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둘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 중인 교사이다. 교사들에게 ''하이타니 겐지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일본 작가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책 중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세 편의 중편만 읽어보고 별로 끌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왜 그런지 일본 문학 작품들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빌리다가 같은 칸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무심코 빌려와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누워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하이타니 겐지로''란 사람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는 온화하고 점잖은 작가 정도로만 생각해 온 것 같다. 그런데 전후 어려운 시절에 배가 고파 남의 밭에 곡식을 훔치고, 노름꾼 아버지와 목을 매 자살한 형을 가진, 삶의 밑바닥까지 가 본 사람이었다. 정말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닌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책에 인용된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시를 만났다. 학교 갔다 오니까/ 아무도 없었다/ 새아빠도/ 우리 엄마도 형도/ 그리고 아기도/ 모두 집을 나가 버렸다/ 아기 기저귀도 없고/ 엄마 옷도 없고/ 집 안에 짐이 하나도 없다/ 나만 남겨 두고 이사를 가 버렸다/ 나만 남겨 두고 밤에 할머니가 돌아왔다/ 할아버지도 돌아왔다/ 엄마가/ "다카시만 두고 간다"/ 고 할머니한테 말하고 갔단다/ 엄마가 복지(복지사무소)에서 나온 돈을/ 모두 들고 가 버렸다/ 그래서 내 급식비를 / 내지 못한다고/ 할머니가 울었다/ 할아버지도 화를 냈다 새아빠는/ 나를 싫어한다/ 한번도 귀여워해 주지 않았다/ 형만 닭튀김집에 데려가/ 닭튀김을 사 줬다/ 나는 데려가지 않았다 나는 아기랑 잘 놀았다/ 안아 주기도 했다/ 업어 주기도 했다/ 내 얼굴을 보면/ 금방 방긋거렸다/ 축제 때 노점에서 산 장난감을/ 보여 주니까 자꾸 달라고 했다/ 손에 쥐어 주니까 입에 넣었다/ 안 된다고 도로 뺏으니까/ 와앙 하고 울었다/ 어제/ 점심 값으로 받은 100엔을 들고/ 고베 백화점까지 걸어갔다/ 빵을 사지 않고/ 강철 지그 모형을 샀다/ 배가 고팠지만/ 나중에 아기가 돌아오면/ 이 장난감을 줄 거다/ 손에 쥐고 걷게 해 줄 테니까/ 빨리 돌아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울음이 터졌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서 소리까지 내며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내 젖을 문 채 잠들어 있는 아이가 깰까봐 입을 꽉 물고 울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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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면 맨 처음 세 줄의 글이 나온다.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은 내가 아이들을 살게 한 기록이 아니다. 아이들로 인해 내가 살게 된 기록이다. 라는 글이 나온다. 그 짧은 구절을 읽었더니 가슴이 찡해져왔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몰랐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그렇게 나는 감동을 시작으로 이 책을 펼쳤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엔 하이 타니 겐지로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다 발견된 책이었는데 <내가 만난 아이들> 이라는 제목에 관심이 생겨 읽게 된 책이었다.
하이 타니 선생은 여느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내가 초등학생 땐 꿈꿀 수 없는 것이었는데...선생님께 관심 받지 못한 쓸쓸한 초등시절을 보낸 나로 써는 부럽기도 하고 그 때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은 결코 아이들과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선 처음엔 하이 타니 선생의 전쟁으로 인해 굶주린 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어린 시절, 조선소에서 일하는 가족, 형의 죽음. 상냥한 그에게도 이런 절망적인 과거가 있었다. 하이 타니 선생은 처음부터 선생님이 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차별을 받고 밑바닥 인생으로 굴욕을 맛보는 등의 인생의 쓴맛을 두루 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아이들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다는 구절이 머릿속에서 자꾸 떠올랐다. 아마 그도 그런 절망을 헤치고 나왔기에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과 방황의 시기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전쟁의 아픔이 드러난 시대적 배경에 우리나라 또한 그 아픔을 겪었기에 결코 그냥 볼 수 없었다. 못살고 못 먹었던 시대에 살았던 하이 타니 선생. 그의 어린 시절은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는 분명 아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려 하기에 마음을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솔직히 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말도 안통하고 귀찮고 1살이라도 어리면 나이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듯 거리가 느껴진다. 게다가 꼬마들은 말도 잘 안 듣기 때문에 싫어했다. 이 책을 보니 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그런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구나. 책을 보면서 나도 그 처 럼 아이들과 마음을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형제들은 모두 유순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싸우는 모습 한번 보지 못했으니 어지간하면 참고 마는, 어찌 보면 답답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와 네 살 터울의 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대에 벌써 주먹을 쓴다는 동무들과 몰려다니며 자신의 몸에 칼을 대기도 했고, 불같은 성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뒷골목으로 다니더니 급기야 병이 들어 이십대에는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동생이 보기에 깡패였던 형과 나누던 대화는 대개 다툼으로 끝났고, 형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바탕에는 누구보다 여린 심성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먹과 술로 청춘을 탕진할 때, 정작 형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도 형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형이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에 형의 고민을 심상하게 듣고 넘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형의 자살은 하이타니 겐지로에게 원죄와도 같습니다. 자살한 형만이 아닙니다. 그이가 살아오면서 만난 밑바닥 사람들, 이를테면 창남 닷짱이나 도시봉을 비롯한 노동자들, 오키나와(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섬 주민 3분의 1이 목숨을 잃음) 사람들이 베풀어 준 친절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절망스런 조건에서도 더없이 태평스러운 그들의 행동과 낙천성을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여기고 남몰래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 어린이는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들입니다. 나의 다리 (초등) 2년 다카하시 사토루 나는 유치원 때 트럭에 치였다 치였을 때 피가 막 나왔다 엄마가 '큰 소리로 울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고 해서 꾹 참았다 그리고 구급차에 실려 미야지 병원에 갔다 전기톱으로 다리를 잘랐다 마취를 했기 때문에 자른 것을 몰랐다 그리고 한밤중에 울었다 깨어나 보니까 깜깜해서 아빠랑 엄마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만날 울기만 했다 퇴원하고는 텔레비전만 봤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뼈가 자랐다 나는 밤에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 주었구나' 다리를 자른 상황인데도 생에 대한 낙천성이 엿보입니다. 아오야마 다카시는 새아빠와 엄마, 형과 아기에게서 버림받은 여섯 살짜리 어린이입니다. 나중에 아기가 돌아오면 장난감을 선물로 줄 거라며 점심 값으로 강철 지그 모형을 사는 상냥함을 갖고 있습니다.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을 앓는 마리코는 온몸으로 격렬한 춤을 추듯이 걸으며, 속도를 정복한 우리가 잃은 즐거움을 누리는 어린이입니다. 이렇듯 절망 속에서도 낙천성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어린이들을 보며 하이타니 겐지로는 깨닫습니다. 인간의 상냥함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고, 낙천성이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 자체이며, 어린이들은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통렬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여정이 감동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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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온 집안 식구가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이타니 겐지로의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상냥함'으로 보고 있다. 다소 반항어린 학생일지라도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상냥함을 지키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단지 사회나 제도가 우리가 지닌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았기' 때문에 문제아나 문제 행동이 생겨 난다고 믿는다.
이 책의 메시지는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보게되는 소위'문제를 가진 학생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에는 '단순히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내면에 내재해있는 상냥함을 찾아내고자 하니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위대한 교육자의 성장 과정과 생각들을 들여다볼수 있을까 기대했으나 약간은 신변잡기적이고 우리 문화와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라 그의 교육철학을 알기엔 약간은 아쉬운 감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아이들은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받아들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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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들” 이란 책의 저자인 ‘하이타니 겐지로’는 우리에게 낯익은 낱말인 '상냥함'을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삶의 본질로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그가 말하는 ‘상냥함’이란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교사와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단순한 교훈을 담은 책이 아니라 교사이기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인간 본연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담겨 있는 책이다. 처절하게 낮은 위치에까지 처신하게 되었던 자신의 경험과 가난과 형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문제 그리고 나아가 교사로서 17년을 봉사하였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과 답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교사의 직을 떠나 방황하고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삶과 죽음의 문제, 상냥함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오랜 방황고 고뇌를 통하여 그리고 아이들과의 생활과 아이들과 주고받는 편지,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적은 시를 통하여 그는 해답을 얻고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그가 밝혔듯이 자신을 응시하는 힘과 자신의 고통과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지녔다. 또한 교사라는 위치에서 낮아져 아이들의 위치까지 자신을 낮추는 겸손도 지닌 듯 하다. 그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고민과 고뇌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학교 현장에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하여 아이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분을 갖도록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교육에 대한 비젼과 이상을 가지고 도전했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구나 많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이들이야 말로 우리의 희망이구나 하는 사실과 티없이 맑고 고운 순수함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책인 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인간의 상냥함은 오직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서 생겨난다. 낙천성이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 그 자체이다." "내게 용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응시할 수 있다는 것과 내 고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리라."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를 공부하기 싫은 아이로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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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 관련된 책도 종종 찾아보게 되었고, 이 책도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되었다. 여러 아이들의 진솔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의 정치와 사회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일본인들의 아픔과 힘겨움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차별에 시달렸던 저자는 자라 교사가 되지만,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받았던 충격을 쉽게 잊지 못하고 질문 없는 답을 찾기 위해 방황을 시작하게 된다. 방황 전에도, 방황 중에도, 방황 후에도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던 그.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질문과 답을 모두 아이들에게서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다시금 아이들에게 다가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아이들에게는 모두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로선 그것들을 짊어진 그 아이들의 삶이 참 힘겹게만 보였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작은 거인인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그 아이들의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강인해졌으며, 그 누구보다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픔을 알기에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힘겨움을 알기에 작은 것에도 기뻐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더 감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행동들이었다. 그 어른들 중에서도 아이들이 믿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특히나 힘겨운 삶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더 깨닫게 되었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보호받기가 쉽지 않았다.
간혹 이 책의 저자처럼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여린 아이들의 마음에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니 말이다.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요즘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주는 혜택들 때문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인기 직종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정말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되려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자꾸 따져보게 된다. 그리고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이 제발 좋은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를. 적어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을 만나기를 말이다.
이 책은 선생님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나, 선생님이 된 이들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힘겨운 삶 속에서도 우뚝 서려는 작은 거인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으며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 연필과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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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내가 만난 아이들>에 기대를 한 것은, "아이들과 진정한 교류"를 하는 교사의 모습을 볼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대를 하며 읽었던 탓일까? 재미있었긴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작가에 대해 전혀 몰랐던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 작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교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교사 생활에서 아이들과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납득할 만큼 설명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겐지로의 이 책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책의 앞 부분에서 교사가 되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얼마 안 지나 바로 교사가 된 이후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얼마가 지나면 교사를 그만 둔 후에 오키나와에 가서 겪은 일들이 나온다. <내가 만난 아이들>이라는 제목에서 기대했던 일목요연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또한 중간중간 이야기가 건너 뛰어버린 느낌이 들면서 아쉬웠다.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산발적으로 발표해놓은 글들을 묶어 낸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상세한 에세이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중간에 감동받을 기회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감동스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교사가 되기 전 작가의 모습이나 교사가 된 후 아이들을 대할 때, 그리고 교사를 그만 두고 오키나와에 갔을 때도 작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동일했으니까. 무엇보다 교사가 되기 전의 '겐지로'가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따뜻한 밥을 먹고 곱게 자라 교사가 되었던 게 아니라 밑바닥에서 일하다가 교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느 교사와는 달랐다. (물론 그런 바닥 생활을 하던 겐지로가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 쓰여있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나는 그게 몹시 궁금했다.) 게다가, 교사가 된 이후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는 배울 점이 많았다. 이야기는 주로 아이들의 시와 함께 소개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아무리 대책없는 문제아에게라도 애정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에서 "교사에게 필요한 마음의 자세"는 저런 태도란 생각을 했다. 겐지로의 모습에 비해 아이들을 대하는 내 태도는 아직 너무 설익기만 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 사람의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그 인간이 나와는 다른 논리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더 납득하기 어렵고 용납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많은 관계들을 넘어 이십대 중반을 넘어섰음에도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고민하는 나에게 교사가 된 선배는 "아이들이니까 원래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할 때에서야 비로소 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본전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왔었다. 겐지로처럼 선배처럼 나는 조금 더 아이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겐지로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눈에서 희망을 찾는 법을 나는 더 알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개정판을 내면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우선 책의 표지를 바꾸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오는 책들 중에서 작가의 얼굴을 앞 표지에 넣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나 작가 "겐지로"는 잘 생긴 얼굴도 호감이 가는 얼굴도 아닌데 왜 첫 표지에 작가의 얼굴을 넣었을까? 솔직히 촌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그 작가의 얼굴에 하얀 책 표지라니. 안 어울린다. <내가 만난 아이들>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서정적이면서도 귀여운 느낌이 드는 그림을 넣은 후, 책 전체의 표지도 파스텔톤으로 색을 넣으면 더 읽고 싶은 책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엔 책을 고를 때 책의 내용보다 표지 디자인을 더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이런 촌스런 디자인을 넣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책의 글자 사이의 간격을 좀 줄이고 책을 조금 더 얇게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들고 다니기엔 좀 무거운 부피였다. 특히 나처럼 핸드백에 책을 넣고 다니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피다. 요즘엔 지하철에서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면, 가지고 다니기에 편안한 부피면 좋을 것이다. 사람의 내면보다는 외모를 보는 것이 익숙한 사회인데, 책도 내용보다는 책의 표지를 잘 만든다면 더 잘 팔리는 사회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