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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밥벌이를 위해 학교에 나와 일을 하고 글도 쓰고 있다. 그러다 문득 밥벌이하는 행동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존재라서 지겨운 밥벌이, 그러나 그 밥벌이를 시킨 사람이 바로 다름아닌 나라는 사실 때문에 피할 수도 없는 존재... 그래서 오늘도 밥벌이를 하다가 거기서 뛰쳐나왔고 또 코가 꿰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다시 밥벌이로 돌아간다. 김훈의 책을 여러 권 읽어서인지 이미 읽은 글들이 많다. 특히 최신에 읽었던 <라면을 끓이며>가 절판된 이 책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나의 독서는 계획된 독서라기보다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스타일이다. 나의 '김훈 읽기'도 책의 출간연도와 무관한 순서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놀라운 점은 몇 번 접한 그의 글들은 눈에는 익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점이다. 그의 글쓰기는 몸으로 밀고 써나간 아날로그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본다. 오른손에 연필을 잡고 왼손에 지우개를 쥔 채로 한줄을 썼다가 지우고 또 다시 힘들게 써가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필로 글을 쓰면 어깨가 아프고, 빼고 지우고 다시 끼워 맞추는 일이 힘들지만 이렇게 하면 자신의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를 찾아 건너가는 디지털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아날로그식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에는 자연을 닮은 곡선의 미를 상징하는 아날로그식 삶의 방식이 느껴진다.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의 사색이 있고 방황이 있고 고민이 있다. 이 책에는 김훈의 삶이 담겨있는 50여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물론 본인으로서는 밥벌이를 위해 힘들게 써나간 글들이다. 아날로그적 삶을 회상하는 글, 언론인으로서 보고 겪은 일들에서 생각나는 단상,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풍경 등을 김훈 특유의 필채로 그려간다. 그의 산문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지만 우리 삶의 본질적 측면을 터치하기에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준다. 김훈의 글을 통해 우리사회의 단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이 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삶이란 결국 이웃과 함께 부대끼며 소통하고 주변을 구경하며 둘러서 목적지까지 가는 우리 인생길이다. 그는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우린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 위한 밥벌이의 현장으로 내몰린다.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밥벌이의 현장이야말로 지겹고도 정겨운 곳이 아닐까? |
| 김훈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지칭한다. 본질적으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은 변화에 적응하는 순발력과 반비례한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비춰보면.. 그의 아날로그식 글쓰기 또한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칭할 만 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는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이 거대담론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교묘히 감추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그의 보수적 태도, 변하지 않는려는 태도 속에는 본질적으로 지켜나가고 싶어하는 숭고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사회구조와 환경의 쳇바퀴 속에서 부조리와 모순을 인식하면서 갈등을 느껴가면서 갈등 속에서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나 할까.. 흔히 자신의 감정과 이익을 대의명분속에 숨겨놓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감정에 지배 받는 다는 자체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여느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있다. 그것도 철저하게 한 개인의 눈높이에서 그 개인을 관망한다. 어줍잖은 식자들이 무지몽매한 군상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매몰시키면서 자신은 그 차원의 바깥어딘가 고상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것 대신에.. 그는 밥알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처절한 밥넘기기와 그 밥들이 가지는 비정한 순환의 의미를 모호한 희망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단호하면서 서글프다. |
| 문학에 문외한이고 읽기를 별로 즐겨하지 않는 저에게 선배는 《밥벌이의 지겨움》를 권했습니다.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권해 읽었는데, 다행히 거의가 제 취향(?)에 맞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번 역시 그 기대는 맞아 떨어졌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작곡가 겸 가수인 한돌은 그의 노래를 '타래'라 하였습니다. 그 '타래 모음집' 1집의 '못생긴 얼굴'과 2집의 '홀로아리랑'을 저는 좋아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 부연하자면 한돌이 만든 노래로는 신형원의 '개똥벌레'나 '터'와 같이 잘 알려진 노래도 꽤 있습니다. 김훈은 그의 수필 또는 산문을 '世說'이라 부르고, 첫 번째 世說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두 번째 世說 《밥벌이의 지겨움》을 발표했습니다.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평을 世說이라 하지만, 그것보다는 세상 사는 얘기를 풀어놓은 것이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수필이나 산문집이라는 명칭이 주는 선입견을 없애려는 듯합니다. 한돌의 노래가, 노래이지만 노래가 아닌 것 같고, 김훈의 짧은 글이, 수필이지만 수필이 아닌 것 같으니, 이건 그 명칭이 가져다 주는 언어의 힘인 것 같습니다. 수필은 일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 눈의 정교함이 수필의 맛을 좌우합니다. 김훈의 눈은 매우 정교하되, 그 정교함의 원리는 아날로그입니다. 아날로그는 연속됨의 다른 이름이고 디지털은 끊어짐을 뜻합니다. 일상은 흐름이고 연속이며, 이는 전적으로 아날로그적입니다. 김훈의 아날로그적 글쓰기는, 그래서 일상의 정교함을 풀어내기에 가장 알맞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눈에 들어온 세상이 김훈의 언어로 가공되고, 몸이 밀어내듯 썼다는 그의 글은, 그래서 짧으나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볍게 읽히되 무겁게 느껴지는 그 정체는, 제가 갖고 싶은 그 무엇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사면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도 함께 샀습니다. 주말에 읽어봐야겠습니다. |
| 밥벌이의 지겨움이라..흐음...밥벌이가 지겹기는 하지 ㅋㅋㅋ 그렇지만 그것은 오방과 같은 직딩들의 이야긴줄만 알고 있었는데..훈이형님 좀 오버하시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훈이형님이 예술노동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못해먹겠다고 하였지만 오방과 같은 단순노무자(?)의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원래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니깐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조금 아쉬운 마음 점점 부풀어 오른다..오방 살짜기 어렴풋이 알기로는 훈이형님 전직이 기자출신이라고 알고 있다...오오 기자라...신문기자라...오방 지금에 와서 인생에서 완전히 물건너 간김에 고백하지만 오방 신문사에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인물이다...졸업을 앞둔 IMF시절...내노라하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내노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듣도보도 못한 잡지사까지도 지원서를 쫘악 깔아본 경험이 있는데..안타깝게도 단 한군데도 최종면접까지 가보지 못한 아픈 상처가 있다...방송사와 신문사등 손으로 헤아릴수도 없이 여러군데...지원서를 보냈었는데...당시에는 하나로통신(요건 기억난다^^ 인터넷으로 유일하게 원서접수를 했었던 기업이었던 것 같다)을 제외하고는 대기업조차도 인터넷 접수가 뭔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으니 다 원서 받아다가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 접수하느라고 볼펜심깨나 날려먹었었지...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지만 서류전형조차 합격하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렸을 오방의 원서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그 원서들보다 오방이 더 아프다...그렇게 젊은이들이 들어가고 싶어 밤에도 이불에 오줌을 지릴 정도인 소위 잘나가는 신문사 기자를 오랫동안 해왔던 훈이형님이 밥벌어 먹느라고 지겨웠다고 고백하다니..읽어주지 않을수 없었다...과연 모가 그토록 그를 지겹게 하였는지.. 훈이형님을 모 따로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그저 '칼의 노래' 한방이면 다 뻑가버리는 수준의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중 한명 아니신가..오방 역시 노통이 강추(?)하는 바람에 '칼의 노래'를 단숨에 읽고 가슴저릿한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 탄력을 이용하여 '현의 노래'를 읽고 그 난해한 문체와 진도가 전혀 쭉 빠지지 않는 내용에 왠만하면 훈이형님의 책을 당분간은 읽지 않을 것을 맘속으로 맹세한 적이 있는데...이 책은 제목에 압도되어 읽지 않고 넘어갈 재간이 없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공감을 했던 부분을 잘난척 조금 해서 가당찮을지 모르지만 단 한단어로 묶어준다면 '리얼리티'라고 말할수 있다...그렇다..현장감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데...자꾸 노비문서 뒤지듯 출신성분 이야기해서 안되었지만 '신문기자'출신이라는 저자의 과거때문일까..아님 역마살이 단단히 끼어버린 그의 팔자소관 때문일까...아마도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이나...경험해 보지 않은 장소에 대해서 논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유서깊은 장소...한적한 바닷가...고즈넉한 강들녘...그 어디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마치 지금 독자들이 그 자리에 서서 저자와 같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반드시 자신이 눈으로 보고..자전거페달을 밟아 확인하고(책에는 자전거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TV에서도 약간 소개가 되긴 하였지만 자전거로 여행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엑셀 페달만 꾹 밟으면 세상 어디로도 갈수 있는 시절에 자전거 페달이라니...그의 아날로그적 인간사가 조금씩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나서야 비로소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갈 마음이 생기는 모양이다...덕분에 독자들은 복 터졌다...여타의 어느 기행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지금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저자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현장감...이 책을 읽는 매력 중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같다...그의 여행과 인생의 여유가 부럽다... 잠시 아날로그적인 삶의 향기를 좋아하는 저자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책에도 물론 등장하는 이야기이니깐 너무 기를 쫑끗 세워 오방을 부담지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ㅋㅋㅋ 오늘도 그 프로그램 보고 나홀로 눈물 찔끔 나와 챙피했는데..역시 오방이 토요일 저녁이면 꼭 보려고 노력하는 최고의 프로그램이 바로 김성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사과나무'라는 프로그램(이 책 서점에도 나왔더라..잠깐 들추어 보았는데...역시 훈이형님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을 목차를 통해 눈치 금방 깔수 있었다..혹시 누가 읽었다면 소개해주라...소장하였다면 꼭 빌려주길^^ 오방은 수전노)인데...이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수 없는작가 김훈의 모습이 소개된 것을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가장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직도 원고지에다가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었다..원고지라..요새도 학교에서 원고지 쓰나 모르겠다..오방의학창시절에는(심지어 대딩때도 원고지 썼다...그러고 보니 오방도 구세대인가..흐음..그러긴 싫은데..어쨋든 썼다) 200자 원고지에다 글자 가득 채우느라고 고생 참 많이 했다...요새야 그 잘난 워드 프로세서라는 넘들이 맞춤법교정부터 띄어쓰기까지 빨간줄 저절로 그어주며 교정작업 잘도 해주지만 원고지에다 쓸때면 참 고민 많이 되었던 부분은 바로 띄어쓸까 말까하는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문제였다...그리고 보통 과제를 내면 '원고지 5장 이상' 모 일케 나오다 보니깐 마침표를 다음줄에 찍어서 장수 늘리기 대작전을 펼쳤던 기억도 난다...그런 추억만 남아있는 원고지에 아직도 연필과 지우개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니...저자도 고백하지만 연필로 꼭꼭 눌러가며 글을 쓰는 그 어깨와 엉덩이도 고역이긴 하지만 지우자고 생각들때 그 넘도 골치깨나 썩이는 대목이다...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하면 그런 고민은 한순간에 사라진다...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선택한후 delete키 한방이면 싹 날라간다...또 백업과 파일보관은 얼마나 쉬운가...이메일에 살짝 얹어 보내면 또 얼마나 편한가...편한 것을 거부함으로써 더 큰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대작가의 모습을 원고지와 몽당연필을 통해 볼수 있었다면 좀 오버일까? 적어도 오방에게는 가슴 따뜻한 감동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시인처럼 지나간 추억을 관조하는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아직 시들지않게 잘 갈려진 냉철한 현실판단과 비판 역시 이 책에는 등장해서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자세히 이야기해주면 김이 좀 빠질지 모르겠다...살짝 귀띔하면 각자의 정치적 이념에 너무도 심취(?)한 나머지 도를 넘어선 행동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강하게 꾸짖고 있는데...공감이 가는 대목이다...왕의 왼쪽에 앉았느냐 오른쪽에 앉았느냐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때문에 피가 튀기게 타인을 모욕하고 까내릴려고만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현실과도 적절하게 매치된다...과연 대한민국에서 '진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은 얼마나 큰가...그 연관관계는 전혀 상치되지 않는 것인데도 잡아죽이기는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진보주의자'라는 딱지인데...과거 진보=좌파=좌익=빨갱이=잡아 쳐죽이고 삼족을 멸할넘...이 등식 우리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이 등식에 휘둘려 억울한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기까지 했던가...그 등식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하고 약발이 단단히 잘 받기때문에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정적을 죽이기에는 최적이었지...말이 필요없지 않은가...저 자식 좌익이다 한마디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죽여주었었지...상생해야지 않냐고 말하지만 아직 진정한 상생의 기운은 전혀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한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속에서 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것을 저자가 살짝 힌트를 주는 것같아 짜릿했다...요는 그렇다...나의 왼쪽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오른쪽이 된다...내가 보수를 표방한다면 진보적 성향을 가진 다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진보가 없다면 내가 보수가 아닌거지...진보적 사상이 없다면 결국 보수라고 비교되어 말할수 있는 주체가 없어지는 셈아닌가...결국 내가 우측에 서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좌측에 서있어야 할 타인이 필요한 셈인데...어찌 배웠다는 넘들이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뻘짓거리나 하고 있는가....자신의 발로 직접 걸어 인간냄새와 발꼬랑내가 풀풀 풍기는 가운데...가장 현실적일수 있었던 책...훈이 형님의 이야기에 푸욱 빠지고 말았다...당신은 발냄새나는 추억이 얼마나 있는지.바이. |
| 내가 김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은 남자이고, 기자이며 소설가이고,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뻘이라는 것 정도다. 난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도 없다. 단지 나는 그의 글이 좋고, 그의 문장이 좋으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배우는 세상이 좋다. 내가 읽은 그의 책에 한한다면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언제나 현실적이다. 현실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문장들은 늘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나는 김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글들은 좋아한다. 세설(世說)이라고 이름 지어진 녀석은, 말하자면 에세이 정도 되는 녀석이었다. 틈틈히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풀어낸 작은 책.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과, 지금껏 살아오며 알게 된 사실들을 나열해놓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탄성을 지를 부분에서는 탄성을 질렀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부분에서 눈물을 글썽인 것도 당연했다. 막연하게 읽고 있다는 것으로의 충족감을 느꼈다. 그게 지금 내 세상의 전부인 것 마냥. 어쩌면 김훈이라는 사람 자체는 나와는 부단히도 맞지 않을 사람인지도 모른다. 책의 후반부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서 그 생각을 절실히 했는데, 그가 말하는 것들 중 상당 부분이 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틀렸기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게 그것을 강요하는 게 아닌 이상, 나도 그에게 그것을 강요 받을 이유가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대로의 생각을 펼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뭐 언젠가 기회가 닿아 혹시라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한들 어떻겠는가. 그는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강요할만한 사람은 아닌 것을. 글들 개개는 건조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 한 권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생각보다 컸다. 그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 그 자질구레한 감정을 내가 언젠가는 품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실실 웃음이 났다. 나의 3배쯤 사신 분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을 일은 앞으로도 드물테니 말이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면서 나도 담담했다. 까놓고 말해 격한 감동이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잔잔하게 무언가를 던져주는 이야기들 하나는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음, 인간 김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고 굉장하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단어를 어떡게 쓰냐는 그의 말에 굉장하다는 말을 반복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가 겪은 단어들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의 짧은 인생 같은 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자서전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 |
| 1. 육이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이태백.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 고유명사들이지만 이 단어들을 일렬로 쭉 늘어놓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육이오의 총구는 ‘62세까지 직장에 남아있는 오적’들을 향하고 있으며 부산 앞바다의 오륙도는 느닷없이 ‘56세까지 일한 도둑’으로 변모한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야릇한 괴물인 사오정은 ‘45세에 정년’을 맞는 직장인들로 둔갑하고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삼팔선은 ‘38세까지 일하면 선선히 물러나야’ 하는 직장인들의 최후의 저지선이 된다. 그리고 달밤에 배를 띄우고 음풍농월하던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은 ‘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이 나라 젊은이들의 자조적인 별명이 된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는 밥벌이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 단어들 앞에서 나는 마음이 쓸쓸하다. 그 쓸쓸한 마음의 한가운데는,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만 하고 밥을 먹기 위해서 밥을 벌어야만 하는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한 깊은 연민이 담겨 있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 사이에 펴낸 산문집의 제목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정하면서 김훈이 ‘덜 삭은 슬픔이 창자를 씻어 내린다.’ 라고 썼던 이유 역시 이러한 연민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평생 밥이라는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가는 우리의 삶에 대한 연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 역시 사실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우쳐 줌으로써 그 연민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은,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되는 진저리나는 밥 앞에서 부르는 ‘밥의 노래’이다. 그 노래에는 어쩔 수 없이 연민이 스며들어 있지만 그 연민에 굴복하지 않는 ‘몸’의 건강함이 있다.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라고 그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먼저 ‘결핍’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은 식물들과는 달리 엽록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랜 세월 인류의 밥벌이를 책임져 왔던 남성들을 규정하는 남성성의 본질 역시 ‘결핍’으로 이해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밥벌이의 수단으로써 인간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인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고대인들과는 달리 그렇게 해서 벌은 밥을 넘길 수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몸을 부려야만 한다는 점에 밥벌이의 비극이 있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35쪽,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어쩌다가 우리의 밥벌이가 이 지경이 되어 버렸을까. 그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면 이것은 화폐 경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만물에 대한 포괄적인 구매력을 행사하는 돈이라는 기호가 밥이라는 실물을 대신하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끝이 없어진 것이다. 그 욕망을 더욱 극대화한 기호가 바로 신용카드다. 이처럼 밥 대신에 기호가 거래되는 세상 속에서 밥은 이제 더 이상 자연 속에 있지 않다.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인간의 세상 속에서 내 밥과 네 밥은 서로 뒤엉켜 있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이 없을 수가 없다. 밥벌이가 고통스럽고 지겨운 일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는 밥벌이를 위한 우리의 노동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킬 뿐이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밥벌이에서 노동의 신성함이나 일하는 신명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264쪽, ‘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에서) 그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것은, 세계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몸’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눈물겨운 시도이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라는 소설로 구체화 된 바 있는, 무기(연장)와 악기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인간의 몸의 일부로서 세계 속에서 온전하게 기능할 때, 그 세계는 비로소 변모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몸’의 회복과 함께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회복이다. 선원들의 밧줄, 암벽 등반가들의 자일, 소방관들의 소방 호스처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밧줄과 같은 아름다운 협력의 관계를 우리의 세상 속에서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들을 수행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밧줄의 아름다움이다. (중략) 나는 최초로 끈을 발명한 인류의 선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끈과 밧줄을 발명한 인간은, 인간의 몸과 노동을 외계 속으로 그리고 다른 인간의 몸속으로 확대시키고 연관시킨, 위대한 선구자일 것이다. (173-174쪽, ‘밧줄의 아름다움’에서) 그 밧줄은 단독자로서의 인간과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밧줄인 동시에,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는 밥의 개별성과, 밥은 누구나 먹어야 다 먹어야 한다는 밥의 보편성, 그 양쪽 모두를 끌어안는 밧줄이기도 하다. 3. 지난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일하는 시간은 줄고 노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과연 밥벌이의 지겨움도 그만큼 줄어들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이 질문에 김훈은 이렇게 답한다. 깊이 새겨볼 말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264쪽, ‘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에서)현의>칼의>밥벌이의>밥벌이의>밥벌이의>현의>칼의> |
| 나는 김훈 님의 책을 처음 보았다. 사과나무 어쩌고 하는 책에서 소개는 읽었지만... 워낙에 장편은 "토지" 이후에는 꺼리는 지라... 하지만.. 우연히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은 나의 두통과 지겨움과 우울함을 몰아내 주었다. 이런 정신적 치료가 되는 책이 얼마나 되는가? 법정스님의 책... 을 좋아하고 조선희씨의 에세이를 좋아하고.. 김훈 님의 세설에 반했다. 글을 읽으면서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 가슴으로 와 닿는 문장들. 그의 정직이 나의 심장을 노리는 듯하다. 특히.. 매 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ending은 죽음이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러브씬처름.. 엔딩씬은 멋진 글귀로 가득하다. 정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행복할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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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김훈
<칼의노래>,<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그의 길을 읽을 면서 참 좋았다. 글의 호흡이 짧으면서, 접속사는 잘 쓰지 않는 그의 글. 문장의 의미는 더욱 확대되어 마치 절제된 아름다움을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왜 신문기자 시절에 구독자들이 그의 글에 매료가 되어서 그의 글을 읽는지를 알 것 같다. 많은 작가들이 김훈의 작품을 미래 작가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주문을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김훈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본 사람살이의 풍경이며, 그의 관점 및 생각이 묻어나 있다. 그가 좋아하는 작업 도구, 자전거를 통해서 느낀 생각들,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생각, 그 당시의 사회에 대한 그의 의견이 쓰여져 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인 [밥벌이의 지겨움] 이다.
p35 밥벌이의 지겨움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물을 으깨서 먹게 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장면을 먹는 걸인의 동작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에이프런을 두르고 거위 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전기 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고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 두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 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기 싦어도 해야 하는 밥벌이. 이 말은 지금 나에게 말한다. ‘넌 진짜 밥벌이를 해봤냐?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나?’ 라고 말이다.
예전에 나는 밥벌이의 의미를 알았다고 생각했으나, 이글을 읽고 나는 “밥벌이”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가 어려웠다.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알바들을 했던 나는 주위에 한번도 알바를 안해 본 애들보다 밥벌이를 간접적으로 체험을 했다는 생각을 갸졌다. 알바도 안 해본 애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지 밥벌이도 못한 것들’ ‘철없다. 철없어.’라고 말했다. 알바를 하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이들보다 내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
이 글에서 밥벌이의 의미를 보면은 본인의 싫은 일이여도,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런 밥벌이는 해보지는 않았다. 즉 “너는 다른 사람을 책임지기 위해서 밥벌이를 해봤냐” 라고 말하면, 나는 이 밥벌이라는 단어를 쓰기 어렵다. 알바도 안 해본 애들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밥벌이도 못한 것들’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위 본문의 글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진짜 밥벌이의 지겨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써 자식들을 4년제 대학교에 보낸 우리 부모님. 자식들의 교육 및 생활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 부모님. 자식이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속을 든든하게 해야 한다면서 아침밥을 차려 주시는 어머니.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돈벌어오시는 아버지. 부모님의 희생으로 인한 밥벌이 덕분에 살고 있는 나. 밥벌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부모님한테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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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문학동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문기자 출신의 이 작가가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평론가들과 소설가들은 오버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의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지지의 대부분은 바로 김훈의 문체에 초점이 맞추어지고는 했다. 나또한 덩달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까 하였지만 부화뇌동하기 싫어 혼자만 조용히 음미했던(나 정말 못됐다) 기억이 있다.
사실 정확하게 그의 문체가 어디가 어떻게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그의 문학작품들이 많지 않거니와(게다가 난 『칼의 노래』를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 전기적 작품들을 읽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의 남독이 낳은 병일까?) 제대로 읽지를 못하여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논리적 감성의 문체라고 부르면 어떨까? 작가가 표현하는 감성의 수위가 꽤나 심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그저 감성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제 논리를 잃지 않음을 통해 보여주는 서술의 힘 같은 것을 그의 작품들을 닮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힘은 그의 다양한 글쓰기 영역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에 읽었던 『자전거 여행』이 일종의 여행 중의 사유를 깊고 융숭하게 설파하고 있는데 반하여 『밥벌이의 지겨움』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작고 아담하지만 살펴보면 필유곡절의 일상을 구석구석 전전한다. 때문에 그의 빛나는 문체의 특질들을 살피는 데에는 불리하지만 김훈이라는 작가의 세상살이에 대한 시선의 일단을 살피는 데에는 꽤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그로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지어다. 간간히 그는 가슴 뜨끔하도록 시큼짭짤한 문장들도 빼놓지 않는다. “바람이 잠들고, 햇빛이 무서운 날에 가장 굵은 소금이 온다. 소금은 낱알이 굵고 입자가 안정되어 있고, 향기로운 알맹이를 으뜸으로 친다. 짠맛 안에 바닷물의 향기와 햇빛의 향기를 모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증발이 깔끔하지 않아서 불순물이 남아 있을 때, 소금은 쓰다. 이런 소금은 나쁜 소금이다. 바람이 불어서 염전 바닥의 물이 흔들리면 소금의 입자는 불안정해진다. 좋은 소금은 폭양 속에서 고요히 온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향기로운 소금은 인간에게로 온다.” 게다가 카운터펀치도 잊지 않는다. “나는 자연사한 새들의 주검을 본 적이 없다. 숲 속의 그 많은 새들이 어디로 가서 죽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내 창 앞 모과나무 가지에서 우는 새도 내가 모르는 어디론지 가서 죽을 것이다... 새들은 올 길 갈 길에 하늘에서 죽어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새들은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 가면서 날아오고 또 날아오지만, 새들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뭐 이쯤대면 이건 산문이 아니라 시가 된다. 물론 그의 생각들 모두가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주섬주섬 쉽게 주운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갈함 속에서 따뜻하려는 노력을 잊지 않은, 잊혀져가는 기자 정신의 산문적 발로에는 갈채를 보내고 싶다. |
| 이 책은 제목만 들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노동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3d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벼락부자가 행세하는 우리 나라에서 떳떳한 밥벌이 하면서 기펴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김훈의 특유의 딱딱한 단문으로 누군가의 말처럼 독자를 매우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솔직히 김훈의 글은 끝없는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독자한테도 자신의 글에 집중해 주기를 원하는 듯 하다. 자유로운 사람으로 보이면서도 일견 보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굵은 선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점점 어휘가 줄어들어 글쓰기가 두려워진다는 작가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연장을 좋아하고 무인과 예술가의 삶을 조명하기를 즐기는 작가의 모습은 범인과는 다른 마치 이순신 장국으로 보듯 먼곳에 자리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책의 뒷부분에 있는 인터뷰는 솔직히 이 책에서 빠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