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5월 1일이 될 때마다 난 새해 첫날 5월 달력을 펼쳐놓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고치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선배를 떠올리곤 한다. 메이데이.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에 뛰어들지 않은 나에게 이 단어는 아직 그토록 절실하게까지 와 닿지 않는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루의 시간, 왜 사람들은 그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거리로 나가 투쟁을 하는 것일까. 반공주의의 기치 아래 현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은 무조건적으로 억압했던 지난 역사는 우리로부터 메이데이에 대해 진실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그렇기에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때에도 침묵하는데 익숙하고, 다같이 내는 목소리를 향해 집단 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데 익숙하다. 아니,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국가에 있어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메이데이는 모든 국가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직접 싸워 이루어낸 하나의 성과물이니 말이다. 1890년 제 1회 대회가 개최된 이래로 지금까지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메이데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노동자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절실함 때문일 것이다. 12-16시간에 이르는 노동은 그들에게 각종 질병을 가져다 주었고, 노동자 평균 수명 25세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았다. 숱하게 발생하는 산업 재해 앞에서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노동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노동자뿐이라는 사실에 그들은 눈을 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는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첨예한 모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하루 8시간 노동하기 위해 싸웠고, 이러한 싸움은 한 국가에만 국한된 흐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피고인 8명이 무죄임은 이미 1893년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당시와 같은 수법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억압한다. 우리나라 역시 자본주의 질서체제에 편입된 이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1920년대 공업의 발전은 노동자 계급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특히 식민지라는 시대적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에게는 ‘민족의 독립’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져 있었다. 조선노동공제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1920년대 널리 보급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보다 강력한 계급성에 바탕을 둔 노동운동으로 성장한다.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봉쇄하기 위해 4월 27일부터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간 일제의 모습은 당시 노동운동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독립 이후에도 우리의 노동운동은 자생적으로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안아 건설된 전평은 미군정, 이승만 찬양에 급급한 어용노조인 대한 노총의 탄압 속에서 설 땅을 잃었고 급기야 대한 노총은 메이데이를 3월 10일로 옮기는 어처구니 없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거기에 4월 혁명을 통해 탄생한 한국 노련을 분쇄하고 그 자리에 한국 노총을 세운 정권은 경제성장의 주역인 노동자들을 ‘공돌이’, ‘공순이’로 만들어버렸을 뿐이었다. 이 책은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건설 속에 깃들어 있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을 보면서 우리는 그 희망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점,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메이데이는 계속될 것이고, 5월 1일 하루를 수놓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