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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권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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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철학은 너무나 졸리운  것이고, 내게 종교는 너무 편협된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인류 역사상 아마도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분들이지만, 사실 그분들의 생애와 그분들이 전한 말씀,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믿고 있었다. 인류의 위대한 세 스승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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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철학은 너무나 졸리운  것이고, 내게 종교는 너무 편협된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인류 역사상 아마도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분들이지만, 사실 그분들의 생애와 그분들이 전한 말씀,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믿고 있었다. 인류의 위대한 세 스승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를 함께 묶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오랜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서로 가까운 역사 속에서 살아간 위대한 성인 세 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한꺼번에 같은 차원에 두고 이야기한다.

 

역사속의 그들, 종교속의 그들, 철학 속의 그들을 같은 주제 하에서 만난다.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된 방법, 그들이 살고 죽은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유년기,  성 문제와 배우자 및 가족관계, 그들의 인격과 개성, 죽음을 맞이한 방법과 태도, 가르침의 방법 등 인간으로서의 세 성인이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이라는 주제로 2부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를 몇 가지 주제로 묶여 보여진다.

 

우선, 가장 궁금할 내용 첫번째, 이 책은 종교적 영역과 논쟁을 떠나 있다. 책의 저자는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특정 종교에 대해 편향적인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다. 1부는 성인들의 인간적인 관점과 역사와 기록 속의 그들에 대해 다루지만, 신적 영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그 분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볼 때 공통점이 많다. 가장 큰 특이성은 누구 하나도 직접 글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실재로 존재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훨씬 부족하므로 학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그들은 존재했었다고 받아들여진다. 붓다는 2500년 경 북부 인도에서,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2300년 전 아테네에서, 에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그들의 기록은 말로 구전되다가 제자들에 의하여 글로 옮겨졌는데, 소크라테스의 경우 사후 몇 년 뒤의 일이었고, 예수의 경우엔 사후 수십년 뒤, 붓다의 경우 사후 수백년 뒤에서야 그들의 말씀이 글로 옮겨졌다. 그 기록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더 퍼지고 방대해졌다.

 

그들은 많은 사람과 만나고 다니면서 직접 구두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테네에 머물렀던 소크라테스 역시 시장과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말을 하였다. 그의 대화는 아이를 낳듯 논리와 진리를 낳는 과정이라고 해서 산파술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아늑하고 안정된 집을, 싯다르타의 경우 세손이라는 권력조차 버리고, 모든 것을 탈탈 털어버린 채 고행의 길을 자처하였다.

 

그들의 성 문제도 약간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나, 여자와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미소년인 알키비아데스에 빠져있었지만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왕가의 세손이었던 출가 전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둔 상태였으며, 난교도 서슴치 않은 채, 흘러넘치는 풍요와 육체적 쾌락의 극치 속에서 살았다. 예수의 경우는 독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 1945년에 발견된, 4세기 경에 쓰여진 외경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정부였다는 대목이 나오고, <다빈치 코드>에서도 이를 인용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지만, 저자는 논쟁을 피하고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역시 비슷했다. 붓다는 길고 긴 생애동안 수없이 많은 장소를 걸어다니며 불법을 설파하다가, 마지막 순간 열반에 들었지만,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당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초연하게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받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시민법정에 섰지만, 배심원들을 향해 비굴하게 선처를 호소하는 대신 일장 연설을 함으로써 그들을 자극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한달 동안 격리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크리톤이 도망가자고 권유하지만 거절하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며 초연하게 독배를 마셨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복음 사가들은 예수가 정치적 이유라기 보다는 대사제들을 모욕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본다. 그들 모두 죽음이 닥쳐도 자신들이 가르친 바를 저버리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죽음을 대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오래도록 면면히 흐르며 인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붓다는 의식을 잃고 열반에 들기 전 "굴레에 갇힌 모든 것들은 소멸되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이 45년 동안 설파한 전법륜을 요악하는 말을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독특하다. 독배를 마신 후 자리에 누워 얼굴에 천을 덮고 온기가 빠져나가 죽음을 맞던 중 갑자기 얼굴에 손을 가져가 덮은 천을 들어 올리더니 크리톤에게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마리를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라고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으로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는데, 이 말에 매료된 철학자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료 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풀이했다. 소크라테스다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릅니다" 였다. 세 성인은 모두 공통적으로 무지를 악의 근원으로 보았고, 끊임없이 앎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이해하기 쉽게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사상에 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는 책이다.  시대적 배경과 문헌 들의 내용, 종교로서 혹은 철학으로서 발전하기 까지의 과정과 여러 갈래의 주장들이 갈라졌다 통합되면서, 어떤 것은 이단이 되고, 또 어떤 것은 유일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 또한 흥미로왔다.  


*알라딘 2014년 8월 이달의 당선작 


g******1 2014.07.24. 신고 공감 8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정신적 삶을 위한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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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책을 몇권 읽어보았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종교학자이지만 교의적으로 종교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태도와 종교를 기술하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종교는 주로 교리적으로 그 종교적 범주안에서 통용되는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여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주로 친절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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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책을 몇권 읽어보았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종교학자이지만 교의적으로 종교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태도와 종교를 기술하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종교는 주로 교리적으로 그 종교적 범주안에서 통용되는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여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주로 친절하지 않거나 아예 배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상당히 친절하며 인문학적이다. 이 말은 종교를 인문학으로 희석해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당히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비종교권에 있는 사람들도 종교적 교의를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진술방식은 신선했고 상호이해적이였다.

 

저자의 책중에 가장 먼저 접하고 가장 인상적인 책은 <그리스도 철학자>였다.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 교의를 진리로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교의를 어떻게 무리없이 인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이러한 것은 변증이라고도 한다-고민하였다. 그러던 와중 저자의 <그리스도 철학자>를 읽고 상당히 만족하였다. 철저히 검증된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에 접근하면서도 기독교 교의를 더욱더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은 복음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보통 종교학자들이 기독교 교의에 접근할 때는 예수의 생애에 가장 근접한 1차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각색하기도 한다. 그러한 책중의 한권이 최근에 나온 레자 아슬란의 <젤롯>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합리적이며 지식적이지만 결론은 결국 1차 자료가 아닌 본인의 추론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종류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고 바트 어만 같은 저자는 아예 복음서의 내용을 부정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저자 프레데릭 르느와르의 종교적 저술에 상당히 신뢰감을 얻는다. 그의 진술방식와 자료를 선별하는 방식은 철저히 검증된 것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왜곡될수 있는 자료들은 과감하게 버린다. 이러한 태도에 신뢰가 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른 모든 책들도 상당히 신뢰감을 주는 책들이였다. 이 책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출간된 것을 보고 읽어보고 싶은 매력을 느꼈다. 이 책 또한 이전 저술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고 종교적 거두로 인정받는 이 세사람을 그들의 실존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 나아갔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 세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 세사람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나 것인지 1부, 2부를 통해서 천천히 그리고 설득력있게 조근조근 들려준다.

 

먼저 그는 서문을 통해서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지를 설파한다. 현대사회는 소비의 사회로 졍제적인 가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 좋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라고 말한다. 천박해진 사회, 참된 인간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성찰이 없는 위기의 사회에 이 세사람을 소환해내어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메시지를 들으며 다시한번 참된 인간과 삶과 행복에 대해서 묻고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실존에서부터 생애, 그리고 죽음까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이용해서 학자들에게 상당히 합의가 이루어진 내용들을 기초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1부를 통해서 종교적 인물로 승화된 이 세사람에 대한 믿을만한 지식을 얻게된다. 이 세사람에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기록을 남기지 않앗다는 것과 권력에 초연했다는 것, 그리고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세사람 중에서 예수에 대해서는 기존학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예수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전작 <그리스도 철학자>에서 읽고 느꼈던 뉘앙스를 인지할 수 있었다. 2부는 그들의 가르침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을 불멸,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키워드로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설명하면서 그 차이점을 드러내지만 통합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상당히 포괄적인 저자의 저술 방식처럼 이 책에서도 저자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세사람의 포괄적인 메시지를 포착해 내어서 현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인간의 삶인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그야말고 경제적 가치가 최고이고 소비의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 이 시대에 다시한번 정신적인 삶, 그리고 의미있는 삶,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적어도 한번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에서 모든 성인들이 고민한 것들은 나도 고민하면서 이러한 것이 참된 인간적 삶의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저자가 말한 모든 진술들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시한번 인간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고민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저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학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가 예수와 성경에 대해서 보는 시각은 교의적 느낌을 배제했지만 합리적 언어로 교의의 큰 그림을 그려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저술 방식에서 내가 믿는 진실에 대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며 변증하며 세속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배웠다. 정말 저자의 책들은 나에게 모두 읽어볼만한 책이고 유익한 책들이였다.

 

지구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리저리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하나는 상업적이며 물질적인 가치관,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광신과 교조주의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흐름은 세계를 혼돈으로 만들어, 인간을 ‘소유’의 논리에 묶어 놓고 어린애 다루듯 자신의 지배를 따르게 한다. 나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책임 의식을 갖춰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골드 f****1 2014.07.30.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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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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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사는가에 대한 삶의 스승 3인이 답하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이라는 표지의 말이 내게 참 와닿는다. 살면서 이런 의문을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져보지 않을까.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내게 많은 답을 주리라 기대하면서 책을 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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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사는가에 대한 삶의 스승 3인이 답하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이라는 표지의 말이 내게 참 와닿는다.
살면서 이런 의문을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져보지 않을까.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내게 많은 답을 주리라 기대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직설적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이들이 직접 남긴 글은 없기에 우리는 이렇게 책을 통해 그분들의 가르침을 만날 수 밖에 없다.
세 분의 삶을 알아보고 전기로 엮은 것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어서 이런 면도 있었구나 싶었고
인간적인 면도 느껴졌다.
이들이 엄청난 권력자라기 보다 평범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후대에 비로소 이들의 위대함이 알려진 셈이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붓다의 어린시절과 예수는 결혼을 했을까?하는 답을 읽으면서 이런 면이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예수의 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붓다와 예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렇게 영적 스승이 되었을까도 밝히고 있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이겠지만 다른 면으로는 때가 되어서가 아닐까.
불교 경전의 내용으로 보자면 붓다는 모든 감정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문헌상으로도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할 뿐 감정 상태에 대한 묘사는 없다고 하는데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들은 부와 명예를 멀리하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 살아온 이들의 존재가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메세지를 전한다.
이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지혜인 것 같다.
그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 같다.
세분의 이야기를 듣고 비교해볼 수 있었고 인간적인 면도 알 수 있었고
우리가 살면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꺼번에 세 분의 가르침과 삶,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전했는지 비교해가면서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가르침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면을 알 수 있었다.
한 번에 방대한 양을 다루다 보니 어떤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적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핵심을 요약해서 보기 편한 면도 있었다.
살면서 옳고 그름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면서 더 큰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래본다.
s*******5 2014.08.1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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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인류 삶의 스승들을 한권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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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예수,붓다]    제목만큼 우리인류의 스승이자 삶의 노선을 만들어준 존재 "소크라테스_예수_붓다"를 이 한권에서 만났다. 그들의 삶,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려는 그들의 메시지들, 방대하고도 신비롭고 미스테리하면서 더욱 궁금해지며 알고싶어지는 "소크라테스_예수_붓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르누아르는 세계적인 종교학자 답게 다양한 이들이 거부감을 덜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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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예수,붓다] 

 

제목만큼 우리인류의 스승이자 삶의 노선을 만들어준 존재 "소크라테스_예수_붓다"를 이 한권에서 만났다.

그들의 삶,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려는 그들의 메시지들,

방대하고도 신비롭고 미스테리하면서 더욱 궁금해지며 알고싶어지는 "소크라테스_예수_붓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르누아르는 세계적인 종교학자 답게 다양한 이들이 거부감을 덜 갖도록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딱딱하지않은 서술로 독자들을 흡입한다.

내용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 삶의길라잡이 스승이라고할 수 있는 세사람의 전기를 서로 엮어서 소개

후반부- 주제별로 크게 다섯개의 장으로 나뉘어 세스승이 전하는 가르침의 핵심들을 전달한다.

 

 

 

[소크라테스,예수,붓다]  는 한번 읽고 잊혀질 그런 책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음미할 정말 깊이 있는 책인듯하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낯설게 다가오는 철학과 멀게만 느껴지던 기독교에 대하여 흥미로움을 갖게 되면서 좀더 알고싶고 또 사유하고 싶어졌다.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예수와 붓다에 대하여  삶의스승들이 말하고자 하는 삶과 존재는 무엇인가?

나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장까지 덮을 땐 저자가 정말 부러웠다.

살면서  [소크라테스,예수,붓다] 인생의 스승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그들의 이야기, 역사와다양한 연구들을 풍성하게 접할 수 있는 그삶이..  물론 이 책을통해 나역시 조금은 다가가는 좋은 기회를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그리고 다가올 내일과 미래, 만나보고 싶다 계속,,쭈욱,,

진리와 사랑, 삶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예수의 사랑, 그리고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의 문으로 인도할 붓다의 이야기들 모두,,

아마 두번째, 세번째 읽을때마다 새롭게 느껴질듯한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YES마니아 : 로얄 r******4 2014.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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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답하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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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크리즈'는 '결정', '판단'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좀 더 살펴보면 '전환점, '결정의 시기'라는 뜻도 들어 있다"(8).    사춘기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제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올인하며 내일을, 미래를 설계하기에 바빴던 친구들이 그렇게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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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크리즈'는 '결정', '판단'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좀 더 살펴보면 '전환점, '결정의 시기'라는 뜻도 들어 있다"(8).
  
사춘기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면 지금 제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올인하며 내일을, 미래를 설계하기에 바빴던 친구들이 그렇게 일찍, 그렇게 느닷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친구가 죽었다고.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오니 친구가 죽었다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생의 덧없음을 가르쳐주었고, 이렇게 허무한 것이 세상이라면 도대체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목표가 사라져버린 내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뜨겁게 던져졌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철학자이면서 종교사학자인 프랑스의 대표 지성이 우리 앞에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이때가 바로 또하나의 기회하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온 마음과 영혼과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삶의 위기가 바로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것을 물어야 할 때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생활양식은 소유하고 축적하며 물건을 끊임없이 신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 '더 많이 갖는 것이 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경제의 의미, 돈의 가치 그리고 사회적 평등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10).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삶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의 내밀하고 치열한 구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라는 3인의 스승으로부터 답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저자 자신이 그 답을 얻어가는 과정을 고백적으로 기록했다면 훨씬 흥미진진한 책이 될 뻔 했는데, 이 책은 그 3인의 스승을 심층 분석한 '자료'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저자는 학문적인 객관성을 담보로 어떠한 오해나 편견 없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먼저는, 3인의 스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파헤치며, 2부에서는 3인의 스승이 가르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탐구합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행적과 가르침이 잘 정리된 노트처럼 정리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3인의 스승을 비교 분석한 지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차이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참 많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면,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직접 글을 남기지 않고 산 교육의 방식, 즉 모두 '삶'으로 가르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자가 전 지구적인 위기를 맞은 지금 이 3인의 스승이 우리에게 어떤 답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도 이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삶으로, 전 존재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진정성이 풍기며 그 말과 행동이 오롯이 진리를 구하기 때문이다"(147).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비교분석한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예수와 붓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오히려 신에 가깝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신이라고 하면서도 묘사된 그의 모습은 대단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묘사할 때는 흐트러짐 하나 없고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초인 같다. 반대로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신이자 인간인 신비한 존재라고 말하면서 복음서에서 그를 묘사할 때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슬픔, 기쁨, 낙심, 격정, 연민,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간 말이다. 종종 눈물도 보인다. 놀라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120). 냉철한 지성을 자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신의 신탁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연구하고 말하는 학자들이 그에게서 이런 점을 거세해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공통점 중에서는 세 사람 다 먹기를 즐기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음식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것. 달리 말해 그것은 세상에 충실할 때는 충실하고 세상과 거리를 둘 때는 온전히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을 말한다"(141).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모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았고, 세상에 균열을 내는 선구자였습니다. 어느 시대이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자는 제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제거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재판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곤 처형당했다(179).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3인의 스승을 가르는 결정적인 행적 중에 하나는, "붓다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죽음에서 모든 것이 끝났"(206)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 스승의 부활을 믿는, 유일한 영적 스승이요, 현자요, 한 종교의 창시자인 셈이다. 실제로 살았던 피와 살을 가진 영적 스승이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209). 예수의 부활은 증인이 목격담을 전한 사실로서, 그 사실을 믿고 안 믿고는 온전히 개인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371).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통해 무지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 윤회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했고,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증언함으로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려 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진리를 알기 바랬는데, 소크라테스와 붓다는 인간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깨달으려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면, 예수는 그 자신이 진리이고, 진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부터 즉, 계시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우리가 진리를 알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른 행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한데, 소크라테스에게 최상의 덕은 "정의"이며, 붓다에겐 "자비", 예수에겐 "사랑"이었습니다(321).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왜 사랑보다 정의를 더 최고의 덕으로 꼽았는지, 붓다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습니다. 세 사람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3인의 스승이 무소유나 또는 공동소유의 삶을 살며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했던 것도 삶이란 "소유보다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책임 의식을 갖춰 나가는 것"(17)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의미, 다시 말해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 지독하게 고민했던 문제이고, 길을 찾았다 싶은 순간에도, 또 답을 얻었다 싶은 순간에도, 어쩌면 삶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사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3인의 스승 가운데 예수에게서 저는 그 답을 찾았고,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답을 얻지 못해 초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길 위에 서서 오늘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직접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더 치열한 싸움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입니다.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사의 각오로 덤벼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요동치는 대로 떠다닐 테니까요.

 

 

 

 

 

c***1 2014.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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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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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삶의 기준이 되는 멘토들 한 분씩은 가슴에 품고 살거라 생각한다. 그 멘토 중에는 성인聖人들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서 神이라 불리는 인물도 있을 수 있다. 유명한 사업가나 철학자의 인생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심양면으로 나를 키워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멘토로 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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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삶의 기준이 되는 멘토들 한 분씩은 가슴에 품고 살거라 생각한다. 그 멘토 중에는 성인聖人들도 있을 것이고, 종교에서 神이라 불리는 인물도 있을 수 있다. 유명한 사업가나 철학자의 인생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심양면으로 나를 키워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멘토로 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유명한 인물을 멘토로 뒀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멘토들이 살았던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분들이 살았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되돌아서서 내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면 힘든 고갯길을 넘어가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넘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다.

소크라테스SOCRATE, 예수J'ESUS, 붓다BOUDDHA,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인물들이 이 책 속에 들어가 있다. 한 분은 유명한 철학자이고, 두 분은 종교적 스승으로 불리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살았던 삶에 대해 반추해보고, 그 성찰을 통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를 생각해보는 책이 프랑스의 지성이자 철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의《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란 책이다.

이 책에서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실존 인물​인가? 란 명제로 우리에게 호기심 가득찬 질문을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위 성인들을 교과서나 책에서만 봐왔지, 실존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품지 않았기에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질문이 색다르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그들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대략적으로 소크라테스는 2,300년 전 아테네에서 살았고,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으며, 붓다는 2,500년 전 북부 인도에서 살았다는 짐작만 할 뿐 그들이 살았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사상이 제자들에 의해 전해지고, 널리 퍼졌기에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유추할 뿐이다. 아소카왕의 비석에 남긴 붓다의 가르침이나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르르 맹비난한 사실,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서기 1세기 말에 발표한『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를 언급한 점 등이 그들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유추를 바탕으로 그들의 유년기를 뒤돌아보고, 그들의 많은 사람들의 영적 스승이 되기까지의 삶과 그 과정을 프레데릭 르누아르라는 푸른 눈을 가진 철학자가 뒤쫓고 있었다.

윤리적이며 정신적인 삶에서 가장 으뜸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하는 본질적인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소크라테스에게 최상의 덕은 정의다. 그리고 붓다에겐 자비이며, 예수에겐 사랑이다.(본문 321쪽 中)

제목만 봐서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란 걱정이 든 책이었는데 막상 펼쳐서 읽어보니 소설은 아닌데 소설 같고, 인문학 같은데 어렵지 않으면서, 철학서 같은데 재미를 담고 있는 느낌을 받은 책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유익함을 포함한 책을 발견하기가 싶지 않는데 이렇게나마 읽게 돼니 나만 아는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현재의 삶이 힘들다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좌절과 고민도 오롯이 자신이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본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도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국엔 스스로 그 고통과 번뇌를 이겨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처럼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좌절과 고통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편할 거라고 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배울 점들을 찾아간다면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14.08.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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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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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성현에 대한 이야기를 프레데릭 르누아르를 통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오늘날까지도 그의 존재와 행적, 철학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연구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 도서를 읽어보면서 모든것이 새롭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3사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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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세계 3대 성현에 대한 이야기를 프레데릭 르누아르를 통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오늘날까지도 그의 존재와 행적, 철학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연구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 도서를 읽어보면서 모든것이 새롭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라고 하는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3사람 아니 사람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우리는 많이 듣고 그의 말을 따라 그와 같은 삶을 살고자 오늘도 노력하는 인류에게 있어 모범이 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고 예수와 붓다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행적은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와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모르는것이 없고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욕망에 기회가 허락대는 대로 교회와 절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나라에서 종교를 믿던 안 믿던 자유이기에..그리고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있기에 어느 한쪽에서는 그들의 삶과 행적을 부정하기도 하고 다른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간의 논쟁이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믿는 유일신이라고 해도 그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동일하다 하겠다. 나 자신을 먼저 찾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서 사람이 기본이 된 인본주의를 비롯해서 계급이 우선이 아닌 사람들간의 삶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것인가에 대한 기본을 제시해주고 마음의 행복이 곧 가족과 사회, 국가로 이어지는 큰 바탕에서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것이 아닐까?

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주위의 사물을 중시하기 보다는 마음의 안정과 비움으로서 채워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80여년이라는 세월중에서 젊었을때에는 한 국가의 왕자로서 국가의 계승자로서 더없는 물질적 행복을 느릴 수 있었던 그가 세상에서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깨달은 바를 불법으로 전파하여 만민이 불법의 가르침으로 하나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것은 아닐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뜻을 같이하여 붓다의 마음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찾아가기를 바랬던것을 아닐런지? 삶과 죽음이 덧없는 것이기에 삶에서 누리는 물질적 행복보다는 힘들지라도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떠나는 삶이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있을것이란 믿음을 세상의 모든 계층, 종족, 국가에 상관없이 전파하고 싶어했던 그의 삶에 대해 알려준다.

또 한가지는 그들의 존재가 신이 아니라는데 있다. 붓다는 큰 가르침을 명상을 통한 정화만이 우리 각자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였고, 예수 또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손수 체득하며 널리 전파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의 기본 심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기에 짜증도 낼 수 있고 욕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가 현실 세계에서 보여 주었던 것은 인간 모습에 담겨진 하나님의 모습속에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가 전파하려 했던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전파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3사람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실제적인 사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어지는 세 사람의 삶....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낸 붓다.

일찌기부터 못생기고 별 볼일없어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만의 설법으로 논쟁을 통해 그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고 자연의 진리를 알고자 했던 소크라테스..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람으로 인본주의의 근간을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수 붓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나 모습을 한 가지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플라톤을 비롯한 그의 제자와 친구들에 그의 언행이나 사건에 대한 것들이 조금씩 알려져 왔다는것이다. 그러기에 그렇게 전해오는 그들의 철학이나 그들의 행적이 참인지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사건들로만 가득차 보인다.

예수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체하면서 행하였던 그의 모든 행적이 복음서로 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고 그 복음서의 내용도 복음서를 전파한 사람들에 의해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것인지...실제로 그런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랭던의 다빈치코드나 임페르노에서도 추측이 난무한 사실이 실제인것처럼 가장되어 소설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면 너무나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온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소크라테스와 붓다의 행적에 비해 더 많은 의문을 던져주는 사람이 예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더 신비롭게 보여지는것은 아닐런지?

그렇지만 이들 3인의 성현들에 의해 오늘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종교인의 비율만 보더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붓다와 같은 자비로움과 하나님의 모습으로 다가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겠노라고 서약한 많은 종교인들을 비롯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살아왔던 방식을 오늘날의 삶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인본주의 철학을 널리 알린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야 말로 오늘날을 있게한 기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또 한가지는 그들의 존재가 신이 아니라는데 있다. 붓다는 큰 가르침을 명상을 통한 정화만이 우리 각자를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하였고, 예수 또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손수 체득하며 널리 전파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존재라고 한다. 이는 스스로 진리를 찾아 전통과 권위 그리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짓눌렸던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적 자유에 이르게 하였다. 이런 자유는 바로 진리를 통해 자신을 알고 스스로의 주인이 됨으로써 얻어짐을 3인의 성현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l*****7 2014.07.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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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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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 관한 책을 다수 읽었지만 한 권의 책에 3 사람을 함께 담은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이 책의 첫 질문은  '붓다, 소크라테스, 예수, 이들은 실존인물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로 나아가게 되었기에 과연 이들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종교적 인물이란 신적 이미지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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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 관한 책을 다수 읽었지만 한 권의 책에 3 사람을 함께 담은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이 책의 첫 질문은  '붓다, 소크라테스, 예수, 이들은 실존인물일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로 나아가게 되었기에 과연 이들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종교적 인물이란 신적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그를 추종하는 사람(제자)들에 의해서 스승들의 사상이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공통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글로 남기지 않았고, 사후에 그들의 제자나 추종자들이 쓴 글들을 통해서 그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쓴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어린 나이에 벌써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 '실존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후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으면서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고, 19세가 될 때에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등을 통해서 붓다를, '요한복음'을 읽으면서는 예수의 삶이나 사상을 접하게 된다.

이미 청소년기에 이렇게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를 '영적 휴머니즘의 창시자'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게 된다. 물론, 이밖에도 그 세 스승에 대한 많은 문헌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이야기나 메시지를 찾아내게 된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이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임을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세 사람의 전기를 서로 엮어서 살펴보게 되는데, 그 방법은 역사가의 관점에서 서술되게 된다.

수천 년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신적 스승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영적 메시지는 " 왜 사는가?"라는 물음인데, '김상용' 시인은  '왜 사냐 건  웃지요'라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말 속에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를 통해서 좀 더 깊이있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1부 :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3 스승의 전기를 서로 엮어서 샆펴본다.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기에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서로 대비시켜서 내용을 풀어간다.

2부 :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3 스승이 전하는 가르침의 핵심을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 진리, 자유, 정의, 사랑에 대한 5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이 책의 1부에서는 그들의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먼저 살펴본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표적인 책들 뿐만아니라 참고가 될 수 있는 책에서 그들의 행적을 찾아보게 된다.

우선 그들이 태어날 당시의 사회적 배경, 유년기, 결혼여부, 가족, 소명, 인격과 개성 등을 두루 두루 알아본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서로 다른 가정환경, 문화적 배경 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탄생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이 만든 질서에 반발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기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안락이나 안정보다 의지하는 것 없는 삶과 안주하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반어법, 변증법으로, 붓다는 설법으로, 예수는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로 많은 가르침을 전한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 후대의 평가까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그들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칙과 진리에 입각한 삶이었다.

요즘 세상을 떠들섞하게 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송에서 앵커가 한 말이 귀를 맴돈다. '원칙과 상식'이란 그 말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편법', '관행' , ' 특혜', '의혹'....

우리 사회를 바라보아야 하는 마음은 씁쓸하다. 그래서인지 지금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 여름 휴가 동안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책제목만 보면 어렵고 읽기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을 단 몇 페이지를 읽으면 싹 달아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다양한 곳에서 활동을 하였기에 박학다식한 지식을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기때문이다.

책의 1부에서 세 스승의 삶의 이야기를 읽었다면 2부에는 본격적으로 그들의 가르침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그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믿음에서 부터 내면의 삶을 계발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지혜와 정의, 사랑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주장은,

"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에 합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의 문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문제, 이런 것들이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 정수를 이룬다. " (p. 321)

그들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붓다는 '자비'를,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말한다.

그들은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 우리들의 삶은 그들의 가르침에서 배운 것을 중심으로 더 나은 삶으로  변해야 한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명확하게 가슴에 담아두고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많은 가르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다.

 

 

 

 

이달의 사락 n******5 2014.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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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뭔가.. 철학의 개론 수업같은 걸 들을 때 수업교재로 사용할 것만 같은 책이다.. 그냥.. 책 제목에서 풍겨오는 알수 없는 오오라에 골랐다.. 근데 왠걸.. 이거 생각보다 술술 읽히더라..   그동안의 책들이 이 세사람의 철학적인 또는 교훈적인 가르침에만 집중했다면.. 이 책은 온전히 이 세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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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뭔가.. 철학의 개론 수업같은 걸 들을 때 수업교재로 사용할 것만 같은 책이다..

그냥.. 책 제목에서 풍겨오는 알수 없는 오오라에 골랐다..

근데 왠걸.. 이거 생각보다 술술 읽히더라..

 

그동안의 책들이 이 세사람의 철학적인 또는 교훈적인 가르침에만 집중했다면..

이 책은 온전히 이 세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이 세사람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들이 있긴 하다..

 

어린시절,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 추구하는 이상,

그들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평가 및 후대의 평가, 그들이 알리고자 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

세 사람의 인생의 발자취를 쭈욱 따라간 느낌..

그러자.. 이 세사람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가르침대로 생을 살다간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은 2500-20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평생을 정의와 참..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를 깨기 위해 노력한 소크라테스..

강인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 죽음마저도.. 그만의 정의를 지키며 생을 마감한다..

약속된 왕위의 자리를 걷어차고 길거리로 나와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을 구제하고가 노력한 석가모니..

그는 깨달은 자라는 붓다의 위치에 오르고도..

가장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의 가르침을 전했다..

항상 올바르고 금욕적이며 속세의 윤회를 끊기위한 가르침을 전했으며,

죽음 역시 그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열반에 들었다..

가장 낮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준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그의 가르침대로.. 원수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활로서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을 후대에 남겼다..

 

셋 중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만이 종교가 아닌 그저 철학으로 머물렀다..

가르침의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끊임없는 물음의 대화속에서 상대의 무지를 깨우치게 하고..

자신의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방식은..

종교로서 자리잡기에는 너무 어려운 방식이다.. 싶기는 하다..

자신의 깨우침을 강연의 형식으로 전달한 붓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이면 된다는 예수..

 

이들 셋의 가르침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영감과.. 삶의 척도를 세워준다..

 

서로의 종교만이 최고라는 아집과 편견속에서.. 어우러짐을 포기한 현대의 사람들에게..

세 사람의 가르침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누가 먼저인 것도.. 누가 더 옳은 것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결국.. 어떤 삶을 살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 대해 알기에는 좋은 책이지만.. 요약적인 느낌이 있긴 하다..ㅎ

o******m 2015.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SOCRATE, JESUS, BOUDDHA (2009)] -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 / 장석훈 옮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SOCRATE, JESUS, BOUDDHA (2009)] -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 / 장석훈 옮김" 내용보기
난이도 : ★★​☆1.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발췌 한 곳을 노트에 옮겨 적고, 또 한 번 블로그에 저장하면서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2. 아. 너무 심취했나보다. 지금 횡재라는 카테고리에 적어둔 이웃에게만 공개하는 포스트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다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이 블로그 주인장은 '도를 아십니까?' 혹은 '당신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SOCRATE, JESUS, BOUDDHA (2009)] -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 / 장석훈 옮김" 내용보기
난이도 : ★​☆

1.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발췌 한 곳을 노트에 옮겨 적고, 또 한 번 블로그에 저장하면서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2. 아. 너무 심취했나보다. 지금 횡재라는 카테고리에 적어둔 이웃에게만 공개하는 포스트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다가 덜컥 겁이 났다. 설마 이 블로그 주인장은 '도를 아십니까?' 혹은 '당신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라는 엉뚱한 소리를 건네면서 접근하는 사람(지난 주에 삼산 롯데백화점을 지나가는데 왠 아주머니가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시던데... 물론 나는 쿨하게 '됐어요'를 외치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단언컨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여러차례 말해왔지만,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인간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세 스승이 권하는 죽음 이후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위해서 현재를 사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의미로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혹은 선한 업을 쌓아서 육도의 가장 으뜸인 천도로 가는 꿈을 꾸며 현재를 보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면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371. 참된 것과 바른 것은 같은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앎이 의미를 지닌다. 그런 연유로 붓다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라는 문장은 내가 원하는 삶 (참된 선을 추구하고, 그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삶)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 참됨을 나만의 기준으로 곱씹어본다. 정의와 사랑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의를 추구하는 부분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붓다 형님에게는 사랑 때문에 좋은 소리를 못들을 것 같기도 하다. 

갈애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큰일이라고 혀를 차면서 걱정하며, 사랑 뿐만 아니라 태어난 이후부터 살아가는 모든 것은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예 잊어버리기를 권하거나. 아니면 들끓는 에로스의 사랑을 보살로서의 자비로 대신하는 것은 어떠냐 되묻겠지만, 나란 놈은 그런 갈애에 빠져 몸부림쳤던 러시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의 백만송이 장미가 아름다워 보이고. 훌륭했던 작가와 그들의 뮤즈에 얽힌 여러 낭만 혹은 고통 혹은 파멸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는 그런 놈이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3. 소크라테스 형님이 노예 상태의 인간의 증거로 제시한 무지에 관련해서는 '무지'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것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계몽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기로운 지혜' 라는 개념을 '무지'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이 허용된다면 나 역시 소크라테스와 같이 무지를 '참되지 않은 것' 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고 본다. 

4. 진리.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 이것은 세 명의 성인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37. 예수는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재물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고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고 했다. 붓다는 우리 삶의 목적이 명상을 통해 자기를 바라봄으로써 '아상'이라는 자아에 관한 환상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수 형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요. 그러므로 진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했으니 자신을 따르고 자신이 설파한 진리를 받아들이라는 점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다이몬'을 통해 목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싯다르타 형님 같은 경우에는 '붓다'라는 절대적 진리를 깨우쳤고, 그것을 명상을 통해 찾기를 바랐다는 점에서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해도 결론적으로 그것을 따르고 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점에서 개인이 가진 중요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5. 소크라테스 형님이 줄곧 말씀하신 '영혼의 산파' 와 탄생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되묻고, 또한 그 방법이 아이러니한 형식을 나타낸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예전에 책을 읽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어서.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붓다 형님의 사상적 틀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현실 속 무상한 존재를 정의하는 오온의 개념. 그리고 오온을 지니고 있는 '아'의 존재. '아'의 존재가 업, 윤회, 해탈로 이어지는 과정들과 윤회의 굴레에서 나뉘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 그리고 열반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팔정도(계정혜)로 고통을 소멸시키고, 사념처경이라는 명상을 통해 몸, 감각, 마음, 그리고 마음의 대상을 수행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을 열반이라는 절대적인 진리에 이르게 한다는 것 까지는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그 모든 성찰과 고뇌를 씻어내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고독한 인간을 치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모든 행위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6. 예수에 관한 부분은 이 두 성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미흡하게 읽었는데. 조만간 <젤롯>이라는 책을 통해 다시 공부해보려고 한다. 


k*******7 2014.08.1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