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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라질(여인의 음모)'_내 인생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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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음모' (Brazil)' 1985 감독 : 테리 길리엄 소심한 성격의 샘 로리는 거대한 정보국 산하에서 서기로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런데 그는 항상 중세의 기사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데 그 꿈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 어느 날, 부유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더 큰 정보국으로 옮기게 되고 그는 거기서 우연히 자신이 항상 꿈 속에서 만나던 여인을 실제로 보게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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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음모' (Brazil)' 1985

감독 : 테리 길리엄

소심한 성격의 샘 로리는 거대한 정보국 산하에서 서기로 일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런데 그는 항상 중세의 기사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데 그 꿈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 어느 날, 부유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더 큰 정보국으로 옮기게 되고 그는 거기서 우연히 자신이 항상 꿈 속에서 만나던 여인을 실제로 보게된다. 그 때부터 그는 오로지 그녀가 누구인지 찾으려고 일마저 팽개치고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자신의 집에 고장난 파이프를 고치러 찾아온 해리 터틀을 우연히 만난다. 사실 배관공으로 위장한 해리 터틀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정보국에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로 그로 인해 저항군 운동에 휘말린 샘은 정보국에게 쫓기다가 결국 잡히고 만다.


굉장하다.
이렇게 기괴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슬프고 참담한 ..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다니...
정확히 3년 반 전에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처음 보았을 땐 이해를 못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영화는... 딱 내 취향. ㅡ.ㅡ;
내가 항상 욕하는 공무원의 나태주의, 관료제의 폐해를 꼬집는 근미래 판타지 SF 공상과학 영화인 '브라질'(우리 나라에서는 '여인의 음모'라고 번역됨. 누가 번역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그냥 물어만 보는 걸로도 시원치 않아 머리를 한 번 열어봤음 좋겠다.).
음울한 회색빛의 거대한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한 소시민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다 보면 죽거나 혹은 미쳐 버린다는 비극적인 결말이 뼈아프다.
극 중의 샘 라우리가 꿈 속의 여인과 함께 트럭을 타고 탈출해 새로운 유토피아에 정착하는 장면까지 보고 '호~ 이건 또 하나의 트루먼쇼와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 또한 누군가가 들여다 보고 있는 공상에 불과했다.
절대자라는 거대한 권력,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어 그 근원을 파헤치기를 포기한 사람들, 부조리를 전혀 느끼지 못해 자신이 불행한지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 그 속에서 소수의 깨인 자는 고독한 투쟁을 벌이지만 성공할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이런 사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아무도 못 하리라.
물론 이 영화에서처럼 바보에 가까운 관료주의 맹신자들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오타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고,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자기 관할이 아니면 아무 관심이 없고, 옆에서 총을 쏘든 폭탄이 터지든 청소부는 청소만 하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건조한 사회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가.
시스템에 종속된 사회 뿐만이 아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미래의 암울한 풍경들은 이미 충분히 그 징후를 보이고 있다.
주름살 제거 수술을 하느라고 얼굴을 있는대로 잡아늘이는 할머니나, 총들고 포로의 몸수색을 하는 놀이를 하는 어린애들이나, 요리의 고유의 이름 대신 번호만 남은 일류 레스토랑의 메뉴판, 사람이 내리건 말건 시간 되면 문이 닫히는 무인전동차나, 전기가 나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 크게 어색하지 않은 장면들 아닌가?
그 안에서 소박하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란 언젠가의 우리들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린 목숨을 걸고 체제전복을 위해 싸우는 테러리스트가 되어야 할까, 아님 그냥 미쳐버리는 게 속이 편할까?
슬슬 고민을 해봐야겠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주인공의 꿈 속에 나타나 여인을 납치하는 거인이 바로 사무라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더기를 뒤집어 쓰고 좀비같이 덤비는 괴물들은 언뜻 보면 중국인형같아 보이기도 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사회에서 보여주는 전광판 안의 가부끼 여인의 모습을 같이 떠올려 본다면...
서양인들은 동양에 대해 경외심 그 이상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의 극치. (흥!)
그 안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님 자존심 상해해야 할까.

테리 길리엄의 우울한 디스토피아관은 '12몽키즈'에서 일부 재현된다.
그런 영화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내가 당장 뭘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다.
아무 힘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보면 기운이 빠진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 행운.



s*****e 2008.10.0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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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두운 앞날을 비춘 영화! <여인의 음모>(브라질)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두운 앞날을 비춘 영화! <여인의 음모>(브라질)" 내용보기
1. 1985년에 테리 길리엄 감독이 만든 <여인의 음모 Brazil>는 어려운 영화다. 그래서 보는 이마다, 평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얄궂은(?) 작품이면서도, 어두운 앞날을 다룬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품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영화 교과서에는 빠지지 않는다.   20세기 어느날 모든게 서류와 컴퓨터의 통제 아래 놓인 사회를 비춘 영화로, 날마다 꿈속에서 만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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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5년에 테리 길리엄 감독이 만든 <여인의 음모 Brazil>는 어려운 영화다.

그래서 보는 이마다, 평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얄궂은(?) 작품이면서도, 어두운 앞날을 다룬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품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영화 교과서에는 빠지지 않는다.

 

20세기 어느날 모든게 서류와 컴퓨터의 통제 아래 놓인 사회를 비춘 영화로,

날마다 꿈속에서 만나지만 눈을 뜨면 만날 수 없는 아름다운 계집을 찾아 헤매는 사나이의 이야기다.

 

2.

13년째 테러리스트가 도시를 폭파하고 있던 미래의 어느날, 정보부 직원의 방에 파리가 날아다니자

파리를 잡는데 죽은 파리가 컴퓨터에 떨어지면서 '터틀'이 '버틀'로 보인다.

피붙이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버틀은 아파트 천정을 뚫고 들어온 정보부의 요원들한테 잡혀간다.

그 옆지기 베로니카는 영문도 모른채 벌어진 일에 무섭고 놀랄 뿐이다.

 

정보부 기록국에서 일하는 샘 로리(조나단 프라이스)와 국장인 쿠츠만(이안 홀름)은

잡아야 할 '터틀'은 잡지 않고 엉뚱하게 '버틀'이 잡혀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보부에서는 작업국을 탓하고, 작업국은 문서발송국을 탓하고, 문서발송국은...

서로 잘못을 핑계대기만 바쁘다.

 

그래도 샘은 잘못된 일을 풀려고 나선다.

국장한테 허락을 받아 버틀의 집에도 가고, 베로니카한테 돈으로 잘못을 갚으려고 애쓴다. 

 

샘은 버틀 집 바로 위에 사는 트럭 운전사 질리안 레이튼(킴 그레이스트)을 만나게 되는데 깜짝 놀란다.

밤마다 꿈속에서 날개를 단 샘이 하늘을 날아 다니다 만나던 사람이 바로 질리안 이었기 때문이다.

 

질은 아랫집 아저씨가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간데 대해 따지려고 정보부를 뻔질나게 찾아간다.

그러나 정보부는 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질한테 핑계만 댄다. 서류에 접수 도장이 없느니 하면서...

 

3. 

정보부가 잡으려 하는 이는 해리 터틀(로버트 드 니로)인데, 잘 잡히지 않는다.

샘의 집에 있는 에어컨이 고장이 났을 때도 센터럴 서비스에 연락해서 고치려고 했지만 담당자가 없어

못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샘을 애타게 했지만, 이를 몰래 엿들은 터틀이 나타나 곧 고쳐준다.

 

나라에서는 서류 따지고 사람 따지면서 늑장을 부리며 해줘야 할 일을 안 해주는데, 터틀은 쉽게 해준다.

 

컴퓨터가 임자이고 사람들은 그에 매여 살고, 까다로운 서류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 하니

사는 사람들은 일이 잘 되지 않는 사회,

그러면서 통제받는 사회를 고치려 하는 이를 테러리스트로 몰아 죽이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나아가는 앞날의 사회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이나 행동은 문제를 일으킬 뿐이라고 생각하는 우두머리들이 있으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을 정보부 건물 밖에 써놓았지만,

그 안에는 '의혹이 신뢰를 키운다'는 글로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길 바라는 사회다.

 

샘의 어머니(캐서린 헬몬드)는 20년을 젊게 보이려고 얼굴에 칼을 대고, 그 동무들도 다른 의사한테

칼을 대도록 시킨 탓에 갈수록 후유증으로 얼굴에 붕대를 더 크게 붙이고 다닌다.

 

먹을거리를 사먹을 때도 번호를 붙여 놓아 번호만 대도록 하니, 짜증이 나는 샘.

샘과 질은 서로 사랑하려고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그냥 봐주지 않는다.

빨리 이런 답답한 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4. 

그런데 이런 사회가 우리한테서도 이제는 멀지 않다.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샘의 어머니처럼 벌써 얼굴과 몸에 칼을 대서 나이를 잊고자 하는 이들이 많고,

일터에 가면 바코드가 들어 있는 카드로 들어가는 때와 나오는 때가 기록되며,

곳곳에 폐쇄회로 텔리비전이 놓여 있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고,

온갖 것이 컴퓨터나 기계에 의해 움직이고 이를 통하지 않고는 집 문도 마음대로 열 수가 없다.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서류에 적힌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컴퓨터가 일러 주는 대로 살아야 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 당하는 곳,

이런 곳이 우리가 살아야 할 앞날이다.

 

그런 곳에서 벗어나 '6월에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곳'이 바로 라디오 노래에 나오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어떤 이는 '반은 몽상, 반은 악몽'이 브라질이라 하는데,

샘이 부딪히는 답답한 일들은 꿈이었으면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나쁜 꿈인 현실이고,

터틀이 나타나 답답한 상황을 풀어주는 일은 현실이었으면 하지만 꿈속에서 꾸는 모습 같아서다.

 

디브이디 화면은 그리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감독과 배우들이 영화를 만든 이야기와 잘라낸 장면을 보여주는 보너스는 좋다.

 

이런 영화는 쉽게 구경할 수가 없다.

<12 몽키즈>를 만든 테리 길리엄 감독이 아니라면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b******g 2007.06.11. 신고 공감 0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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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추구하는 두려운 미래. 여인의 음모
"현 정부가 추구하는 두려운 미래. 여인의 음모" 내용보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정부와 언론의 왜곡 현상이 어떻게 사회를 장악하여,국민을 속이고 개인을 파괴하는지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눈물나게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가 되는 이유는 지금 정부가 상정하려는 미디어법이 우리 국민에게 어떠한 파괴력으로 사회를 지배하려는지 이 영화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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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정부와 언론의 왜곡 현상이 어떻게 사회를 장악하여,국민을 속이고 개인을 파괴하는지 대한민국의 한 구성원으로서 눈물나게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가 되는 이유는 지금 정부가 상정하려는 미디어법이 우리 국민에게 어떠한 파괴력으로 사회를 지배하려는지 이 영화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을 보았을 무렵 테리 길리엄의 <여인의 음모>라는 제목을 접했습니다.   때문에 이 범상치 않은 영화의 제목을 말 그대로 핑크 영화로 생각 했었죠.    여인의 음모라.....^^;   당시 조악한 비디오 카피본으로 보았던 터라 별 감흥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이 영화의 원 제목이 <브라질>이란 것을 알았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러너>와 함께 80년대 대표적 사이버펑크 영화의 양대산맥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시대성이 다소 모호한 인류의 근미래..... 세상은 서류와 정보의 통합으로 정부의 주관아래 경제와 사회가 움직이고 세상은 획일화된 시스템으로 움직입니다.

샘 라우리는 이러한 억압된 사회에서 꿈으로나마 미지의 여인을 만나고 자신은 버드맨(자유인)으로 현실을 이탈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전제화되어 있는 관료주의 사회는 샘 라우리의 꿈에서 조차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묵고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거대도시 회색의 콘크리이트이며, 일본무사의 갑옷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관료사회의 부정은 정부와 거대기업으로 이어져 파시즘적 공권력을 양산하고 개인의 개성이 부재된 사회는 조그마한 오류에도 대체를 못합니다.   파리 한 마리의 죽음이 배관공 테러리스트 터틀의 체포영장에 버틀로 오타나고, 평범한 한 가장이 영문조차 모르고 체포되어 죽임을 당합니다.



이러한 현장을 목격한 이웃인 트럭운전사 질 레이튼은 공권력에 이의를 재기합니다.
관료주의의 흐름속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어지는 현실속에 샘 라우리는 질 레이튼이 자신의 꿈속에 나타난 미지의 여인임을 알고서 그녀를 구해내고자 좌충우돌하게 됩니다.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은 이처럼 어두운 산업자본주의 병폐로서 인류의 근미래를 상징과 은유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극단적인 거대기업이 타락한 정부와 야합하고 이로인해 파쇼적인 중앙집권적인 관료 전제주의화 되어 인류에게 가하는 억압과 속박을 보여 줍니다.
샘 라우리가 냉방장치가 고장나 신고한 센트럴 서비스는 거대기업에 대한 메타포이며 두 명의 서비스 직원은 자본 기업에 파생된 관료적인 정부를 상징할 것입니다.

관료 전제주의 체제는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고 수량화와 통제를 보다 값싸게 하기 위해 서류와 숫자로서 사회를 체제화 합니다. 때문에 정보부의 샘 라우리 친구는 사람을 고문할 때 어떠한 죄책감이나 고뇌가 없으며 레스토랑 매뉴얼 조차 숫자로 표시됨을 알수 있습니다.

                                           

테리 길리엄은 이런 전제주의 오류가 비단 인간의 미래에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브라질>의 시대성에는 70년대의 투박한 유선 전화기가 사용되고, 박스형 모니터가 보이며, 등장인물들의 복식이 1930년대의 스타일로 시대성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테리 길리엄은 전제주의 획일화 된 사회의 보편성은 부정하고 일정한 역할과 개성이 주어진 "주체로서의 존재"인 인간의 삶이 옳다고 말하지만 그곳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등장하는 기계와 기술 등은 어딘지 어설프게 보이는 것이며, 샘 라우리의 어머니와 친구가 성형수술로 나이를 변화하는 것에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희화화가 곳곳에 번뜩이며 절망적임을 나타냅니다.



샘 라우리는 결국 체포되고 그가 본 것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조차 모호한 브라질은 암울한 오늘날의 우리 자화상인 것 같습니다.

실용 민주주의라는 현 정부가 특정 이익집단에 매몰되고, 그 언론의 힘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릴 때.

 

당신은 이 영화를 영화로만 볼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k*****6 2009.06.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