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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사회과학 서적도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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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서적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나의 편견은 이 책을 보면서 여지 없이 깨졌다. 내가 받은 이 감동이 맑스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이진경씨에게 기인한 것일까? 그런건 별 상관없다. 중요한건 지금 내가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일테니.이진경씨는 '맑스'와 '자본'을 재해석함으로써 맑스라는 불사조에 또하나의 생명력을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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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서적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나의 편견은 이 책을 보면서 여지 없이 깨졌다. 내가 받은 이 감동이 맑스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이진경씨에게 기인한 것일까? 그런건 별 상관없다. 중요한건 지금 내가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일테니.

이진경씨는 '맑스'와 '자본'을 재해석함으로써 맑스라는 불사조에 또하나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물론, 이진경씨의 맑스 속에는 폴라니, 네그리, 푸코, 알튀세르 그리고 무엇보다 들뢰즈!!의 맑스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물론 나 또한 이 책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바 있고, 아울러 실제 내가 보기에도 다소 궤변처럼 보이는 논리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맑스를 지금, 여기에서 부활시키려는 그의 노력과 발상의 전환을 비난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진경씨는 줄곧 '외부'를 이야기한다. 외부는 사물과 체계가 존재한다면 있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외부'이다. 그리고 그는, 맑스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외부를 사유하려 했던 학자였고, 그리고 그 외부를 사유하기 위해 '자본'을 썼다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자본을 리라이팅 즉, '다시 쓴다.'(물론 그 다시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자본'에 쓰여져 있다고 알고 있는 몇몇 '법칙'에 대한 설명을 누락시키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읽다보면 종종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정보화시대 그리고 세계화 시대 맑스는, 혹은 '자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에 대해 정말이지 감동적일 정도로 좋은 정보를 얻었고, 그의 사고 방식은 그만큼 내가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준 것 같다. 물론 그의 작업이 이 책으로 '완성'된 것이라 보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보여준 분석과 기획은, 나로하여금 이후 그의 행보를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정말 강추~!!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정말 '올해의 책'이다.
j***8 2006.03.12.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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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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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그러나 그 책은 내가 읽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우선 2000페이지 가량의 1편....각 각 1000페이지가 넘는 2편, 3편......그리고 경제학 용어와 수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는 꼭 한번 읽어보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그린북 출판사에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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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그러나 그 책은 내가 읽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우선 2000페이지 가량의 1편....각 각 1000페이지가 넘는 2편, 3편......그리고 경제학 용어와 수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는 꼭 한번 읽어보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그린북 출판사에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말 그대로 고전을 다시 쓴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읽어보진 못했던( 책이 어려워서든....생활이 바빠서든...) 고전을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풀어서 쓴 것이다. 작가 이진경씨는 운동권 출신으로 대학생때 마르크스의 자본을 접했다고 한다. 그것을 밤새서 읽고 토론하고 뜯어보고 요리 조리 바꿔 보면서 마르크스의 이론과 생각을 자신만의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이 쓴 마르크스의 자본과는 다른 자본을 읽어볼 수 있었다.... 예전에 마르크스 평전을 정말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 인간으로서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였던 그가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살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천재란 정말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평생을 공부와 자본의 저작에 노력을 쏟은 그는 너무 오랫동안 건강이 위협받았으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 스스로가 프롤레타리아였고....영국의 빈민촌에 살았고 그 빈민촌에서 자식이 죽었으며 자신의 목숩까지도 위협받았다. 그런 그의 경험은 자연스레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었을 것이다. 자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돈과 다른 것이다. 자본은 자본가가 사업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사적자본....그리고 자본은 자기증식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이 돈을 버는 것...그것이 자본의 특징이다. 부르주아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근면 성실해서도 아니며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본은 어디서 형성되는가?....고전적 경제학자들은 그 자본의 형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과연 자본가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자본은 어디서 났는가?....그가 사치와 향락을 하지 않고 저축으로 모은 것일까?....마르크스는....그 자본이 국가와 귀족들이 피업악자들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이라고 말한다.....영국의 인클로저 운동과 식민지 지배(인디언과 남미의 원주민들에게 땅을 빼앗고 금과 은을 빼앗은 것이 그들의 자본이 된 것이다.)를 통해 축적한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면.....참...이 세상은 단 한번도 정의롭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정의와 사랑이 존재했다면 문명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탄압하고 짓밟을 수 있는지 묻고싶다.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초점을 맞춘것은 과연 우리가 지금 과거를 망각하며 살지는 않는지에 대한 반성이었다. 우리도 동남아나 조선족, 몽고인들 같은 이주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 우리의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과연 내가 서양...유럽의 역사를 야만의 역사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지.... 남아메리카의 원주민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슬픈일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이라고......우리는 자꾸만 잊어가고 있다. 인디언의 슬픔과 일본 식민지 시절과.....남아메리카의 아픔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편안함과....배부름 때문인지.....미디어의 조작인지 모르겠지만...그들이 받았던 고통보다 더 슬픈것은 진정....그 옛날의 고통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이다. 우리...잊지말자...과거의 과오와 아픔을 잊자말자...그래야...앞으로 그런 비극이 잃어나지 않을 것이다. 참....자본을 읽으면서...이런 생각을 하다니.....^^
YES마니아 : 로얄 b*****0 2005.08.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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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쓴 의도를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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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을 유명한 사람이 해석하면서 쓴 책, 기대도 되고 부담도 될 수 밖에 없다. 난 맑스의 '자본' 혹은 '자본론'을 읽어본 적이 없다. 뭐, 전혀 안읽은 건 아니고, 아주 조금만 보다 말았다. 고전읽기에 게으르다는 점, 권위에 대한 괜스런 반항감이 있다는 점, 맑스가 다 지은건 1권밖에 안된다는 사실, 그리고 읽기 전에 주요 골자에 대해서 꽤나 많이 들어 흥미가 떨어졌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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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을 유명한 사람이 해석하면서 쓴 책, 기대도 되고 부담도 될 수 밖에 없다. 난 맑스의 '자본' 혹은 '자본론'을 읽어본 적이 없다. 뭐, 전혀 안읽은 건 아니고, 아주 조금만 보다 말았다. 고전읽기에 게으르다는 점, 권위에 대한 괜스런 반항감이 있다는 점, 맑스가 다 지은건 1권밖에 안된다는 사실, 그리고 읽기 전에 주요 골자에 대해서 꽤나 많이 들어 흥미가 떨어졌다는 점.... 뭐 핑계를 대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실 딱히 왜 그랬는지 이유를 대기는 어렵다. 두껍고 어려운 책들 글자읽는 연습하는 셈 치고 봤던 것도 꽤 되는 편이고, '요강 (그룬트리세)'까지 본 적이 있는 거에 비하면, 유독 '자본'은... 아직까지 나와 별 인연이 닿질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이진경의 저작은 '자본'에 대한 나의 관심, 그리고 그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자극을 준 것은 확실하다. 정치경제학, 소위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여러 루트로 접해보게 되는 것 같다. 학부때부터 지금까지, 부분적인 것들을 포함하면 거의 1-2년에 한권 정도는 꾸준히 보아온 것 같다. 노동가치이론, 잉여가치이론, 이윤율 저하... 뭐 이런건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약간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이진경의 저작도 '자본'에 대한 재해석(?)이기때문에 당연히 정치경제학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하여간, 별다른 근거없이, 그 내용에 대한 내 지식의 성숙도에 비하면 거의 터무니없다시피하지만, 꾸준이 정치경제학 서적을 접하게 된다는 내 자신의 습관(??)이 때로는 뿌듯하다. 게다가, 500여 페이지의 비교적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이 책에는 지대론이나 재생산표식 등에 대한 설명까지 소개가 되어 아주 오랜만에 복습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 책은 단지 '자본'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씌여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나름대로 자본을 쓴 맑스의 의도를 밝히고, 나름대로 재해석을 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그러한 내용을 반영하는게 다음과 같은 식으로 여러차례 반복된다. "... 이처럼 맑스는 재생산표식을 통해 단순재생산이든 확대재생산이든 생산된 상품은 모두 판매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실현문제는 해도되어 버린다. 즉 그것은 시스몽디 말처럼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드러난 셈이다. ... 그런데 이는 사실 맑스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염두에 둔다면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마치 자본주의가 수급의 균형 아래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하자면, 맑스는 자본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랄까, 해결책이랄까? 뭐 그런것들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 식으로 글을 썼을까? ... 이에 대한 답들은 책에 여러부분에서 나오니 알아서 보도록 하시고... 약간 재미있으면서도 짜증도 나는 부분은, 왜 유독 이런 저작은 저자가 의도한 배경까지 파악하면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인가는 점이다. 답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한층 더 비판할 수 있었다... 뭐 대충 이런식의 이야기가 여러 부분에서 제시가 된다. 이진경은 확실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관심은 있지만 아직 건드리기까 꺼려지는 '노마디즘'이라는 저작 같은 것을 출판하는 것을 보면 현대 철학에 대해서도 깊이를 가졌다고 보여진다. 그런 작자가 언급하는 기계노동가치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그와 자연스럽게 연관이 되는 소위 정보화사회의 가치창출 요소라는 것들에 대한 사고였다. IT만이 아니다. BT등에 대해서도... 어떻게 그와 같은 영역에서 '가치'가 생산될 수 있는지는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내 생각을 약간 풀어보면, 그런 분야의 가치 창출은 단순히 시간단위로 투여되는 노동의 가치로 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노동의 가치를 투여할 새로운 공간의 발굴, 주름의 제작이라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사이버 스페이스상에서 급격히 팽창된 개개인의 접속이랄까 만남이랄까, 거기에 가치 창출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애석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 가능성을 선취하는 것은 자본이라는 것. 하여간 잉여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마력같은게 있는 듯하다.
YES마니아 : 골드 e****s 2005.07.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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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공상적인 내용이라 생각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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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은너무 문체가 자신이 주장하는게 너무 강렬해서 다른사람이 들어가기엔 거부감이 생길정도 책이 두껍고 너무 허무 맹랑한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니지만 좀더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자료를 첨부해서 내용을 객관적으로 서술해갔다면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같다 하나의 관점에서 너무 이것밖에는 없다는 주장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차단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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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은너무 문체가 자신이 주장하는게 너무 강렬해서 다른사람이 들어가기엔

거부감이 생길정도 책이 두껍고 너무 허무 맹랑한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니지만

좀더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자료를 첨부해서 내용을 객관적으로

서술해갔다면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같다

하나의 관점에서 너무 이것밖에는 없다는 주장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차단한다고 본다

여하튼 내용과 편집구성에서 별로다

YES마니아 : 골드 a****2 2009.02.0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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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 와 구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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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을 넘어서 자본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진경의 저작이다. 이진경은 서문에서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사회비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마르크스는 객관적으로 정형화된 실체로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전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레닌이나 루카치,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이들이 서로 다른 사회주의를 사유했다는 점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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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을 넘어서 자본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진경의 저작이다. 이진경은 서문에서 마르크스의 부르주아 사회비판이 여전히 유효함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마르크스는 객관적으로 정형화된 실체로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전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레닌이나 루카치,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이들이 서로 다른 사회주의를 사유했다는 점을 들어 저자 이진경만의 마르크스를 사유하고자 자본론을 따라가며 이진경만의 사유와 언어로 풀어쓴다. 이진경은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외부를 사유한다고 서술한다.

 

 

이진경은 수유+너머 라는 연구 공동체에서 연구하는 학자이다. 이 공동체는 제도권 내부에서 하는 죽은 공부보다는 새로운 삶의 실천을 사유할 수 있는 코뮨적 연구공간에서 살아있는 공부를 한다는 포부를 갖고있다. 저자의 공동체에서는 20세기에 실행했던 일련 국가들의 사회주의 실험, 그 실험이 새로운 관료주의, 권위주의 적인 국가로의 이행임을 비판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마르크스를 사유해 보고, 그 사유로 현재 지배적인 체제의 외부를 실험해 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도 역시 그 틀에 맞추어 마르크스의 자본을 사유한다.

 

이 책을 짧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이 텍스트를 주로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노동가치론과 화폐, 두 번째는 잉여가치와 계급투쟁, 세 번째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자본주의의 외부이다.

 

2.

 마르크스는 그의 저작 자본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거대한 상품의 집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자 한다. 상품은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바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이다. 사용가치란 상품의 유용성, 즉 상품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로 결정되는 것이고, 교환가치는 그 상품이 어떠한 것과 교환될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 그것이 교환가치이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사회는 그 폭력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상품의 교환가치는 인간이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되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노동가치론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를 긍정하지도 않지만 부정하는 관념론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를 영유하고 이러한 개념을 추적하며 드러내고 분석하여 정치경제학의 근본을 전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회의 생산성이 발달 할수록 생산된 상품의 잉여가 생긴다. 잉여는 그 필요에 따라 다른 상품들과 교환될 수 있다. 이렇게 필요한 상품과의 일대일적 교환, 그것을 단순한 가치형태라고 부른다. 이러한 교환들이 확장되면 상품들은 그 하나의 상품과의 일대일적 교환보다는 일대 다수의 상품과의 교환을 하게 되는데 이때를 확대된 가치형태라고 한다. 그 이후에 상품사회는 일반적 가치형태라고 하는 형태의 상품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의 상품이 어떠한 상품과도 교환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는 소금이나, , , 은과 같은 상품이다. 여기서 이진경은 화폐라는 형태가 초월적 형태로서 절대적인 권력의 향수를 느낀다고 서술하며, 그 화폐의 출현으로 인해 우리는 상품생산이 교환을 위해서가 아닌 화폐를 축적하기 위해서 바로 축적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품을 생산한다. 상품이 화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화폐 스스로가 초월적 권력자가 되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유효한 분석으로 보인다. 우리는 사람조차도 그 연봉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고, 우리는 더 많은 화폐로 평가 받고자 발버둥치는 현실이 아닌가?

 

 잉여가치란 개념은 마르크스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기 위해서 밝힌 개념이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생산수단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그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는 그 자신이 생산하는 생산물과는 괴리되고 자신에게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임금밖엔 받지 못한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천국을 생산하지만 지옥에 살아야 하는 노동자 계급이라고 표현했다. 지불된 임금외의 남는 생산물, 즉 잉여는 자본가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잉여가 바로 잉여가치인 것이다. 자본가는 바로 이 잉여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포섭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하는데,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강제로 늘리는 방법, 혹은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 그리고 노동자의 신체를 분석하여 최대한의 효율적인 방법으로 신체를 규율하는 방법(테일러주의) 등으로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이러한 잉여가치는 노동자의 노동과정에 의해 창출되는 가치이다. 자본가는 위와같은 방법으로 잉여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에 대해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적 노동력을 되도록 작게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 때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노동과정이 전적으로 노동자의 자율에 의하여 이루어 질 때, 즉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지만 노동과정은 노동자에 의해 전적으로 이루어 질 때 자본가의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에 제한된다. 그러나 생산성이 향상되어 작은 노동시간으로도 큰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되고, 기계의 도입 등으로 노동과정이 단순화 하게 된다면 자본가는 노동을 실질적으로 포섭하게 될 수 있다. 필요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잉여가치를 늘리게 되는 순간인 것이다. 자본가의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여기서 저자 이진경은 기계적 잉여가치라는 개념으로 한 발 더 나아간다. 생산성이 극도로 향상된 사회에서 노동자는 다시 한번 생산수단으로부터 격리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동화가 노동자의 고용없이 노동능력 자체를 기계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라면, 정보화는 노동자의 고용없이 인간의 모든 사회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포섭하여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현대사회 속에서도 노동 없는 가치 창출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저자는 다른 저작에서 UCC와 네이버 같은 정보 매체 등이 자본가가 따로 고용을 하거나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그들 대중 스스로의 활동이 자본을 번식하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인터넷으로 UCC를 제작하여 대중에게 표현한다면 이는 자본가 계급에게 지불 받지 않았지만 자본을 더 번식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한다. 이를 저자는 새로운 현대사회의 새로운 착취라고 불렀다.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란, 자본주의 사회성립이 자연스럽게, 어떠한 일련의 과정없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착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적 피의 과정을 통해서 지배계급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식된 사회체제이다. 본원적 축적에서 필수적 조건으로는 근대적 무산자가 필요하다. 노동력 밖에 팔 것이 없는 계급이 존재해야 자본가 계급은 그들의 잉여가치를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지와 같은 생산수단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이 대부분인 봉건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은 이들을 예속된 신분과 토지로부터 격리 시켜야 할 욕망을 지닌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쉘 푸코는 농민을 노동자 신체로 만드는 과정이 국가에 의해 얼마나 끔찍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고발한다.

 

“농촌 주민들을 토지로부터 쫓아내는 토지약탈 과정을 통해 농민은 새로운 생산수단,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흘러들어갔다. 이것이 엔클로저 운동이다. 이렇게 도시로 간 농민들의 일부는 자본가 계급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농민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한다. 노동자가 되지 못한 농민은 국가 제정한 법에 의해 엄청난 규모의 수용소에서 관리되고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고 도망치면 태형에 처하고 세 번 체포되면 사형에 처해졌다. 노동을 거절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혀 고발하는 사람의 노예로 사용할 권리를 가졌다.

 

푸코는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병원, 학교, 경찰 과 같은 근대적 시설물들이 계보학적으로 추적해보면 노동자 신체를 인간의 몸에 각인시키기 위한 국가 도구였음을 고발한다.

 

이런 과정은 단순히 유럽의 국내에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진 약탈, 제국주의에 의해 더 가속화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예제도와 식민제도는 자본주의 중심부 체제의 자본주의를 가속화 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양상에 따라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 모두의 고통은 심화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어떤 방식으로 사유해야 할까?

 

이에 대해 이진경은 20세기 의해 실행되었고 지금도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믿는 공산주의자들과는 견해를 달리한다. 역사적 필연 법칙에 따라 도래할 것이라는 거대 서사구조를 이진경은 믿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상상체로서의 긍정적 코뮨을 사유한다. 여기서 코뮨이란 자본주의 그 외부를 창안하는 데 이용된 조건의 차이, 사용하는 방법, 관계자체를 구성하는 양상이나 활동의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공동체를 말한다.

 

 

3.

 나는 이진경의 저작을 노동자 교양경제학과 함께 읽었는데, 그 저작에서는 이진경과 같은 그러니까 서유럽에서 진행되었던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신 좌파들을 소부르주아적 몽상가들이라고 비난하였다. 나는 이를 통해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신 좌파의 갈등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주로 소비에트 연방에서 실험된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대립각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소련에서 실험된 사회주의 국가가 과연 진정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새로운 국가였느냐 에 대한 논쟁인데, 신 좌파라고 불리는 이들의 측면에서는 새로 건설된 국가에서 인간의 해방은 이루어 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욱 심한 정치적이 예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구좌파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실현에 의한 과도기적 단계라고 주장하지만, 스탈린에 의해 실행된 국가 폭력은 극우세력에게도 사회주의는 봉건왕조국가 라는 조롱을 받을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공산주의가 역사의 필연적 과정으로서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조차 나로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고, 사회의 모순은 단순히 경제적 토대의 해결로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경제환원론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직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지 못해 단편적인 생각을 적었지만, 보다 이를 심도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y******4 2012.02.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