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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전 독립신문의 사설, 우리에게 성찰과 비젼을 요구하다-독립신문 다시 읽기
"110년전 독립신문의 사설, 우리에게 성찰과 비젼을 요구하다-독립신문 다시 읽기" 내용보기
각 개인의 의견과 주장이 어떻게 전파되고 공론화되는지, 또 그렇게 공론은 어떻게 유통돼 여론으로 형성되는가?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바로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나 단체의 의견 표명과 언론의 역할이 보장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110년전 독립신문의 사설, 우리에게 성찰과 비젼을 요구하다-독립신문 다시 읽기" 내용보기

각 개인의 의견과 주장이 어떻게 전파되고 공론화되는지, 또 그렇게 공론은 어떻게 유통돼 여론으로 형성되는가? 언론의 자유라는 것은 바로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나 단체의 의견 표명과 언론의 역할이 보장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사대부들의 공론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쳤던 조선은 특정 신분에 의해 공론이 독점됐다는 점에서 봉건시대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19세기 말 즉 조선 말기에 일련의 근대적 신문들이 속속 창간되면서 신문이 공론화와 여론형성의 제일선에 나서게 됐다.

그중에서도 '독립신문'은 개화와 문명개화를 주장하는 일성을 담아내면서 조선의 근대화를 향한 여론을 주도해나갔다.

 

'독립신문 다시 읽기'. 한시간이 무섭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세기도 더 지난, 그것도 오래 전 문체라 읽기도 불편한 신문의 사설을 굳이 '다시'읽어야 봐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제를 보면 바로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백년 전 거울로 오늘을 본다' 

독립신문 사설은 서재필이나 윤치호 등 당시로선 최고의 개화지식인들이 필진으로 나서,계몽을 선도해 나갔던 것이다.

 

'독립신문'이 순한글신문이었다는 점에서부터 폭발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문을 문자로 했던 사대부사회, 소중화의 벗어난 근대적인 민족국가, 조선인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마치 중세 유럽사회가 성경을 통한 자국문자를 통해 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운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독립신문을 쭉 보다보면 프랑스 혁명시기에 막 움텄던 주권재민의 사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설 곳곳에 민권, 인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독립신문이 전파하고자했던 근대사상의

면모가 엿보였다.

실려있는 사설이 워낙 다수라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다양했다. 기본적으로  조선병, 개혁, 외세, 사회계약,근대 학문 수용 등, 서구 문명을 수용해 문명을 이루자는 것이 골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바로 독립신문이 인지하고 있는 조선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었고 당면과제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신문이다보니 첨예한 시국문제, 가령 외세라든가 고종의 칙령에 대한 반대의견을 표방한다든가 하는 경우에는 비분강개나 개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읽다보면 백성된 입장에서 정치나 시국에 대한 걱정은 한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했다.

글을 읽으면서 국가의 존재 목적이나 언론의 존재 목적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달라지더라도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웠던 것은 '독립신문'이 당시로선 상당히 진보적인 노선의 신문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단발령에 자살하는 인물까지 등장했던 분위기에서 남녀평등사상이나 주권재민 사상이 이렇게 빠르게 공론화되고 전파되는 속도였다. 과장을 보태면 불과 몇년 사이에 천지개벽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단점도 드러났다. 독립신문은 지나치게 서구의 기준에 매몰돼 있는 부분도 보였다. 서구를 기준으로 '조선병'을 진단하다보니, 서구우월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 일리가 있있었다. 

 

그야말로 소용돌이 였던 시기,외세의 각축장이 되고 남의 나라 전쟁에 전장터가 돼버리는 어이없는 사건도 벌어지고. 나라의 존망에 대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격변기에 독립신문은 조선을 서구적 문명화를 통한 독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꾸준히 방향제시를 했다. 그리고  엄청한 파급력을 확보해 나아갔던 독립신문. 하지만 독립신문의 생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1899년 12월 4일을 마지막으로 폐간됐는데, 불과 3년 반 정도 발행된 신문임에도 독립신문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고,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기념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1100년전 사설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로선 최고 지식인의 에세이였겠지만, 글 스타일이나 문장력 단어에서부터 고풍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국문학적인 연구가치가 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글을 읽으면서 110년전의 조선을 거울삼아 21세기인 지금은 얼마나 당시에 제기됐던 근대성이 실현되고 있는지 지금의 현실을 톱아보게 만든다. 일제강점으로 인해 좌절됐던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 그리고 그 기간동안 왜곡됐던 근대화의 징후들은 없었는지를.

그리고 더 나아가 110년 후에는 어떤 사회가 돼 있을지, 되어야 하는지 그 청사진을 그려보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신문 속에 담겨져 있던 있던 조선말의 현재가 역사가 됐을 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찰과 비젼이었던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e****0 2015.06.3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