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이트-라캉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의 콤플렉스 환원론과 구조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선 가타리. 비록 그가 들뢰즈와 함께한 일련의 공동작업들(『앙띠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분열증1』,『소수문학기계』,『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2』)을 통해 (마치 주저자 들뢰즈의 보조저자나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지긴 했으나, 정작 책상머리 앞에만 앉아 있던 철학자 들뢰즈의 사유를 현실과 실천의 영역으로 이끌었던 것은 바로 가타리였다(들뢰즈는 가타리와의 만남을 "마치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가타리는 1968년 혁명 이후 더 이상 전통적 좌파의 국가 권력 장악 테제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는 점과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해버리는 정신분석에 반한 그의 문제의식 등을 정신병원에서 벌였던 여러 가지 실천적 실험들을 통해 구체화한다. 바로 이 책은 그러한 실천들을 통해 도출한 '집단적 주체성'과 '횡단성' 개념(이 책의 두 가지 키워드!)을 정리한 가타리 이론의 '출사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들뢰즈와의 첫 번째 공동작업인『앙띠오이디푸스』발간(1972년) 이전에 쓰거나 발표한 글을 모은 것으로, 사실상 가타리의 초기 저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타리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직접 쓴 들뢰즈는 새로운 집단적 주체성(일관되고 고정된 '정체성'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자!)을 탐구하는 가타리의 논지를 명쾌하게(아마도 이 서문에서처럼 친절하게 개념을 설명하는 들뢰즈의 태도는 그의 어느 저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소집단이다"라는 가타리의 말은 ... 전체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분할도 증식도 가능하며, 상통하고 또 항상 취소도 가능한 상태로 여러 집단에 널리 퍼져 있는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잘 보여준다. ... 좋은 집단의 기준은 ... "정말 다른 집단들에 열려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자신의 존재를 무의미나 사멸이나 파열의 가능성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하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개인도 그러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9-10쪽). 들뢰즈는 다시 새로운 집단적 주체성 탐구를 통해 가타리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1) 정치를 어떤 형태로 정신분석 이론과 실천에 도입하는가? (2) 정신분석을 어떻게 혁명가 집단 속에 도입할 것인가? (3) 정치 집단과 정신의학 및 정신분석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치료 집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정신분석'이란 프로이트-라캉이 강조하는 개인의 콜플렉스와 구조주의적 정신분석이 아니라, 앞에서 지적했던 집단적 정체성에 관한 정신분석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집단적 주체성은 어떻게 상정할 수 있을까? 가타리가 말하는 집단적 주체성의 특성은 '횡단성'이다. 좀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횡단성 개념은 "수직적 위계와 수평적 칸막이를 깨려는 문제의식(들뢰즈의 표현대로 하자면, 경계를 가로지르는'유목적' 방식)에서 출발한다"(482쪽).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가시 달린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 몸을 밀착시키는 방식을 익힌다는 우화를 생각하면 된다. 밀착과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춥지도 가시에 찔리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는 고슴도치의 우화는 횡단성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