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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태반에 서울에 모여 사는 시대다. 북적이는 분위기가 좋다가도 이따금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곤 놀라기도 한다. 언제부터 서울이 이토록 갑갑한 장소가 되었던가. 인간에게 주어진 생만 놓고 본다면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서울이 수도이던 시절만을 경험했을 터다. 다만 그 명칭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격변의 시대였으니 말이다. 경성이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을 입에 담아본다. 착착 달라붙어야 할 텐데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한문에 대한 거리감 때문일 수도 있겠고, 지난 시간에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되었건 서울의 옛 이름이 경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절대적으로 가난했다지만 그래도 경성은 번화했다. 굳이 다른 도시와 비교를 하자면 그랬다. 가난하다고 꿈도 꾸지 말라는 건 폭력이다. 그래서 경성에 터를 꾸린 사람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희망을 지녔다. 바람직한 경우도 있었지만 헛된 욕망일 때도 많았다.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오늘날을 이루었다고 해석한다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노리는 게 인간이다. 암울한 시대에는 차라리 이름 없이 살다가는 게 속 편하다는 말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높이 올라가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염상섭이다. 그의 탄생 시기는 내가 인간이 태어나서는 안 된다 정의내리는 바로 그 무렵이다. 1897년. 하나의 나라가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후로는 식민지, 전쟁, 독재 등 악재가 이어진다. 태어난 이상 이 모든 걸 견디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꽤나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어떤 학문을 배울 것인가를 놓고 고심한다.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럼으로써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좇아 일본행을 하기도 한다. 훗날 만주에서도 머물고, 말년에는 가난과도 씨름했던 그다. 안정적인 삶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만은 흔들림이 없다. 무엇을 글에 담고자 결심을 해 풀어내건 그 글의 배경은 경성이었고 서울이었다. 경성이 서울이 되기까지의 모습을 사진보다도 어쩌면 더욱 실제같이 담아낸 것이 그의 글이었기에, 그가 감당해야만 했던 혹독한 운명과는 별개로 그의 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오늘날 서울은 각종 야욕의 집합소다. 이보다 더 복잡할 순 없겠다 싶은 구조다 이른바 제로(zero) 위에 세워졌다. 과거의 것들은 개발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철저히 파괴된 탓이다. 기존의 것이 물러나고 새로운 것이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던 무렵 염상섭에 의해 빚어진 인물들은 경성 거리를 거닌다. 그들은 시대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흡수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이상을 좇으면서도 물질을 외면치 못한다. 개개인의 이름이야 다르겠으나,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오늘날에도 내 주변에서 쉬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어쩌면 타인 아닌 내 모습 또한 소설 속에서 찾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시대가 흘렀고 겉모습만큼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변화했다. 그렇지만 정작 변화해야 할 사람은 어느 한 시점에 시간이 멎은 것마냥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닐지 싶었다. 각 작품을 따르는 전개는 한 편의 여행과도 같았다. 압축된 시간을 등장인물의 손을 잡고 통과하면서 나는 과연 지금 어디 즈음에 서 있는가를 묻게 됐다. 온갖 감정이 융합된 서울이라는 장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자신할 수 있는가! 명절이면 찾아갈 고향이 없어 시무룩하기 바빴던 서울촌놈에게 염상섭이라는 작가는 든든한 빽(!)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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