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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화백은 가장 오래 된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즐겨 읽었던 만화 주인공으로 아직도 기억하는 캐릭터가 추동성의 장구박사이다. 내용은 대부분 잊었지만, 짱구박사와 아들 짱짱이의 모험에 빠져들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또한 대학시절 일간스포츠를 통해서 대했던 수호지와 임꺽정 등의 매력은 아직도 청춘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이제 원하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여건이 내게 갖춰졌다. 일지매,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에 이어 임꺽정을 선택하려고 한다.
비록 짱구박사와 짱짱이는 아니더라도 추동성이 꿈꾸던 세계를 고우영의 필력으로 펼쳐지는 환상을 통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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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저급하다고 여겨졌다. 아이들이나 보는 혹은 부모들이 아이들조차도 못보게 할만큼 유치하다는 인식이 꽤 오래 퍼져있었다. 만화가 성인들도 즐기는 매체가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데, 성인들의 매체로 인식시킨 그 선두에는 만화가 고 고우영의 작품이 존재한다. 그는 역사물이나 중국 고전을 소재로 한 풍자와 해학 넘치는 작품으로 성인남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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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고우영이 1972년 1월부터 스포츠 신문에 연재한 작품인데, 이 즈음 만화는 스포츠 일간지 연재 후 완성작 출간이라는 방식이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에는 웹을 통해 만화가 연재되고, 한권이 완성되면 출판되고 다시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고 활용되고 있다. 다른 쟝르로 각색될만큼 만화 작품들이 재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에 이른 것이다. 나만 해도 '미생'같은 만화를 감탄하면서 볼만큼 여성, 젊은층들로까지 독자층이 넓어진 것을 보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고우영의 '임꺽정'을 통해서 지난 40년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이 변했는지를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임꺽정'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치부한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임꺽정이 임금에 대해서는 칼날을 겨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왕족을 보자 공손하게 절을 하는 것도 그렇고, 왕을 섬기는 태도를 보면 그의 원망은 조선왕조를 겨낭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는 윤원형과 이량일가, 탐관오리나 고리대금업자가 왕의 혜안과 지혜를 가리며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이 탄생한 72년의 시대상을 짚고 넘어가게 만든다. '임꺽정'이 연재된 72년은 유신이 선포된 바로 그 해이다. 유신무렵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크게 제한을 받았을 뿐더러 서슬 퍼렇던 독재정권하에서 왕에게 저항하는 반역의 내용으로 전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72년 당시의 시대상황과 사회분위기, 역사 인식이 맞물려 탄생한 '임꺽정'이었던 것인데, 그런만큼 요즘 기준으로 '임꺽정'을 보자면 진부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지난 40년동안 우리가 이루어낸 사회 변화, 좁혀서 말하면 만화의 표현과 내용에서 수준이 높아진 것을 보면 실로 대단하다는 결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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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결말에 가까와질수록 책을 덮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다. 그의 말로를 알기에, 그의 처참한 최후를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한다. 그럼에도 참고 끝까지 독파했던 것은 임꺽정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비장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그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백성들에게 재물을 나눠줄 수 밖에 없는 권력의 부패와 힘겨운 백성의 삶을 상기하게 하는 비장미를 보여주고, 그 대목에서 '임꺽정'의 주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꺽정'의 결말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처절하게 맞서 싸우다 관군에게 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자웅을 겨룰만큼 출중한 무예실력을 지니고 그의 동지를 여럿 죽인 윤원빈과 일대일로 싸운 뒤 붙잡히기 때문이다. 아쉬웠다. 임꺽정의 마지막 체포과정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인줄 알면서도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굴하지 않는 임꺽정이기를 기대했는데..마무리가 약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비장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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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고우영 작품 중에서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작품을 택한 이유는 작가 고우영때문이라는 것이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고우영은 그 이름 석자만으로 독자를 부를 수 있는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됐던 72년 당시에는 아직 고우영의 전성시대가 열리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렇지만 그가 명성을 얻게 되는 데에는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임꺽정'은 고우영표 만화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유머스럽게 풀어가고 해석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고우영의 만화는 만개할 수 있었다. 반금련이나 무대같은 캐릭터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만큼 고우영 만화에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많았다. 고우영은 한국 만화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면서 만화가 대중과 가까와지게 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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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고우영> 화백과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까? 그와 동시대를 살았으면서도 그가 이 땅에서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깨달은 아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소연을 하기에 앞서 그가 남기고 간 작품을 더 많이 음미하고픈 마음이 더 앞설 뿐이다. 아직까지는...
임꺽정에 대한 민중들의 이미지는 <의적>이며, 정부에 대한 관점은 <역적>이고, 기득권층의 이미지는 <강도>일 뿐이다. 이렇게 각각의 처지에 따라 다른 <임꺽정>에 대한 고우영 화백의 이미지는 이 땅의 민중들과 같다.
그렇다면 임꺽정은 누구인가? 누구길래 <의적>이라고 칭하는가?
조선 명종 때. 아직 어린 왕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던 시기다. 정확히 말하면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 즉 파평 윤씨가 떵떵거리며 살던 시기다. 고우영 화백은 이 시기를 조선 후기 순종, 헌종, 철종 때 <세도정치 시기>와 비슷하게 그렸지만, 세세히 설명하자면, 을사사화로 대윤(윤임)이 실각하고 소윤(윤원형)이 득세한 뒤 대윤세력이 반격을 하는 <당파싸움>이 점점 본격화하는 시기이다. 엎어치나 메치나 당시 백성들에겐 매한가지.
임꺽정은 이 때 천한 백정으로 태어나 조선의 부패한 무리들을 들었다 놓은 <거물>이었다. 당시엔 신분제도가 절대적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인물 중의 인물>이었으나 조정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수많은 인적, 물적 낭비를 한 뒤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만약 힘이 장사요, 천성이 어질며, 임금에게 충심인 그를 제대로 써먹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마 근위대장으로 뽑아 놓았으면 어린 명종을 도와 당파세력들에게 일갈로 벌벌 떨게 하는...그래서 이놈, 저놈으로 나뉘어 다툼만 일삼다 결국 왜란을 당하는 무력한 조선이 아닌 감히 오랑캐가 넘보지 못하는 강국이 되지 않았을까?
고우영 화백은 <임꺽정>을 다시 단행본으로 내며 <복원>에만 충실했던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만약 70년대 <임꺽정>이 아닌 새천년 <임꺽정>이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또 황해도 구월산에 산채를 마련한 임꺽정의 정확한 표준어 구사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이것이 <검열>을 거치지 않고 고우영 화백의 원안대로 쓰여질 수 있었다면 이 책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런 저런 아쉬움에도 그의 <임꺽정>은 내 마음 속에서 펄펄 살아 움직였다. 마치 <임꺽정>이 내 두령이기라도 한 듯이...그리고 이런 작품을 뒤늦게 읽었단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 이 슬픔이 <임꺽정>때문인지, <고우영> 화백 때문인지...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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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방영되었던 미드 스파르타커스는 로마시대의 노예 검투사가 민중혁명을 이끌다가 실패를 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비극이었다. 한국에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임꺽정이다. 백정 출신인 그는 16세기에 황해도와 경기도를 근거로하여, 부패한 조선의 탐관오리에 항거하여 빈민들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관군에게 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어쩜 시대가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과 결말이 똑같이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아뭏든 이 역사적인 인물을 조명한 이가 여러명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과 바로 이 책, 고우영의 임꺽정이 가장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한다. 원래 이 작품은 1972년도에 일간스포츠에 매일 연재되던 만화였으며 시대에 맞춰서 복간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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