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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며 ‘한국의 글쟁이들’에 저자가 나오지 않았었나 생각이 되어 펼쳐보니 이 책의 작가 허균을 소개한 앞자락에 ‘옛 사람 마음을 읽어 들려주다’라 나왔다. 오래전 읽은 ‘한국인의 미의식’ 에서는 ‘어쩌면 조상들의 자취를 이리 섬세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그 글솜씨가 참 부러웠다. 이번 다시 읽으며 조상의 생활 방식에 흠집을 내지 못하여 안달하는 허접스런 후손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고 있구나. 느꼈지만 그들은 미신이니 우상숭배니 할 게 뻔하다. 머리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논리에 밀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일어가고 있다. -중략 세계화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바람직한 길은 자기 개성을 버리고 동화되는 것이 아닌 개성을 통해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라 하였다. 우리의 자연과 습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생활을 22개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처음 길을 열어가며, ‘불도저나 굴착기로 땅을 파헤쳐 만든 길 이전의 길은 자연 지세에 순응하고 타협하며 만들어진 길로 옛길은 인간이 자연 속에 남긴 가장 겸손한 발자취라 말한다. 서낭당나무를 설명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천산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어서 우주의 중심으로 이어지고 우주목의 의미를 지닌다 했다. 또한 민간신앙을 두고 민족의 신, 마을의 신을 모시고 존경하며 집단의식을 가지는 것은 사회적 협동체제를 유지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는 점을 잊지 말자 했다. 그 한 구절을 읽어가며 숙연해 짐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며 먼 옛 선현들의 자취를 더듬는 일에 뛰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어머니의 삶이 깃든 공간의 기술에서 어찌 그 많은 옹기그릇의 이름을 열거하며, ‘한국인은 원래 잘 생긴 대견스럽게 여긴다. 잘 생겼다는 것은 예쁘거나 교묘하다는 것과 달라서, 도량과 덕이 있어 보이며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을 뜻한다. 오지그릇은 능숙하지 않아도 바로 보면 비길 데 없는 태연하고도 은근한 맛이 있으며,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면서도 묵직한 그 무엇이 깊은 곳에 갈무리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조금이라도 민족 정서를 지녔다면 무릎을 칠 표현이 아닐까? ‘여백이라는 부분에서 그림의 여백은 관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음악 속의 묵음은 더 많은 소리를 함축하고 있다. 춤 속의 무 동작은 행동의 준비와 압축의 기초위에 서 있다. 한국인이 여백의 미를 창조해 내고 그것을 생활 속에 향유해 왔다는 것은 한국인이 모든 사상을 관조와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얼마나 명쾌한 설명인가? 소나무와 선현의 생각에서 북송의 곽희의 ‘그림은 소리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라는 표현이나 소동파의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는 우리의; 민화나 세한도 등을 통하여 그 의미를 새길 수 있다. 바로 옛사람들은 사물을 보되 외형이나 현상보다 내용과 의미에 더 가치를 두었다는 평가가 와 닿는다. 그 밖에도 우리와 생활을 함께해온 건축, 조각, 문양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인간과 조화를 이루었는지를 저자의 해박한 지식으로 펼치는데 읽는 내내 한국인의 미의식을 명상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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