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너무 행복해서 너무 아름다워서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있을수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그렇게 바래볼수는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현존하는 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과는 또다른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한 상상도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바람이 혹은 이 순간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소망이 그와 같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바로 옆 공간이 어제는 옆 공간이더니 어느날 갑자기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되어 이상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돌아오는 이야기들도 신선의 세계에 갔다 돌아오니 자기는 하루 지났을뿐인데 자기가 살던 곳은 몇백년이 흐른 후가 되어 또다른 세계의 시간차를 경험한다던지 하는 이야기들도.. 그런 SF적이거나 신비한 옛이야기적인 요소와 비스무레하면서도 사뭇 다른 찰나의 유리바다세상속을 경험해보자. 두둥실 파도의 곡선이 부드러운 바다에 커다란 배 한척 떠 있다. 그것은 부드러운 파도의 곡선이기도 하고 유리바다의 매끈한 유리곡선이기도 하다.그 위에 유리바다의 사람이 고양이와 함께 서 있다. 배 위에서 날치떼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과 아버지. 그 똑같은 바다에서 똑같은 날치떼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 그들은 바다와 날치떼를 공유하나 그 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바다는 유리요 흩날리는 물방울은 유리구슬이요 무언가에 쫒겨 뛰어오르는 날치떼는 마치 과일을 따듯 딸수 있는 존재(?)이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것도 그물로 잡는것도 아니라 물고기를 과일 따듯 따서 바구니에 넣는 모습이라니... 이야기의 전후구조를 떠나 아이는 자기도 이렇게 물고기를 잡으면 너무 좋겠다고 흥분하기까지 한다.^^ 유리바다의 세상에서 유리는 움직이는 유리이다. 꾸물럭 꾸물럭 부풀어오르기시작하는 한곳...그 이상야릇한 변화에 노인은 놀란다. 혹시 고랜가 하고....고래가 뛰어오를 모양이라며 바로 그 자리에서 캠프를 결심한다. 고래가 뛰어오르는 것이 유리바다에서는 아주 드물고 희귀한 일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잠시 뒤로 제쳐놓고 유리바다에서의 캠핑장면에 빠져든다. 꾸물꾸물 솟아난 바다속의 물사람들의 노래. 할아버지의 혼잣말, 신기하고 이해하기 힘든 할아버지의 꿈.꿈속 유리건물들의 행진노래등등은 정말 어리둥절함 그 자체이다. 할아버지가 꿈을 꿀때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유리바다는 할아버지의 꿈과 함께 살아움직인다.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다음날 현실의 배가 존재한다는 걸 다시한번 인식시켜주는 화가친구가 등장한다. 배를 그리는 중이라고 노인이 권한다. 그보다 더 좋은게 있다고...그러면서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스톱모션을 잡은 것 같은 고래가 반쯤 바다위로 나온 모습이다. 반쯤 나온 고래가 바다위로 다 나오려면 6시간이 걸린단다. 그림을 그리고도 충분한 시간. 유리바다의 세상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하게 하는 시간. 고래의 도약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큰 행사구경을 하러 모두 모여들고 그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의 눈물방울은 유리방울이 되어 흩뿌려진다. 마침내 고래가 도약을 하고 다시 바다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또다른 세계에서도 그 장면을 목격한다. 초입에서 나왔듯 현실세계와 유리바다의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날치떼와 더불어 고래의 도약도 공유하였다. 한순간의 목격이었던 고래의 도약이 유리바다에서는 최소 6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바로 두 세계를 연결시키고 이해시킬수 있는 열쇠이다. 그렇다면 고래가 뛰어오를때 "야아 이 광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걸." "내가 어렸을 때였어. 언젠가 배 위에서 봤지...."하는 이 말은 어쩌면 그것이 찰나이면서 오랜시간인 서로 다른 두 시공간의 공존이면서 과거와 미래의 공존인지도 모른다. 어떤것이 정답인지 어떤의도로 작가가 그렇게 그리고 그렇게 말했는지 나는 모른다. 정답은 이 그림책을 보는 내가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이 될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보고 느끼는 것일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이 또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접하는 그것일수도 있다. 그대로 그렇게 여러방면으로 해석될수 있는 것이 이런 그림책의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혀 해보지 못한 상상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름의 머리를 굴리고 상상해 보는것은 때로 여운을 주면서 책을 가슴 깊이 남게 만드는 힘이 있는것 같다. 참 특이하고 특별한 책으로 기억될것 같다. |
| 밤이 되면 세상은 색이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지배하게 된다. 달빛만이 존재하는 바다 위에서 고요히 떠가는 커다란 배.. 뱃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은 그 어두운 바다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들이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은 일렁이는 바다 위를 나르는 날치떼이다! 아이는 날치떼가 커다란 물고기에게 쫓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림에서도 눈을 동그랗게 뜬 날치떼의 표정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다가 초록색으로 변한다. 색의 전환으로 독자들이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것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다 위를 걷고 있는 노인의 모습-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에서도 이 초록의 바다는 다른 세계의 밑바탕임을 알 수 있다. 바다가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소년이 본 날으는 날치떼는 바다위에 떠오른 채 정지한 것 마냥 멈추어 있다. 그것을 손으로 과일을 따는 것 마냥 손으로 똑똑 따서 망태기에 담는 노인의 표정은 흐뭇하기만 하다. 한 번쯤은 TV에서 고래가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래는 그 거대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도약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필림을 느린 속도로 돌려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 준다면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도약의 순간이 제법 길어질 수 있다. 바로 이런 시도를 그림책 속에서 재현한다면? 바로 이 그림책 <유리의 바다에서="">처럼 6시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단지 고래가 뛰어 오르는 짧은 순간을 길게 묘사한 것에 있지 않고,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두 세상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교묘하게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 분명 노인이 잠을 자고 꿈을 꾸고, 다음 날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의 흐름이 우리들이 존재 하는 세계의 시간의 흐름 속도와 다를 따름인 것이다. 또한 그 노인은 유리 바다에서 홀로 유랑하는 자가 아니다. 밤이면 그를 찾아오는 '물사람들'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고래의 도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마침내 고래의 도약이 이루어지는 장면의 바다는 초록색 바다와는 또다른, 밝은 연두빛이다. 어쩌면 그 순간은 고래에게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닐까? 고래의 도약을 보면서 남긴 "내가 어렸을 때였어. 언젠가 배 위에서 봤지..."라는 노인의 말이 배 위에서 망원경으로 고래를 발견한 소년의 이미지와 겹치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시간의 순서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혹시 그 소년이 늙어서 이 노인이 된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의도일까? 고래가 뛰어 오른 모습을 '한순간'이라며 아쉬워 하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나이를 먹은 뒤에야 흘러간 세월이 찰라처럼 짧게 느껴지게 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진다. 가보고 싶다. 한 순간이 몇 시간으로 늘어나 버리는 유리 바다로...유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