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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기차여행의 진수 - 무엇을 보았는가?
"유라시아 기차여행의 진수 - 무엇을 보았는가?" 내용보기
이 책은 어쩌면 여행의 고전에 속하게 될 책인 것 같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가 걷기 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면, 이 책은 기차여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도 이런 여행을 하려면 대단한 인내와 노력 그리고 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거기다가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할 것 같다. 1970년대에 이런 여행이 가능했다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런던에서 유럽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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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쩌면 여행의 고전에 속하게 될 책인 것 같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가 걷기 여행의 진수를 보여준다면, 이 책은 기차여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도 이런 여행을 하려면 대단한 인내와 노력 그리고 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거기다가 대단한 인내력이 필요할 것 같다. 1970년대에 이런 여행이 가능했다니.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런던에서 유럽을 지나, 아시아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을 하는 코스. 한국은 당시 상황 때문에 방문을 못했다. 기차의 매력은 무엇일까? 과거의 추억이고, 기억이리라. 기차의 기적 소리는 사람을 홀린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지금은 이런 기차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모든 여행은 더 빨리, 더 편리하게 와 더 원시적, 모험적 그리고 자연적으로 나뉘어져 버린 것인지도, 대부분 비행기 여행으로 단시간에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한다. 여행은 어쩌면 느림으로 가는 순간인 것 같다. 이 느림을 즐기지 못한다면 여행은 고역이 될 것 같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곳을 여행하지만, 아직도 여행은 일상이 아닌 특별함이 남아있는 즐거움이다. 기차에서 바라본 기차 밖의 세상과 기차 안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왜 인간은 여행을 갈까?

여행은 장거리 여행자에게는 자기가 엄청나게 먼 길을 그것도 혼자서 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여행은 즐거움인 동시에 힘듦이 있고, 수많은 사건이 있다. 일단 다른 나라이기에 문화적, 사회적 새로움이 있다. 또한 세월이라는 치명적인 독성에 시달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시간과 돈의 낭비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가 여행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매일 아침으로만 달려가지만. 그는 기차여행을 찬양한다. 이 무심한 이동, 이것이 바로 기차의 좋은 점이다. 달리는 기차 창틀 안에서 보니 벽에 걸린 액자가 따로 없다. 자신의 여행에 대해 아내와 자식이 있는 남자로서 내가 별 목표도 없이 모험심 하나만으로 여행을 위한 여행길에 오르다니 나태한 탐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어슬렁거리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기차가 내린 유일한 형벌은 산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은 항상 많은 계획과 준비 그러나 계획에서 벗어나는 돌발적인 수 많은 사건들, 그 속에 사람들이 있기에, 그 속에 자신이 있기에 자기와 타인을 더 잘 볼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저자 같은 기차여행은 그 기나긴 시간을 기차 객차 안에서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을 극도로 구속하는 환경이 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헤쳐나가는지를

 

런던에서 출발.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한때 훌륭한 서비스로 유일무이하던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이제는 그 결핍으로 유일무이하게 되었다. 터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이스탐불 그리고 작가 야사르 캐말과의 만남, 반 골루 특급 열차에서 본 관경은 신의 소행만이 그곳에서 유일하게 이채로운 경관이었다. 풍경은 똑 같은 것의 되풀이였고, 되풀이되면서 점점 더 크고 더 메마르고 더 비어갔다. 터키의 실상을, 이등칸의 터키는 모든 때 낀 얼굴을 경건한 수난자의 얼굴로 만들어 놓았다. 이등칸과 삼등칸은 그곳의 현실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잘 보인다. 그 나라를 잘 표현하는 것이 대중교통수단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속일 수 없는 현실인지도.

 

테헤란 특급열차에서 뇌물로 되 찾은 침대, ‘저들은 박시시(뇌물)를 이해하지 못한다. 돈을 손아귀에 움켜 쥐고는 음식과 친절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그걸 구할 턱이 있나.’ 세속과 종교 속의 이란을 ‘돈이 이란인을 한쪽으로 잡아당긴다면 종교는 그들을 그 반대쪽으로 잡아 끈다.’ 메제트행 야간우편열차, 기도하는 무슬림, 아마도 승객 전원이 자기가 가는 반대방향으로 앉아 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기차일 것이다.

 

파키스탄, 기차 안에 앉아 창 밖으로 내다보는 아시아는 고역스런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은, 편집 안 된 관광영화를 보는듯하다.

 

인도, 내가 인도인들의 이 솔질함을 무심히 지나쳐버릴 정도로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인도의 작가 ‘글 쓰는 것은 인도에서 돈이 되지 않는 단 하나의 활동이다.’ 인도인들의 특성을 과장을 좋아하는 것이 어떤 인도사람들한테는 만성병인 것 같다. 평균 인도인들은 자기 종교며 인도에 대해서 아니 어떤 것이 되었든 아는 게 별로 없다오. 잘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키스만큼 은밀한 것이 없어서 그건 곧 바로 섹스로 이어지거든요. 켈커타의 인력거는 인도 사회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가장 원시적인 교통수단과 가장 원시적인 돈벌이(생존)의 수단으로 사람 그 자체이다.

 

탈라이 마니즈 우편열차 인도에서 실론으로. 싱할라족 사람들은 답답스러운 망설임과 아무 생각 없는 정중한 태도로 어디 쓰러져 갈 곳을 찾는 몽유병자들 같았다. 이 비옥한 땅 어찌나 비옥한지 우편함과 전신주가 뿌리를 뻗고 가지를 틔우는 땅에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지는 현실에 놀래야 할 이유가 있기는 있는 걸까? 스리랑카의 현실,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끝없는 대치와 전쟁과 자연재해로 황폐화된 땅.

 

만달레이 특급열차, 버마는 관료주의가 지독한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그 관료주의는 본질적으로 불교이다. 만달레이는 이름은 매혹적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여행 중에 발생하는 기분 좋은 지연사건들을 즐기기도 한다. 체포를 무릅쓰고 탄 곡테익기차, 왜 그는 그곳으로 가야만 했을까!

 

말레시아. 두리안이 내려올 때 사롱은 올라간다. 싱가포르의 정치는 부룬디만큼이나 야만적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사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통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 사이공 비엔호아 여객열차, 기차를 타고 가다가 수 많은 집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이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위에 다낭 여객열차, 런던을 떠난 이래로 내가 간 수많은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전쟁의 막바지, 이 세상에 독을 먹어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가 있다면 다낭이 바로 그곳이다.

 

일본. 심사숙고를 악습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이루어낸 자연선택이라고나 할까. 여행을 하다 보면 최상의 환경에서 조차 불안해질 때가 있다. 니치게키 음악당의 청중이 오락이라고 여겼던 그 소름 끼치는 이인무가 그랬듯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공포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함께 행동한다. 철마다 기분전환 거리를 정해 놓고 절대 조급히 구는 법이 없다. 일본인들의 철저한 예절은 무례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인구과잉환경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예절이 필요하다. 완벽한 질서에 어긋나는 어떠한 행동이나 소란도 금을 낼 수가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지금은 사라진 소련, 레닌을 거기에는 위대한 그러나 이 도시에는 한 번도 안 와본 이 인물의 조각상이 택시 잡는 사람처럼 한 팔을 높이 치켜 올린 채 서 있었다. 열차의 창문이 세상을 쳐다 볼 자유를 준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 보니 감방 창문이고, 가끔씩 독방 벽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인들은 걸핏하면 명문구를 인용하는 그들의 경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문학을 사랑한다. 기차 속의 토막 잠 때문에 하루가 여러 토막이 났고, 그 한 토막은 하루 전체가 어슷비슷했다. 이 혹한 속에서 할 일이란, 바실리와 계속되는 술의 향연, 대비를 장식하는 볼가의 경치에 압도당한 러시아 사람들도 말을 잃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펼쳐진다. 재미와 현실의 문제를 적절히 잘 혼합한 좋은 여행기이다. 그는 세계적인 여행작가이다. 그가 지은 다른 책 ‘폴 서로우의 중국기행’ 등이 있다. 그의 글에 대한 평은 양분되는 경향도 보이지만, 그의 체험을 존중한다. 그의 글을 책상에서만 이루어진 글이 아니다. 4달의 여행, 나는 온 몸으로 여행을 한 것이다. 각 국에 대해 비교적 짧은 체류 기간에 비해, 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잘 꿰뚫어 본다고 해야 할지, 그 특징을 잘 관찰하고, 기록한 것 같다. 물론 저자의 공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틈틈이 하는 강연과 기차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그 나라를 만난다.

 

그에게 여행에서의 추억은 결론이 없으나, 모두 훌륭한 소설이다. 그렇듯이 언제나 결말은 암시되어 있다. 관광은 어쩌면 세상이라는 무대 위를 휘 젖는 자신이란 주인공이 펼치는 모노드라마인지도 또 모든 배우가 사라진 뒤 무대에 올라 혼자서 자기 연극을 리허설 하는 것과 같다. 분명 여행은 자신이 살던 곳과의 일시적인 단절이며, 여행하는 나라와 일시적인 접촉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여행하는 나라에 있다.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세상과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결국은 자시의 집으로, 무릇 모든 여행은 돌아가는 여행이다.

 

아 부럽다.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p*******t 2011.02.21. 신고 공감 12 댓글 26
리뷰 총점 종이책
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 기행 /폴 써루
"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 기행 /폴 써루" 내용보기
<어린 시절, 기차가 지날 때면 나는 늘 거기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    그래,기행문이라고 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책이다.   책을 펼치면 그가 다녀온 여정을 따라 지도가 그려져 있다. 런던에서 ~~~~쭈르르 내려와서 이스탄불,카불,폐샤와르,델리,실론,방콕을 거쳐 싱가포르 찍고 사이공에 동경, 삿포르로 갔다가 ,하바로브스크에서 다
"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 기행 /폴 써루" 내용보기
<어린 시절, 기차가 지날 때면 나는 늘 거기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

 

 그래,기행문이라고 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책이다.

 

책을 펼치면 그가 다녀온 여정을 따라 지도가 그려져 있다.

런던에서 ~~~~쭈르르 내려와서 이스탄불,카불,폐샤와르,델리,실론,방콕을 거쳐 싱가포르 찍고 사이공에 동경, 삿포르로 갔다가 ,하바로브스크에서 다시 시베리아 열차를 타서는 모스크바,그리고 런던까지, 넉달동안 주로 기차, 마지못해 비행기,택시,버스,열차, 다시 마지못해 배를 타고 항해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지금 이 책을 쓰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작가를 미친사람 취급하면서 더 이상 상대를 안 해주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생각으로는 누구나 여행을 하기 때문에 기행문은 불필요한 것이라나?

일면 수긍가는 말이다.

만일 이런 수작 기행문이 가끔 씌여지지 않는다면 전적으로 옳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여행객의 무례도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여행을 가지만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만큼 드무니,자신이 만났던 "그" 미치광이가 이런 수작을 쓸만한 재목인지  짐작 못했다 한들 어디 그게 그의 탓이겠는가 ?

 

쉽게 쓴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의 글쓰기는 자연스러웠다.

작가가 되지 않으려 했다가 나이폴의 (노벨상 수상작가--이 작가의 책도 강추천!) 책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던데, 어떻게 이런 글솜씨를 가지고도 작가가 되지 않을 생각을 했을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풍경을 눈앞에 보여 주듯 묘사하고,스쳐 지나가는 여행지와 여행자들의 특성을 즉시 간파하는 탁월한 통찰력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면서도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귀여운 설득력까지.

나서서 고자질도 하고,이간질도 시키는 얍삽함과 고상이나 위선 떨지 않는 솔직함 ,비겁함엔 냉소를 가차없이 날리는 지성,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함엔 안스러워 하는 연민,그리고  현지인들의 과장과 위선,허풍,불합리와 광기에 네네하면서 넘기지 못하고 꼬박꼬박 토를 다는 삐딱선에다 여행객엔 어울리지 않는 게으름까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웃고,공감하며,기막혀 하면서 읽었다.

특이한 것은 마치 내가 그와 함께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을 보곤 나도 가슴이 답답했고,악취에 코를 움켜쥐었으며,아름다움 경치엔 넋을 잃고,여장 남자 창녀를 만났을땐 혼비백산 해 도망가고,지뢰가 터지는 와중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에 혀를 내둘렀으며,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탈출을 꿈꾸게 만든다는 싱가포르에선 갑갑함이 절로 느껴졌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나중에 나쁜 소리를 쓰려면 손이 벌벌 떨릴텐데 하며,부담스러워 하는 그에게 미소도 보내가며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러니 천천히 지렁이 기는 속도로 읽게 되더라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른지 모른다.

넉달동안 아시아 대륙을 기차로 횡단한것이 아닌가?

그걸 따라다닌 셈이니 ,좀 지치기까지 하더라 하는 건 단지 내 기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그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감동을 못 받겠다고 투덜대며 열차칸안에서 잠만 잔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만큼 지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그가 속으로 늘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상상과 실제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게 뭐 대수겠느냐고 반문한다.

사기충천해서 아시아 일주를 나섰던 사내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여정을 흐믓하게 회상하면서...

a*******0 2007.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