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백무산, 「길 밖의 길」
"백무산, 「길 밖의 길」" 내용보기
길         뻔한 길을 잘못 든 남산에서   발 닿는 곳마다 벼랑이다   이 작은 산에서 길 찾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래, 저 아래 세상길도   알고 보면 모두 폐쇄회로다   나는 길을 가려던 것이 아니라   산으로 왔던 것이다   길이 끊긴 곳에서 산이 아닌가     그러나 산은 또 무엇하랴   나는 산에서도 내려서려고 하였다   가파른 벼랑 끝에 다다라   나는 멈추었다
"백무산, 「길 밖의 길」" 내용보기

 

 

 

  뻔한 길을 잘못 든 남산에서

  발 닿는 곳마다 벼랑이다

  이 작은 산에서 길 찾는 일은 쉬운 일이다

  그래, 저 아래 세상길도

  알고 보면 모두 폐쇄회로다

  나는 길을 가려던 것이 아니라

  산으로 왔던 것이다

  길이 끊긴 곳에서 산이 아닌가

 

  그러나 산은 또 무엇하랴

  나는 산에서도 내려서려고 하였다

  가파른 벼랑 끝에 다다라

  나는 멈추었다

 

  길과 산은 다하였고

  나는 탑이 되었다

  한 발 더 내딛지 못하고

  탑은 다시 길이 되어

  산을 내려간다

  걸어가는 이 몸이 길이 되었다

  - 백무산, 「길 밖의 길」 

    

 

 

 

 

자주 드나드는 남산에서 시인은 길을 잘못 들었다. 산에서 길을 잃었지만 시인은 무어 그리 불안하지 않다. 발 닿는 곳마다 벼랑인 데도 시인은 이 작은 산에서 길 찾는 일은 쉬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산 아래로 휘황찬란한 도시 풍경이 보인다. 외진 곳에 남산이 있는 게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 작은 산 하나가 있는 것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험한 산에서 길을 잃었다면 어땠을까? 발끝마다 닿는 벼랑이 시인을 두려움 속으로 휘몰아 넣으리라. 어둠이 짙게 깔리기라도 하면 불어오는 바람소리에도 놀라 기겁을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산길을 잘못 든 시인은 지금 일상처럼 드나들던 익숙한 남산에 있다. “저 아래 세상길도/ 알고 보면 모두 폐쇄회로이듯, 이 작은 산 또한 폐쇄회로를 오가는 세상길과 다르지 않다. 걷고 걷다 보면 어느덧 뻔한 길이 나온다.

 

시인은 나는 길을 가려던 것이 아니라/ 산으로 왔던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길과 산을 시인은 달리 생각하는 것일까? “길이 끊긴 곳에서 산이 아닌가라는 시구에 그에 답하는 단서가 나와 있다. 길이 끊긴 곳에서 산이 시작된다. 그럼 산길은 길이 아니란 말인가? 시인이 산을 찾은 이유를 먼저 찾아야겠다. “나는 산에서도 내려서려고 하였다라는 진술을 참고하면, 시인은 산길을 걷기 위해 산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가파른 벼랑이 막아선다. 벼랑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 지점이다. 한 발을 더 내딛으면 저쪽으로 간다. 저쪽이 죽음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멈추었다는 시구는 이리 보면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저쪽의 풍경은 과연 어떨까 

 

길과 산이 다한 자리에서 시인은 탑이 되었다. 길이 끝난 자리에서 산이 시작되었고, 산이 다한 자리에서 탑 하나가 세워졌다. 스스로 탑이 된 시인은 그럼 벼랑 위에 선 망부석이라도 된 것인가? 벼랑 앞에서 한 발 더 내딛지 못한 탑은 다시 길이 되어/ 산을 내려간다”. 탑은 그러므로 저쪽에 있는 탑이 아니라 이쪽에 있는 탑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탑은 시인이 이쪽으로 다시 내려오기 위해 스스로 세운 사물임이 분명하다. 길이 끝난 자리에서 시인은 산으로 올랐고, 산이 끝난 자리에서 시인은 탑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길과 산과 탑은 이리 보면 셋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형성한다. 길은 산으로 이어지고, 산은 탑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탑은 다시 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탑이 된 시인은 이렇게 스스로 길을 내는 존재가 된다.

 

걸어가는 이 몸이 길이 되었다라는 결구로 시인이 이 시를 맺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탑이 된 시인이 이르는 곳마다 어김없이 길이 나타난다. 탑은 길로 이어지고, 길은 산으로 이어지며, 산은 다시 탑으로 이어지는 이 폐쇄회로의 여정이 반복되면 수많은 길과 산과 탑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나의 길이 수많은 산과 탑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탑이 수많은 길과 산으로 이어지는 시적 여정이 참으로 이채롭지 않은가. ‘길 밖의 길이라는 시 제목은 무엇보다 수많은 길과 산과 탑이 하나인 듯, 여럿인 듯, 한 곳으로 모이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풍경을 표현한다. 길 밖에 길이 있고, 또 그 길 밖에 길이 있다. 길 밖에 길이 있으니 길은 어느 순간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온몸으로 걷는 길이고, 온몸으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길 밖으로 나감으로써 길 안으로 들어오는 시인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과 끝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o*****s 2019.11.1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