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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에 치우쳐 '갈때까지가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사람의 일반적(?)성향은 40년대라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시대를 주름잡았던 좌와 우라는 '전투적인극단주의'가 그야말로 극치에 달했을무렵 불안하고 불투명한 운명의 그림자는 지친 한반도를 뒤덮으며 또 다시 민족의 숨통을 조였다.
암울하고 살벌함에 혼란마저 가중된 그 시기에 이 나라에는 민족과 민주를 표방, 민중을 '영도'(?)하며 이 땅의 '평화통일'을 강조했던 소위 지도자들이 난립해 좌파, 우파, 그리고 둘을 '합작,절충'하려했던 중도파로 세력의 경계가 분명했던때였다.
하지만 '지나침(과잉)'의 결과는 으레 반목이라는 부작용을 낳음에 당시 한민족끼리의 부질없었던(사상,종교,기득권을 놓고 벌인)대립과 일제강점기때부터 몸에 배어온 복종심리는 민중의 의식을 허수아비의 방관에 못지않은 누더기로 만들어버리며 협박과 학살과 탄압이라는 더러운 방법론으로 인권을 맘껏 유린케한 온상이 되어주었다. 아시다시피 그 선두엔 우익의 '위대하신영도자' 이승만과 사이비 영도자를 보좌하는 대한청년단을 비롯한 각종 '깡패'정치세력단체가 제멋에 한껏 취해있었다...
그리고 해방의 감동이 무르익기도전에 전략적, 정략적 명분을 내세운 '힘의논리'로 남과 북을 가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기류는 사상과 이념에는 관심도 배경지식도 모자란 민중들을 좌익과 우익의 흑백논리속에 파묻어버리면서 이승만의 탐욕과 광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게다가 미국의 비호에 힘입어 체질적인 기회주의적 '사바사바'근성으로 이 땅의 관례와 형식을 다시금 지배하게된 친일세력의 '부활'은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왜 대한민국이 부패와 대립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어야하는지에대한 '태생적한계'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의 40년대엔 우익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삐에로가 되지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등져야했다. 이승만의 파시즘적 '탐욕'과 좌익에대한 소아병적 반감이 종교화, 불문화시킨 '우익만세'현상은 총칼앞에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소박한 민중들의 타의적 멍에였다. 그런의미에서 4.3항쟁과 여순궐기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가능성이자 희망이었으며 성스러운 분노였다.
독재자의 일상은 언제나 경계와 감시의 연속일 수 밖에없다. 죄짓고 두발 편히 뻗고 잘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이승만은 그러한 '독재자의심리'를 고스란히 간직했던 인물로 4.3항쟁과 여순궐기사건과 관련한 대규모 학살과 살인적광기로 무장한 '숙청'작업은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것은 사람이 미치면, 그것도 한나라를 지도하겠다는 사람이 미치면 어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 희대의 만행이었다.
간도 쓸개도 없이 미국이란 나라에 빈대붙고 친일파엔 한없이 너그러웠던 '건국의아버지' 이승만에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려했던 작가조차도 사실들을 나열하다보니 기가 막혔는지 지식인이기 이전에 한명의 민중으로서 느낄만한 '최소한의' 분노와 놀라움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 외에도 김구와 여운형에 대한 재평가와 이승만과 김구의 공통된 시대의식을 되짚어보려하는 저자의 침착함은 뭇 독자들이 가졌던 초기현대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환기시켜주는데 일조할것으로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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