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이 매혹적인 이유는 서술의 방식에 있다. 지은이는 담담하게 마사이의 삶의 방식 속에서 자신이 사는 이야기를 써놓았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철학, 인문, 문학 그리고 수필, 전공서 등. 그러나 이 책의 기술 방법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래서 특이하다. 이 책은 독자를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그의 삶의 방식은 시골길을 걷는 듯 하다. 단순한 보폭을 유지하며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한가롭게 바라보며 받아들인다. 치열하게 걸었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에게 여유를 주기를 잊지 않는다. 어떠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한다 라든가 내가 하는 행동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라는 꼬리말이 붙어있지 않다. 나는 그가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 집으로 향하는 길을 묘사한 대목에서 깊이 감동했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은 생각으로도 쉽지 않다. 물론 이면을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부족에 대한 사랑 같은 감정이 있겠지만 그는 그런 것을 서술하지 않는다. 그는 인생을 차분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갈등하지 않는다. 그의 정신과 육체는 자연에 순응하며 현실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의 글에서 '내가 집으로 간 이유는 이것이것 때문이다. 가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을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저버릴 수 없었다.' 라는 자신 만의 문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복잡다단한 사유를 하지 않는다. 가장 원시적인 사회와 가장 문명화된 사회를 오가면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문화적 상대성이나 절대성에 대해서 기술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이 책은 그래서, 어찌보면 깨달은 이의 행적을 적은 것 같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깊이있는 내용에서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배움의 중요성이나 역경을 헤쳐나가는 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마사이이라는 부족에 대한 특징 같은 것에 중점을 둘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인간이 마땅히 그래야하는 근본에 대한 것을 조금이나마 맛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
| 이 책은 누굴 위해 쓰여졌든 간에, 또는 그러한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명백한 동화입니다. 케냐의 유목민 부족에서 태어난 아이 이야기는 고도화 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책 표지를 거창하게 장식하고 있는 ''하버드''라는 단어는 빼고 생각하더라도 이 책은 아이의 성장과 성공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얄팍한 두께에 큰 글씨까지, 이 책을 동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이 책은 굉장히 의미있는 동화가 될 것 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행간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지겠죠.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사이의 전사 레마솔라이는 자라면서 선명히 다른 두개의 문화를 체험합니다. 케냐 정부가 시행하는 ''한 가정 한 자녀 학교보내기'' 정책 덕분이었죠. 유목민의 삶과 선교사의 학교(더 나아가 미국 생활)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한국에 살던 사람이 일본에 가서 사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이질감을 주었을 것 입니다. 이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레마솔라이가 두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본인은 언제나 마사이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우위에 두었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 하거든요. 오히려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은 독자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저는 그가 학교와 집을 오가는 동안에 몇 번이나 자본주의 라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미 몸집이 커진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세요. 조지프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해버리지 않았습니까. 자본이 닿지 않은 그들의 문화는 독특하고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 교육을 앞세워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어요. 선교사들이 처음에 학교에 온 레마솔라이에게 무엇을 시키고 무엇을 주었는지 보세요. 우선 그가 입고 있던 전통의상을 벗기고 사탕을 주었습니다. 그 자신도 한동안 당분에 중독되어 선생님이 나오시기도 전에 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고백을 하잖아요. 설탕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그 책을 읽는 순간에, 제 앞에도 커피가 담겼던 종이컵이 놓여있었어요. 설탕에 이끌려서 일회용품을 소비하는 패턴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요. 자본이라는 것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을 필요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그것에 중독시켜 노예로 만듭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만큼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지구 파괴에 동원하죠. 저는 제도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교육이라는 것이 저에게 정당한 것을 가르쳤는지는 의심이 갑니다. 자본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규칙을 십수년 동안 배워온 것은 아닐까요. 세상에는 많은 규칙들이 있고, 한 해가 지날 떄마다 더 복잡한 규칙들이 추가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책상 머리에 앉아 복잡한 규칙들을 암기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그 수많은 규칙들이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이건 교육을 받았고, 자본의 병폐를 함께 앓고 있긴 하지만 혜택을 누릴만큼 누려본 사람의 불평에 지나지 않겠죠. 하지만 ''미개하다''는 단어가 가진 어마어마한 편견과 자본이 침투해들어가기 위해 그 ''미개함''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제가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의심하게 됩니다. 미개한 부족과 문명화 된 우리 중에서 누가 더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지, 누가 더 공격적이며 이 시스템에서조차 타자화되어 살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니까요. 저는 이 책이 성취에 관한 이야기로만 인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취와 성공이라는 단어에 매몰되면 세계를 두가지로 쪼개는 일에만 매진하기 쉽습니다. 이 동화가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니까요. |
| 새벽에 단숨에 읽은 이 책은 케냐를 구성하는 여러 부족 중 마사이 부족의 일원인 레마솔라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문체나 구성, 분량등 여러 면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힘든 상황을 이렇게 극복했다, 나는 대단하다' 식의 영웅전 읽는 듯한 느낌의 자서전류의 책을 나는 싫어한다. 특히 고승덕 변호사의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책이 그 절정이어서 다 읽고 났을 때 상대적 자괴감을 들게 만들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고생하면 못이룰 것은 없다는 것인데, 이 말은 죽도록 고생하며 노력하였는데도 실패하였거나 실패하고 있는 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의 타고난 능력과 행운도 무시할 수 없음에도 그 책은 노력 그 자체만을 극도로 부각시켜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자신의 영웅 만들기를 탈피한 책이다. 홍정욱의 7막 7장과는 다른 느낌의 진솔함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자신을 수식하려는 지극히 계산적인 느낌의 다른 책과는 달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교훈(?)은 다른 책, 그러니까 '내 치즈를 누가 옮겼을까'와 '체인지 몬스터'의 그것이었다. 약해져가는 부족의 전통을 지켜가면서도 변화, 즉 현대 교육을 받아들여 자신을 만들어가는 레마솔라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며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 자신을 먼저 바꾸고 올바르게 나아가면 많은 이들이 결국 이에 따를 것이고 그것은 커다란 흐름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 레마솔라이, 그는 그런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
|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 케냐의 마사이 전사가 하버드까지 가게 된 과정을 그린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주인공 레마솔라이는 케냐의 ‘한 가정에서 한 아이는 학교를 보내야한다’는 방침아래 유목민으로서는 드물에 학교를 접하게 된다 유목인이기 때문에 정착된 집이 없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같은 문명권 아래의 문화적 충돌은 그에게 열등감이 아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해와 모든 고난과 시련에 대한 긍정화가 지금의 그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은 힘이었지 않나 싶다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은 다음에 닥칠 도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그는 늘 마사이 전사로서의 전통과 신념을 확고히 한 후 새로운 문명을 접하기에 뿌리 깊은 그의 영혼은 흔들리지 않으며 또한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는 근원이 된다 조그만 실패나 열등감, 문화적 차이에도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그의 존재는 사자보다 강렬하고 우렁차다 옆에 있으면 긍정을 물들이는 사람! 지금은 미국의 사립학교 교사로 성장했지만 일 년의 반은 고향인 케냐로 돌아가 다시 마사이 전사가 된다고 하는 그는 부족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스스로 자존하면서 전통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소수민족의 긍지와 아직도 이 사회체제는 그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과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현명한 청년의 이야기는 기본을 잃고 허방을 밟는 허약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낳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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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지하철 오가며 짬짬이 읽다가 어제는 '집게아저씨'의 이야기를 읽었다. 저녁 9시이후에는 가끔씩 머리감기 싫어하는 유치원 딸아이에게 읽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용은 마사이족 공동체에는 아이들의 나쁜 버릇을 혼내주는 무서운 집게아저씨가 있다.아이가 큰 잘못을 하면 부모는 집게아저씨가 아이를 아프게 꼬집어도 보호해 주지 않는 것이 공동체의 약속이라 한다. 주인공 레마솔라이가 자기가 돌보던 소를 친구에게 맡기고 이웃마을 친구에게 가던 길에 집게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마시이족은 아이 혼자 이웃마을에 가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아주 위험하니까... 레마솔라이는 엄마가 이웃마을에 가서 설탕과 차를 가지고 오라했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집게아저씨는 믿지 않고 엄마에게 직접 물어 보겠다고 한다. 놀란 레마솔라이는 집게아저씨보다 먼저 엄마에게 달려가 이 모든 이야기를 다하고 제말 한번만 집게아저씨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어머니는 레마솔라이의 부탁을 들어주신다. 뒷장에 레마솔라이의 어릴적 사진과 케냐의 마사이전사들의 사진,소똥을 짓이겨 만든 집사진등이 보인다. 딸아이는 집게아저씨라는 말에 조금 무서워하는 듯 했는 데 뒷장의 사진을 재밌게 보았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너무 쉽고 유치원아이에게 읽어줘도 좋을 듯하다. 아프리카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우리 마을에도 집게아저씨가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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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선생님께서 언젠가 추천해주셔서 읽게 되었다. 쉽게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레마솔라이가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묘사되기를 기대했지만,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비중이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문화상대주의, 다원주의, 자문화중심주의에 대한 개념설명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이해를 도울것이라고 생각된다. 더불어 실화인 레마솔라이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치도 못한 낯선 세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기회와 간접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
|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읽으면 딱 맞을 수준이다. 그정도로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고, 저자의 의도가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했다는 소리다. 사진 위에 적힌 '사바나에서 하버드까지' 이런 구절은 책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왜 이런 글귀를 넣어서 책을 폄훼하는지...음 저자 조지프 레마솔라이 레쿠톤은 케냐의 육목민이다 마사이 족이라 불리우는 이 아리알 부족은 케냐에서도 최하층에 속한 계층이다. 이 부족의 삶은 공동체 생활에 가깝다. 어느정도 사적 재산을 유지하고 부족단위로 협동하는... 책은 내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캐냐 밑바닥 계층에서 이정도로 성공했다. 어린이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하면 이렇게 될 수있을 것이다. 뭐 이런 작위적인 가르침을 주지는 않는다. 그저 작가 자신의 부족 전통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뭐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하나의 의문이 떠오르는 것은 작가가 교육을 받으면서 부족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시절 부터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두개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그 문제에 대해선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으니 해답을 알 수 없고 조지프의 바램은 자기 부족의 전통적인 삶을 개선시키는 데 쓰고 싶다는 것이다. 개선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문제로 돌아와서 가정의 전통과 사회의 방향이 그다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의 삶은 어디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문득 조지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의 부족은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해는 넘어가면 땅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쪽에서 다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별 또한 낮에는 밖에 나가서 소들처럼 풀을 뜯다가 밤이 되면 집에 와서 잠을 자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고유의 신화적 사고를 그는 삶에서 체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구사회 문화도 흔들림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반면 나의 삶은 어떤가? 우리의 고유의 신화적 사고을 체득할 기회가 있었던가? 나의 부모님 세대들 또한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있었던가? 우리 고유의 문화가 무엇이고 전통이 무엇인가? 우리의 무의식적 사고는 무엇인가? 나의 뇌리에 항상 무언가 삐딱하게 응아 보고 뒤닦지 않은것 처럼 찝찝하게 남아 있었던건 이런것이 아니였을까? 무작정 과학적사고의 교육이란것을 받다가 아직 남아 있는 집단 무의식적에 접했을때 느끼는 문화적 충격. 괴리감 나와 가족과 사회가 내 머릿 속에는 아직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다. 전통적 사고를 회복하면 이런 복잡함이 사라질 수있는까? 난 항상 질문만 한다. 대게는 그렇게 흘려버린다 그러다 정말 답을 구하고 싶은 의문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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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어린아이가 쓴 글 같지만, 내용과 구성이 알차다. 소재가 다양하고 감동도 크기 때문에, 웃다가 가슴 뭉클했다가 두눈 시큰해지기 까지.. 그 만큼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레마솔라이.
아프리카 케냐 오지의 생활이 생생한 구절들..
하이에나는 탐욕스럽다. 송아지가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아, 그의 형이 놈을 바싹 추격해서 창으로 그놈의 배를 정통으로 찔렀다. 하이에나는 부상을 입고도 계속 달아났다. 달아나는 동안 내장의 일부가 떨어져 나옸다. 놈은 돌아서서 땅바닥에 내장이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기 뱃속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고 먹기 시작했다. 하이에나는 그 정도로 탐욕스럽다.
레마솔라이가 아홉살쯤 되었을때, 극심한 가뭄으로 2년간 비가 내리지 않아, 이때 레마솔라이 형이 동생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해준말.
소의 코에 송글 송글 맺혀있는 그 땀방울. 나 그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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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가축들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마사이족 사람들. 동시대 안에서 이렇게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 그렇기 때문에 논픽션이지만, 어쩌면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현실과 물질에 치여 행복의 잘못된 척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뒤돌아 보면 찾을 수 있는 한 조각의 희망을 제공해 준다. 현대 물질문명사회는 우리와는 다른 이들 마사이족의 ‘덜 문명화된’-우리의 기준일 뿐- 문화를 표면적으로 비하하고 있기도 하지만, 유목과 노래로 표현되는 자연주의의 그들 생활방식을 보면서 물질이 가려버린 인간 본질에 대한 무의식적 열망으로 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양쪽의 문화를 동시에 대변해 주는 레마솔라이는 우리 사회의 이런 이중적 심리를 충족하는 인물로서 두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문명사회의 일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가 지닌 마사이 전사로서의 자부심 또한 그런 그의 역할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파리 여행객들을 겁주는 레마솔라이의 에피소드가 바로 우리를 향한 조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내면의 열망과 동경을 낳은 무의식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레마솔라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하늘을 보세요. 얼마나 날씨가 좋습니까.”라는 작은 인사. 그것은 맹목적 물질 추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여유 있는 웃음을 짓게 하는 작은 희망의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