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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독서법은 다르다. 그런 이유인지 다양한 독서법 책이 나온다. 저자의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교수, 직장인, 아이 엄마, 간호사(얼마 전 읽은 책의 저자임) 등. 이번 책도 독서법에 관한 책이다. 앨런 제이콥스 교수의. 핵심은 간단하다. 느리고 즐겁게 읽기다.
소제목으로 다루고 있는 재미없다면 언제나 중단하라. 어려운 책들은 메모가 필요하다. 같은 책도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이다. 독서는 자유로워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서평은 독서를 방해한다 등은 평상시 많이 들어왔던 내용이다. 공감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내 생각과 다른 몇 가지는 주위를 끌었다. 전자책이 몰입을 돕는다? 전자책은 종이 페이지처럼 페이지 넘기는 즐거움이 떨어져 나는 이용하지 않는다. 조금만 읽어도 눈이 아파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고. 책 냄새도 느낄 수 없다. 이런 전자책이 몰입을 돕는다니. 기기의 특성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앞뒤로 종횡무진 읽고 싶어도 불편해서 유혹을 버틸 수 있다. 이것이 몰입을 돕는다고.
교육과 독서는 분리되어야 한다? 의심이 사그러지지 않은 부분이다. 교육과 독서를 다른 선상에 놓았다. 교육은 초집중으로 독서는 깊은집중으로 한다고 하는데. 초집중하는 습관이 깊이 집중하는 습관을 잃어가게 한다고 한다. 즉 페이스북 등의 짧은 글에 익숙해진 뇌는 긴분량의 책을 읽기 어렵게 한다. 필요에 따라 초집중 또는 깊은집중을 하면 될 것 같지만, 우리의 신경고리는 고무밴드와는 다르게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변형되면 그 상태를 유지한다고. 실용서를 읽을 때는 초집중으로 핵심을 읽고, 소설류를 읽을 때는 깊은 집중으로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 나는. 착각있었나?.
독서에 의무를 부과하는 권장도서? 권장도서가 독서를 의무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 가운데 영양가 없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권장도서를 읽다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읽으면 그만이다. 권장도서는 기본적인 영양소를 표시한 것뿐이다. 섭취의 선택은 내가 하면 되고. 허섭스레기 같은 책을 보는 것보다는 유익하다. 의무감을 준다는 이유로 아이비리그의 독서 수업은 틀렸다고 하는 건 누구의 생각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출판사의 의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엔 다를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독서는 공부여서는 안된다. 독서는 유희여야 한다. 그래야 몰입도 가능하다. 전화번호부책 백날 읽어봐라. 몰입되는지. 저자의 독서법은 속도에 묻힌 내게 돌아봄의 여유를 주었다. 이참에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 경험도 가져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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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늘 거부감을 가져왔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은 현저히 적다고 알려져 있다. 나 역시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책에 관심을 가지고 즐거움을 찾으려는 독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에도 정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도 작가를 꿈꾸며 책 읽기를 많이 하는 친구가 한 명은 있었는데, 그때 독서는 나의 관심분야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시험을 위한 국어 수업. 문학작품에 밑줄을 그어가며 시점을 찾고, 주제를 찾고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에도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정해진 수업. 혼자 책을 읽으려 할 때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책을 읽으면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처럼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지식을 쌓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즐거움보다는 부담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독서에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독서에 대한 의무는 여러 권장도서 목록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정하거나, 서울대생이 많이 읽은 책 목록, 하버드생이 읽는 책 목록, 이런 권장도서 목록들은 의무를 부과한다.
또 어떤 이들은 독서의 수준을 운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블룸은 명작이 아닌 작품까지 독서 영역을 확대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들을 참지 못하고, <해리포터>를 읽는 독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블룸의 의견에 대해 저자는 <해리포터> 같은 블룸이 생각하는 명작이 아닌 작품들을 읽는 독자들이 그것을 계기로 '훌륭한 책'으로 나아간다면 그런 행위조차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반문한다.
저자의 생각에 나 역시 동의한다.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처음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기계발서를 통해서였다. 자기계발서에 대한 논란도 많지만 처음에 내가 책을 한 권씩 만날 때는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많은 책이 자기계발서였다. 그때는 소설은 거의 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책을 읽으면 배우고 느껴야 할 점이 바로 제시되고 정리 되는 것이 자기계발서였다. 반대로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서 초보에게 소설은 명확하지가 않았다. 읽고 나면 내가 이 책에서 무엇을 느껴야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소설은 어렵고 자기계발서에 편중되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로 시작한 독서가 소설로도 이어지고, 어렵다고 느꼈던 고전도 만나게 되고, 과학분야 등 분야를 넓혀 갈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자기계발서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달라졌다 할 수 있다. 블룸은 <해리포터>를 읽는 독자들을 시간을 낭비하고 진정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해리포터>를 통해 책 읽기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던 독자들이 다른 책으로도 분야를 넓혀 갈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독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 중에는 독서를 자기계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런 독자들은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막중한 의무감 때문에 즐거움을 수시로 중단한다. '재미', '즐거움'을 얻기 위해 칙 읽는 행위를 부도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즐거움이다. 독서목록에 들어 있는 책을 독파하기 위해하는 독서, 자기계발의 수단으로 하는 독서가 아니다. 이런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위해 재미가 없는 책은 과감하게 중단할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두툼한 책을 읽다가 재미가 없는데도 지금까지 읽은 책이 아까워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붙잡고 있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재미가 없으면 언제든 중단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단한 책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어렵고 재미가 없더라도 또 어느 순간에 와닿게 될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와닿지 않던 책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한 독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쉬운 책에서 어려운 책으로 가는 법이나, 전자책에 관한 이야기, 서평이나, 독서법 등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고민했을 내용들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작가, 저서들에 대한 언급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좋은 책이 무엇인지, 좋은 독서법이 무엇인지 이전에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 읽기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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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인쇄된 것은 무엇이든 좋아하는 터라 딱히 책의 장르를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쌓인 지식이 없는 탓에 머리를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책, 한 번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책, 술술 넘어가는 책에 손이 더 먼저 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책을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는가 보다.
<유혹하는 책 읽기> (2014, 앨런 제이콥스 지음, 교보문고 펴냄)의 저자가 보았다면 너무나도 한심해했을 그런 독자인 셈이다. <유혹하는 책 읽기>의 띠지에 나온 '느리게 읽기, 즐겁게 읽기' 중에서 '즐겁게 읽기'만, 그것도 눈으로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여파로 이제 슬슬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지만, 이제라도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 싶다.
영문학자이자 비평가, 작가, 베일러 대학교 우등 프로그램의 인문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책 읽기에 '자유'를 부여한다. 권장도서에서 벗어날 자유, 재미없다면 언제든지 중단할 자유, 명작만이 아니라 쉽고 즐거운 책을 읽어도 될 자유, 다른 사람의 서평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자유, 아직 내 인생 최고의 책을 만나지 못했어도 될 자유.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처럼 눈의 즐거움만을 추구해온 독자들에게 더 넓고 더 어렵고 더 깊은 책을 만나보라고, 또는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느껴보라고 은근하게 떠민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J.R.R. 톨킨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톨킨이 참조한 <베오울프>를 비롯해서 중세 아이슬란드의 신화와 전설을 읽으라는 이야기, 어려운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의문과 감상을 어떻게 적으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 요즘 보편화되고 있는 전자책 리더들을 어떻게 사용하면 될지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말이다.
아들러와 반 도렌은 1900년대 중반에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 깨달음을 위한 독서, 재미를 위한 독서'라는 3중 모델을 세웠다고 한다. <유혹하는 책 읽기>는 깨달음을 위한 독서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대로 읽다 보면 '깨달음을 위한 독서'가 어느새 '재미를 위한 독서'로 확장됨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자, 이제 재미를 위한 독서는 그만하고, 여백에 궁금증을 적을 샤프 펜슬을 준비한 다음 깨달음을 위한 독서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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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책읽기'는 사실 굳이 읽어봐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책에 관한 책도 아니고, 광고 문구에 나온 것처럼 '느리게 읽기, 즐겁게 읽기'에 대한 글인데 이미 나는 나 나름대로의 독서법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책읽기를 습관처럼 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빨리, 더 많이 읽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방향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기때문에 다시 생각을 바꿔 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초반부터 책 읽기라는 것은 '마음가는대로' 읽으면 되는 것일 뿐 어떤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나 독서목록 같은 것이 있을리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책읽기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마음내키는대로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거나 특별한 책읽기의 방식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결론적으로 그 한가지 사실을 읽고 난 후 그냥 책을 덮어둘까 라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저자 역시 제대로 읽히지 않는 책을 붙들고 끝까지 읽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육백여쪽 이상을 읽은 책이지만 도중에 포기하고 책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 상태로 덮어두는 건 아주 쉬웠다고. 물론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이 특별해보이지 않는 책을 굳이 읽으려는 것은 그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책읽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서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면, 그 나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히' 읽었으리라 예상되는 책을 읽어줘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잠시 했었는데 아마도 그에 대해 '나 자신만의 독서'라는 것을 조금 더 자신있게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도서목록을 보고 여름 휴가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해두고는 했었지만, 어떤 책을 사놓더라도 결국 읽지 않을 게 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고심해서 책을 선정해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는 순간 그 책은 영양가는 있지만 입에 쓴 채소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독서목록에 없는 책은 평소에는 시시해보였지만, 그 순간 달콤하고 시원한 파르페처럼 곧장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202)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내 마음이 가는대로 즐겁게 몰입하면서 읽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읽기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가끔 쌓여있는 책탑을 보여주면서 과연 내가 어떤 책을 읽을까요? 라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물론 혼자있을때도 가끔 나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이 책들 중에 어떤 책을 먼저 끄집어낼래? 주말만 되면, 연휴가 되면 특히 더 그동안 읽지 않고 쌓아 둔 책들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독서계획을 세워보곤 하지만 모두가 꼭 읽어봐야 한다는 책을 우선순위에 두다가도 결국 내가 끄집어 내는 것은 그 순간 내 마음이 움직이는대로이다. 그것을 너무 무성의하다거나 계획없다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즐거운 책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누군가의 독서목록이 나를 유혹하지만 결국 나를 사로잡는 것은 나 자신만의 독서목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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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최근 7년간 책 읽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덕에, 책으로 쌓여 진 책 탑이 방 안에 가득하고, 책상 위에도 또 다른 작은 책 탑들로 넘쳐난다. 이 수많은 책들을 내가 다 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는데, 과연 내가 저 책들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처음 1~2년 동안에는 년 간 100여권을 목표로 열심히 읽고 성취감도 느끼며 기쁨을 만끽 했었고, 나름 만족하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뭐라고 설명이 안 되는 독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즐거움보다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의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 되면 내가 지쳐서 안 되겠다 싶어, 1년 동안 읽은 책을 반으로 줄이며 목표량에 대한 부담도 덜어내기로 했다. 점차 그런 느낌을 떨쳐나가고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후유증처럼 남아 있다.
읽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할까? 읽으면서도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에 집중 못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는 경우가 많다보니,책을 읽다보면 이해가 안갈 때가 많아 앞 페이지로 넘어가 다시 읽을 때도 많다.
누군가는 어떤 책을 읽을까 그리고 명사들의 책 읽기는 어떻게 할까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책 목록을 살펴본다. 사실 한 번 훑어보고 나와 많이 맞지 않으면 읽지는 않지만, 관심이 가는 책들이 분명 있기에 나중에라도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목록을 참고하기 위해 메모하여 둔다. 따라하기나 허세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가는대로 책을 읽는 것이 맞겠지만, 이렇게 <유혹하는 책 읽기>에서 언급해주는 이야기들을 받아들인다면 더 효율적이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하지만 내 마음도 잘 모를 때가 있다. 읽다가 놓아버리는 책, 하지만 꼭 읽고 싶다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와 눈은 다른 곳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 책에 쓰인 내용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거기에서 내게 맞는 것을 선택하고, 조정해서 나의 책 읽는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그게 중요한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책 읽기에 딱 떨어지는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한 의견에만 공감할 수 없기에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다양성이 존재하고, 취향이 갈리는 부분 등이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책 읽기에는 자신만의 선택권이 있지만, 책에 대한 조언은 자주 들어도 큰 도움이 된다.
나를 유혹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책들의 시선이 따갑지만 싫지는 않다. 그 유혹을 즐기면서 독서라는 즐거움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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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독서를 통하여 알아가는 [유혹하는 책 읽기] 본의 아니게 책이 많다. 책도 별로 읽지도 않으면서 책은 많다. 그 많다는 기준이 좀 모호하긴 하지만, 일단 내 기준으로는 많은 것 같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2010년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가기 전에는 공부한다는 변명 아닌 변명, 핑계 아닌 핑계로 책을 보지 않았었고, 대학시절 때는 노느라 책을 안 봤다. 2010년도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매달 책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허세 중 하나였다. 여하튼 그 덕분에 조금씩 책을 구매하기 읽기 시작한 것이 벌써 4년 정도 되가는 것 같다. 하지만 매달 구매하는 책으로 이 정도의 책을 모았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금액적인 부분도 부담이 되고. 돌이켜 보면 우리 집에 내가 직접 구매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누가 버린 책을 집에 가져온 경우도 좀 있고, 서평을 쓰는 대가로 출판사에서 공짜로 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경로로 내 방에 책이 유입되다 보니 별의별 책들이 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만약 이 책을 헌책방에 팔았거나 누굴 줬거나 아니면 그냥 버렸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남에게 주거나 버리는 경우가 없었기에 책은 점점 쌓여만 갔다. 자, 이제는 반성의 시간이다. 그럼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그럼 이 중에 과연 2번 읽은 책은 몇 권이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 않다. 마치 신문 보듯이 한번 보고 그냥 방치되어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점은 분명 나에게만 해당되는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특별한 경우 아닌 이상, 같은 책을 2번 읽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왜 책을 2번 읽지 않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이미 한번 읽었으니까.” 우리 대부분은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에 읽는 책의 숫자가 많아지고, 결국은 숫자에 집착해 어리석게도 우리가 읽은 책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내 사례를 통해 보듯이 가치 있는 어떤 책과의 첫 번째 만남이 항상 완벽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대체로 그 첫 번째 만남을 마지막 만남으로 만드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책 읽은 티를 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는 책을 지워나가는 사람들은 같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생각에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똑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행위는 때로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극적이며,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앨런 제이콥스의 [유혹하는 책 읽기] 中에서 p.180 우리는 분명 알고 있다. 책은 음식점에 있는 메뉴판이 아니다. 그냥 한번 읽어보고 메뉴 골라서 주문하면 끝나는 메뉴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저자가 존재한다. 책이란 저자의 생각이 담겨진 글의 묶음이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자료조사를 하고, 고민을 하고, 수정을 하면서 써내려간다. 우리는 그 수년간의 노력이 담겨진 저자의 생각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다. 단순히 책을 통해 한글읽기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린 그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럼 과연 책을 한번 만 읽고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반성해보겠다.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다. 잡지 보듯 훅훅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도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되는 경우가 있고, 한 문단 읽어 내려가는 게 너무나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책이 있다. 다양한 책을 접함에 있어서, 적재적소의 올바른 독서법을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웬만한 독서량이 아니고서야 자신만의 올바른 독서법을 깨닫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글자만 읽고 넘겨버린 책들이 있을 것이고, 있다. 그럼 결국 나는 시간낭비만 한 셈이다. 수능 준비할 때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반복학습의 중요성이었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요에 따라 한 번 더 곱씹으면서 책을 읽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고, 나의 모습이었다. 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나중이 되어서야 그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당 구절을 다시 찾아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반추 독서가다.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강력한 문화적 정신적인 유혹이 우리가 가졌을지도 모를 반추 본능을 억누른다. 우리가 쉽게 산만해지거나 성급해진다면, 또는 단지 독서 목록에서 다 읽은 책 제목을 지우고 그 밑에 있는 책으로 넘어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앞서 읽은 내용을 잊어버리더라도 되새김질을 통해 더 깊이 생각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앨런 제이콥스의 [유혹하는 책 읽기] 中에서 p.137 [유혹하는 책 읽기] 저자 앨런 제이콥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반추 독서”를 추천한다. “반추”라 하면 소나 염소가 하는 되새김질이라고 보면 된다. 한번 먹은 음식을 다시 게워 내어 곱씹는 행위이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한번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하고,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고 있다는 그 행위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보니 보다 많은 책을 읽고 싶어 한다. 많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책을 빨리 읽어야 한다. 읽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이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책읽기 고수라면 큰 문제가 없는데, 나처럼 겉멋만 들은 이라면 결국엔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셈이다. 책을 읽고 남는 게 없는데, 그걸 과연 독서를 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한때 유행했던 독서법 중 하나가 “속독”이었다. 속독의 달인들은 빠른 속도로 책 페이지를 넘긴다.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모습이다. 물론 속독도 훌륭한 독서법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앨런 제이콥스가 권하는 반추 독서법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요소와 감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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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무척 흥미를 끄는 책이었는데 내용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은 도서이다. 첫 장에 '독자는 주의하시라'라는 글이 참 재미있었는데 저자의 재치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독자는 주의 하시라 독서에 거부감을 가져왔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독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책의 내용중에서 가장 공감적인 부분은 이 책의 핵심 내용인 '마음 가는 대로 읽어라'였다. 독서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재미없는 책은 읽기 힘들기 때문이다. 초등시절 내가 책을 많이 읽었던 이유도 바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아동 도서는 특히나 더욱 더 재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여전히 내가 독서하는 이유는 읽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고 독서를 통해서 마음의 수양도 쌓고,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대략 10분 정도씩 독서를 하게 되는데 멍~하니 그냥 그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단 훨씬 유익하게 시간 활용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동 시간에 스마트 폰을 본다. 스마트 폰이 주는 장점보단 어쩌면 단점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파급 효과가 무척이나 커져 버렸기에 일성적인 모습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뭐 어쨌든 그런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 사항이기에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흥미를 유독 끌었던 부분은 독서가 결코 휼륭한 사람을 만들지 않다는 내용이다. 정답인 것 같다. 인성은 독서량과는 별개가 맞는 것 같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할 터인데 어릴 때부터 쌓아온 지극히 개인적인 도덕적 성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변화 시키기 참 어렵다는~... -독서가 정말로 '더 휼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면, 연합군이 강제수용소로 진입했을 때 수용소의 독일군 사령관이 틈나는 대로 괴테의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군가는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독서를 한다고 해서,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듣는다고 해서, 라파엘로의 그림을 감상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의 인성이 변하거나 심지어 발전하나다고 할 수 없다. p79 저자의 솔직담백한 독서에 대한 의견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재미있었다. 평소 독서를 하면서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내용들이라서 이 기회에 내가 독서하는 진솔한 이유와 나의 독서의 잘못된 부분들에 대한 성찰과 독서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다. 책 제목처럼 일평생 유혹하는 책읽기를 실천할 것이며, 책 속에서 소개된 도서중 몇몇은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정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길 추천한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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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꼭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집착했다. ‘꼭 읽어야 할 세계 명작’,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단편 소설’ 같은 글귀는 눈에 번쩍 띈다. 한 달에 4~5권은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책을 읽어내지만 정말 즐기는 것인지 의무감에서 읽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초스피드로 수박겉핥기식 독서를 하기도 한다. 한번 본 책들은 다시 거들떠보기도 싫어한다. 갈수록 주의도 산만해지고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할 때도 많다. 이런 나에게 이 책, <유혹하는 책 읽기>는 즐거운 독서를 위해 어떤 태도는 버리고 또 어떤 태도는 견지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영어 제목, <The Pleasures of Reading in an Age of Distraction>이 이 책의 논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독서를 방해하는 TV와 컴퓨터 같이 것에 길들여진 시대에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 첫 페이지에 큰 글자로 쓰인 경고문(?)이 인상적이다. “독자는 주의하시라 - 독서에 늘 거부감을 가져왔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pp. 4~5). 일단 나는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저자 앨런 제이콥스는 일관되게 ‘독서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 자유로움은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읽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학교에서 숙제로 이런 저런 책을 읽으라 하면 그것은 이미 의무감에서 독서하게 되어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린다. 또 정해진 시간에 숙제하려면 ‘초집중’해서 읽어야 하는데, 이런 초집중하는 습관 때문에 깊이 집중하는 습관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서는 학교교육과 분리되어야 한다. 또 사람마다 관심분야도 다르고 성숙도도 다르다. 그러니 책으로부터 참된 위로와 기쁨을 누리려면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이 내킬 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중단하라고 충고한다. 저자는 집중해서 독서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해졌던 자신이 전자책을 통해 오히려 몰입을 경험했다고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어쨌든 저자는 다양한 책들을 즐기며 읽기 위해 어떻게 독서해야 할지, 책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들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독서의 즐거움을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독서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생생하게 표현된 멋진 문장들이 있다. “책은 때를 기다린다. 여기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 책은 어느 날, 당신의 마음이 내킬 그날까지 당신을 기다려줄 것이다.”(p. 38). “어떤 형태의 지적 노동은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 우리는 ‘마음 가는 대로’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정신력과 집중력을 길러주며, 인내하는 법을 가르친다. … 이러한 덕목들은 새롭고 더 커다란 즐거움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욕심낼 가치가 있다.”(p. 75). “독서는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뛰어난 도구다. 그 내면에는 활력이 가득하다. … 영원한 현재를 만끽하는 데 전념한다.”(p. 130). “자신이 읽는 것을 너그러운 마음을 대하라. 책과 싸우려고 들기보다 신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라. 마치 당신 집을 방문한 손님을 대하듯이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라.”(pp. 139~140). “‘깊은 집중’을 요하는 진지한 독서는 언제나 소수만이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p. 151). “평생에 두 번,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았음을 깨닫는다. 걷는 법을 배울 때와 읽는 법을 배울 때다.”(p. 204, 퍼넬러피 피츠제럴드의 말). “독서하는 종족이여 번성할지어다.”(p. 209). |
인상깊은 구절'유연성'은 흔히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탄력'과 다르다.
우리의 신경고리가 고무 밴드처럼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진 않기 때문이다. 일단 변형되고 나면 그 상태를 유지한다. 글머에도 새로운 상태가 꼭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자책 읽기 등느리게 읽기, 다시 읽기, 반추 독서, 역행 독서법 등을 소개한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독자들에게 인문학 교수 앨런 제이콥스가
조언과 독서철학을 방법론적 접근법으로 말하고 있다.
![]() ![]() 배우기 위한 독서는 즐기는 독서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
논어에 나오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가 이 책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가는 대로 읽어라,
자신에게 즐거움을 준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어라,
좋아하는 작가의 경험을 따라가며 읽어라 등의 신선하고 자유분방한 독서법을 전한다.
![]() 눈이 확들어오는 녹색바탕에 레몬색 글자가 이 책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하고있었다. 독서로 인한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들이라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을것이라 말하고 있다.
![]() 요새 심적으로 많이 고통을 받고있어서
심리학적인 책을 많이 보면서 심적 위안을 받고있던 찬라에
위안이 된다는 구문을 보니 십분 공감이 갔다.
![]() 책 반페이지를 차지할 만큼 상세한 각주가 독자들이 이해못하는 부분을
자세히 알수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 앨런의 말처럼,
교육과 독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말에 난 공감하지 않는다.
물론 앨런의 주장이 틀렸다는것은 아니고, 이견이 있을뿐이다.
난 독서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지식과 간접경험이 교육과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지속적인 독서에 걸맞은 인내심과 고도의
집중력을 인터넷에 의해 조장되는 빠르게 뤁어보고 분류하는 능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우리가 잃는 것을 중점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인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것은 아니다. p. 149中
기회가 되면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읽어보고싶었다.
유혹하는 책을 보고,
다음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책을 대하게 될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도 막연하기보다는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즐겁게 읽어야겠다.
어떤방법보다는 그저 즐기듯이 책을 보는것에 관점을 두고 읽는것이 좋을 것 같다.
머리로 생각하는 독서방법이 아닌 마음으로 읽는 진정한 독서법으로
다른 도서들을 읽는 다면 그 책속의 인생을 달리볼 수 있을것 같다.
이책은 독서를 제대로 하고 싶은 독서광이나,
책을 싫어하는데, 책을 필요에 의해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이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에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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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어떻게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까?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종류의 책 읽기 도서를 만나기도 하면서 나름 즐거움을 찾기 위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1인이다.책이 아니여도 읽을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그렇기에 즐거움을 주거나 찾지 못한다면 금세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되는 세상.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기약이 없다. 영원히 돌아 오지 않을수도 있는 것이 바로 책읽기인듯하다.
나름 주변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 많이 읽긴 했지만 즐거움을 준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꾸준히 읽다보면 책읽기에 빠져들겠지 하면서 지금도 꾸준히 읽지만 즐거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가 조금은 부담 스러운게 사실 요즘이다. 더운 날씨탓도 있겠지만 과연 이대로 멀리해야 하는지, 아니면 좀더 나은 독서법을 습득해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에 눈길을 끄는 [유혹하는 책읽기]를 만났다.이 책은 기존의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의 문제점을 꼬집는다.독서법의 고전으로 통하는 책 역시 꼬집는다.
실직적인 독서란 무엇일까? 나를 낄낄 대거나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지만 결국에는 참지 못하게 만들고 침실 반입을 금지 당하는 사태까지 초래하는 그런 독서다. 이외 여러가지의 실직적인 독서에 대해서 저자는 얘길한다. 그러한 경험들이 독서의 모든 것이라고 하며 책을 통해 이러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는건 좋지 않고 또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손에 들고 낑낑 거리지 말라고 한다. 이는 책 읽기를 점점 멀리하게 만든다고 한다. 자신이 읽고 싶은 작품을 읽고 독서 자체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는 독서습관을 바꿀 수 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면서 독서 습관을 바꿀 수 있겠금 알려주며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책 읽기의 즐거움에 훔뻑 빠져들겠금 해주는 [유혹하는 책 읽기]다.
지금까지 독서 습관을 바꾸지 못해 책을 멀리했던 사람이나, 책 읽기의 즐거움을 찾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책 읽기의 변화를 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책이 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