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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를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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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우수수 불기 시작하는 계절. 스무살 송은경은 햇빛에 그을린 연한 갈색 얼굴에 뛰어난 용모와 터질 듯한 젊음, 노르스름한 부드러운 머리칼, 햇빛에 덜 탄 분홍빛 목덜미와 꿈이 있는 청포도처럼 시원하고 푸른 눈을 가졌다. 국회의원 김상국 씨의 부인 허찬희는 은경의 어머니 강영숙의 서울S여고 후배이며 사랑동생이다. 안타깝게도 사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 남편은 소실
"운하를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기 시작하는 계절. 스무살 송은경은 햇빛에 그을린 연한 갈색 얼굴에 뛰어난 용모와 터질 듯한 젊음, 노르스름한 부드러운 머리칼, 햇빛에 덜 탄 분홍빛 목덜미와 꿈이 있는 청포도처럼 시원하고 푸른 눈을 가졌다.

국회의원 김상국 씨의 부인 허찬희는 은경의 어머니 강영숙의 서울S여고 후배이며 사랑동생이다. 안타깝게도 사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 남편은 소실을 얻어 살림을 하고 있고 그 사이에 자식도 있다. 고독한 그의 환경이 불우한 남매 은경과 민경을 찾게 했고 애틋한 애정을 느끼게도 했다. 물도 씻어 먹는 성미는 찬희에게 적합한 표현이다.

마산에 살고 있던 은경은 어려운 일 있으면 올라 오라던 찬희의 말을 믿고 서울 찬희의 집을 찾아간 날 비서로 있는 이치윤과 처음 만나게 된다. 바로 그 날 급성 맹장염으로 치윤은 수술을 받게 되고 은경은 병문안을 오가며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 치윤에게는 가정을 떠난 아내 경란과 밀양에 사는 그의 어머니가 키우고 있는 어린 딸 영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경은 유학파 매력남 남식의 청혼을 뒤로하고 치윤을 사랑한다.

치윤의 친구 남식은 한 때 경란을 좋아했지만 치윤을 선택한 관계를 인정하고 친구로 남을 줄 아는 호탕한 성격이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기업가인 아버지 김사장의 부를 이용해 출판사를 만들어 치윤, 은경과 일을 시작한다. 은경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그는 은경과 결혼까지 생각하지만 친구 치윤을 사랑하게 된 은경을 존중해 주면서 지켜본다. 경란의 교양은 겉치레였다면, 은경은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하며 선한것으로 가득찬 사람임을 느낀다. "그분도 박지태 씨 정도의 호의를 제가 갖구 있거는요. 그런데 그분한테는 참 명랑하게 할 수 있어요. 사람이 양서이거든요. 한 번 거절하면 아, 그러느냐는 식으로 무관하게 친구로 대해주거든요. 조금도 마음의 부담을 안 느껴요." 은경이 오빠 민경과의 대화 중에서 남식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다.

은경을 짝사랑하는 박지태는 은경이 마산을 떠나 서울행을 하는 기차역에서 배웅을 해준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은경을 두 번 찾아 온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떤 시대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은경과 지태가 율 브린너 주연의 영화 <여로>를 함께 보는 장면에서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었다. 1959년 10월에 개봉한 미국 영화이니 그 즈음이다. 이렇게 궁금증이 풀렸다.

이 소설의 배경은 자유당 시절의 말기다. '자유당'은 1951년 창당되어 약 10년간 지속된 보수당으로 이승만 장기 정권의 힘이었다. 1960년 또다시 집권 연장을 꾀하려다 3.15부정 선거로 인해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정권이 붕괴된다. 우리 나라의 아픈 역사를 터치하는 작가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그 시절을 이해하는데 소설만큼 좋은 재료가 없는 듯 느껴진다.

이 책의 제목 '푸른 운하'를 통해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은경의 맑은 눈빛은 깊은 바다의 심연같은 치윤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랑의 운하를 만들기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한다. 또한 찬희의 인정스런 눈으로는 부모 잃은 고아들을 품는다. "운하를 팔래요. 그분, 그분은 고독해요. 운하를 파서 바다를 끌어 들일래요." 작가가 은경을 통해 이야기하는 이 책의 명문장이다.

70년대에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60년대를 이해하는데 더 없이 값진 글로 찾아왔다. 박경리(1926~2008)작가의 1961년 작품 <푸른 운하>는 젊은 박경리와 함께 진한 여운을 남겼다. 등장 인물들이 운하를 파며 만들어 가는 삶의 인생 이야기다. 어떤 사랑을 하고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인 우리들의 몫이다.



s********9 2018.06.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