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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역시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좋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책을 꺼내어 다시 읽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난 탓일까요? 예전보다 이해되는 것이 많아지고, 보지 못했던 것도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번역서의 제목은 "선거는 민주적인가?"이지만 원서의 제목은 (번역서의 부제이기도 한) "대의정부의 원칙"입니다. 번역서 제목을 우리 출판시장에 맞게 튜닝을 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마이너 튜닝의 수준을 약간 넘어선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제목의 변화가 대수롭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사뭇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 말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1장 직접 민주주의와 대표성: 아테네의 관리 선발 이 책 제1장에는 민주주의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직접 민주주의라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모든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곳에도 공동체의 일을 집중에서 처리할 공직자가 필요했습니다. 다만 오늘날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공직자를 선거가 아닌 추첨 그러니까 제비뽑기로 선출했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제비뽑기를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거로 대표를 뽑을 경우 탁월한 사람만 대표가 되고, 그 대표가 계속 이어서 선출되고, 심지어는 대대로 그 지위가 물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공직을 담당할 기회의 평등이 깨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제도가 이른바 귀족정치의 제도라고 단언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추첨을 대표를 뽑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공직을 감당할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추첨에 임하도록 하고, 공직 수행 중 또는 이후에 엄격한 책임을 묻게 하며, 1년 이내 짧은 임기를 두고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갖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완화했습니다. 장군이나 회계 책임자 같은 전문성이 필요한 직역은 선거를 활용하기도 했지요. 제2장 선거제도의 승리 제2장은 추첨제도가 민주주의 역사에서 사라지고 선거제도가 선택하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나 중세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에서 추첨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테네처럼 공직을 담당할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해링턴, 루소,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도 선거와 추첨을 동일한 선상에서 고민했습니다. 대표를 뽑는 방식으로 추첨이라는 제도가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갑자기 추첨은 인류의 기억에서 말소됩니다. 흔히 국가가 커지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추첨의 활용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정확한 진단은 아닙니다. 추첨이나 선거나 많은 사람 중 소수의 대표자를 뽑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당한 권위는 동의에서 나온다는 원칙, 로마법상의 이른바 Q.O.T 원칙이 받아들여지면서 선거가 보편화됩니다. 대표자의 선출에 강력한 동의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추첨보다는 선거가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제3장 탁월성의 원칙 제3장은 선거제도가 돈 많고 교육을 많이 받은 이른바 탁월한 사람을 선출하는 데에 유리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근대 초기 사람들은 그런 탁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국가에서는 피선거권 재산자격을 두거나, 간접 선거제도를 유지하면서 평범한 사람이 대표가 되는 것을 가급적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독특했습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피선거권 재산자격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재산자격은 가난한 주의 시민들을 반발하게 할 수 있었으며 연방으로 통합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헌법의 아버지들은 피선거권 자격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만 헌법 비준 과정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논쟁을 벌입니다. 한반연방주의자는 시민들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의 의회를 만들기 위해 의회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의회는 시민의 다양한 모습을 마치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과 같아야 하며, 그래야 다양한 시민의 의견이 대표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연방주의자들은 시민과 유사한 사람이 아닌 탁월한 사람이 대표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의회의 규모는 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승리는 연방주의자에게 돌아가며, 특별한 제한이 없더라도 선거는 탁월한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아가 인정되는 결과에 이릅니다. 제4장 민주주의적 귀족정 제4장은 역사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밝혀진 선거는 보통 사람보다 탁월한 사람을 대표로 만들 수밖에 없고, 일종의 불평등한 귀족정의 제도로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마련된 챕터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 후보가 선택받으려면 무엇인가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지는 탁월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자신의 탁월성을 알리려면 막대한 정보선전비용이 필요하며 따라서 부유한 사람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처럼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선거의 귀족주의적 성격이 오늘날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합니다. 무엇이 탁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혈통이나 세습이 아니라 시민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며,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귀족주의보다는 엘리트주의 정도의 문제라고 봅니다. 또 투표권은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것도 강조합니다. (물론 선거결과에 부유함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거는 귀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혼합정의 모습이며,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이유라고 판단합니다. 제5장 인민의 평결 제4장부터 선거와 추첨을 비교하고 선거의 비민주적 성격을 드러내는 전반부의 관점은 급격하게 변화가 이루지며, 오늘날 선거제도도 나름 민주주의의 범주 안에 안착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제5장에는 이러한 선거제도로 대표를 뽑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의제'의 기본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1) 대표의 부분적 독립성(국민이 대표를 뽑지만 대표는 유권자로부터 독립하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국민은 그것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2) 여론의 자유, (3) 선거의 반복적 성격(다음 선거의 재선을 위해 유권자의 의사를 고려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대표가 통제된다는 점), (4) 토론에 의한 심판, 이렇게 네 가지가 기본요소입니다. 여기에서 버나드 마넹은 오늘날 대의제가 오로지 대표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적 대표성의 체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민이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대중적 자치의 체제도 아님을 강조합니다. 대표가 지배하는 것은 맞지만, 국민의 의사로부터 영향을 받는 절묘한 균형점을 확보한 체제라고 말합니다. 제6장 대의 정부의 변형들 마지막 제6장은 대의제의 4가지 기준에 입각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근대초기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망가'를 뽑아 의회를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던 의회정치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 대의제의 네 가지 원칙은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계급의식에 따른 사회의 분열이 심각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계열 정당이 등장하면서 대의제의 모습이 많이 바뀝니다. 대표자는 정당의 당론에 구속되어 부분적 독립성을 잃게 되었으며, 명망가가 아닌 일반 시민과 유사한 노동자가 대표로 선출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헬스의 분석대로 아무리 노동자 정당이라고 해도 그중 탁월한 사람이 뽑히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정당의 당론을 정하는 것 자체가 유연성을 가졌으므로 독립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즉 본질에 있어서 대의제의 원칙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주장이지요. 오늘날의 대의제는 청중민주주의라는 말로 표현이 됩니다. 미디어가 주목하거나 미디어에서 유명세를 얻은 사람이 대표가 되며, 이들은 주로 이미지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정당은 있지만 예전과 같지 않고, 선거 승리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자의 독립성은 이전보다 훨씬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대의제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넹은 단지 처음의 의회정치 시대로 회귀한 것이며, 정당민주주의의 진전은 유의미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라고 진단합니다. 결국 대의제는 선출되는 엘리트의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지 그 본질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무리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앞 부분은 선거란 민주적인지에 대한 도발적 질문에 응답을 했다면 뒷 부분은 대의제의 원칙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변화 양상을 검토한 책입니다. 번역서의 제목은 앞 부분의 주제이고, 원서의 제목은 뒷 부분의 주제인 것이지요. 저는 열정과 냉정을 오가는 저자의 고뇌가 이해가 되면서도, 앞뒤가 매끄럽게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불편함을 완전히 가라앉히지는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선거, 대의제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다루지는 않는 다양한 역사와 이론이 담겨 있는 좋은 책입니다. 꼼꼼하게 읽을 수록 고민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책이며, 여러번 반복해서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간략한 책 소개가 이 책을 읽으려 하시는 분들의 독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서평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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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는 대부분의 업무가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에게 위임되었다 이들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법정의 감시를 받았다. 1. 추첨과 선거 추첨은 관직을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통치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동일한 확률"을 보장하므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며,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방법이다. 또한 민중이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번갈아" 가며 할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정의 기본원칙에 부합한다. 반면 선거는 각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결정되어지는데, 이 주관적인 관점을 좌우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예를들어 재능과 재산의 차이에 따라 좌우될수 있는데, 이것은 모든사람이 동등하게 갖고있는 배경이 아니므로 기회의 평등 개념에 어긋나며, 통치자로서의 경험자는 인지도에서 우세하므로 또 다음 통차자가 될 확률이 높다. 루소는 추첨은 민주적이고, 선거는 귀족주의적인 것이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선거가 우세하게 된 이유 - 동의 권위는 그 권위가 행사될 대상의 "동의"에서 나온다는 원칙, 다시말해 개개인은 그들이 동의했었던 바에 대해서는 복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 하고, 투표자에게 그들이 임명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즉, 복종을 위해서는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추첨이 아니라 선거가 필요했다. - 근사성과 탁월성 투표자들은 대체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간주하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표는 지역적 연고, 사회적 유명세를 띄게 되는것이며, 또한 후보자들은 자신이 탁월함을 알리기 위해 선전해야 하므로 부유한 계층에 유리한것이다. 따라서 부유하지 않은 후보는 선거 비용을 충당하기위해 부유한 사람에게 호소하게 되며, 당선후에는 자신의 선거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익에 힘쓰게 되는것을 가정하는것은 타당하다. 즉, 이미 부와 권력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가 필요했다. 3. 선거의 함정 - 선거는 진정 정치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선출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짧은 시간에 후보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즉, 후보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기준 또는 명확한 정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지"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인지성이 높다하여 우월적이 것이 아니다. 또한 투표자는 이전의 선거에서 채택한 후보가 무능력하다고 판명되면 그다음 선거에서는 그러한 기준을 바꿀 뿐이지, 그 바뀐 기준이 탁월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아니다. - 선거운동은 하나의 "적대적"과정이다 차별성을 갖기위해 서로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선거에 이용되는 여론조사는 "상업적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여론조사기관은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이므로 정치적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것이 아니며, 청원서와 같은 위험부담도 없으므로 대중의 정치적 표현을 공평하게 반영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추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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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생각하여 보자, 과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었던가? 과연 대의 민주주의를 통하여 국민의 뜻이 올바로 전달이 되었던가? 이 시점에 이러한 질문을 국민들에게 던진다면 과연 몇명이나 예스라고 답을 할까? 민주주의를 통하여 이상을 꿈꿔왔던 것은 아닌가? 선거를 통하여 우리는 너무 순수한 이상만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나의 이런 생각들에 대하여 정성껏 답하여 주고 있다. 작은 위로를 이 책을 통하여 받아 본다. |
| 먼저 제목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선거제도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선거제도가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책의 전반부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추첨에 의해 공직자를 선출하였다는 부분을 읽으면 신선한 충격이 와 닿는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추첨에 의해 공직자를 선출한 사례가 더 있음을 이 책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으로 끝이다. 추첨제도가 지금에 와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인지, 현재의 선거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제대로 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고대부터 근세까지의 장황한 각종 제도만을 나열하면서 그 결론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또 하나는 번역문제이다. 이건 번역이 아니라 직역이다. 이 책의 독자는 인내심을 배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