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뒤 캄보디아 앙코르왓으로 간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책 [시하눅빌 스토리]였다. 헬로태국등의 가이드북이나 캄보디아 여행기보다 [시하눅빌 스토리]를 먼저 떠올린 이유는 전부터 눈여겨 보아왔던 작가 유재현의 동남아 여행기 덕분이었다. 유재현의 여행기는 여행지의 일상을 늘어놓기보다는 그 사회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서구 열강들의 아시아 식민지화,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반식민투쟁,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 이러한 역사적 상혼들을 살펴본 후에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행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지금도 물론 여행이 익숙한 건 아니지만) 여행지가 결정되면 그곳이 국내거나 해외거나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했었다. 그것이 당근 여행지를 대하는 예의라고 생각해서였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과거부터 가족, 주변인물, 생활하는 방까지 모든 게 궁금해지는 거처럼 말이다.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되고 나른하고 아늑한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시하눅빌 스토리]를 읽는 건 지겹지 않다. 얼마전 본 태국영화 [옹박]과 오버랩되기도 할만큼 스펙타클하기까지 하다. 시하눅빌이란 연옥같은 아수라에서 오직 생존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스크린에 뚝뚝 묻어나는 느낌이다. 작가 유재현은 사람들을 이야기속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작가이다. 캄보디아는 태국이 아니다. 근대화를 이룬 서구제국주의가 미친듯이 아시아를 침략해올 당시 그러한 서구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때론 의연하게 때론 비굴하게 나라를 지켜내었던 그런 태국이 아니다. 또한 베트남도 아니다. 그렇게나 강고했던 프랑스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다 다음엔 일본, 또다시 프랑스, 마침내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게 단 한번의 패배를 안겨준 그 베트남도 아니다. 캄보디아는 수많은 침략과 이민족의 지배속에 근근히 나랑 이름을 걸고있는 정말 힘없고 조그만 약소국일 뿐이다. 작가 유재현의 이야기속에서의 캄보디아 시하눅빌은 연옥이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속이고 동료를 죽이고 애인을 배신한다. 천국은 저멀리에 있고 발 밑은 바로 지옥과도 같다. 하지만 시하눅빌의 사람들은 지치거나 좌절함이 없이 그들의 삶을 오롯이 그들의 힘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난 [시하눅빌 스토리]를 읽으면서 캄보디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시엠리업의 모또기사들도 미리 만날 수 있었고 앙코르왓 어딜 가나 존재하는 구걸하는 어린애들도 만난 기분이 든다. 민주캄푸치아(크메르루주)의 새세상을 향한 열정도 알 것만 같고 훈센총리에 대한 캄보디아 사람들의 증오도 알 것만 같다. [시하눅빌 스토리]의 매력은 생동감이다. 펄펄 살아뛰는 원시적 생동감. 참혹했던 식민지의 경험, 사회주의 혁명, 내전 등 길고 긴 상쟁의 세월을 이겨낸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의 역동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 조금 오바해서 말하자면 그들의 희망까지도... [사하눅빌 스토리]를 읽은 나는 캄보디아 앙코르왓 여행준비의 90%를 완료한 듯한 기분이다. 이제 남은 건 일정을 챙기고 예산을 짜고 배낭을 꾸리는 단순한 일 뿐이다. 이제는 여행까지 남은 밤 숫자를 헤며 여행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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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의 에필로그에 저자 또한 그러한 의혹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머리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이 소설은 우리말로 쓰여 있을 뿐 대다수 등장인물이 캄보디아인이며 이야기 중 우리나라를 떠올릴만한 그 어떤 내용도 없다. 이 소설은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체험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체험을 통해 드러난 모든 사건은 시하북빌이라는 캄보디아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리소설이지만 '한국'을 느낄 수 없는 참 특이한 소설인 것이다.
소설은 여섯 개의 이야기가 연작형태로 이어진다. 먼저 나오는 [솜산과 뚜이안]은 돈에 눈이 먼 인간들의 비열한 모습과 비참한 최후를 그리고 있다.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사기와 강탈에 의해 얻어진 돈이 결국 그 돈의 주인들을 어떻게 만드는 지 소설은 아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대마는 자란다]와 [그래도 대마는 자란다]에선 '대마유통'을 생계로 하는 하층민들의 얼룩진 삶을 그리고 있다. 옳지 못한 삶을 사는 그네들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결말을 맞게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학국에서 온 사나이]는 경호임무 차 캄보디아에 온 한 사내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진흙탕이 되어버린 캄보디아에서 조국의 이념을 전파하긴 위한 대중사업을 하려는 그가 겪는 심각한 괴리감을 그리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시녀가 되는 대신 자신의 이념과 이상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그의 선택은 안타까웠지만 그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 사뭇 감동적이었다.
[시하눅빌 러브 어페어]는 캄보디아의 작은 도시에서도 연애와 결혼문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재밌는 이야기다. 연애와 결혼이 쉽지 않다는 건 그만큼 두 남녀 간의 사랑 이외의 또 다른 요소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해피엔딩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캄보디아에 머무르고 있는 이국 남성들의 삶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토니의 말처럼' 왠지 공허해 지고 몽롱해지는 이야기였다.
캄보디아의 해안도시 시하눅빌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그린 <시하눅빌 스토리>는 사실적인 묘사와 인물설정의 다양함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뿐인 목숨마저 위태롭게 만들 죽음의 그림자뿐이다. 절망적인 삶을 타개코자 위험한 선택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러웠고 그런 잘못된 현실을 바꿔주지 못하는 무능한 사회가 정말 한심했다. 지금의 암울한 캄보디아의 현실은 동남아시아 몇 개국이 겪고 있는 공통된 모습이다. 극소수의 안락을 위한 극빈들의 방치와 희생, 군부세력과 무능한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처럼 조금 더 나은 삶을 원하거든 그들은 조금 더 많이 투쟁해야 할 것이다. |
| 드문드문 기둥이 긴 열대의 나무가 서 있는 평원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자연마저도 낯선 이국이건만 "누구야. 이리 와"를 부르는 한국말이 도처에서 들리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앙코르와트를 찾는 여행객이 부쩍 는데다가 작년엔 동남아 해일 여파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캄보디아를 찾았다고 한다. 하긴 직항 노선에 전세기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불어의 '앙코르'가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다시 한번 앙코르와트를 다녀와야 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곳의 사원들은 충분히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 또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 김영하 소설 [당신의 나무]에서 만난 앙코르와트 사원은 이국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잡기 충분했고 나 역시도 그런 이미지를 따라 여행을 다녀왔었다. 앙코르아트에서나 프놈펜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관광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19세기부터 관광지로 개발됐다는 앙코르와트 부근의 시엡립보다는 어수선하고 관광객이 돌아다니기에는 좀 긴장감이 넘치는 프놈펜의 거리가 떠올랐다. 포첸통 공항에서 내려 숙소까지 갈 때까지 또는 숙소 근처의 오토바이와 중고버스, 택시가 마구 엉켜있던 거리는 여권이 든 가방끈을 여며쥐게 했었다. 선착장 근처 골드 피쉬 레스토랑 앞 작은 가게에 들렀을 때다. 지저분한 쟁반에 앙코르맥주와 뿌연 유리컵을 받쳐들고 서빙을 하던 소년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게 웃었다. 온 가족에 친척까지 모여 있는지 어른 한 명과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 싸고 구경을 하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게 웃었다. 그곳에 묵는 동안 호텔에서는 결혼식이 있었고 벤츠를 비롯한 온갖 고급 외제차를 타고 온 손님들이 화려한 춤을 추기도 했었다. 시엡립 선창가에서, 또 앙코르와트 주변에서, 킬링 필드 부근에서 관광객을 향해 몰려들던 꼬질꼬질 때 묻은 아이들가의 간격이 너무 커서 가슴이 컥 막혀왔다. 그리고 나는 새삼 내가 경험한 적 없는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모습을 떠 올렸다. 소설 시하눅빌 스토리는 캄보디아 시하눅빌이 배경인 소설이다. 기껏해야 관광객인 나는 가 본 적 없는 시하눅빌이라는 거리의 모또 운전사, 창녀 , 마약상 그리고 그런 거리를 찾아온 관광객, 관광객으로 왔다 한동안 눌러사는 보헤미안 등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이 훌륭했느냐 하는 것은 잠시 접어둔다. 영혼의 문둥병과도 같이 매사에 시큰둥하고 지친 내가, 냉소적인 내가, 잠시 벗어나기 위해 잠시 다녀온 여행지, 그곳 캄보디아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오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보여주는 것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삶의 모습 말이다. 어느 새벽 거리에 나가 두어 시간 시내를 돌아다니다 온 것으로 그곳의 삶의 현장을 보았노라고 위안하는 나에게 다시 한번 산다는 것은 그런 고독한 제스처 아니라 고독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음을 곁에 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