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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기보다 신문사 종업원이 더 걸맞겠다. 일부에서는 기레기, 기더기라고까지 비하하는데, 요즘 기자의 행태를 보면 그렇게 멀리 벗어난 말이 아니다. 기자라면 응당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 또는 그 비슷한 것이 뉴스를 쓰는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사주와 기자 자신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이에게는 터럭까지 끄집어내어 사회적으로 매장 시려는 대한민국의 기자들. 예전에는 일부였지만, 이제는 극히 일부만이 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박한 평가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뉴스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제를 다루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00개의 사실 중에 1개의 특정 사안만을 반복적, 정기적으로 뉴스에 노출시킨다면, 사회 구성원이 갖는 자아 정체성은 심각하게 왜곡되고 만다. 책과 영화와 예술 작품은 사람의 의식과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늘 상 들어왔고,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뉴스는 훨씬 더 오랫동안 더 큰 힘으로 우리 삶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오히려 뉴스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자신도 모르는 채 생각의 일부를 조종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기사도 드물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신속하게 소식을 전파해서 위험을 예방하고 문제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을 유발하며, 더 괜찮은 삶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뉴스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뉴스는 그저 유명인의 신변잡기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기사로 많은 클릭수를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기자 자신들이야 사실 그대로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그건 인지부조화의 자기 위안,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향한 욕망이 그 반대편의 자신은 꽤 괜찮은 기자이고 싶은 바람과 부딪히면, 인간의 두뇌는 창의적 능력을 발휘해서 교묘히 자신조차 속여가며 스스로 거짓 변명을 만들어내고 만다.
또 한편으로, 그런 바람직한 뉴스를 생산해 내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에 낙담한 나머지 쓰레기 같은 뉴스와 꼬투리 잡기식 트집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에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이제 종이신문이 여론을 이끌었던 신문의 황금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알량한 기자정신을 발휘하기에는 자신들의 위상이나 지위가 너무 쪼그라들었다. 어차피 바닥까지 내려갔으니 기득권에라도 잘 보여서 개인적 이득 정도는 챙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뉴스를 확인하지 않고는 잠시도 참지 못하는 요즘의 현대인들은, 왜 그렇게 뉴스에 집착할까? 어쩌면 뉴스에 관심이 있다라기보다는 본능을 자극하는 위협, 욕망 등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뉴스가 마땅히 다뤄야 하는, 가령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정책'이나 '환경 개선을 위한 법률 제안'등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뉴스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아마도 수백만 년 전 우리가 사바나 초원에 살 때부터 야생의 위협을 늘 경계해야 했고, 경쟁자보다 번식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진화했기 때문에 자극과 욕망에 쉽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알랭드보통의 이 책 <뉴스의 시대>는 뉴스가 마치 과거 위세를 떨쳤던 종교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뉴스를 통해서 현재 나의 위치를 가늠하며, 행동방식을 수정한다. 위정자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감추고, 자신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데 뉴스를 활용한다. 의미 없는 기사를 흘러넘치도록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뒤틀린 뉴스의 심각한 폐해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본래 원했던 뉴스의 그 본령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뉴스는 무엇보다 정신 건강, 건축, 여가, 가족관계, 연애, 회사 경영 방식, 교육과정과 신분질서 등 우리 삶의 더 나은 개선을 위해서 기록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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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자극적이고 진실 유무를 따지지 않는 무책임한 뉴스들이 범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듯한 언론 종사자들은, 자기들이 쏟아내는 뉴스에 일반인들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대해 희열을 느끼고 자신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든다. 이럴 때일수록 뉴스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이 옳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들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정보를 왜곡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감시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뉴스의 여러 속성들과 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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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이며, 작가의 의도에 분명히 동의한다.
p.11)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p.13) 우리는 언론 매체가 가진 특별한 능력, 즉 우리의 현실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어떤 초자연적 연관성도 없는데)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에 대해 전혀 체계적으로 지도받지 않는다. p.17) 뉴스가 어째서 중요하냐고 묻는 건 뉴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하려는게 아니라,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할 때 얻게되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앞부분은 가독성이 별로였다. 알랭 드 보통이 워낙 문장을 길게 쓰는 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번역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다. 그나마 뒷부분에서는 잘 읽어졌고 특히 셀러브리티 뉴스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는 큰 아들 때문인지 흥미로운 점도 좀 있었다. 소비자 정보에 대한 부분에서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도 흥미로웠다. 단순히 새 것이라 좋아서, 과시하고 싶어서 사는 소비욕으로만 보고 비판만 하지 말고 부족한 자신의 성향을 스마트한 제품을 통해 보강하고 싶은 마음, 좋은 제품이나 장소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체화하고자 하는 그 마음도 봐야 한다고...
책 마지막에서는 친절하게 결론을 정리하고 있는데... 결론만 읽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살짝^^ 중년이 되어 사회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다 보니 뉴스의 힘을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다. 인간이 누구나 그렇듯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잣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평할 수는 없지만 의도를 가지고 왜곡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지나치게 왜곡하고 폄훼하는 뉴스들도 넘쳐난다는 걸 알고 특정 신문사의 기사를 선택해서 읽거나 선택의 여지 없이 읽게 되는 뉴스에 대해서는 자~알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뉴스가 좋은 뉴스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성과 맞는 기사라야 좋은 뉴스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말했었다.
P.33) '하지만 우리는 편향에 대해 좀 더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고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편향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지나친 시도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에서 나의 생각에 힘을 얻는다.
한 집단의, 국가의, 지구의, 우주의 의제를 바꿀 힘을 가진 이 시대의 괴력(^^) 뉴스를 대할 때 결국은 보여지는 뉴스를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도록, 편협하거나 지나치게 편향적인 사고를 하지 않도록, 나와 내가 발디디고 살고 있는 곳에 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나의 인생의 나침반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장고 후 세운 삶의 가치관이라 하더라고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상황에 따라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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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의 뉴스를 분석하는 보고서임과 동시에, 언론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조언이며, 시청자들에게 뉴스 수용 방법을 가르치는 매뉴얼이기도 하다.
일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이 바라 본 뉴스는 역시 그 깊이가 달랐다. 뉴스를 6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이상적인 지향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넘쳐나는 정보의 양을 감당하지 못해 가장 수동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가 주장하듯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를 선별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이, 특히 뉴스 정보를 받아 들이는 데에 이 책이 한 가지 매뉴얼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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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다. 뉴스가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때 가치가 있다. 책은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정보로 분류해 뉴스의 역할을 말한다. 저자는 진지한 정치기사들로 인해 지루함과 당혹스러움이 유발된다면서 드러내기 부끄럽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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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뉴스의 시대에 산다. 마음만 먹으면 핸드폰을 통해 손쉽게 기사를 찾아볼 수 있고, TV를 켜면 언제든 다양한 방송사에서 수많은 뉴스를 쏟아낸다. 접근성은 말할 것도 없고, 데이터의 양도 어마어마한 현대사회에서 뉴스를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제 아무리 시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연예,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쏟아지는 흥미로운 기사들에 눈길을 주지 않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외는 없다. 출근하기 전에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 전에 핸드폰으로 다양한 기사를 찾아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수업을 준비할 땐 자료가 필요하면 뉴스를 먼저 찾아보고, 실제로 학생들에게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뉴스는 믿을만하다.’ 또는 ‘뉴스는 객관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32p 물론 뉴스는 사실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신뢰성과 객관성이 어느정도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히 객관적이고 신뢰할만한 정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뉴스에서 전달하는 정보일지라도 의심해보고 확인하는 과정은 필요했던 것이다. 각각의 개인은 각자의 가치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유한다. 같은 사실일지라도 10명의 사람을 거치면 10개의 사실이 된다. 내가 받아들인 뉴스는 나의 시선과 가치로 다듬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각자 뉴스를 이해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정립할 책임이 있다. 순수한 의미에서 편향은 사건을 평가하는 방법을 뜻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기능과 활동에 관한 일관되면서도 근본적인 논지에 의해 인도된다. 편항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33p 뉴스는 어떤 이야기를 조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빼버릴지 선택하면서 단지 현실을 선택적으로 빚어낼 뿐이다. -51p 알랭 드 보통은 뉴스 분야를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 정보로 나누어 각각의 분야에서 뉴스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시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각각의 분야별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뉴스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 같다. 뉴스는 어느새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벗어날 수 없다면 잘 활용하여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증가한 선택의 자유에 이르는 모든 길이 그렇듯, 맞춤 뉴스가 제시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의 어려움을 두드러지게 할 뿐이다. -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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