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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시대의 중심(?), 초국적 기업을 파해친다
"세계화시대의 중심(?), 초국적 기업을 파해친다" 내용보기
'세계화'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이러한 세계화의 '본좌'(?)라 할만한 '초국적 기업'이라는 단어도 정의내리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몇 국가 이상에서나 기능을 해야 '초국적'일까? 그 국가에서의 활동정도는 어느정도 이상이 되어야 '초국적'인 것일까? 저자는 이처럼 모호한 의미를 가진 '초국적 기업'을 정의내리는 것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초국적 기업이
"세계화시대의 중심(?), 초국적 기업을 파해친다" 내용보기
'세계화'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이러한 세계화의 '본좌'(?)라 할만한 '초국적 기업'이라는 단어도 정의내리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몇 국가 이상에서나 기능을 해야 '초국적'일까? 그 국가에서의 활동정도는 어느정도 이상이 되어야 '초국적'인 것일까? 저자는 이처럼 모호한 의미를 가진 '초국적 기업'을 정의내리는 것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초국적 기업이란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본국의 기반을 바탕으로 자본 축적을 세계적 규모에서 수행하며, 이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과 조직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아마 이러한 정의에 대해 크게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1장에서는 마치 정치경제학의 기초이론을 설명하려는 듯, 세세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초국적 기업의 발전과정을 설명한다. 2장에서는 초국적 기업의 행태(기업 내부거래나 초국적 기업의 금융화 등등등)와 초국적 기업의 또다른 구성원이라 할만한 노동자들의 '바닥으로의 경쟁'(이는 선진국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을 서술하고 있다. 3장에서는-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인데-초국적 기업과 국민국가와의 관계를 다루며, '세계화'시대에 국민국가는 단순히 축소되거나 복구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착취형태(?)로서 탈바꿈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을 한다. 4장에서는 세계기구가 어떻게 초국적 기업에 복무하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고('다자간투자협정'의 내용은 다시봐도 경악스럽다) 5장에서는 그러한 초국적 기업에 대한 '초국적 저항'을 논하고 있다.

내심 불만스러웠던 것은 5장이었다. 애초 '초국적 저항'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것의 '승리'라고 말해지는 조그마한 성과라는 것이, 초국적기업의 지금까지의 행태에 비하자면 민망할 정도로 보잘것 없을 정도(?)로 보이는게 솔직한 심정이었고, 아울러 오늘의 시대에 대한 대안이라는 것 또한 이런저런 결함을 안고있음에도 저자는 그에 대한 지적만 할 뿐 별다른 대안은 내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저 구체적인 언급없이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말을 빌어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할 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러한 나의 불만이 오히려 더욱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보면 미래에 대한 모든 기획이란 불완전한 인간의 산물이다. 어떠한 진보적 기획도 완벽한 적은 없었고, 그러한 불완전한 기획 속에서 인간은 진보하고 발전해 왔던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지나친 지적, 동적 결벽증은 사실상 우리의 현실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심지어 종종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게으름에 대한 괜찮은 변명꺼리로 구실해온 것도 사실이지 않던가. 물론 그렇다고 이론이나 기획, 그리고 그에 대한 고민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실천'이라는 것이다. 완벽한 기획에 대한 요구는 어찌보면 일종의 '노예근성'은 아닐까? 따지고보면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같은 지난 시대의 전체주의적인 야만도 근대성이라는 '완벽한' 기획에의 요구와 그에 대한 충실한 복무 속에서 싹튼 것 아니던가? 결국 행동하며 고민하고, 그리하여 만들어진 '대안'을 '실천'하며 다시 그 대안을 보완하는 대안과 실천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대안과 실천을 위해서는 우선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함이 자명할 것이고 이러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고찰하며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본서는 분명-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탁월하다. 본서의 문제제기와 고찰이 독자로 하여금 다소간의 답답함과 실천적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답답함과 공허함은-역설적이게도-현실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j***8 2006.07.0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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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 그러나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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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에 대한 정의로부터 말문을 틉니다. 흔히 말하는 '다국적(多國籍) ' 기업이라는 용어는 국적이 여럿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s)'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저자가 고안해낸 정의가 아니라 1978년부터 이미 사용되던 것입니다. 초국적기업이라 함은 '한 국가의 관심 등을 초월하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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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로부터 말문을 틉니다. 흔히 말하는 '다국적(多國籍) ' 기업이라는 용어는 국적이 여럿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s)'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저자가 고안해낸 정의가 아니라 1978년부터 이미 사용되던 것입니다. 초국적기업이라 함은 '한 국가의 관심 등을 초월하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책의 앞 부분은 마치 마르크스 자본론 1권의 <상품과 화폐>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편을 압축해 놓은 듯합니다.. "교환 과정에서 이윤이 나오지 않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에서도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력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 자본가는 노동자의 재생산을 넘어서는 노동을 노동자에게 강요할 수 있다. 결국 이윤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노동을 하는 잉여 노동에서 발생한다.(p.32)" . 그런 다음 자본의 순환과 축적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모든 것이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함인데, 그리하여 정의한 '초국적기업'이란,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본국의 기반을 바탕으로 자본 축적을 세계적 규모에서 수행하며, 이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과 조직을 갖고 있는 기업(p.41)"입니다.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린 뒤, 저자는 초국적기업과 국민국가, 초국적 기구가 세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를 확대해갑니다. 요컨데, 초국적기업의 세계적통제가 세계적인 저항을 만나 정당상을 상실하고 있으며 반세계화 운동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획기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의 그의 주장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한 적도 있지만, 토마스 프리드만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저자는 세계화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세계화의 부벙적인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이 주장과는 반대로,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의 저자 장시복은 "아직까지 초국적기업에 목부하는 세계적 통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충분하지 않"지만 "현재의 반세계화 운동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결실을 일구어 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달리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에른스트 블로흐의 다음 말을 인용하며 그의 바람을 대신합니다.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합니다.
n******8 2004.08.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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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연대의 의미와 바람직한 세계에 대한 대안을 들려줄 책 |
"노동 연대의 의미와 바람직한 세계에 대한 대안을 들려줄 책 |" 내용보기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체』(장시복, 책세상, 2004)라는 제목의 책을 사왔습니다. 김민수의 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를 구하러 요 며칠 동네책방을 들락거리다 들고 나온 책입니다. 김민수 산문집은 네이버 블로거 전전석님의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꼭 한 번 읽어보겠노라고 말씀드린 터라 궁금증과 약속을 풀어놓으려고 했던 것이었죠. 하지
"노동 연대의 의미와 바람직한 세계에 대한 대안을 들려줄 책 |" 내용보기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체』(장시복, 책세상, 2004)라는 제목의 책을 사왔습니다. 김민수의 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를 구하러 요 며칠 동네책방을 들락거리다 들고 나온 책입니다. 김민수 산문집은 네이버 블로거 전전석님의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꼭 한 번 읽어보겠노라고 말씀드린 터라 궁금증과 약속을 풀어놓으려고 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여태 그 책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쉬운 마음을 글로 달랩니다.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걸 기대하면서 말이죠. 전 구태여 콕 찍어놓고 책을 사러 가는 축은 못됩니다. 읽고 싶은 책제목을 기억하고 가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아서 언제든 마음에 맞는 책을 만나면 그 책을 우선 들고 나옵니다. 그런 버릇이 든 건 어느 책은 몇 줄 읽다보면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선뜻 내키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렇지 않아도 이것저것 눈에 들어오는 책을 친절한 책방주인이 마련해 놓은 푹신한 의자에 푹 눌러앉아 토로록 읽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어젠 조금 다른 경우가 되겠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그 책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러 들어갔다 두 시간이 지나도록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지 못했고, 급기야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쭈뼛쭈뼛 다시 진열장에 다가가다 순간 눈에 꽂힌 책이어서 더더욱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장을 읽고는 표지 앞뒤를 쓰다듬어줬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얻었을 때 주로 하는, 사실 별스러울 것 없는 또 다른 버릇입니다. 그런 동작을 하게 된 것은 물론 제게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놓여있는 ‘세계화’를 그 책이 친절히 풀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주제의 책을 수 십 권 읽고도 그것이 제 말과 글로 정리되지 않은 ‘현실적인 화두’였고 보니, 이 책이 모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어느 때보다 크게 갖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책 속엔 한눈에 눈길을 잡아끈 장이 있었는데, 사실 그것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최종적인 동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5장 초국적 기업, 저항을 만나다」가 그것입니다. 제5장엔 반세계화 운동과 다른 세계에 대한 대안들이 속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애틀 승리를 기점으로 보다 강화되고 있는 노동 연대의 의미와 방향을 진단하고 그 연대가 이뤄가는 바람직한 세계의 내용과 형식을 실질적 관점에서 천착해 들어간 저자의 노고가 이 책을 해당 분야의 특출한 책의 범주에 놓기에 손색이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용어, ‘초국적 기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과 동 기업의 세계적 확산과 통제방식에 관한 세밀한 고찰은 현 시대의 일종의 신드롬과도 같은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도구적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만한 책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문고판으로 나오느라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보니 보다 깊은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아쉬움이 이 책의 긍정적인 영향을 급격히 상쇄해가지는 않습니다. 동종의 책 내용을 기억 속에서 꺼내 함께 읽어가면서 찬찬히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식적 파문과 마주하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k*****9 2004.05.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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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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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무관심한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답답하다.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과연 세계화 시대에 ''초국적''이란 말이 적당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자본에 국경이 없다는 말도 있다. 과연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물을 때 학생들의 반응 뜨거웠다. 왜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다국적''보다는 ''초국적''이 장시복이 글을 전개하고자 하는데 더 나은 표현인 모양
"시장이 권력이다." 내용보기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이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답답하다.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과연 세계화 시대에 ''초국적''이란 말이 적당한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자본에 국경이 없다는 말도 있다. 과연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물을 때 학생들의 반응 뜨거웠다. 왜 삼성이 초국적 기업인가? ''다국적''보다는 ''초국적''이 장시복이 글을 전개하고자 하는데 더 나은 표현인 모양이다. 초국적 기업을 이렇게 말하면 ''본국의 기반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자본 축적을 하는 기업. 이런 말에 나는 동의하고 싶다. 삼성, 엘지, 에스케이가 본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자본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그 자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중 일부이다. 장시복은 이런 말도 한다. ''Made in Korea'' 보다 Made in Samsung''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정도로 우리가 목격하는 많은 상품들이 전 세계 초국적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삼성뿐이겠는가? 코카콜라, 하이네켄 맥주, 노키아 휴대전화. 이들 모두가 초국적기업군들이다. 더 많다. 이들은 몸집 불리기고 잘 한다. 합병과 인수는 초국적기업이 잘하는 몸집불리기의 한 방법이다. 1999년에는 국제 인수 합병 금액이 720억달러라 한다. 금융 분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아이엠에프 이후 많은 은행들이 외국계 은행에 헐 값으로 팔렸다. 금융은 사실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 이윤은 생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있다. "꿀벌통에서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꿀이 없을 때 벌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과 똑 같이 (화폐) 자본도 떼를 지어 이동한다. 그 중 일부는 새로운 집을 찾아 날아가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결과가 올까? 뻔한 것이다. 꿀벌을 생산할 집이 없어지면 다 죽는다. 망하는 것밖에 더 무엇있는가? 노무현대통령이 얼마나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말의 의미가 다양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초국적기업은 ''국가''보다 정보, 권력이 더 낫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들 기업에 예속하고 있다. 과연 대안은 있는가? 지역으로 돌아가자, 자율주의, 국제케인즈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세상을 바꾸자, 지역으로 돌아가자! 희망은 있는가? 헛된 선언이 아니라 이제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할 시기이다.
k****e 2006.09.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