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양국의 관계는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역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보여준다. 군국주의가 자행한 만행을 아시아의 발전을 위한 업적 마냥 받아들이고 있는 일본 정부측의 태도는 위협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독도 영유권 문제나 역사 왜곡 문제 등이 끊임없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극을 향해 달리는 일본과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아파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황폐한 역사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그들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지만 그들에겐 배움의 기회도, 부유한 생활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지난 경험들조차도 그저 혼자 간직해야만 하는 것으로, 역사 속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들에겐 시간이 없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다는, 하지만 그 소원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센진’ 이 단어는 지난 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 단어에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우리민족을 향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담았다. 선천적으로 자신들보다 열등한 민족으로,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자신들이 다스려주어야만 하는 존재로 그들은 우리민족을 설정했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조선인이 있었다.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저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자신들이 가진 노동을 모두 쏟아내야만 했던… 하지만 이는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일본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한다. 남과 북, 어느 체제를 긍정하는지 여부는 다를지 몰라도 그들은 분명 한민족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점차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일본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일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그들은 세금을 내지만 아무런 권리도 취득하진 못한다.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제약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일본인이 아닌 한민족으로 살고 있다. 일본에 살지만 결코 일본인일 수는 없는 그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타자의 위치에만 서 있지 않았다. 역도산, 장훈 등 일본 스포츠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계 선수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연예계 역시 다카쿠라 겐, 미야코 하루미 등 수많은 재일조선인과 귀화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점차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인으로서 동화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재일조선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까지 잊으라는 법은 없다. 그것은 단지 일본에 거주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인도 아니지만 한국인도 아닌 그들은 분명 지난 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온 몸에 고스란히 지닌 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