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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월탄의 단편 못지 않게 주목할 만한 내용은, 말미에 실린 윤병로 선생의 평론(작가론)인데, 그저 대중 역사 소설 작가로 이해되기 쉬운 월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평론가들의 이런 도움은 때때로 꼭 필요하던데요, 예를 들어 후대인들에게 완전히 대중 영합 문학으로 인상이 굳어 버린 정비석의 경우, 등단 초기 <성황당> 등으로 얼마나 높은 순수문학적 성취를 보였는지는 해당 시대에 정통한 분이 작가론으로 풀어 줘야 우리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물론 투르게네프의 그 중편이 아닙니다. 간접으로 월탄 자신의 아버지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로웠구요. 일반에게 잘 안 알려진(적어도, 우리 당대인이 잘 모르는) 단편이 바로 <황진이의 역천>입니다. 황진이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듯), 월탄이 그녀를 소재로 이런 멋진 단편을 썼다는 건 모르는 이가 많을 줄 아는데요.
보면..... 모 대사님(법명 생략)은 결국 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와 동침하고 맙니다. 이때 대사님이 외치는 말이 걸작인데,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로구나!" 가 여기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을 정돕니다. 근데 독자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동침한 다음날 대사가 진이더러 같이 있어달라고 애걸하는 장면이 잠시 나옵니다(그냥 민담과는 여기서 차이가 나죠). 월탄은 아마 불교계의 이미지 실추, 혹은 주제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간략하게 서술하고만 넘어가는데, 작가가 의도한 바는 모르겠지만 이게 더 오히려 독자에게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다 아는 대로 화담 서경덕은 진이에 대해 데면데면한 태도로 일관하는 듯하면서, "네 속마음이 뭔지 다 안다"는 듯 그녀를 슬슬 달래가며 자신만의 깊은 도를 가르쳐 주기도 하는데, 뭘 배울 마음이 전혀 없었던 그녀는 뜻하지 않게 뭔가에 눈에 뜨이는 듯하여 마침내 "제자"로서 큰 공경의 예까지 표하며 자리를 물러납니다. 이건 선초 민중들에게 끼치는 영향 면에서 불교가 쇠락하고 유가가 서서히 세를 점하는 사회 변화상을 상징하는 의의가 있죠.
작품은 이후 몇 가지 에피소드가 덧붙여지는데, 기생 진이가 앞에서 모 대사에게 저지른 못된 짓과 더불어 나중의 이런 염세적, 경세적 동기에서 행한 일들 때문에 "역천"이란 제목이 붙었겠습니다.
월탄의 장편 <금삼의 피>에 보면 처음 제안대군의 노비였던 장녹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역시 민담 근거), 그녀가 대군을 유혹하자(사실은 성불구자가 아닌지 알려는 의도), "이게 무어냐 어허 더러운지고." 라며 뿌리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한참 전에 쓰여진 이 단편의 이 장면과 비슷합니다. 불구자는커녕 엄청 여건이 좋은 분임에도 그런 식으로 금욕의 삶을 사는 걸 알고 진이는 감화를 받지만, (시대적으로 별로 많이 안 떨어진) 녹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미친 삶을 살다 천벌을 받았으니, "역천"이란 말은 이런 탕녀에게나 잘 어울리죠.
나머지 두 단편에 대해서는 다음 주 다른 책 독후감에다 여담처럼(그러나 주제유관으로) 그 느낌을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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