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이 책을 시중에서 안 파는데 대략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이 무척 활발할 때라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저도 한 질을 다 갖고 있는데 간혹 큰 폭으로 할인도 해서 고맙게 질렀던 기억입니다. 도정제가 실시되는 작금과는 달리 어떤 낭만 같은 게 있었지요. 이런 류의 일화집은 현대 중국 들어 새로 생긴 출판, 저술 풍조가 아니라 이미 고려, 조선조에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공부는 해야 하지만 그 많은 책을 일일이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다 읽어내기도 버거운 노릇이라 다이제스트가 필요한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책, 아니 이 책뿐 아니라 현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라며 나오는 첵들의 문제점은, 얄팍한 자계서류 교훈을 억지로 짜깁기해서 무리한 당위를 부여한다는 겁니다. 현대는 다원주의의 시대이건만, 다양한 가치관과 해석을 무시하고 관학과 어용에 반하는 패배자들은 무조건 악으로 간주하는 획일적 태도가 두드러지는데, 아직도 이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승자 추수의 영합주의에서 못 벗어나는 게 아닌지 하는 씁쓸한 느낌만 듭니다. 강건성세로 요약되는 청나라 세 현제의 시기는 "볼 만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칭되는 시대의 조선에서는 병자호란의 "치욕" 때문에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 폐단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수, 당, 송대의 명재상, 문장가, 충신의 일화는 널리 퍼져 애독되었지만 청 이후의 사적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이런 책을 읽고 유익한 점만 적절히 추출하면 그런 지식의 편중도를 완화할 수 있어 좋고, 모든 책은 그런 방향으로 건설적 소화를 도모할 일입니다. 나쁜 책도 그 독자가 현명하면 건강한 내장에서 신진대사에 필요한 양분을 잘 추출해 내는 법입니다. 청대에 활약한 뛰어난 인물들이 많지만 만주족이라서인지 성명이 매우 생경해서(아니면 그저 제 기억력이 안 좋아서) 방금 전에 읽었는데도 이름이 잘 생각 안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건륭제가 아낀 신하 화신(和?)이 그러한데, 책을 다시 펴기 귀찮아서 구글에다 "건륭제 재상"이라 검색하니 바로 이름이 나옵니다. 그만큼, 한국어를 모어를 쓰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신이라는 인물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뜻입니다(저도 이렇게 서평까지 쓰는 과정을 거치니 앞으로 다시는 안 잊을 터입니다). 성종 연간에 윤필상은 재물욕이 많아 "식화 재상"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으며(대신, 여진족을 격퇴한 공도 작지 않죠), 대재상 장거정도 죽고 나서 남긴 재산이 나라의 예산 몇 년치였다는 씁쓸한 사실도 있습니다. 결말이 뻔한데도 건륭제가 화신의 전횡을 방치한 건, 첫째 그 재능이 일국을 경륜할 만큼 출중한 데도 결국 신하의 신분에 머물러야 하는 안타까움, 둘째 결국 뿌린 대로 거두고 만다는 냉연한 통찰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게 제 추측입니다. 여튼 그의 다국어 구사 능력(?)은 진심 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