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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북
책 제목 : 흐르는 북 -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저자 : 최일남 원작 / 백석봉 그림 출판사 : 이가서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고르는 일이란 신이 나는 일이다. 만화방에 찾아온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말 만화방에 자주 가서, 만화책들을 왕창 빌려와 하루 종일 집안에서 만화책을 읽으면서 보내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읽고 싶은 책들 보다는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졌으며, 독서보다는 다른 일들이 더 많아져서, 그것들을 처리하려면 하루 종일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만화책을 몇 권 소장해 놓았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읽을 수는 없지만, 간간히 읽을 수는 있도록 말이다. 흐르는 북은, 만화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내가 최일남의 흐르는 북을 만난 것은, 수능준비를 하면서 문제에서 보았다. 나는 매번 수능문제를 풀 때마다 문학작품을 문제로 대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니까 문제로만 보아야 하는데, 나는 작품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위해서 짧게 잘린 그 글을 나는 더 읽고 싶은 감정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수능을 잘 못 치렀지만, 어느 날에 나는 다시 문제에서 보았던 최일남의 흐르는 북을 만나게 되었다. 만화책으로 말이다. 만화라는 것은, 접근하기가 용이하고, 아무리 어려운 문학이라고 하더라도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 깊이에 대해서는 원작을 100% 재연해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여기에는 다섯 명이 등장한 가족 이야기다. 민 노인과 아들(민대찬), 며느리(송여사), 손자(성규), 손녀(수경)의 이야기다. 만약 내가 민대찬이었다면, 이라고 나는 그 때에도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민대찬과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아니, 같이 살기조차 싫었을 것이다. 오로지 북 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버려두고 가버린 아버지를 어떻게 용서하는가 말이다. 그것도 너무나 힘들었던 그 시기를 말이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앙금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끝이 나도록 그 갈등은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할 인물은 손자 민성규이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민 노인이 품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만, 그것을 가지고서 개입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이 이어지지 않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인 것이다. 북을 치는 민 노인은, 북을 치느라 아들과 부인을 버리고 갔다. 그 사이에 아들은 자수성가하여 성공하였고, 떠돌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와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그 갈등의 골이 너무나 깊은지라, 아들은 민 노인의 북을 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 한다. 그러나, 손자가 자신의 대학교 축제 때, 북을 쳐주지 않겠냐고 얘기하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그것이 입소문을 타고서 며느리의 귀에 들어가고, 결국 아들 민대찬에게도 그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인 민성규에게 화를 낸다. 아들은 자식 민성규에게 자신이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서 불만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들은 그건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민대찬은 아들 성규에게 그러면 너는 지금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는 거냐고 따진다. 하지만, 아들 성규는, 본래 자기는 할아버지와 갈등이 없었는데, 무슨 화해를 하냐며 묻는다. 갈등은 끝이 난 것인데, 민대찬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갈등이 이어져 아예 연을 끊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 민대찬의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등은 끝이 났고, 민성규는 할아버지를 좋게 받아들인다. 갈등은 없고, 새로운 만남일 뿐이다. 그 이후에, 민성규는 대모의 행렬에 붙잡힌다. 민 노인은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서 일어났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과 손자가 닮은 것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북을 찢기라도 할 듯이 세게 두드린다. 우리는 대체로 세대 간의 갈등이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쉽게 그 세대 간의 갈등을 무시하고서 새로운 세대가 윗세대와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갈등이 무엇인지 안 이후에는 말이다. 모른다면, 몰라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갈등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는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고 절단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글에서 민성규가 보여준 의미는 크다. 갈등은 그 세대에서 끝이 나고, 새로운 세대에는 쾌적한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것 말이다. 수능을 준비할 때 만난 문학작품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압박감과 함께 나의 뇌 창고에 저장되어 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그것을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아무래도, 어느 작품을 문제지로만 본다는 것은 작가가 슬퍼할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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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 문학은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본 학생이라면
교과서라든가 소설책으로 나온 한국문학(현대,고전통합)을 읽는다는것이
용어도 생소하고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만화로 한국문학을 공부하는것이 이해도 쉽고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