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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목사, 신부, 승려, 혹은 사이비 종교 교주 중 어떤 차림이든 -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설교는 한결같다. “생존하라. 그러나 살아남으려는 건 짐승도 마찬가지다. 저항하라, 이겨라. 인간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현실과 유리된 허구 세계의 총집합인 만화로 도피하면서 즐거워하던 떨거지 독자들은, 현실의 땀구멍까지 확대시킨 그의 주제에 매료되고 심지어 비분강개까지 하고야 만다. 그가 펼치는 ‘동물의 왕국’ 같은 적자생존 세계를 관조하면서 마치 세상의 관조자 겸 권력자라도 되는 양 즐거워하는 것이 작가의 무서운 함정이다. 설파하고자 하는 주제를 모른 채, 오직 도박 같이 차용된 소재의 흥미진진한 승부에 빠지다보면 결국 독자는 ‘패배자’의 길로 들어선다.
어떻게 본다면 이번 26권, 즉 도박파계록 13권의 결말은 영 허무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그 노름을 은밀한 관조자로서 살펴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예측 불가능한 승부의 전개, 그리고 그런 우연과 배반의 연속에서 가학적으로 즐기는 세상사의 부조리에 있다고 할 때, 본편에서 끝난 카지노 승부 대해서 우리는 승자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즐거워하기보다는 혀를 끗끗차면서 김빠진 사이다 같은 결말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혹평하다가도 중요한 알맹이나 핵심부품이 빠진 허전함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이 만화를 단순한 ‘도박만화’로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도박은 단지 ‘소재’일 뿐이고, 그 도박 너머에 흐르는 보편적인 사상과 원리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오히려 승부라는 말초적 즐거움으로 끝장나 환호성을 지르게 될 때, 우리는 단지 거기 등장하는 썩어빠진 인간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
26권, 도박파계록 13권은 엉성한 마무리가 아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도박이라는 ‘숫자와 확률의 마술’을 다룬 작가답게, 묵시록과 파계록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기독교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숫자인 ‘13’으로 고정시켜놓은 것이 예사롭지 않다. 13이라는 숫자에 대한 이런 집착이 단순한 미신적인 사고가 아닌 것은, “묵시록”이란 말도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고 묵시록과 파계록의 대칭이 성경의 대칭적 구성과도 흡사하거니와, 무엇보다 곳곳에 나오는 작가의 잠언은 성경구절과도 흡사하다. 저자 직필서『カイジ 箴言』(카이지의 ‘잠언’)의 존재가 이를 증거한다. 고로 이 작품의 강력한 힘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착취, 인간 심리의 생생한 고발뿐만 아니라, 마치 수리적 신비주의에 따라 건설된 제왕의 미로 같은 그 형식에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저자가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치밀한 자료조사와 성실한 연구를 통해 경전을 수놓았다는 증거는 마찬가지로 저자가 직접 저술한 본 작품의 해설서 중 하나인 『カイジ 勝つための心理鬪爭講座』(카이지의 이기기 위한 심리투쟁강좌)를 보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황제와 노예의 카드 게임으로 카이지와 리네카와가 대결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은 놀랍게도 동서고금의 역사, 특히 전사(戰史)에서 이용된 심리, 정보전에서 차용했다는 저자의 고백이 나와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질리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방대한 자료와 선명한 역사의 ‘향기’가 그 건조한 그림체 곳곳에 배어있는 덕분이고, 따라서 단순한 줄거리 연재에만 신경 쓰며 살인, 섹스 등의 말초적인 쾌감이나 선사하는 타 도박만화와 달리 독자들의 무의식까지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신화’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26권, 다시 말해 도박파계록 13권은 “불가능할 것 같은 죽음의 늪에서 성공했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던 지하에서 동료들까지 생환시킨 카이지”가 그 도박의 승리로 인한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 스스로 초심을 잃지 않은 ‘인간’임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이렇게 작가는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는 그 주제와 형식을 어설픈 척 관철하고 있다. 파계록 13권과 묵시록 1권이 데칼코마니형 ‘대칭 관계’라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카이지는 동일한 인물에게 무려 두 번이나 배신당하고, 거기에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하며, 그건 빈틈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은 즉 카이지의 변하지 않는 성품을 증거하며, 시종일관 ‘잇속’을 탐하고 결국은 나 몰라라 하는 주변 인물들의 등장도 불변의 세상섭리를 웅변한다. 이런 비교는 본권과 묵시록 13권, 파계록 1권까지 아우르면 재밌는 결과가 나온다. 이야기를 기호로 환원시켰을 때 형성되는 구조의 대칭은 흡사 동화나 신화 같은 체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진정한 ‘완결’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미해결된 인물과 사건은 그 다음 연재를 짐작케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성경” 차용은 더 이상의 동기 부여가 가능하지 않고 식상하다는 점에서 작가의 변신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런 열망은 그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착잡한 타 작품 『최강전설 쿠로사와』에서 더욱 뜨거워진다.
평생 동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경전처럼, 카이지도 1권부터 읽어도 흥미진진하며, 진지한 의도로 해당 분야 - 심리학, 전쟁사, 도박, 확률 등을 연구한 사람에게는 매번 다르게 읽히는 작품이다. “베스트”나 “탑”이라는 식상한 문구를 댈 필요도 없다, 반드시 소장하며 나태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읽어 생존순위를 높여야하는 지참서라는 것도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뢰전 가이』나 『은과 금』등과 이 작품의 공통점은 흥이 떨어지는 결말이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희망한다. 이국적이고 독특한 소재에다, 착취와 저항이라는 대립으로만 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며, 그렇게 읽는 독자들은 십중팔구 주화입마에 빠지는 운명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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