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가 쓴 재즈에 관한 이야기. 그것도 1998년에 <Uncommon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내용 중 제4장인 '재즈'만을 따로 떼어 번역한 작품. <Uncommon People>은 홉스봄이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여러 신문과 학회지 등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읽어본 바가 없기 때문에 어떻다라고 한마디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검색을 통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민중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중의 역사' 한켠에 바로 이 '재즈'라는 것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비범한 사람들>이라는 원제와 달리 이 편집본은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제목은 홉스봄이 언급한 "과거와 같았으면 무명으로 남았을"(p10) 사람들이 어떻게 이 재즈라는 것을 음악의 역사 속에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즉 비범한 음악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크게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로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와 그들의 재즈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번째 파트는 '비범한 음악' 파트로 재즈가 유럽에 건너가게 된 경위, 민중의 음악으로서의 스윙, 1960년대 이후 새로운 환경속에서 재즈가 겪게 되는 변화 등을 다루고 있다. 나처럼 재즈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초보자가 읽어도 무난할만한 재즈의 기본 입문서 정도로 이 책을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재즈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있고 재즈에 자신의 영혼을 맡겨 본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좋을 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인 정형성을 가지고 씌여진 글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기저기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라 그런지 사실 나로서는 몇번이나 같은 페이지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은 경험을 했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작은 소득도 있고 미국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재즈가 어떻게 유럽에 건너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얄팍한 지식도 얻기는 했지만 흑인들의 밑바닥 삶에서 태어난 재즈라는 음악이 어떻게 당당하게 음악 역사 속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고 또 지금은 다시 역사 속으로 소멸되게 될 위험에 빠졌는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은 다른 책들을 더 읽어봐야만 할 숙제로 남아있다. |
|
“음악사”는 정말 이상한 분야입니다. 알면 알 수록 더 아리송하고, 배우면 배울 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워지죠. 음악사를 연구하고 깊이 공부할 수록 점점 “내가 아는 것(혹은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한정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음악에 관련된 수업이나 강의를 의뢰받을 때마다 가장 꺼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음악사 수업입니다. 재즈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즈가 19세기 말 즈음하여 시작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쯤은 조금만 찾아보아도 알 수 있지만, 정말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받아 성장하였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즈”라는 개념의 어원조차 베일에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때문에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신간은 언제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랜 연구와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비평하는지 읽으면서 스스로의 견문도 넓힐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Phono 출판사에서 발간한 한국어판 에릭 홉스봄의 재즈 이야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다가왔답니다. 오늘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라는, 조금은 대담한(!) 제목을 가진 흥미로운 이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세상에, 듀크 앨링턴과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를 거론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니! 목차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이들이 평범하다면 도대체 홉스봄의 시선에서 우리는 어느 즈음에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홉스봄이 집필한 여러 서평과 다른 글들이 모여있는 그의 저서 <비범한 사람들>의 제 4장을 독립적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번역되면서 번역가와 편집자에 의해 지어진 제목인 것이죠) 홉스봄은 그의 글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닌 “소시민(the little peopl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총 7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의 첫번째 대주제는 “평범한 사람들”로 총 네 명(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거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글을 제외하고는 각 인물에 대해 쓰인 책들에 대한 반응이자 서평이기 때문에 홉스봄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말하고 있는 책들 역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발간되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Amazon.com을 통해 eBook으로라도 구입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는 몰랐던 재즈 거장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부분적으로나마)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다른 책들이 재즈역사의 큰 별들을 찬송하고 침이 마르게 칭찬할 때 홉스봄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뛰어난 음악 뒤에 숨겨진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 혹은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어쩌면 그것은 16살 어린 나이에 직접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한 소년이 어른, 그리고 역사학자로 발전해가며 자신의 어린 시절 영웅들을 조금 더 다각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풍노도의 20세기를 오롯이 체험한 홉스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죠. 두번째 대주제는 “비범한 음악”으로 역사학자 홉스봄의 폭넓은 지식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재즈가 유럽으로 건너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것이 특히 영국의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재즈를 “수입해온” 유럽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가치기준과 문화로 재소화하였고 확실히 재즈는 미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유대계 폴란드인 아버지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베를린과 빈에서 보내고 히틀러 집권 뒤 영국으로 옮겨간 홉스봄은 이러한 성장 환경을 통해 다양한 유럽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다문화적인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재즈의 역사는 특별하면서도 객관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재즈를 사랑하고 가슴 깊이 아꼈던 그였기에 더욱 애정어린 연구와 고찰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 장 “1960년 이후의 재즈”를 읽을 때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이 책의 부제가 왜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재즈의 “삶”은 알겠지만 “죽음”이라니! 주류는 아니더라도 (재즈는 사실 1920년대 이후 주류였던 적이 없었던 만큼)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재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그 기력이 쇠하여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그의 사형 선고(!)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기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2012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재즈 역사의 증인”을 잃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재즈는 새로운 발전과 진보보다는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며 끝없는 리바이벌을 반복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재즈를 사랑하고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들은 어떤 때보다도 진하게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결국 20세기의 가장 아름답고도 찬란한 문화로 발돋음한 재즈가 21세기의 우리들의 손에 맡겨졌다는 책임감을 자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
“재즈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 남부 뉴올리안즈 일대의 흑인 및 크리오울(Creole,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 사이에 연주되고 형성된 춤이나 퍼레이드를 위한 음악에 대해 1914년경 jass 또는 jas, jaz, jazz 등의 명칭으로 불린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재즈란 곡의 형식이나 곡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연주 스타일 및 연주 그 자체에 대한 호칭이란 것에 그 본질이 있다고 할 것이다. 재즈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된 명곡은 적지 않지만, 아무리 재즈의 명곡이라 하더라도, 연주자에게 재즈의 감각과 표현력이 없다면 그 연주는 재즈와 거리가 먼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클래식의 경우에는 작곡된 곡이 항상 촛점이 되지만, 재즈는 연주자가 항상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즈를 듣는 사람은 곡을 듣기보다는 연주 그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재즈 [jazz]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2002.1.28, 삼호뮤직)
위 글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재즈에 대한 정의이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재즈를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 하지만 그 장르를 구분해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강하다. 왠지 지식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것 같다는 열등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싶었다. 재즈에 관한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학문적 영역에서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세계적인 역사학자 고 ‘에릭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을 부재로 한 책으로, 고 에릭 홉스봄의 저서 <비범한 사람들> 중 제 4장인 ‘재즈’만을 따로 떼어내 우리글로 옮긴 것이다고 한다. 총 2부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4개 장에서는 20세기 초반 재즈의 전설들 4명에 대한 글들의 서평을 통해 전설들을 이야기한다. 2부 3개 장에서는 미국에서 시작된 재즈가 어떻게 유럽으로 넘어갔으며, 재즈가 어떻게 쇠퇴해 갔으며, 그리고 1960년 이후에 어떻게 재즈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재즈를 단순히 음악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 아니라 재즈가 형성되고 발전하고 전파되고 쇠퇴하게 된 과정을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과학적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 문화, 과학의 전반적인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었다면 4명의 전설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끝났을 것이라 말한다.
“재즈의 역사는 옛 미국 남부로부터 대규모 이주의 일부분이며 심리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방랑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P. 25.
“재즈에 관한 토론은, 현대 자본주의 속에서 벌어진 모든 사회 현상에 관한 역사적 분석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그리고 사업과 함께 출발해야 한다.” - P. 104.
“재즈는 모름지기 미국 뉴딜 급진주의와의 긴밀한 협력 속에 발전했고 그 안에는 재즈뿐만이 아니라 블루스, 포크 음악 그리고 공산주의가 중심 세력이지만 주변에는 무정부주의까지도 포함된 극좌 운동과의 강력한 연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재즈와 블루스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민중의 음악’이다. 우선 민속적인 뿌리를 두고 있고 대중에게 매력을 지닌 음악이며, 음악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음악들과는 달리 보통 사람들이 연습하고 스스로 완성해 낼 수 있는 음악이고, 마지막으로 저항, 시위, 집단적인 기념 행사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 P. 118~119.
처음 재즈의 정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재즈는 미국 흑인, 즉 가장 하층민의 음악에서 시작된 연주형식의 음악이었고, 이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연주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악보나 정해진 규칙없이 즉흥적인 연주의 형식으로 존재한 음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저항이나 시위, 혁명 등의 사회적 흐름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악보나 어느 정도의 규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소박한 희망을 지닌 직업 연예인들의 음악이었으며 서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밤의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재즈는 실내악처럼 ‘예술’로 여겨지지 않으며 ‘예술’로 취급되었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울러 재즈 음악인들이 스스로 또 다른 아방가르드의 하나가 되었을 때 고급 예술이 그랬던 것만큼 길을 잃고 헤매는 경향을 보였다. 음악에 대한 재즈의 중요한 기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 P. 65~66.
이 책을 통해 재즈에 대한 전체적인 흥망성쇠의 흐름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나를 포함하여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읽고 이해하기엔 조금은 어려운 내용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재즈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고, 재즈를 즐겨 듣게 되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재즈가 어떤 음악이고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홉스봄은 <재즈 동네>에서 재즈가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대했던 소수의 재즈 팬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을 정연한 논리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주장했다.” - P. 176~177. |
|
질풍노도의 시기인 십대 시절부터 20대 초까지 헤비메탈과 하드락에 빠져 살던 내게 어느 순간 재즈가 스며들어 왔다. 케니지의 섹서폰 연주에 반했지만 정통 재즈와 스윙, 비밥 등에는 문외한이자 지루하기만 했던 리스너였는데 말이다. 93년 제대 후 어느 가을 누구의 연주인지 모르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둥 둥 현을 뜯는 소리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다 어느새 큰 공명이 되어 마음을 앗아가기 시작하면서 갖게된 재즈에 대한 호기심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던 내게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며 내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재즈는 그렇게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음악이었다. 재즈를 즐기고 재즈 연주자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찾으면서 가졌던 재즈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까지 식은 줄 모르는 열정을 느끼게 한다. 재즈에 대한 입문서부터 재즈 마스터들의 개인사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들을 봐왔지만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재즈 대가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요 재즈가 가진 당시 사회역사적 의미와 자리매김에 대한 분석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문화적 풍요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지난 90년대초에 느닷없이 재즈 열풍이 불었지만 독특한 음악장르를 향유한다는 과시욕에 끌려나온 비련의 주인공이 바로 재즈였기에, 그리고 그 열풍은 소위 불기도 전에 바로 사그러들었다고 느낄 정도로 재즈에 대한 이해부족과 허영에 기댄 오버스러움에 시작부터 정착에 실패할 것임을 예상케 했다. 재즈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고 적지만 단단한 팬층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데 어려움을 겪게한 선입견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평론가 황덕호는 민중의 삶의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인 재즈가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잡아 온 데는 음악적 가치를 인정하고 오랜기간 성원을 아끼지 않아 온 소수의 재즈 팬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분명 재즈를 좋아하면 다소 특이하게 바라보며 대중문화에 대한 허세가 낀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재즈에 익숙해지기까지 지루하고 답답하며 반복적인 리듬으로 여겨지는 편견을 이겨내면 어느 순간 신세계를 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처럼 재즈의 세계에 푹빠진 팬들에 대한 헌사이지만 동시에 재즈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노정하는 암울한 침체기의 도래는 이 책을 쓴 홉스봄과 황덕호씨는 물론이요 재즈를 아끼고 사랑해 온 수많은 리스너들에게 변함없는 성원을 요구한다. 자본의 힘 앞에 예술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움츠려드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재즈를 지켜내고 재즈의 영원불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삶과 재즈에 대한 열정을 들여다 보면서 재즈 황금기의 영화를 흠뻑 경험하지만 앞으로의 재즈가 우리 삶에 여전히 소중한 분야로 지속하기 위해서 팬들의 역할은 어떡해야 할지 막막해도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하도록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재즈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역사학자 홉스봄의 책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재즈의 죽음은 제발 없기를 바래본다. 영원불멸의 음악장르로 오래오래 우리와 후손들의 감성을 울려주는 재즈가 되어 주기를.. |
|
예전에는 랩, 힙합을 좋아했다가 언제부터는 외국의 다양한 록을 들으며 감탄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블루스, 재즈가 어디선가 아른아른거리는거였다.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힙합을 처음 접하고 그 다음에는 록 그 다음에는 재즈 그리고서는 클래식을 듣게 된다는 것. 사실 재즈를 들어보지 않았지만, 어떤 고정관념이나 SNS등에서 누군가 재즈를 소개할 때 느껴지는 뭔가 나와 다름에서 느껴지는 허세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찰리 헤이든'의 음악을 듣게 되고 앨범을 구입하게 되면서 재즈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재즈를 도회적인 분위기의 배경음악 혹은 페스티벌에서 듣는 피크닉 음악, 심지어 중상류층의 속물적인 장식 음악쯤으로 여기는 재즈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90년대 국내에 불어 닥친 재즈의 허황된 선풍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홉스봄은 《재즈 동네》에서 재즈가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음악의 가치를 인지하고 진지하게 대했던 소수의 재즈 팬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을 정연한 논리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주장했다. 그리고 이 요점은 다행히도 저자가 출간을 허락한 본 책에도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176~177쪽, 「에릭 홉스봄과 재즈」) 재즈에 관해 어떤 책을 읽어볼까(사실 음악을 먼저 접해야 하지만 개인적인 성격탓에) 하다가 보니 이 책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 처음 접하게 되는 재즈 관련책이 되었다. 부담없는 판형과 두께 그리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쓰고 재즈 팬분들이라면 많이 아실 황덕호 님이 번역과 해설을 맡으셨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같은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역사 3부작을 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썼다고 해서 무척 호기심이 갔다.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번역이 조금 이해하기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 외에는 내가 아직 재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상태에서 접했다는 점,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옆에 음악을 켜놓은 상태에서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에서는 시드니 베세,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 등 굵직굵직한 인물의 책에 대한 홉스봄의 서평(여러 곳에 게재된)이 실려있다. 왠지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든 인물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듯 했다. <비범한 음악>에서는 역사학자인 홉스봄에 맞게 재즈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담은 글들이 실려있는데 재즈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해 개인적으로 이 파트가 무척 흥미 진진했다. 로큰롤 이전의 블루스와 재즈에 대해 어렴풋이 들어봤던 그런 이야기가 자세히 그것도 역사적, 사회적으로 담겨있으니 말이다. 책만 봐서는 가벼운 입문서가 아닐까 했지만, 에릭 홉스봄의 그 재즈에 대한 애정과 재즈와 시대, 사회에 대해 새로운 '왜?'라는 질문을 담은 독특한 책이었다. 재즈를 모르는 상태에서 가볍게 읽고자 한다면 쉽진 않겠지만, 재즈에 대해서 더 궁금해 졌고, 좀 더 알고서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또다른 새로운 재미를 줄 것 같다. |
|
재즈를 관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음악은 삶이다. 음악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주며 기쁠 때는 기쁜 마음을 슬플 때는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나누는 중요한 매개가 되고 있다. 이런 음악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각기 그 음악으로부터 얻는 위안과 즐거움을 같을 것이다. 음악의 한 장르로 이해되는 재즈는 경우는 특히 그 음악의 발생과 성장의 과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재즈는 “미국 흑인의 민속음악과 백인의 유럽음악의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이라고 한다. 재즈의 기본이 되는 리듬·프레이징·사운드·블루스 하모니는 아프리카음악의 감각과 미국 흑인 특유의 음악 감각에서 나오고, 사용되는 악기·멜로디·하모니는 유럽의 전통적인 수법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재즈의 특색으로 오프 비트의 리듬에서 나온 스윙감(感), 즉흥연주에 나타난 창조성과 활력, 연주자의 개성을 많이 살린 사운드와 프레이징의 3가지를 들 수 있으며 이것들이 유럽음악·클래식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구별하기도 한다. 흑인음악을 재즈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1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래그타임음악 또는 래그라고 불렀다. 재즈는 퍼레이드의 행진음악에서 댄스음악 그리고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음악의 괄목할 만한 한 분야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내용·스타일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재즈 음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의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선별하여 모은 책이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다. 이 책은 2012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에릭 홉스봄이 공식적으로 허락한 유일한 재즈 원고라고 한다. 이미 그의 재즈 관련 ‘원시적 반란’, ‘재즈 동네’의 저작물을 더 이상 유통을 금지한 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역사학자가 바라본 재즈는 어떤 음악으로 다가올까? “역사,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시야로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뛰어난 예술적 성취 ‘비범한 음악’ 재즈를 만들어 냈는지를, 그리고 재즈가 하층민들의 음악에서 교양인들의 음악으로 올라서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깊은 애정을 담아” 이야기한다. 에릭 홉스봄 은“재즈를 사랑하는 교수라는 것과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공산당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 라고 이야기 할 만큼 재즈에 대한 사랑이 깊다. 두 쳅터로 구분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서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의 삶과 재즈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들이 재즈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범한 음악에서는 ‘재즈, 유럽에 가다’, ‘민중의 음악 스윙’, ‘1960년 이후의 재즈’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
|
개인적으로는 내가 원했던 재즈 음악 책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책 자체는 그래도 읽을 만 했던거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추천, 비추천으로 나누어서 리뷰를 써 보았다.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들 : 일단 당연히 재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재즈에 관심을 붙여 보고 싶은 사람들 보다는 재즈 음악에 막 빠져서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책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막 재즈에 대해서 입문자에게 친절히 추천해 주는 책은 아니다. 그 보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이상하거나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가거나 한 특이한 재즈 뮤지션들의 전기를 모아 놓은 책이라 생각하면 된다. 비추천 해 주고 싶은 사람들: 이 책을 통해 재즈에 대해서 입문해 보고 싶은 사람들 - 아마 책을 금방 덮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즈 음악 자체보다 재즈 음악가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책이니 잘 생각하고 고르길. |
|
20대 후반 친구가 데리고 간 이태원 어느 재즈 카페.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재즈를 접했다. 자그마한 카페 안에 자욱하게 깔린 담배 연기. 때로는 몽환적으로 흐느적거리고 때로는 온 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나는 연주. 달콤한 한 잔의 속삭임 속에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적인 일로 너무나 힘들어 하던 내게 재즈는 아픔을 보듬어주는 치유제였다.
재즈란 어떤 음악일까? 누군가는 클래식으로 가는 대중음악의 마지막 교두보라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재즈는 클래식으로 가기 위한 음악이 아니다. 재즈,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예술이다. 유럽으로 간 재즈는 단순한 실용음악이 아니라 진지한 감상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재즈를 받아들인 계층과 의미는 달랐지만 재즈는 사교 음악으로써도, 하나의 예술로써도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재즈는 비범한 음악이다.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책의 제목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을까? 역사학자 홉스봄은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라는 4명의 재즈 거장들을 소개한다. 언뜻 보면 이들은 뚜렷한 능력을 드러내어 천재라고 불릴만한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그들만의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천재들이다. 베이시의 경우를 보자.
베이시는 템포를 벗어나 비트를 넣는데 탁월했고 지금도 그렇다. (p.84)
편곡의 원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곡은 가차 없는 발췌와 조각을 통해 베이시 버전으로 만들어졌다.(p.86)
듣는다는 것은 그의 본질적인 능력이었다.(p.87)
베이시는 연주자들의 연주들 듣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존재였다.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창작의 과정이다. 이런 능력이 말 그대로 타고난다.
이 책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재즈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재즈와 재즈 연주자의 모습이기에,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된 재즈 평가서가 아닌가 싶다.
다만, 조금 더 다듬어진 번역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