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다가 2500년전 실제로 사용했던 마가디어와 거의 유사한 언어인 팔리어로 된 불경 아닌가! 숫타니파타는 인기 있는 불경중 하나이고, 한국에도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책은 그간의 숫타니파타와는 달리, 붓다의 오리지날 말씀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붓다의 말씀을 붓다의 입에서 나온 그대로 들어 볼 수 있다는 것...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를 테면,"에꼬 짜레 칵가 비사나깝뽀"는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책의 구성은, 페이지 위쪽은 한국어 번역, 아래쪽은 팔리어 원문과 주석으로 되어 있다. 어떤 페이지는 주석이 본문보다 많을 정도인데, 저자의 학식과 정성이 놀라울 뿐이다. 책 내용뿐 아니라 책 디자인과 종이질도 상당히 좋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사 주고 싶은 책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나온 책은 모조리 소장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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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팬이면 흔히 갈등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부처님은 설법하실 때, 항상 완벽한 말솜씨를 유지하셨을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석가모니께서 설법하실 적에, 때로는 말을 더듬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방금전에 했던 말을 그 자리에서 고치기도 하시고, 어려운 학술용어가 아닌 일상적인 그 지방의 평이한 사투리 단어로도 어려운 불교의 개념들을 설명해 나가셨다. 듣는 이들은 그 때마다, “이 사람에게 무언가가 있는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가 보다.” 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본래 설법이란 산중에서 직접 캐내어 그 자리에서 먹는 산삼의 약효만큼이나, “생방송” 의 위력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법이다. “생방송” 에서는 서로 마음을 써서 의사소통되기 마련인 때문이다.
본래는 불교교단에서 문자를 통하여 책을 만드는 일 자체를 금기시했다. “불경스럽다” 라는 것이 이유였다. 모름지기 설법을 들으려는 사람은 부처님을 직접 친견해서 볼일을 보고, 끝장을 보고, 해야지, 다른 방법으로는 오히려 오해를 면치 못한다고 하였다. 불교교단에서는 대대로,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석가모니 친설로 된 노래들이 아예 “족보” 가 되어 있었으며, 후대에 이것들이 책으로 엮어지기에 이른다.
본래 어느 학문도, 그 학문의 “묘” 를 문자로써 기록하여 후대에 물려줄 수 없다. 불교도 마찬가지여서 불교의 열성 팬들이 불교 개념을 싣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녕의 학술용어들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문자로, 책으로, 기록하는 실험을 감행해 왔지만 여전히 생방송의 위력을 닮을 수 없어 왔다.
위에 기술한 내용중에 이른바 학술용어를 만들어서 고쳐 적는다면 무엇이 될까? “부처님 팬” 이라는 단어를 “불자” 라는 용어로 고치 적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도 지금 이 글의 내용을 필자와 직접 대면하면서 듣는 것보다 좋을 것이 있을까? 그리고 직접 친견하면서 말을 나누는 가운데 서로 오가는 눈빛과 표정과 발음과 제스쳐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식의 의사소통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어차피 “생방송” 이라면 꼭 어려운 “학술용어” 를 써야, 듣는 이들이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어차피 불교는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이 책은 평이한 남부 인도의 사투리말로 된, 우리가 흔히 “아함경” 이라고 불러왔던 “숫타니파타” 를 다른 외국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필자는 숫타니파타의 여러 번역본 중에 이 책을 취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이 책이 그 중에서 가장 비싸기 때문이 아니다. 생방송이 아니면서도 생방송을 닮기 위해 그 당시의 밀접한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본문보다 많은 “배경설명” 을 접하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림 그려보고 싶어하신다면 이 책이 적당하다. 그리고, 번역을 맡으신 전재성 박사님과 다른 외국어를 거치지 않고 남부 인도어인 “빠알리어” 로 된 불경을 곧바로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의 공로가 크다.
필자는 이 책을 여러분께 권하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더 이상을 바란다면 차라리 불연을 지어, 후대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라.”
-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