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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얘기로 가슴 따뜻하게 적셨던 이 작가의 작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여러 사람들에게 권했는데 역시 이 책은 그 이상의 감동이며 놀라움이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정말로 이 젊은 작가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감사하고 그런 심정이다. 우리 국문학이 정말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결코 쿨하지 않은 책, 정말로 뜨거워서 가슴이 데일 것 같은 그런 책이다.
우선, 독특한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도 훌륭하지만 해박한 고어의 사용은 젊은 작가의 나이를 알고는 그저 놀랄 뿐이다. 23세의 젊은 상룡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운명적인 삶과 사랑이 슬프고 전통의 보존과 새로움의 갈등이 안스럽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이며 인간이 아닌가. 작가는 두 시대의,너무나도 닮은 슬픈 두 사건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역설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과연 이러한 일은 그러나 인간 사이에서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나만 옳고, 나와 다르면 절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꼭 닫혀 있는 관계 안에서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을....
상룡의 고독, 운명에의 저항, 소외, 강자에 대한 약자의 열패감.... 이 모든 것을 녹이고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뿐인 것을. 따지지 않고 재지 않고 오직 상대만을 위하고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뚱뚱이의 바보같은 사랑인 것을,,,,
언간 속의 판서나 상룡의 할아버지에게서 인간의 허위의식, 우리 내면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다. 식자들, 가진 자들의 위선에 반하여 달시룻댁과 정실은 얼마나 솔직하고 따뜻하며 다정다감한 편안한 사람들인가. 상룡이 정실의 임신 사실을 알고 정실에 대한 책임감과 생명에 대한 존엄을 느끼며,모처럼 용기를 내, 할마버지께 남자로서의 자아를 확인시키는 장면에서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자학에서 시작된 상룡과 정실의 섹스 장면을 절대로 추하지 않게 ,오히려 상룡의 평화로 그릴 수 있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리라. 경상도 사투리, 제사 장면, 언간 내용 중의 반가의 풍습들도 참으로 맛깔스러운 문체로 잘 이끌어갔다. 마지막, 효계당의 화재 장면은, [허무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다 읽고 나니 하망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런지....
재능 많은 이 젊은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인상깊은구절]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 버렸다. 맹렬히 불타오르고 재조차 남지 않도록 사그라짐을 영광으로 여기는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다. |
| 소설책을 읽을때 내겐 몇가지 버릇이 있다. 항상 소설 초반과 중반과 후반의 몇 장을 먼지 읽고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기를 시도 하는 것과 책머리를 훑어보다 액자식으로 쓰여진 소설임을 알게 되면 난 항상 띄엄띄엄 등장하는 액자 소설 먼저 읽는 버릇이다. 하나하나의 문장이 주는 감동과 묘사의 떨림들을 천천히 되새김질하기위해서 언제나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시작해야 소설이 읽히는 이상한 버릇이다. 이번 달의 제단 역시 그랬다. 달의 제단을 읽는 동안 내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람의 아들에서 주인공이 새로 만든 성서의 역할을 달의 제단에서는 상룡이 해석해야하는 어간이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책 곳곳에 등장하는 어간의 내용을 찾아서 연결시켜 먼저 읽고, 사실 책장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겁이 났다. 상룡의 고종 할미와 그녀의 할미의 편지 마지막이 자진이라는 것, 할미의 편지에 대한 그녀의 할미의 답장이 없다는 더 우울한 어간의 결말이 상룡과 정실이 그리고 17대 종손 할아버지의 관계 역시 자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없는 다소 습습하고 어둑어둑한 서글픈 운명의 고리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딸을 낳은 고종할미가 자결의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듯이, 상룡의 아비가 효종어머니의 옷고름에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옛 연인을 그리다 자결했듯이, 상룡 또한 효경당을 지키는 종손의 무게를 오롯하게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되었을 쯤 전통을 지켜내야 하는 운명의 고리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다소 우울한 운명은 달의 제단이 다른 무엇인가를 말해 주지 위해 선택한 ‘돌아간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의 제단의 진정한 매력(?)은 종손의 무게, 전통과 현실의 괴리와 불협화음 속에 매몰되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단지 남성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는 다는 점이다. 어간의 주인공은 고종할미의 우울한 희생이 효경당어미니 혹은 상룡의 친어미인 마법의 초콜릿 가게 여주인으로 그리고 다시 부엌데기, 불구 정실의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우울한 희생은 전통과 현실의 괴리나 불협화음이 가지고 오는 남성위주의 소음속에서 남성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혹은 그녀들의 선택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종가집에 몸을 묻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몸을 사용한(?) 남성들을 통해 그녀들의 몸의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않은 출생과 전통을 할아버지에게 이젠 종교가 되어버린 전통을 계승해하는 상룡에게 지워진 무게 보다 정실의 몸이 들려주는 우울한 희생과 눈물섞인 아이의 발길질이 더 서글퍼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
| "달의 제단' 이 처음 소개 되었을 때 책 내용만으로 나는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마치 한국판 '백년동안의 고독'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물론, 다 읽은 지금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지난 주 '동인문학상 후보' 에 올랐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나서도 쉽게 읽혀 지지 않았다. 책을 산지 한 달이 지났건만 도입부분 넘어가는 것이 영 어려웠다. 구투스런 문장이며 어투가 옛글을 읽는 듯해,속도감에 길들여진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어제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심사위원들이 앞다투어 작품을 칭찬할 때는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면서, 이야기에 몰입하면서부터 문장이며 언간이며 내용이며 모든것이 그대로 내게로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 참 괜찮은 책을 잘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작가 다운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통성에 근거한 무게감 있는 내용을 소설적으로 이만큼 그려내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것도 여성작가가 남성의 언어로, 서울 토박이가 안동 종손의 이야기를 생동감있게 그려냈다는 것이, 더구나 사투리도 그대로 살아 있었고... 현재 젊은 작가 중에서 이 작가 만큼 이런 이야기를 소화 해 낼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있는지 의심 스럽다. 아무튼 좋은 책이었다. |
|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재미있다. 독특하다. 쿨하거나, 심심풀이 삼아 읽을거리여서가 아니라 내용의 신선함, 탄탄한 구성, 작가의 열정이 어우러진 완벽한 작품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배합, 곳곳에 등장하는 서간(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평가 받을만 하다), 종가 전통의 사실적 묘사가 독특하다. 특히 이미 보도 되었던 바 대로 동인문학상 심사평에서 나온 얘기지만.....'가부장적 문화가 얼마나 허구 덩어리인가를 파헤친 작품인데, 페미니즘 티를 하나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가히 획기적 발굴'임에 틀림 없는것 같다. 너무 좋은 작품이어서 지난해 동인문학상 수상이 자못 기대되었었는데...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작품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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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무엇인가. 종가란 무엇인가. 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문외한이기에 그것이 왜 지켜져야하는지 사람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게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시종일관 주인공의 편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기위해 그 무엇도 불사하지 않고 집안을 위해 바쳤을 것이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거울을 봤더라면 내 얼굴은 온통 인상투성이였을것이다. 지금역시 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 자기 목숨보다도 자신의 일생보다도 더 큰 무엇이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된다. 그래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혈육을 죽이고서라도 집안의 체통을 더 지키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얘기들 속에서 난 계속 헤매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말 부러웠던 것은 나에게도 그와같이 온몸을 던져서 내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는 뭔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어미의 마음이 그것 아닐까. 얼마전 선배가 자신의 아기를 보고 정말 자식을 버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그 마음 아닐까. 그래서 그토록 사랑한다는 혈육마저 묻어버릴 수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많은 것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괜찮은 소설이었다. 단지 내겐 그 할아버지의 열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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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 소설은 다 읽어 보려고 벼르고 있는 터다. 현재까지 출간된 세 권 가운데 <달의 제단>을 먼저 집어들었다. 심윤경 작가를 새겨 둔 건, 평소 읽은 책에 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한 선배가 "너라면 심윤경 작가 무척 좋아하겠다."며 권해줘서다. 먼저 내일, 그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역시 나에게 맞았다.
<달의 제단>은 손이 귀한 종갓집 효계당 안에서 벌어진,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렸다. 효계당 지붕에 서려 있는 푸른 인광은 주인공 상룡이 그 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날도,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날도 그의 시선을 잡아 끈다. 품격과 고고함이 살아 있는 이 종갓집 지붕 위에 괴괴하게 서려 있는 인광은 어인 일일까. 주인공 상룡은 불운한 종손이다. 뿌리와 씨를 중시하는 집안의 대를 이을 일점 혈육이지만 그 자신은 태생에 대해 한없는 열패감에 시달린다. 그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짝지어 준 양갓집 규수와 결혼하기 전에 서울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 그를 낳았고, 억지로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자살하고 말았다. 상룡의 생모는 모종의 거래 끝에 아들을 효계당에 던져 놓고 한 번도 들여다 보지 않았다. 탕녀 어머니와 자살한 아버지. 정을 주지 않는 새어머니. 늘 마뜩찮은 눈으로 바라보는 친할아버지. 그 누구도 그에게 혈통의 자부심을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국문학과 학생인 상룡이 할아버지로부터 해석을 명 받은 언찰의 뜻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이야기는 옛 편지 속 소산 할매 이야기와 현재 상룡의 이야기가 크로스된다. 소산 할매 이야기는 고어가 뒤섞여 읽어 뜻을 헤아리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굽이굽이 그녀가 친정할머니와 주고받은 이야기 속에서 효계당의 추악한 모습이 하나하나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에선 몰두해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언찰은 몇 대 지난 지금, 상룡의 할아버지가 지키려고 안간힘 쓰는 가문의 명맥이 얼마나 추잡한 욕망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또 얼마나 한 맺힌 피울음이 섞인 것인지를 서두르지 않고 한 대목 한 대목 씩 아껴 가며 보여준다. 그리고 가문을 위해 바쳐진 그녀들의 역사를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 보인다. 상룡의 마음에 자리 잡은 애틋한 사랑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속이 많이 아팠다. 얼핏 보면 기형적이랄 수 있는 사랑이고 여성 비하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사랑은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숱한 열등감과 공포 속에서만 살아 온 그에게 정실은 유일한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 체념하고 살던 정실이 그의 사랑을 하느님이 주는 은총인 양 받아들이는 마음도 무척 예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정실은 누가 뭐래도 상룡의 정실 부인이었다. 그러나 몇 대에 걸친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가문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랑이 짓밟혔을까. 결국 한 집안을 잇는 생명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는 것일 텐데.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무시하고, 남녀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거세한 채 위엄만을 내세운 혈통 유지에의 욕망은 오히려 가장 저속했다. 그리고 그에 바쳐진 재물은 결국 그렇게 지키고자 한 혈통일 수밖에 없다.
이를 깨우치지 못한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지붕 위에 인광이 서리고 괴괴한 아녀자들의 피맺힌 절규로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버리는 과정이 생생하다. 한편으로는 모든 인물에게 저마다 다른 향과 색채가 살아 있다는 데 놀랐다. 작가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스무세 살 청년, 종갓집 가장, 절름발이 부엌데기, 심지어 시대를 달리하는 소산 할매 등 각자 사연을 달리하는 인물들을 모두 작가의 영향력 아래 두면서도 저마다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게 작가가 당연히 갖춰야 할 재능인 듯 하지만, 의외로 이렇게까지 잘 살려 내는 작가는 흔치 않다.
글을 읽는 내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내내 겪었을 법한 작가의 몸살기가 내게도 전해졌다. 이 이야기들이 한층 괴괴하고 잔혹했던 건 그 안에 싹튼 사랑이 그만큼 애틋하고 실감 나게 다가와서였다. 그래서 눈으로 읽으면서 마음으로 전해져 몸까지 욱신거릴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
감수성과 치밀함을 동시에 갖춘 작가로 기억하겠다. 시대가 원하는 문제 의식에 맞춰 소재를 택하지 않는 작가로도 기억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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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어느 시골 종가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와... 조상의 묘지를 이장하다 발견하게 된 조상할머니의 언간이 이야기의 두 축인 데... 지면상의 비중으로는 언간 이야기가 훨씬 작고, 처음엔 대체 생뚱맞게 이 얘기는 왜 끼어 들었을까 싶지만.. 읽다보면 그 몇쪽 안 되는 언간 이야기의 울림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는 현재의 이야기를 압도해 버리는것 같다. 그리고 사실 그 둘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기에 분리 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하나로 통합된다.
도대체 이 작가의 한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고... 오래도록 울림이 남았고... 그리고, 이 작가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근데, 전국 종가집 협회 같은 데서 항의 안 했을려나? 그리고, 조상 할머니의 언간은, 부장되기 전에 그 내용이 안 드러났나? 드러났더라면 함께 묻히기는 고사하고 사라져 없어져 버렸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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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동구의 맑은 눈망울로 그녀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슴 저린 밤을 보내게 해 준 그녀를 한동안 참 많이도 사랑했습니다. 눈물이 필요했던 것인지, 그녀의 글 속에 담긴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탓인지 그저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만난 그녀의 두번째 소설 <달의 제단> 을 손에 들었던 날 역시 밤새 그녀의 글 속에 담긴 가슴 아린 이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 버렸다. 맹렬히 불타오르고 재조차 남지 않도록 사그라짐을 영광으로 여기는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다. -작가의 말>
냉정한 이성도 모잘라 차가운 감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 심윤경 작가가 뜨거운 용광로를 등에 짊어지고 나타났습니다. 머리도 가슴도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옛날식의 정열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는 이 뜨거운 책을 전 소화기를 들고서가 아니라 부채를 옆에 들고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더 뜨겁게 불타 오르기를 바라며.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함께 그려내고 있어요.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어색함 없이, 오히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현재, 서안 조씨의 15대 종손과 17대 종손이 사는 효계당 아버지의 자살과 인정받지 못한 생모로 부터 떨어져 홀로 효계당으로 와 해월당 유씨의 손에서 종손으로 자란 상룡은 오로지 종가를 일으키는 것만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음에 힘이 들고 할아버지 역시 상룡의 마음과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는다. 진실을 묻어두고 전통을 계승하고 싶은 할아버지와 가문의 진실을 알아버린 상룡의 혼란 속에 고요하기만 했던 효계당에 미약하지만 작은 불길이 일기 시작한다.
과거, 서안 조씨의 10대 조모인 안동김씨가 친정 할머니와 주고받은 언찰(諺札) 상룡에게 할아버지가 맡긴 언찰에는 숨기고자 했던 가문의 진실이 드러나고 상룡은 그로 인해 할아버지와 대립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오는 언찰은 작가 심윤경씨가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손이 귀한 종가집 며느리로 들어와서 겪는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언찰에는 옛글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책을 보며 종가집에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종가집 여성으로서의 삶은 책 속 정실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다리가 성치 못하게 태어난 정실은 애처로울 정도로 가녀리고 비틀린 발목에 비해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가집 여성의 삶은 여성들의 몸에 비해 너무나 거대한 책임을 짊어준 건 아니였을까요? 그런 정실을 사랑하는 상룡의 사랑은 종가집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는 아닐지.
심윤경님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가슴에 불을 품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 만큼 삶을 살아감에 있어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지요. 꼭 불에 뛰어들어야 뜨거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 지키고자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 혹여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포기 하지 않는 모습에 열정이란 단어를 붙여주고 싶습니다. 다만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조금 더 빨리 가슴에 쌓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입밖으로 내보여 주는 것이었답니다. 이건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바라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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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문학관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하게 보게 된 "달의 제단"은 아주 특별한 작품이었고, 꼭 한번 읽어보리라 다짐하게 만들었다.
가문이란 무엇일까? 꼭 이렇게까지 해서 대를 이어가야 할까? 달의 제단을 읽으면서 이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않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해도 한 가문의 종부는 남다른 위엄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엄만큼이나 그녀들의 막중한 책임 역시 무겁다. 특히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다.
<달의 제단>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한많은 삶을 살았던 여성들과, 오로지 가문이란 이름아래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진 불행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인들의 눈물과 한숨과, 한을 밟고서 일으킨 효계당.. 자신들의 혈육을 죽여가면서까지 지켜내려 했던 효계당..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눈물이 나와 혼이 났다. |
| 달은 여성의 잉태의 공간을 은유했다기 보다는 온전한 여성 그 자체를 말한다. 여성은 달처럼 차가우면서 부드럽고, 가녀리면서 풍만하다. 이 소설은 가문의 존속에 바쳐진 그런 여성들의 수난기이다. 여성의 수난기라 하지만 그 흔한 남편의 바람기나 고부간의 갈등같은 것은 비치지도 않는다. 이 소설에서 집안의 가장으로 대변되는 남성은 오로지 가문의 번창에만 관심을 갖는 악귀로 나온다. 부정(父情)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고, 원치 않는 아이는 짓밟아 죽일수도, 복중의 태아를 걷어 찰 수 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가문을 위한 것이라면 평생을 따라다닐 죄책감조차 우스운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도 사실은 가문과 전통에 자신의 본성을 바친 제물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제물인 여성들의 수난은 남성들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본격적이다. 여성들은 각기 돈에 팔리고, 시간에 구속되고, 폭력에 휘둘린다. 그들의 아픔은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독자의 아픔에 비벼든다. 또한 누구하나 자신의 제물됨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가문에 바쳐지며, 다만 원귀가 되어 효경당을 떠다닐 뿐이다. 주인공 상룡은 이 소설에서 남성이라기 보다는 여성이다. 그가 그의 어머니의 닮은꼴로 표현되고, 해월당 어머니의 원귀와 소통하고, 달시룻댁과 교감을 나누고, 정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효경당의 원귀들이 상룡이라는 중성의 인물을 통해 조씨 가문에 마지막 씻김굿 잔치(효경당의 화재)를 벌이는 것이다. 이 효경당의 화재로 우리 남근주의 역사가 씻기어 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뿌리는 너무 깊었고 우리의 성찰은 언제나 너무 얕았다. 우리 족보에 가리워진 해묵은 원귀의 씻김을 위해서는 이제 우리 모두를 달을 바치는 제단이 아닌, 달에게 바치는 제단 위에 올려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