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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단 마틴 루터 킹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유명한 기자이자 편집가가 쓴 책이라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그 역시도 킹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있는 그대로의 킹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킹은 목회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교회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한 번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그러한 위대한 웅변가가 되리라 다짐한다. 그는 유난히 여자를 밝혔고 자신의 말솜씨로 많은 여자들을 유혹하며 다닌다. 다부진 성격에 열정이 가득한 그는 강한 집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자라나면서 그는 유독히 죄책감이 많은 소년으로 성장한다. 할머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며 자살소동까지 벌이게 된다.
자라나면서 그는 교회에서 화려한 설교를 들으면서 성장하였고 이런 경험은 나중에 그의 뛰어난 웅변력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그는 흑인이었고 흑인들이 당하는 차별대우를 오롯히 경험하면서 자란다. 그리고 엄한 아버지 아래에서 순종적인 자녀로 자라난다.
그는 신앙을 저버렸다가 여러가지 학문에 빠지게 된다. 사회주의 사상과 여러 종교론. 결국 그는 회개하고 신학 대학에 진학하여 미치도록 공부를 한다. 수석졸업이 그를 증명한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그는 오스트리아계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다. 역시 그 와중에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는 작은 마을로 가서 목회자를 시작하고 유능한 말솜씨로 교인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던 어느날 로자 파크스씨의 버스 승차 거부 사건을 계기로 그는 흑인 인권을 위한 운동에 뛰어들게 되고 10년동안 목숨을 걸어 운동을 전개하고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확고난 의지와, 복음주의, 간디의 비폭력 철학을 기반으로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는 간디의 검소함과 금욕주의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있는 정욕의 욕구를 이기지 못했고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음으로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자신이 맡은 과중한 위치에 대한 부담감을 그는 그렇게 해소하였다.
그가 운동을 하는 와중에 그는 예수님을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를 믿음으로 그는 끝까지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그의 이런 이중 생활은 그에게 심한 죄책감을 주었고 그는 자신이 이 운동에 목숨을 바침으로 대속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는 점점 죽음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것만이 자신의 더럽고 추잡한 성생활을 용서받는 길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백인들에게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야만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운동에서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여러 승리를 거쳐서 미국의, 그리고 세계 인권 운동의 영웅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획득한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측근들이 있었는데 각기 개성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들은 각기 방향이 달랐고 킹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꾸려 나가야하는 부담감이 많았다.
FBI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사회를 붕괴하려는 조짐을 발견하였고 특히 FBI국장이던 에드니 후버는 킹의 사생활을 엿보며 그를 경멸하였다.
킹은 미국내에 존재하는 흑인에 대한 불만에서 운동을 시작했으나 이것은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로 확대되었고 끝에 가서는 반전운동,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각성과 회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읽고 나서…
킹에 대해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그의 성생활이 지극히 문란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로 성에 집착했다. 이는 그의 성장배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억압된 가정환경과 지나친 죄책감, 그리고 사명감에 의해 고통받았고 사랑하던 여성과 이별을 통해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는 이것을 사람들의 명성과 정욕을 통해 채우려고 했다. 아마도 그의 마음의 큰 목마름에서 그의 열정도 나왔을 것이다. 그는 복음주의 사도였고 혁명가였다. 그의 방식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희생정신은 본받을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어딘가 모자람이 있다. 자신의 죄를 자신의 행동을 통해, 고행을 통해, 희생을 통해 대속하려는 행동은 지극히 교만한 행동이며 복음 진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주어지는 죄사함을 몰랐다. 그는 겸손을 모르는 자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마름을 명성과 행위, 정욕을 통해 채우려고 노력했으며 끝까지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해 끝내 죽음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했다. 신앙적으로 그는 실패자가 할 수 있다. 그는 극단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자이다. 극단적인 행동가, 신념가, 정욕중독, 금욕. 이런 식이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성격이 있다. 엄한 아버지, 뭔가 되고자 하는 신념,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 정욕에 집착하는 성격, 금욕주의, 자기 희생을 통해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
그의 인생을 통해 타산지석의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위대한 일을 하였지만 그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자는 있었을까?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구원을 받았을까? 그는 천국에서 큰자일까?
그는 자신을 구원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이념적으로 이용하였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까지 확대하지 못했다. 그는 많은 지식을 알았으나 진리를 알았을까? 그가 민권운동이 아니라 전도사업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지나친 허영심에 쫓기지는 않았는가?
그의 원동력의 죄책감과 자만심이었나?
그의 시작은 좋았으나 말년에 그는 심각한 혼란에 거하게 된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자신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게 되고 정욕을 끝없이 추구한다. 그는 참으로 고통받는 한 영혼이었다.
그는 복음을 통해 완전히 자신을 죽이는 대는 실패했다. 그는 계속해서 죄악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것에서 그는 절망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실패한 것이다. 그는 어쩌면 허황된 꿈을 좇으며 살았던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다양한 측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확고한 신념과 복음주의는 배울 점이다. 하지만 지나친 죄책감과 그릇된 희생정신은 버려야 할 점이다.
진리를 정확히 알고 확고난 신념과 열정을 가지며 항상 죄사함의 은혜를 간직하고 겸손함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는, 잃을 것이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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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까지도 실존하는 그의 권위를 낱낱이 파헤친 걸작 중의 걸작이다. 보통은 일대기를 기록한 자서전의 형태에 이러한 평가를 하지는 않는 나이지만, 이 책만큼은 도서관에서 읽고 또 읽고 또 읽다가... 끝내는 구입하게 만들어버린.. 명저 중의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솔직함과 균형이다.
대다수의 일대기를 기록한 내용들이 예찬론적이고, 심지어, 킹의 다른 일대기를 보아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믿음이 가지 않아 조작의 냄새가 나는 일대기를 우리는 소설이라 불러야 한다. 그들을 위한 장르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 것처럼. 진실을 떠난 일대기는 대중을 더 깊이 잠들게 하는 수면제와 같고, 사회의 정화작용을 방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진정 일대기다. 마셜 프래디의 거침없는 필력에 단지 감동받은 것은 아니라, 그의 진실한 한 문장, 한 문장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킹의 권력과 위엄, 그의 카리스마 뒤에 감쳐진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며, 개탄하면서도, 눈물지었고, 한탄하면서도 그렇게 한숨질 수 밖에 없었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결국 인간의 속성은 다 똑같은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는 영웅이었지만, 적어도 내겐 죽지 못해 사는 영웅, 합리화의 끝을 향해 달려가다 결국 심판받은 비극적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연설을 남겼지만, 결국 내겐 인간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 서지 않는다면 오직 추악함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킹의 그림자. 만약 그 그림자안에서 당신이 바로 자기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은 킹보다 위대하다.
이것이 진실의 힘이다.
킹에 대한 프레디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문구만큼 정확할 수 있을까.
"숭고한 영성으로 민중의 비폭력 양심투쟁을 지탱해 나가야 한다는 차마 견디기 힘든 중압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리고 날이 갈수록 차츰 그날그날 죽음의 낌새를 강하게 느끼며 살아가야 했던 한 인간. 이따금씩 되풀이해 육신의 방탕이라는 망각의 늪을 드나들며 거기에 혼신을 쏟아 의지해야 했던 한 인간. 초월적인 영성과 발잘적인 세속의 관능 사이를 끝없이 순환하는 삶."
언젠가 그의 묘비 앞에 선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말한 그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으나, 결국 당신은 어디에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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