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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던 앨리스워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컬러퍼플]의 원작자이고 그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정도였다. 앨리스워커가 방한했다는 기사에서 그이의 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를 읽은 후에 한동안 멍하니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가슴 한 구석에 뭔가 뭉퉁그레 자리잡고 있던 우울한 체증이 담배연기와 함께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과 그 깊이의 끝없음을 앨리스 그 자신의 일생을 통해, 그리고 울림깊은 엄마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앨리스는 자신이 흑인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말한다.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내 삶이 규정지어지는 것이 화나고 슬펐던 내게 이 책은 따끔하지만 부드러운 회초리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려지면 영혼의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자신을 규정하면 그 안에서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앨리스의 맑고 당당한 영혼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영혼의 숨어있고 가라앉아있는 것들을 꺼내어 자유롭고 가벼워지라고....
앨리스의 내 최초의 멘토로 여기고 그의 기사를 스트랩하던 중 교보에서 사인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날 군데군데 감동받은 부분이 접혀있는 내 책을 품에 안고 수줍은 미소로 인사해야겠다. "사진 같이 찍어줄 수 있어요^^?" [인상깊은구절] 앨리스 워커의 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버림받은 자가 되어라 당신 인생의 모순을 숄처럼 당신 몸에 두르고 돌을 막기 위해 당신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광기에 환호하며 굴복하는 것을 보라 그들이 곁눈질로 당신을 보게 하라 그리고 당신은 곁눈질로 대답한다 버림받은 자가 되라 혼자 걷는 것을 즐거워하라 (품위 없는) 그렇지 않으면 혼잡한 강바닥을 다른 성급한 바보들로 가득 채워라 강둑에서 즐거운 모임을 가져라 그들이 내뱉은 과격하고 고통스런 말 때문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멸망한 그곳에서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 버림받은 자가 되라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 자격이 있는누구의>어머니의> |
| 시를 낭독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를 낭독하는 앨리스 워커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아름다웠습니다. 반면에 시의 내용은 여성들에게 홀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강한 것이었습니다. 당찬 내면의 세계를 가벼운 리듬에 실어 노래한 시를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낭독하는 앨리스 워커는 참 맑은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이가 제창한 우머니스트(Womanist, 흑인페미니스트 또는 유색인 페미니스트)도 궁금하였기에 그이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맑은 눈과 함께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앨리스 워커의 얼굴을 표지로 하고 있는 책은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몇 쪽 넘기지 않아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실망이 아니라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분명 그이의 맑은 영혼이 기록되었을 매혹적인 문장이 누더기 같은 문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문장이 되지 않는 문장이 즐비합니다. 게다가 오자와 탈자가 장마철의 곰팡이처럼 퍼져 있습니다. 주석이 필요한 많은 곳에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보석이 쓰레기가 된 것입니다. 몇 번이고 던져버리고 싶은 쓰레기더미 번역문을 읽는 것은 곤욕이었습니다. 하지만 쓰레기더미 번역문 속에서도 앨리스 워커의 맑은 영혼은 두툼한 책에 점점이 뿌려진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앨리스 워커의 흑인여성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충분한 크기의 뇌를 정말 갖고 있는지 의심을 받는 ‘흑인’일 뿐만 아니라 고된 일로 지치고 흑인남성으로부터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코레타 스콧 킹 여사가 그이와 나눈 말입니다. 여성들은 과거의 부패와는 관련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여성들이야말로 새로운 리더십과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들이 원한을 품고 복수에만 집착한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거에요. 하지만 이들은 연민과 사랑,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흑인여성들이 이제까지 겪어온 것을 생각해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세요! 아직도 이들이 흑인의 가치를 믿고, 정의를 사랑하고, 자신뿐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이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죠. (185 - 186쪽) 흑인여성에 대한 자각은, 오늘날에도 거칠고 가망 없는 곳에서 발현되는 생생하고 창조적인 영혼의 비밀을 평범한 그이의 어머니로부터 찾게 합니다. 앨리스 워커보다 더 지난한 시대를 살았던 흑인여성 어머니의 하루는 해뜨기 전에 시작되었고 밤늦게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앉아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바쁜 와중에도 식구들이 입을 모든 옷과 수건과 조각이불 같은 것을 만들고 50가지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고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두워서 볼 수 없을 때까지 자신의 정원에서 생명을 소중하게 가꾸는 앨리스 워커 어머니의 모습은 꼭 그대로 우리 어머니들을 닮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들 또한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 마당 한 귀퉁이나 뒤란에 작은 꽃밭들을 가꾸었으니 말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방해받고 침해당한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지켰고 그것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흑인여성이나 유색인 여성은 ‘인류의 생존과 완전성에 몰두’하는 우머니스트로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살고자 하는 이러한 능력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앨리스 워커는 자연스레 그것을 딸에게로 전한 것 같습니다. 앨리스 워커가 여덟 살 때 다친 눈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어느 날입니다. 앨리스 워커의 딸 레베카가 엄마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보다 조그만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감싸 안고 “엄마, 엄마 눈에는 세상이 있어요”라고 말할 때, 그리고 “엄마, 도대체 그 세상을 어떻게 얻었어요?”라고 물을 때, 흑인여성들의 맑은 영혼은 대대로 아름답고 온전하게 전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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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종종 드는 생각. '어찌 이리도 옛날에 쓴 글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유효할 수 있는가'하는 것. 이번에 읽은 앨리스 워커 언니의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역시도 마찬가지다. 벌써 30여년 전의 글인데 이렇게 공감대가 클 수가. 아마도 여성관련 문제가 뒤늦게 터진, 그래서 앨리스 워커가 30년 전 겪었던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겪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여성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당시 등장한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이 책은 PART ONE부터 PART FOUR까지로 나눠져있다. PART ONE이 가장 읽기 어려웠는데, 이것은 개인의 소양 부족 탓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이 책의 작가인 앨리스 워커는 문학가다. 특별히 흑인여성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문학가다. PART ONE에서는 바로 이 부분, 흑인여성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더디게 읽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PART TWO부터는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작가 자신의 다양한 체험,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가 얻어낸 많은 통찰들.... 여성인 동시에 흑인이었기에 두 가지 차별을 겪어내어야 했던 삶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여성인 동시에 유색인종인 나 또한 이러한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고 있기에 글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게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백인중산층여성을 위한 단어라 판단하여, 우머니스트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어 사용하고 있는 앨리스 워커. 그는 내 롤 모델으로서 넘치는 사람이다. 아는 것에 매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어댈까 두려워하는 나. 그런 내게 알기만 하는 것도 아니요, 행동하기만 하는 것도 아닌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아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참여하는 것이며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듯 살고 있는 그. 이제 더 많은 그의 글을 접해야 겠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컬러 퍼플="">부터. [인상깊은구절] p155,156 킹 목사는 모든 흑인들에게 목장이 있는 집과 잘 가꾸어지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가 약속한 것은 감옥과 마침내 다다를 궁극적인 자유였다. 그는 모든 가족들에게 두 대의 차를 약속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모든 가족이 수치심 없이 그리고 자신의 두 발로 두려움 없이 어디든지 걸어 다닐 수 있는 용기를 약속했다. 언젠가 우리가 부유하고 잘 다듬어진 우리 이웃으로부터 미래의 집 구매자를 쫓아내거나 우리 이전의 다른 인종 집단이 그랬던 것처럼 거만함과 무지를 어떤 식으로든지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말한 것은 이 나라 어느 곳이든지 우리가 선택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와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의미 있고 보수가 좋은 직업을 우리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미국 백인 중산층을 그대로 모방해야만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권리가 있음을 말한 것이었다. p156,157 나에게 존재의 의미는 현재의 나와 그 당시의 나와의 차이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경제적인 면 뿐만이 아니라 지적으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를 알고 누가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깨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계 공동체의 일부분이 되고 내가 어떤 부분에 속하는지 경계하며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다른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아는 것을 의미한다. 아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참여하는 것이며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p185,186 "여성들은 과거의 부패와는 관련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여성들이야 말로 새로운 리더십과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들이 원한을 품고 복수에만 집착한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들은 연민과 사랑,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 코레타 킹 p363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억압자가 즐기는 모든 환상이 피억압자에게는 파괴적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환상에 몰두하는 것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시간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현실과 인생에 대해 우리가 알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경험과 인생을 신뢰하고 검은 피부의 자신과 옅은 피부의 자신 모두를 포옹해야 한다. p370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웃음과 눈물,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를 사랑해준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우리가 난관을 이겨내도록 끝까지 도와줄 것이다. p403 모든 사람이 안식일을 지킬 수는 있지만 그 날이 진정으로 성스러운 날이 되는가는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컬러>어머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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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사부터 감동적이다.
TO MY DAUGHTER REBECCA Who saw in me what I considered a scar And redefined it as a world
나중에 이런 헌사를 쓰기 위해서라도 딸을 낳고 싶어진다.
좀 오래된 글이라서 그런지, 요즘 같으면 멋부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꼬아서 말할 텐데, 그냥 담백하고 당당하게 말한다. 나한테 그거 상처가 돼. 너네들, 그러면 나빠. 이 책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고르라면 "Uncool"이 될 거다.
"어떻게 히드클리프가 워터링 하이츠에서 멀리 떨어진 신대륙에서 캐시를 놀라게 할 만한 재산을 모았는가를 생각해본다면 몸서리쳐질 것이다."
KKK에 의해 집이 두 번 폭파당한 허드슨 여사의 이야기. 그의 사위는 집이 폭파당할 당시 베트남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미국에 있는 우리 집과 그의 가족을 파괴하기 위한 폭파 계획이 세워진 바로 그 날, 그는 보초를 서고 있었다. 캄보디아 국경을 지키기 위해 베트남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인종차별의 생생한 사례, 또 한 번 이렇게 야만적인 일이 불과 30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일어나는 야만도 직시할 수 있을 테니까.
앨리스 쿠퍼가 쿠바에 간 이야기를 쓴 것이 재미있었다. 섬세하게 조정되고 기획된 사회에서 인종문제는 한 세대만에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들은 상추를 기르고 좀 더 나이가 든 아이들은 나무와 오렌지를 길렀다. 잠시 후 우리는 "인종통합"된 그룹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흑색, 갈색, 흰색, 노란색, 핑크색, 금빛 피부색을 갖고 있는 아이들로 구성된 얼마나 놀라운 그룹인가! 그리고 음악도 훌륭했다. 부드럽고, 율동적이고, 영혼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십대 그룹이 음악을 마쳤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의 말은 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행복했고, 개방적이었고, 기대에 차 있었다. 까만 흑인에서 하얀 백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쿠바인이고 인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소개하며 미국 "흑인"이라고 말했을 때 아이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설명 없이 자신은 쿠바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피부색이 다름을 인식한 것 같았고 우리를 보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마음 속으로 그들을 흑인, 백인, 혼혈로 구분하고 있었고 나 자신의 왜곡된 분류에 바탕을 두고 어떤 가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을 보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음악처럼 그들은 문화 속에 함께 섞여 있었고 피부색을 바탕으로 구분하지도 않았고 자신들을 정의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들은 인종차별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그것에 대해 배웁니다." 교장 선생님이 설명했다."
"아버지의 것과 꼭 같은 진한 커피색 피부, 큼지막한 코, 힘 있고 지적인 두 눈. 아바나에서 만난 아버지의 이름은 파블로 디아즈였다. 그는 스페인어를 사용했는데 나는 스페인어를 몰랐다. 목소리마저 아버지와 너무 닮아서 그의 입에서 스페인어가 흘러 나왔을 때 나는 무엇에 홀린 게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파블로 디아즈는 우리 아버지처럼 어느 나라에나 속할 수도 있고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아버지처럼 가난했다. 정부의 누구도 파블로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했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탕수수 자르는 일을 했고 아바나와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궂은 일을 했으며 초기에 혁명에 가담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에게는 혁명에 가담할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파블로 디아즈는 적과 투쟁해 나갔다. 쿠바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쿠바 혁명의 역사에 대해 배운다. 민중의 우정을 위한 쿠바 협회(ICAP)의 공식 대변인으로서 쿠바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쿠바 혁명의 역사를 알려주는 이 흑인남자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쿠바 혁명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더욱 커졌다. 디아즈씨는 이야기꾼같은 한결같은 억양으로 3시간에 걸쳐 쿠바 혁명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민중이 발전해가는 과정의 모든 국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800년대의 흑인 맘비스, 쿠바의 "아버지"인 조세 마티, "갈색의 거인"인 안토니오 마세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또한 1953년의 몬카다 막사 공격, 혁명가들의 멕시코 망명,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의 전투, 독재자 바티스타의 축출, 혁명의 승리, 그리고 체, 카밀로, 피델에 대해서도 말했다........나는 그에게 나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광이군요."라고 대답했다...
호텔은 여전히 고요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두 명의 종업원이 얘기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얘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아주 멋진 시를 한 편 지었다고 말했다. 아니 두 편이었나 보다. 그녀는 그 중 한 편을 어버이날 엄마에게 보냈다. 다른 한 명은 호텔에서 듣는 수업과 미국에 관한 받아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고대 역사수업과 관련된 얘기를 했고 "57년까지의 쿠바의 역사"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산수와 대수학이 제일 재미없는 수업이라고 한 반면 다른 한 명은 그 과목들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양동이를 들고 나가 붉은 색 테라스 바닥을 물로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쿠바에서>
농부였던 파블로 디아즈가 역사가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나를 감동시킨다. 나는 그의 자녀들이 부러웠다.... 내 나이 17살 때, 대학에 가기 위해 조지아주의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 그나마 별로 돈독하지 않았던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수학에 능하고 이야기 재주는 남부럽지 않았으나 초등학교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명석한 아버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갑작스레 중산층에 속하게 된 딸의 태도에서 섬뜩한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명확하게 하기보다는 더 난해하게 만드는 언어로 아버지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다. 아버지도 나도 원치 않았던 이러한 괴리감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공평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알고 있던 유일한 세상을 내가 벗어나던 그 날, 아버지는 무력한 모습으로 낡은 회색 중절모를 손에 든 채 버스 밖에 서 계셨다. 파블로 디아즈와는 달리 그에겐 변신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후에도 이 이별에 대해서나 그의 아름다운 눈에 서린 고통에 대해서나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버스는 쓸쓸한 조지아의 고속도로 가에 그를 남긴 채 떠났고 죄책감과 안도감에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나는 그렇게 그곳을 떠나왔다"
한국에 파시즘이 몰아닥치는 날에 읽으면 좋을 시.
Be nobody's darling Be an outcast Take the contradictions Of your life And wrap around You like a shawl, To parry stones To keep you warm
Watch the people succumb To madness With ample cheer; Let them look askance at you And you askance reply
하지만 모든 에세이가 다 와닿지는 않았다. 그게 너무 당연한 게, 60-70년대 미국의 특수 상황을 갖고 쓴 이야기가 많아서, 백인 작가 누구누구는 마음의 스승이지만 나에게 모순을 느끼게 하고, 무슨무슨 여사는 이런 소리를 했고, 모모 비평가는 이런 한계가 있고... 하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알게 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라는 제목이 우리 할머니를 생각나게 해서 찡하다.
'우리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시대에 흑인여성이 예술가가 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피를 멈추게 할 정도로 잔인한 질문이다. 무지하고 타락한 백인 감시자의 채찍 아래 죽어간 고조할머니의 천재성을 당신은 가졌는가? 또는 석양과 풀잎에 떨어지는 피, 그리고 평화로운 들판을 수채화로 표현해보고 싶어 마음 속으로는 울면서도 그녀는 게으른 시골 뜨내기를 위해 과자를 구워야만 했었는가? 또는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이 혁명을 일으킨 영웅적인 사람을 돌이나 진흙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때에도, 그녀의 육신은 망가지고 여덟 명, 열 명, 열다섯 명, 스무 명의 아이를 낳도록 강요받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