같습니다. 22세기 영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천상의 마음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까지 변화한 사회를 뜻하는 것이라고 미리 말해두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해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여사는 그런 사회는 아무리 이상향이라 해도 그리 와닿지는 않더군요. 모리스가 어렸을 때부터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뒤에도 엄청난 부를 축적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좀 심하게 말하면) 널널한 설정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록 저자도 그렇고 책의 주인공도 19세기 후반 영국인으로 설정되어있지만, 수정자본주의를 넘어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과 비교해봐도 책에서 모리스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해먼드 노인은 21세기 초엽은 공산주의 사회가 성숙을 향해 가는 시기였다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여전히 빈부격차는 심하고, 자연은 더 더렵혀지고 있고, 자본주의 국가의 제국주의화는 갈수록 더해가고, 인간을 물격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계와 자본의 공세는 여전하고, 노동은 전혀 즐겁지 않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200년 동안 달라진 게 없다고하여 모리스가 꿈꾸었던 그런 세상이 단지 유토피아적 공상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고 그저 안주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 중간에 나오듯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야만 그 목적에 다다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다. 지금은 갈 길이 너무 멀어보이고 암담할지라도 희망과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해야만 언젠가는 그 '유토피아'에 다가갈 수 있겠죠.

 

내가 본 대로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비젼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필맥, Willian Morris 지음, 박홍규 옮김, 477 page

r*****o 2005.01.05.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이상향의 전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이상향의 전환!" 내용보기
이 작품을 과연 뭐라고 평해야 할까... 일단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곤란한/어려운 점을 두개만 지적해보면, 윌리엄 모리스라는 사람이 원래 예술 - 미술, 건축, 디자인 그리고 시작 - 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고,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수공공예품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인지, 소설(그냥 로망스라고 하는게 더 옳다고 역자는 말하지만) 내용중 상당부분을 차지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이상향의 전환!" 내용보기
이 작품을 과연 뭐라고 평해야 할까... 일단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곤란한/어려운 점을 두개만 지적해보면, 윌리엄 모리스라는 사람이 원래 예술 - 미술, 건축, 디자인 그리고 시작 - 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고, 특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수공공예품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인지, 소설(그냥 로망스라고 하는게 더 옳다고 역자는 말하지만) 내용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건축이나 가구들에 대한 묘사를 동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 배경이 2150 년 정도를 가정한 미래이긴 하지만, 영국(혹은 유럽)의 중세적 공간을 가정하는 듯한 목가적인 풍경이었고, 그러한 정서를 이상화한 내용과 대화들이었기 때문에, 역시 쉽사리 동감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몇가지 평을 하자면 '황금시대' 혹은 '요순시대'의 모티프라는 것은,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상들에 있어서 매우 강력한 배경이되고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은근한 족쇄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부와 화폐를 초월한, 개인적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회, 환경오염이 없는 목가적인 생활공간과 스스로 수공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는 다양한 일상용품 그리고 삶터. 주인공이 에코토피아(영국의 미래상)을 떠나면서 어쩔 수 없이 우울해 하고, 통곡까지 할 정도로 저버리기에는 아쉬운 이상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바탕이 되는 정서라는건... 윌리엄 모리스는 둘중 하나로 생각했다는것 같다. 극단적인 하부구조 결정론자이거나, 극단적인 주의주의자. 그가 그리는 유토피아의 인물들은 거의 엘프 수준이다. 그래, 엘프가 딱 맞다. 그들이 엘프의 신체와 감성을 갖추게 된 것은... 억압적인 19세기 영국 자본주의가 철폐되면서 한 1-2세기 정도 만들어 온 세상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설정하는 것 같다. 내가 비관적인지는 몰라도,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으니,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의 탁월하고도 치열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유복한 생활을 해오던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낭만적 (로망스적) 이행 이상을 가정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이행의 모델은 역시 유한계급들의 영원한 고향인 황금/요순시대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상이 이 작품에 대해서 내가 딴지 걸수 있는 전부다. 그 외에는... 정말 환상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이행과정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작가의 성찰은... 그것이 픽션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매력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컸었다. 앞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한계인 것 처럼 지적했던 부분이, 나름대로의 강점으로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는 변혁의 과정이나 상은 경제주의적으로 편향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서술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소위 '신좌파의 상상력'이라는 것도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모리스의 사상은 그 저류에 분명 자리잡고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갑자기... 맑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역자가 예전에 펴낸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군... --;;; 당시는 앞에서 말한 불만이 더 큰 인상으로 남았었다. 그 이유는 너무 겉핥기 식으로 사상을 정리하다보니, 절대 그 사상을 이해할 수 없도록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히려 이 책과 같이 소설의 형식으로 사회의 여러부분에 대한 저자의 이상을 그려놓을때, 그것이 전달되기는 유리할 테니까. 특히나... 국가사회주의, 계급중심주의 같은 것들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당시의 성찰에 대해선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모리스의 사상에 오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역시 여러가지 사회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생활방식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래... 98년에 읽을때는, 아나키즘에 대한 참고로 봤었던 것 같다. 정치적 아나키즘은 반대하면서도 철학적 아나키즘을 수용했다는 역자의 서술이 조금은 이해된다. 참고로 윌리엄 모리스는 1834년에 태어나 1896년에 죽었다고 한다. 그가 1890년에 쓴, 2150년의 세계에 대한 환타지가 바로 이 소설이다. 나는 지금, 2150년 아니, 2250년의 세상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e****s 2004.06.28.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