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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교회도 다 같은 교회는 아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강하게 느껴지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뻣뻣하고 불친절한 느낌이 드는 교회도 있다. 하나님은 동일하시지만 교회에 따라 하나님은 다르게 전달된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하다. 하나님을 비추는 통로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교회만이 세상의 희망이다. 요즘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 세상과 아픔을 같이 하는 교회, 문화가 있는 교회, 봉사하는 교회등을 가리켜 좋은 교회라 지칭하는 것 같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교회의 모습은 진지하고 사뭇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세상과의 다리를 놓기 위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세상과 구별되게 하는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요소 말이다. 교회니까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간과하고 있는 것 말이다. <버티컬 처치>는 좋은 교회를 정의함에 있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요소를 언급한다. 이제는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희귀해져버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말이다. 아니,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간구하지 않는 교회도 있는가? 물론 그 어떤 교회도 간구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교회의 실상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세상과의 소통이나 전도에 밀려 버린지 제법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도를 위로한다는 명목하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보다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내용으로 찬송은 변하고 있고, 설교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보다 설교자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물로 전락해버린 듯한 말씀들이 들리는 실정이다. 눈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바닷물처럼 말씀은 예화나 합리적인 생각 혹은 도덕적 견해, 또는 경영 마인드에 밀려버렸고 이제 교회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건 그리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세상에 있는 것들로 세상 사람들을 이끌려 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추는 식의 전도와 수평적 목회는 오히려 사람들의 갈증만 더 유발하고 있다.
결국 사람들의 갈망은 채워지지 못하고 사람들은 허기를 잔뜩 안은채 교회를 떠나고 있다. 간신히 세상 문화를 따라잡아 이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기함할만한 하다. <버티컬 처치>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왜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에게 심기워진 영원을 향한 갈망은 인간 중심의 수평적 목회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영원은 하나님의 초월을 뜻하는 것으로 교회가 사람들의 타고난 갈망을 채워주지 않고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면서 오히려 우상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공급하심은 그 분 자신이며,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경향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면 은혜와 진리의 균형을 잡게된다고 말한다.
또한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는 치명적인 오류로 하나님의 영광보다 전도 중시를 들었는데, 수평과 구원론에 치우친 교회는 전반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버티컬 처치가 되려면 온 존재로 예수님을 예배해야 하며, 성경을 전하지 않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며 하나님의 변호하지 말고 그냥 증언하라고 한다. 교회의 중심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며, 버티컬 처치로 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도 기도이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바를 모를 때도 기도하라고 한다.
<버티컬 처치>는 수평적 목회가 이 시대의 대안인 줄 알던 교회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문화를 차용해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결코 좋은 교회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리 되도록 돕는 모임이 될 때 비로소 좋은 교회가 된다며,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추구할 때 사람들에게도 저절로 좋은 교회가 된다고 말한다. 좋은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애쓰는 목회자들에게 이 책은 힘 쓰기보다 힘 빼기를 요구한다. 우리의 생각으로 무언가를 하려하기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구할 때 교회는 균형이 잡히며,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진정한 영향을 끼치고 싶은가? 버티컬 처치로 방향을 선회하라. 사라졌던 영광이 다시 돌아오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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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만 중시하는 교회, 전통만 따지는 교회, 봉사만 외치는 교회, 감정을 자극하는 교회, 율법 중심의 교회, 성경만 펴는 지루한 교회,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 이 모두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수평적인 대용물이다. 우리 모두는 수직적 교회를 철저하게 왜곡시키고 변질시켰다"(20).
무기력한 한국 교회.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는데, 그 전에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철저히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버티컬 처치>는 현대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왜 하나님의 교회가 이토록 무기력한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책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이 책을 함께 읽고 회개의 자리에, 영적 대각성의 자리에 나아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한때 한국 교회에는 부흥을 위한 컨퍼런스, 세미나, 집회 등이 유행처럼 성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크게 부흥한 교회들이 교회 성장의 비결을 공개하고 나누었습니다. 외국의 유명 교회들도 한국을 찾았습니다. 매년 많은 프로그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리는지 목회는 등한시하고 세미나만 좇아다니는 '중독자'가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창 목회를 배울 때나 저도 많은 세미나를 접해 보았는데, 그때 제가 핵심적으로 배운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웃의 필요를 살피라. 그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되라!"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맡져주신 사명이며, 교회 부흥의 비결이라고 배웠습니다. <버티컬 치치>는 그런 목회철햑과 방향을 가진 교회를 수평적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교회를 향한 매서운 쓴소리입니다. 모든 교회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 교회, 즉 버티컬 처치(Vertical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를 지구 상의 다른 모든 집단과 구별 짓는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다"(74).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현대 교회가 "복음으로 세상을 물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18)는 이유가 우리가 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이 주는 것과 똑같은 것들만 사람들에게 주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교회가 진정 갈망해야 할 것, 교회가 사람들에게 채워줘야 할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경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인데, 많은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흔한 자기계발서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 아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는 것인데, 정작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영원을 향한 갈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오직 교회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세상에 주어야 하는데,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교회 스스로 세상과의 유일한 차이점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교회가 무기력함 속에 빠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분의 임재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69).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편재와 임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편재해 계십니다. 그러나 <버티컬 처치>는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적극적인 참여요 역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영향력의 표현이다. 간단히 말해, 임재는 하나님이 이곳에서 지금 당장 역사하신다는 뜻이다"(77).
교회는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으며, 교회를 세상 조직들과 구별시키는 단 하나의 요소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존재 목적과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영혼에 그분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으셨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미 주신 초월의 갈망을 다루지 않고 그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수직적 갈망을 자극하지 않고 수평적인 유익으로 사람들을 꾀려는 전도자들이 참 많다. 수직적 갈망을 깊이 느낄 만큼 익은 자들에게 다가가 그 갈망을 건드려야 할 텐데 많은 전도자가 수평적인 방법에 빠져 있다"(276).
오랫 동안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이슈는 전도, 부흥이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온 한 청년은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이며, 선교가 사명의 전부라고 주장하며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복음 전도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140).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은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발언도 하십니다. "지구 상에서 하나님이 위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약속해 주신 곳은 단 한 곳뿐이다. 그곳은 바로 교회다. (...) 영광은 심지어 선교 기관이나 '믿음의 가정'에도 약속되지 않았다. 영원, 초월, 임재, 영광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에만 약속된 것이다"(114).
<버티컬 처치>는 이러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모든 교회에 수직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평적 모델을 버리고 수직적 교회를 세우기 위한 4가지 기둥을 제시하는데, 온 존재로 드리는 영적 예배, 변증 없는 설교, 담대한 복음 선포(전도), 실제적인 기도가 그것입니다. 핵심은 전도(영혼구원)이 우선 순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가 우선이라는 것, 자기계발서와 같이 사람들 입맛에 맛게 변질된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 제발 믿어달라고 구걸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라는 것, 수직적 교회의 처음과 끝은 기도이니, 생각만 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늘 기도의 자리에 가까이 하고 있지만, 진짜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은 열망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왜 현대 교회가 이처럼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지 깨달으며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였습니다. <버티컬 처치>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의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같은 팀 동역자들, 우리 교회 사역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한 권씩 선물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현주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교회를 위해 우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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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평생 매년 52주 내내 이것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큐티나 기독교 서적, 공동체, 소그룹 활동, 봉사 활동은 전혀 무의미하다(p.19)." -
당신의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교회가 되게 하라.
어린 시절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로 결심한 이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체험은 대부분 수련회를 통해서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체험은 강도사 시절에 경험했던 경험이었는데, 이 역시 장년들을 위한 수련회에서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수련회야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은 청년부에 올라가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유를 저는 수련회에서 선포되는 원초적인 복음에서 찾았습니다. 죄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과 회개의 촉구, 하나님과의 만남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2박 3일, 또는 3박 4일 동안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까지도 이러한 수련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교회가 수련회라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만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에게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는 매 주일의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하는 곳인데 저는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했던 수련회에서의 그 강렬한 경험 때문에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와 수련회에 가서 드리는 예배를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커다란 오류에 갇혀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주 교회로 달려와 문 앞에서 줄을 섰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마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임재를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p.23)." 그런데 저는 이러한 모습을 저희 교회에서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청소년부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했던 주바라기 선교회의 수련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참석할 때마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2박 3일의 일정 가운데 마지막 저녁 예배를 앞 둔 시점이 될 때마다 가장 앞 자리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저녁도 굶은 채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저녁도 굶고 두 시간 가까이를 예배 장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은혜 받고자 하는 열망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교회에서는,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시간에 그와 같은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바로 저와 같은 목회자의 선입견과 더불어 일반 성도들의 선입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련회와 같이 특별히 준비된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라는 선입견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이 있다면, 그 선입견을 바꾸면 될 일입니다. 매 주일의 예배를 수련회를 준비하듯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도 간단히 정리하면 그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을 드러내는 타협없는 메시지, 그분만을 높여 드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뜨거운 기도, 그것만 준비되면 주일의 예배가 수련회의 예배보다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교회에서 드리는 매 주일의 예배는 그와 같이 준비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목회자들의 패배주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예배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교회의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한계에 대한 낙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과 그러한 예배의 방향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그러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 있다면 극복 못할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에배가 어떠한 예배인지 경험해 본 바가 없지 않습니다. 찬양 가운데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해 본 일도 적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선포 이후에 이어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경험도 있고, 청소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그렇게 인도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목사가 된 이후로는 그런 예배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그 덕분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바로 예배의 방향성을 잘못 잡고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인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설교해 왔던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찬양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장년 성도들로 인해 찬송가 외에 다른 찬양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예배의 분위기를 경직된 모습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슬로우가 욕구의 다섯 단계 위에 영적인 욕구를 추가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나, 예배 기획에 대한 담임목사의 책임에 대한 알게 된 것이나, 고구마 전도 이론을 연상케 하는 풋사과 이론을 알게 된 것이나, '확신에 찬 설교'라던가 '부르짖는 기도'와 같은 귀한 도서를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커다란 유익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저희 교회의 예배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야만 한다는 긴박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수련회에 맡기고 어떻게 해서든 성도들을 수련회에 데리고 가려 하기보다, 매 주일의 에배 가운데 수련회에서와 같은 예배를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앞으로는 절대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제가 인도했던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는 그런 예배를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다시금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 날이 어서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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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것 그것이 본질이고 그것이 예배이고, 그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은 삶의 주인이 누구라고 이야기하나?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이 찬양을 부르면서 진정으로 내가 주인 삼는 분은 누구이고, 내가 주인 삼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교회에 위기가 온 시대라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진 본질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진짜 교회라면, 우리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자문해야될 질문이며, 대답해야 될 근본적 사항이다. 지금의 교회와 지금의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가장 큰 심각성에 대해 본인은 단 한 단어로 말하고 싶다. 착각!! 착각이 지금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점이며, 위기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점이, 위기가 착각이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버티컬처치>의 저자는 그 착각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예배의 처소가 있고, 예배의 형식은 있으나,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회.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예배의 모습은 있으나, 예배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성도. 이들에게 <버티컬처치>는 안타까운 호소와 동시에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교회는 뭐든 하나님과 그 아들 께 영광이 되는 것. 예배가 되는 것. 영광을 임하게 만드는 것을 최우선사항으로 삼아야 한다. 매사에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까? 이 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영광을 떠나가게 만든다.(p.144 본문 중에서)」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우선 삼아야 한다. 또는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당신 '너무도 당연한거 아닌가?'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하지 않다! 그렇게 대답하는 당신이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대답하는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된 교회가 되고 있지 않다면, 그 대답은 절대로 당연한 것이 될 수 없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복음으로 돌아가자. 처음으로 돌아가자. 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는 모르고 지내왔다. 정말 착각 속에 빠져서 신앙생활이라는 모습만 유지해 왔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모습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 살아있는 교회이며, 본질이 살아있는 성도이고, 그것이 <버티컬처치>의 저자가 호소하는 중요한 메시지인 것이다. 어떠한가? 당신의 교회는 본질이 살아있는가? 당신의 삶은 본질이 살아있는가? <버티컬처치>를 통해 다시한 번 재점검하고, <버티컬처치>의 방향으로 지금 항해의 시작을 다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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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세속화의 문제일 것이다. 세상의 것들이 너무나 많이 들어와서 합리적이고, 세상의 것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세상을 흉내 낸다는 것이다. 경영기법, 마케팅, 심리, 긍정 등 많은 것들이 교회 곳곳에 숨어 들어와서 무언가 되어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이 있겠지만 오늘날 가장 큰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 속에서 나타나는 능력을 잘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교회 안에서 기적들이, 불치병들이 치료되어지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찬양과 예배와 기도를 할 때에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런 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귀에 듣기에는 좋다. 무언가 세련되어지고, 화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강력한 하나님의 초월성과 임재의 이런 부분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추락하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와 능력의 부재가 원인이 아니겠는가 이런 시대에 버티컬 처치 같은 책들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그래 맞아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날 성도와 교회와 목회자들이 갈망해야 하고, 사모해하고, 열심을 다해서 찾아야 할 부분들이 어떤 부분인지를 너무나 명확하고도,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수평적인 목회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안으로 수평적인 목회가 아닌 수직적 목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벅찬 감격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되어진다. 성경에도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처럼 버티컬 목회 즉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목회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찾도록 도와준다. 버티컬 처치는 전반부는 수평적 모델에서 수직적 교회로 초점을 옮겨야하는 교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수직적 교회의 우선사항과 그것을 무시한 결과를 설명한 뒤 후반부에서는 수직적 교회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 책 안에는 우리 교회의 수직성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질문지가 들어 있어서 지금 우리 교회의 현주소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수직적 교회로 세워서 우리 가운데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고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저자는 결론으로 이제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기로 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이상 부산물로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얻어도 좋고 얻지 못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다. 수직적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주된 목표로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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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컬 처치 – Paul 진짜 교회를 찾기에 성도들은 목마른 사슴이 된 것 같아 보인다. 지역교회의 성도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 그 곳에 좋은 교회를 추천해달라고 하는 경우를 최근 들어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이유는 좋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좋지 않은 즉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사데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티컬 처치 즉 수평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교회를 꿈꾸고 추구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수직적인 교회를 향한 간절한 목마름을 해결해나가고 있는 교회 중에 한 교회를 우리는 이 책 “버티컬 처치”를 통해서 미국의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께서 담임하고 있는 하비스트바이블교회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교회가 인간의 중심이 되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향한 간절한 노력들과 주님이 맺게하여 주신 열매들의 보고가 이 책에 담겨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본체로 오셨다. 그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 성도의 참된 영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교회들의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 가운데 십자가의 복음이 상실되는 것을 보게 된다. 고난 없는 영광만이 선포되고, 회심 없는 구원만이 외쳐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좋은 교회를 향해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버티컬 처치”를 통해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과 열망 앞에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하는 부류의 교회성장학 책이 아니다. “우리교회를 본 받아서 너희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소위 얘기하는 이렇게 부흥하라”고 자랑하는 책도 결코 아니다. 오직 지난 교회의 걸음걸음은 주님을 향한 가시밭길이었고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고 부끄럽지만 주님이 하신 것들을 나누고 싶어 하는 책이다.
특별히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 저자인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님의 설교관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읽고 있는 가운데 책 204쪽에서는 정말로 공감이 되는 내용이 있었다. “성경적인 설교는 노력을 요하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그래서 역시 중요하지만 노력을 덜 요하는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만든다. 참된 설교를 전하려면 갈등을 해결하고 죄를 자복하고 나서 오직 설교에만 집중해야 한다. 설교를 망치기는 너무 쉽고 제대로 하기는 너무도 어렵다.”특별히 마지막 문장 “설교를 망치기는 너무 쉽고 제대로 하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이 문장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정말 가감 없이 전달하는 전달자이다. 그러나 때로는 쉽게 가고 싶고 인기와 세상 명예를 받고 싶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마음 중심의 외침을 듣고 있자면 ‘죄’와 ‘회개’ ‘십자가의 구원’과 ‘보혈의 용서’를 외면하고 싶고, ‘성공’ ‘출세’ ‘기도 응답’이라는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주제를 재밌게 다루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버티컬 처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도전한다. 바로 성경의 말씀을 변증 없이 설교하라고 말이다. 이 책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마지막 때에 주님께 칭찬받고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길 사모하는 이들에게 귀한 조언자와 길동무가 되어 줄 것이다. 역사의 대세가 넓은 길로 갈지라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좁은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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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지 않는 현실앞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로서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교회일까 고민한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인지를 늘 묻는다.
이 책은 제임스 맥도널드가 섬기는 하비스트바이블교회의 이야기이다. 이 교회는 '버티컬 처치' 즉 수직적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제임스 맥도널드는 교회가 무엇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교회만이 제공할 수 있는 색다르고, 심지어 더 장엄하기까지 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다.'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고, 평생 매년 52주 내내 이것을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교회에 참된 모델인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를 찾고 있었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보간 25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주심에 감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자신이 있음을 알고 모든 삶과 사역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고 하면서 복음의 경이와 위력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복음으로 구체화했으며 복음으로만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남을 말한다.
저자는 교회의 정신에 대해서 말한다. 시대의 정신은 교회의 정신이 되어진다는 것으로 우리의 교회 영적 실태를 점검하도록 한다. 우리의 교회가 우상숭배에 젖어들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가 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정신인 버티컬 처치를 이루어가는 네 기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버티컬 처치는 교회의 핵심인 예배, 설교, 복음, 기도가 수직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과 열정을 다하여 드리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귀한 부분이다.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고 살았다. 수평적 변화에 민감하고 관계적 부분에 초점을 맞춰 목회한 현장에 있었다. 하나님은 어떤 틀에 얽매여 드려진 예배, 기도 형태들을 원하시지 않다는 이 책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깊이 돌이켜 보았다. 예배와 기도, 말씀과 복음이 변질되지 않는 교회를 찾기가 어렵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뒤에 성숙과 열매가 없는 나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았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님의 증인 역할을 성심을 다하여 했어야 하나 여러가지 나의 삶에 일로 합리화했던 것이 부끄럽다.
이 책을 통해 수직적 교회의 특성과 우리가 속한 교회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었다. 비교의 결과 우리가 잘못 알고 잘못 실천했던 하나님을 향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교회와 내가 앞으로 추구하며 나아가야 할 분명한 대안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되어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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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이 됐고, 20%의 국민이 크리스천이고, 40%의 국회의원이 크리스천이다. 국내 어느 지역에 가든 붉은 십자가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교회는 넘쳐나지만,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으며, 교회를 둘러싼 듣기에도 민망한 사건사고들로 인해 교회 안팎은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란 무엇인가? 왜 젊은이들이 교회생활에 흥미를 잃었는가? 내가 다니고 싶은 교회,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교회란 존재하는가? 힘을 보태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 하비스트바이블교회의 제임스 맥도널드 목사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목회 패러다임의 대전환. 교회와 성도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물들이기는커녕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세상 문화에 물들어 있음을 보고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를 ‘인간 중심의 수평적 목회’로 진단하고, 거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유일한 대안을 담은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는 고난의 현장을 회피한 채 크고 화려한 승리의 모습만을 보여주려 했다. 교회는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피조물과 함께 진정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순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 시대는 ‘진정한 교회’에 목마르다. 이것은 곧 평생 교회를 다니는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자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고민일 것이다. ‘넓은 길로 가는 우리 시대 교회들’에게 던지는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들! 이 시대 교회와 목회자들에 약이 되는 쓴소리를 외친다. 저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한 25년간의 현장을 책에서 숨김없이 공개했다. 이를 통해 교회가 왜 수직적이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수직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목회자들은 아무런 어려움이나 고통 없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지난 25년은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재정적인 어려움과 동역자들로부터 등 돌림을 당했고, 본인의 전립선암 투병, 사랑하는 아들이 당한 큰 교통사고,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어머니의 죽음 등 수많은 연단을 통과했다. 나는 그동안 ‘왜 나만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고 힘든 목회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발부둥 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음 전도를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시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오류다.”(p.140) 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건강과 부를 얻는다는 기복 신앙을 전하는 교회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이 책을 통해서 교회의 최우선사항이 무엇이고, 우리가 왜 존재하며, 어떻게 해야 세상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을 위해 사명으로 여기는 목회자들과 일반 신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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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교회가 이제는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떠나 사람이 신의 자리에 등극한 교회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얼마전 지방 어느 교회 담임 목사에게 당회에서 십자가만 전하지 말고 성공신학 번영신학류를 다뤄주기를 강권하며 이에 불응시에는 사임을 해주십사라는 요청받았음을 들은 바 있다 서구권 교회의 일이 이제 한국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세태 속에 교회이기를 스스로 포기했으면서 교회라 주장하는 부류들에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돌아보라 강권하고 있다 이미도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곳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라 아무리 우겨본들 소용이 없지 않은가 우리의 영적 주소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삼고 움직여야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될 것이다 이미도 수많은 교회 갱신과 개혁을 말하는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 그 책들에 기술된 내용을 모르는가 아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은 붙어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주인되지 못하는 이가봇 교회임을 불인정함으로 인해 무엇을 해도 열매가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기초 기본인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돌아갈 때 하나님의 영광 충만한 교회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 은혜로 풍성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며 열매 맺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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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최우선사항으로 삼지 않는 것은 최악의 오류다. 하지만 수평적인 교회 안에서는 이 오류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수평적인 교회는 그저 잃은 양을 찾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교회는 이러한 수평적인 사역으로 수적인 증가를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재난이다"(p.142) "그런 메시지는 이슬람교 사원에서도 들을 수 있어요."(p.228)
세상문화에 찌들어 버린교회,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할망정, 세상보다 더 사악해진 교회..
최근 수많은 뉴스 기사들에서 변질된 교회,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말도 아니게 실추되어 버렸다. 기독교인이라는게 부끄러울 때도 있을 정도이니 정말, 이래도 되나 싶다.
'버티컬' 이라는 말은 '수직의' 라는 뜻이다. 저자는 '버티컬'이란 단어를 '위'를 바라보는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정의한다. 이것이 현대교회가 잊어버린 관계라는 것이다. 수평적인 교인들, 성도들간의 관계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교회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린교회, 목회자, 성도들에게 따끔한 질책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목회자들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가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part로 나뉜다. 첫번째 part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가봇!' -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교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두번째 part에서는 수직적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네 기둥을 건축할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예배'와 '설교', '전도','기도' 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엄청난 위기에 처한것이 분명하다.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대형교회들이 무너져가고 있고, 작은 교회들은 문을 닫고 있다. 상황이 정말 말이 아니다.
이러한 때에 '버티컬 처치'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책이다.
제임스 맥도널드가 수직적 교회를 추구하며 세운 교회가 바로 '미국 하비스트바이블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는 현재 시카고에서 13000명이 모이는 멀티사이트교회로 성장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성공담'이 아닌 현실적인 고뇌와 고민이 그대로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성장을 목표로 두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끌어오는데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면 맥도널드목사는 하나님께 눈을 돌렸다. 그의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현재상황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인 교회가 언제부터인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사사기 말씀처럼 되어버렸다. 교회의 최대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교회. 그래서 수직적인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이러한 교회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있는 달콤한 유혹들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정말 궁금했다. 저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에서 출발하고 있다.
핵심과 부산물이 바뀐교회. 하나님의 영광보다 전도활동을 주된 산물로 여기는 교회에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부산물로 얻을 생각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양떼를 치는 것이 아니다(p.314)"
이제 우리도 돌아가야 한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돌아가지 않는다면 안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목회자로서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다. 교회의 문제는 결국 목회자들의 문제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입맞에 맞추다보니 교회의 타락과 변질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티컬처치'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회를 섬기는 행복한 목회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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