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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정수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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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위 시는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혜초의 오언시이다. '왕오천축국전'과 '혜초'. 국사책을
"고전의 정수를 느끼며~" 내용보기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위 시는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혜초의 오언시이다. '왕오천축국전'과 '혜초'. 국사책을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두 단어에 대단히 익숙할 것이다. 신라인 혜초가 인도를 돌아보고 온 여행기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행기로 끝일까?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라고 불리는 이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솔직히 말해 주인장이 이 책을 실제로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위 역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이 무슨 창피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주인장이 그간 신라사에 대해, 인도와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심각하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자위적인 변명을 가볍게 하고 넘어갈까 한다. 솔직히 이 책을 보게 된 목적은 당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알아보려고 한 점도 있지만, 역사에 자세히 남아있지 않은 통일된 왕조가 없던 남인도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주인장은 남인도에 백제의 영토 혹은 전략적 거점, 상업 전진 기지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다 본 지금,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남인도 뿐만 아니라 중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그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이 단순히 해석에 치중한 역사서가 아니라 당대 천축국 일대를 조명한 사서라는 것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 정수일의 폭넓은 지식, 광범위한 범위에서의 주석 활용 등으로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혜초가 지나간 여정은 물론, 그 시절의 시대사가 떠오를 정도다. 또 하나, 이 책이 완본이 아니라 절략본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실제 남천축에서부터 당의 안서도호부까지의 일정은 남아있지만 그 전과 후의 일정에 대해서는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귀중한 문화 유산이 타지에 남아, 또 외국에 흘러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후손들은 그 사실들을 모른다는 것. 정작 일본을 비롯한 외국 학자들이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다는 사실들이 주인장으로 하여금 선조들에게 한없이 죄송하게 할 따름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이국인 천축국과 중동의 여러 나라와 문물에 대해 자세한 기록들을 싣고 있다. 인도 하면 불교가 흔히 떠오르겠지만 8세기에는 이미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크게 성행하던 때였다. 그런 시기, 당대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유학의 물결 속에서 혜초는 천축국까지 흘러간 것이다. 불법을 구하러 불교의 발생지로 찾아간 이 신라 승려가 아니였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오늘날 8세기 인도와 중동 시대사에 대해 알 수 있었겠는가?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은 혜초라는 인물 그 자체에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왕오천축국전을 남기면서 그는 고국을 떠나 이억만리 타향에서 떠돌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오언(五言)의 시를 남기기도 한다 - 위에 실었음 - 실제 그 시로 인해 이 책의 저자가 신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한몫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극히 드문게 사실이다. 주인장은 궁금했다. 분명 삼국 시대때부터 당으로 학문을 구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은 많았으며 남북국 시대까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의 자제들이 학문을 구하기 위해서 입당(入唐)했었다. 그럼 그 수많은 해동의 유학생 중에서 유독 혜초라고 하는 승려만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희대의 기록을 남겼을까? 당대 삼국의 승려들 중에는 불심이 깊고 높은 덕을 지녀 큰 깨달음을 얻은 고승들이 많았으며 그 이름이 남아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르긴 모르되, 분명 당시 신라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활발한 활동을 남긴 기록은 더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기행문 형식의 사료는 많지 않은데 이를 통해 역사와 사회, 경제등은 물론이요, 각지의 지리적 설명도 곁들어 있다는 사실에서 많은 정보를 남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과 토번, 이슬람 세력들의 첨예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 있던 서역 일대에 대한 묘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 차원을 넘어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오늘날도 이처럼 자세한 여행기를 남기기 힘들진대, 머나먼 옛날 홀홀단신으로 수만리 타향을 거치면서 이런 기록을 남긴 혜초에게 정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기서 정수일은 책 앞부분에 미리 왕오천축국전의 발견 경위와 그동안의 연구사는 물론, 혜초의 서역기행 노정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가로 42㎝, 세로 28.5㎝의 종이 9장을 이어붙인 것으로 총 227행에 5,893자가 필사돼 있는 현존 두루마리는 원래 왕오천축국전이 상·중·하 3권으로 돼 있었다는 혜림의 일체경음의의 기록이나 이 책에 주석된 85개의 어휘와 비교해 볼 때 필사과정에서 3권으로 된 원본을 요약한 절략본(節略本) - 축약본 - 이라는 것이 역주자의 판단이다. 아울러 중국인이 아닌 한문화권의 신라인이었기에 언어 표현이나 문법 구조가 미숙해 펠리오로부터 '법현의 불국기'와 같은 문학적 가치도 없고 '현장의 대당서역기’와 같은 정밀한 서술도 없다, 는 평가를 받았던 원인도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변론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왕오천축국전이 절략본에다 필사본이기는 하지만 8세기 후반 황마지(黃麻紙)에 쓰인 그대로 보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책이란 점에 역주자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행기에는 실제 여행한 곳과 직접 답사하지 않고 전문(傳聞)한 곳에 대한 기록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역주자는 원문의 표현과 내용 분석을 통해 당시 혜초의 서역기행 노정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출발해 남해 바닷길로 동천축에 이르러 육로로 인도와 서역을 돌아본 뒤 파미르고원과 카슈가르, 쿠차 등을 거쳐 당나라 수도 장안에 이르는 여정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특히 혜초가 서역 어디까지 여행했느냐는 것이 그동안의 논쟁거리였는데 역주자는 내용 분석을 통해 페르시아와 대식 - 아랍 - 까지 실제 이르렀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혜초가 방문한 대식국의 도시는 카스피해 동쪽으로 호라산 총독부의 소재지인 니샤푸르 - 마슈하드 - 였다는 것이 역주자의 추정이다. 이처럼 치밀하고 자세한 주석으로 1,200여년전 여행기를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살려낸 정수일의 노고와 함께 고급 천으로 제본한 장정과 편집도 돋보인다. 디지털 복원 전문가인 박진호씨가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작업한 3차원 디지털 혜초 복원도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혜초의 여행기가 여러가지 복원 작업을 거쳐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셈이다. 혜초는 이 여행기를 쓰면서 지고지순한 종교인 불법을 알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며, 불도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그것도 불교의 발생지에서 불교가 이미 쇠퇴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그 문화적, 정신적 공백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혜초의 심정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그런 혜초의 1,200여년 전 역사적 공백기를 재현해낸 정수일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칠까 한다.
s*****m 2005.02.09. 신고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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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전의 세계인, 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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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여행기로 우리 역서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는 慧超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동서문명교류사의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가 번역, 주해한 책이다.  신라의 스님 혜초는 십대 초반에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하였는데 바닷길을 통해 인도와 지금의 이란 지방에까지 여행한 순례자이자 모험가이기도 했다. 인도로부터 서아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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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여행기로 우리 역서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는 慧超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동서문명교류사의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가 번역, 주해한 책이다.

 신라의 스님 혜초는 십대 초반에 신라를 떠나 당나라에 유학하였는데 바닷길을 통해 인도와 지금의 이란 지방에까지 여행한 순례자이자 모험가이기도 했다. 인도로부터 서아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통해 당나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기록한 것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인 것이다.

 227행 6천여자가 넘는 여행기는 그의 여행기를 소개한 혜림(慧琳, 737~820)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의 내용을 유추해 볼 때 원래 상, 중, 하권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현존본은 그 중 중권의 일부를 필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책은 정확한 번역과 함께 책의 대부분이 본문의 주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래서인지 전문학자를 제외하고는 내용이 매우 어렵고 쉽게 읽혀지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다양한 불교이론과 아시아의 역사, 밀교의 전파자였던 혜초 스님의 생애 등을 소상히 알 수 있어 전문서적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인다.

 다만, 프랑스에 보관되어 있는 [왕오천축국전]을 반환받아야 한다고 한 것은 희망사항이지 좀 무리한 주장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보물을 찾아낸 사람과 장소가 모두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당나라로 유학가 귀국하지 않고 거기서 생을 마쳤으니 태생은 한국인이지만 그의 생애와 업적까지 한국의 것이라 한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 혜초의 후예로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그에 대한 연구성과가 지속되어 그를 영원한 한국인으로 기억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혜초는 한국의 선구적 세계인일 뿐만 아니라, 동양의 걸출한 세계인이기도 하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없었으며, 더욱이 아시아 대륙의 거의 서단까지 다녀와서 현지 견문록을 남긴 전례는 없다. 아울러 여행기가 갖는 의미는 물론, 밀교에 대한 그의 기여도 가히 세계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혜초와 그의 여행기가 지닌 민족사적 업적과 세계사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20~21쪽 중에서)

m*******e 2010.05.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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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와 허명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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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 기존에 읽은 책들이 머리 속에 잘 정리되어 있으면, 같은 내용을 읽어도 그만큼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재미 역시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점이다.   39쪽을 보자. 여기서 일단 독자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는데, 그것은 저자 '혜초'의 본명부터가 불확실하다는 점. 즉. '혜'자가 '은혜로울 혜(惠)' 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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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 기존에 읽은 책들이 머리 속에 잘 정리되어 있으면, 같은 내용을 읽어도 그만큼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재미 역시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점이다.

 

39쪽을 보자. 여기서 일단 독자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는데, 그것은 저자 '혜초'의 본명부터가 불확실하다는 점. 즉. '혜'자가 '은혜로울 혜(惠)' 냐, 아니면 '지혜로울 혜(慧)'냐가 경우에 따라 기록이 엇갈리고 있어서이다.

 

후한대 허신의 '설문자해'에 보면, 동음동의의 원칙이 있다. 하수들에게는 상당히 혼란스러움을 몰고 오는 명제인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 오기로는, '한자란 발음만 같다고 같은 것이 아니며, 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인 이상 자형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결론적으로 말해서 상당히 낮은 단계에서나 통하는 도그마이다. 비단 학문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의 테크닉과 요령이, 어느 한 가지에만 집착하면 대체로 풀리는 일이 없게 마련. 일을 풀어나가는 데에는 단계와 국면, phase가 구별되는 것이 보통이며, 다른 상황에서 다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본질을 달리하는 그런 다른 국면이냐 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 있겠으며, 이걸 잘 변식해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처세인이지 싶다.

 

한문 독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주로 초등 구체 개념어에 있어서는, 글자의 발음은 異同의 표식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추상고급 개념어에선 두 가지가 있는데 1) 정말 호환이 가능한 것(이게 지나치면 아예 동일 글자가 되어 버린다. 이런 예는 현대에 들어와 간체자화한 중국한자에서 인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2) 엄격히 구분해야 하겠으나 파격과 운치를 따질 때 간혹 혼용하기도 하는 것.


후자의 예를 하나 들겠다.

精神一到何事不成

이 성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그런데, 이 글자 중, '이를 도(到, arrive)' 자를, '거꾸러질 도(倒, stumble, capsize)'로 바꾸어, 장난스럽게 쓰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무슨 '파격의 미'인가 뭔가 해서 어느 유명 수필가(누구인지 기억이 안 난다)의 글에서 내가 읽은 적이 있는 건데, 내용인즉 그 작가가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서 편액의 오자를 지적하니까, 주인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면서 "정신이 어느 하나의 지점으로 거꾸러져야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일침을 놓았다는 것. 얼마 전 유행하던 말에 따르자면, '미쳐야[狂] 미친다[到]'는 그 슬로건과도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자 그건 뭐 그렇고, 일단 외국인의 이름이고 고유명사이니 발음이 같으면 어느 글자를 써도 상관 없는, 소위 동음동자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보통 잘 모르는 사람은 한자의 원리에 있어 소위 육서 중 가차를, '가구가락' 등 외래어에 국한한 용법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동음동자 원칙처럼 중국고유어에 있어서도 그 활용 범위가 미치는 것으로서, 학자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그 외연을 명정하지 못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혜초의 경우는, 이게 법명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의 느슨한 적용이 매우, 매우 힘들다. 즉, 도대체 그 이름의 정확한 표기조차 알 수 없는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인물에 대해 현대인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폭로함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일차적 원인은 우리 측 사료의 부족에 있다.

 

혜초는 펠리오가 그 위대한 발견을 한 후에서야, 그 실존성이 일반에 각인되었을 뿐이다. 우리측에서는, 프랑스인과 일본인 학자가 그 확인을 해 준 이후에야 비로소 뒷북을 치듯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복창하기 시작한 것. 우리 역사에 있어서는 믿을 수 있는 호적 등의 기록이 전무한 까닭에, 유럽에서처럼 무슨 아날 학파니 생활사적 연구 같은 분야가 꽃필 수가 없는 원초적 한계가 있다. 신라인임에도 신라에서 그 전거 기록을 찾는 게 아니라 같은 시대 중국의 문헌에서 흔적을 살펴야 하는 형편인 것. 그러니 그 본명조차 정확히 알 수 없고, 심지어 중국학자 중에는 그 실재성마저 의심하는 자가 새로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이 책 40쪽 각주 11번).

s****o 2013.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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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천축국을 다녀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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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왕오천축국전/혜초/정수일/학고재/2004 많이 들어봤을 바로 그 책 왕오천축국전입니다. 지금 본다 하여도 고서적, 역사, 불교, 중동 등등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별 관심없이 넘겨도 좋은 책이지만, 제가 2년전쯤 제목만 들어 보고 읽은 적은 없는 책 즉 고전을 하나씩 읽어보리라 했던 것 중에 들어있었던 것 만큼 우연한 기회에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네요. 사실 인생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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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왕오천축국전/혜초/정수일/학고재/2004

많이 들어봤을 바로 그 책 왕오천축국전입니다. 지금 본다 하여도 고서적, 역사, 불교, 중동 등등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별 관심없이 넘겨도 좋은 책이지만, 제가 2년전쯤 제목만 들어 보고 읽은 적은 없는 책 즉 고전을 하나씩 읽어보리라 했던 것 중에 들어있었던 것 만큼 우연한 기회에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네요. 사실 인생 그 자체가 장편 드라마인 정수일 교수님이 제대로 이렇게 편역해서 내시기 전에는 제대로된 책이 없었던 지라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던 것도 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혜초는 신라인이지만 당나라에 가서 불교 수학을 했으며 불교의 태생지라고 할 수 있는 인도 즉 천축국을 다녀와서 탐방기를 쓴 사람입니다. 돌아오고 나서도 일생 당나라에서 활동했으며 신라로 돌아오지 못했지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알려져 왔지만 오래전에 사라져서 내용을 알 수 없었는데, 유명한 중국 돈황의 막고굴에서 발견되었고 청나라 말기 수많은 도굴군들이 그 막고굴을 관장하던 이를 매수하여 숱한 유물들과 고서적을 헐값에 반출해 갔고 그 중 한사람이 이 왕오천축국전을 알아보면서 연구가 시작되게 됩니다. 돈황 막고굴의 왕도사와 도굴꾼 이야기야 유명하지만 여기에 왕오천축국전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막고굴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이 본래의 원본인지 아니면 이후 간추려서 짧게 남긴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않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글자의 상당부분이 유실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래의 내용은 아주 간략합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정수일 교수님이 쓰신 앞부분의 해설이나, 내용을 상세하게 풀어놓은 각종 주, 그리고 당시 인도와 서남아, 중동 지역의 여러 사회상이나 문화의 모습 등을 해설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으로 내내 정수일 교수님의 중동 관련 책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그러질 못했는데 진가를 확인하고 나니 이제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서양인이, 일본인이, 또한 중국인이 먼저 알아보고 번역하고 연구해 왔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순수하게 연구만 하기를 좋아하는 은둔형 서지학자들에게도 빛이 내리기를.

r*******n 2017.07.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