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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이제 친구 같은 심이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아, 아직 어린아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최근의 '참 크래커' 사건. 심이가 먹고 싶다며 촘 크래커를 사달라고 했다. 촘 크래커? 그 글자는 촘이 아니라 참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심이는 정말 깜짝 놀랐더랬다. 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참'이야? 한참을 고개를 절레 절레. 이 책을 읽으니 열한 살 대훈이도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은 이랬다.
어린이는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을 풀어간다. 하지만 어른이 보기에 어린이의 오해는 대체로 단순해서 그런 오해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재미있는 일화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나도 그렇지만 가끔은 어린이를 조금 놀려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잘 알려 주기만 하면 오해는 금방 풀리고, 어린이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이 입장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농담 같은 일들이 실은 어린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무심코 놀리는 투로 말한 적은 없었는지 뒤늦게 반성하며 앞으로 아이가 겪어낼 오해들을 가볍고 재미있는 일화로만 치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어린이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가 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내내 이런 크고 작은 다짐을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필독서가 되어도 좋을 이 책을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 넘어가고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심이를 많이 떠올렸지만 그보다 이 땅의 어린이들, 어린이였고, 혹은 어린이가 될 모든 사람들을 더 많이 떠올렸다. 아이들을 어른들이 보살펴야 할 연약한 존재라기보다는 한 명의 당당한 자아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겠다는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말을 어린이에게도 하지 않는 것. 누군가와 '잘' 더불어 살아가는 비법은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봄부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당연히 마음껏 놀지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헌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물론 어린이는 실내에서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낸다. 그렇지만 어디든 나가서 잠깐이라도 뛰놀고 와야 칩거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게 어린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녀들은 애초에 부모를 그렇게 닮지 않았다. 물론 얼굴이나 체형은 한 번씩 ‘아, 맞다, 가족이지!’할 만큼 꼭 닮은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생활 습관, 말투 같은 것도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린이를 설명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너무 보고 싶다.
제일 자주 발견하는 건 역시 지우개다. 왜 그런지 어린이가 두고 간 지우개에서는 나름의 역사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닳아 있고 별 특징이 없는데도 그렇다. 손에 쥐면 따뜻하다. 이런 자잘한 물건들에는 이름을 써 붙여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다음에 왔을 때 찾아 가져갈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상처를 더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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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아이의 눈에 보이는 나는 어떤 어른일까?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만나는 10층 어린이에게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일터(어린이들과 밀접한 곳)에서 만나는 아가들과 10대들에게 나는 어떤 어른으로 보여질까? 평소,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고, 나 정도면 괜찮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오던 나인데 글을 읽으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으며 소통하고 있는 작가의 책이다. 매일 매일 어린이들과 생활하며 호흡하고 있기에 ‘어린이’의 상대편에 있는 ‘어른’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글을 읽다 보면 자꾸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생각, 어린이들의 마음을 엿보게 되며 나의 지난 행실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손도 들고, 반성문도 써야 할 것만 같은 죄책감이 자꾸 든다.
글 속의 작가는, 말수가 적은 아이가 본인과의 대화가 불편하진 않았을까 고민하는 세심한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이지만, 유아차 일행이 건물에 들어설 때 조금 빨리 가서 문을 열어주거나, 어린이에게 화장실 순서를 양보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쭈뼛쭈뼛 머리카락 한 줌 일어서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삶의 순간순간에도 남의 눈과 생각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위로를 얻는다.
작가는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세상이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고, 즐거울 수도, 어두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여러분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어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어린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린이를 보호해주고, 어린이를 환영해주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린이는 빨리 자라니까요.」라고...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내 아이만 봐도 어린이는 차암 빨리 자란다.
또한 작가는 김장하(책을 읽는 내내, 두 달 전쯤 OTT 서비스로 시청했던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 어른이 자꾸 생각났다. 감히 그분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의 언아더레벨이신 ‘어른의 어른’이었다.), 박막례, 채현국, 김영만 선생님 같은 자신이 존경하는 어른들처럼 내가 마치 그런 어른인 척하고 살자고, 따뜻하게, 힘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자고,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꼭 되자고 다짐하듯 당부한다.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 글 속에 진정,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장면이 있다. 은정이와 유진이 이야기이다. 둘은 학년은 같지만 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좀 떨어져 있고, 수업시간도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만나는 장소가 있다. 독서 교실 한 쪽, ‘클래식’ 책장 앞! 한 명은 월요일에, 한 명은 화요일에 그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꺼내 읽는다. 그러다 어느 주엔가는 둘이서 미리 맞춘것처럼 850쪽짜리 「제인에어」를 만지작 거렸단다. 현실에서 만날 순 없지만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를 만나며 책을 통해 마음을 교환하고 공감하는 두 사람을 그리는 영화와 같은 장면이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책을 쓰는 작가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그 책을 읽는 무수한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나의 인간관계가 더욱 넓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왠지 모를 소속감으로 충만해졌다.
책을 한참 읽다가 문득 이렇게 선한 마음의 소유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을 때까지 혹시나 나의 예상과 달라서 책의 좋은 느낌이 다 사라져 버릴까 봐 작가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당도하고 책을 덮은 후에 ‘김소영 작가’를 슬그머니 검색해 보았다. 작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역시!’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했다. 그 모습에 선함과 사랑과 배려가 가득했다. 사람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잘 살아야겠구나. 선하게, 사랑스럽게 살아야 되겠구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몸이 다 자랐다고 해서 어른이라 칭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사회, 나라에서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각 자리에서 책임을 지며 최선을 다하는 이 시대의 참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 나부터!!! #올해의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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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떤 존재로 취급받고 있을까? 대개는 '우리 사회의 미래' 혹은 '희망'이라는 수식어들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해마다 '어린이 날'이 되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어린이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역설하곤 한다. 하지만 그 때가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어린이라는 주제 혹은 존재는 다시 무관심의 영역으로 돌아가곤 한다. 오히려 지금 어린이들은 '교육'이라는 제도 아래 혹사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오로지 학교 성적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자식들을 사교육의 현장으로 내몰고 정당한 휴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저자는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어린이들과 함께 그들의 부모들을 주로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살아가면서, 글을 쓰기도 하는 저자가 자주 들었던 말은 아마도 '네가 애가 없어서 그래!'라는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낳고 길러본 사람만이 어린이를 잘 알 수 있다는 전제일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이른바 '경험주의'의 전형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신이 겪은 자식을 통해서 어린이의 세계를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모두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의 성향도 각자 다르듯이 아이들도 각자 개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인것이다.
어쩌면 자식을 낳고 길러본 사람들은 어린이 일반이 아닌, 자기 자식만의 특별한 경험을 근거로 그것을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한국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를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다른 아이도 비슷할 것이라는 인식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양한 아이들을 접하면서 그들과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특별한 케이스에 갇히지 않고 어린이를 폭넓게 논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어린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겪었던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어린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애초에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어린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어린이와의 관계가 저자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구성한 책의 내용들에서는 어린이를 단지 구호만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린이를 존중하고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와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서 양육하려는 부모(기성세대)의 현실적인 태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라는 존재의 의미와 어땋게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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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다 거쳐 온 시간들이다. 하지만 모두 잊고 있는 세계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렇게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리숭한 세계다. 분명히 그 시간들을 거쳐 왔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를 해도 어른들의 관점으로 이해한다.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온 방식이고 살아갈 방식이다. 아득한 세계, 그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신비스러운 세계를 탐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세계를 이 책은 만나보게 만든다.
물론 저자도 어른의 신분으로 어린이라는 세계에 몸을 던져 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는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원장으로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은 아이들이 보여준 언행을 기록하면서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있는 책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말이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궁구하는 속에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답을 찾는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기에 그들과 자신은 누구인지 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세계에 접목해 보는 것, 상당한 의미로 다가온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은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책을 다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렸느냐고 묻는 어린이도 있고, 팡 아팠겠다고 걱정해 주는 어린이도 있다. 나중에 자기 딸이 책 읽을 때 가르쳐 줘야 한다며 내가 쓴 독서 교육서를 읽어 보겠다는 어린이도 있다. 그 말에는 웃었는데, “엄마 어렸을 때 독서교실 다녔다고 말해 줄 거예요”에는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여 준다. 이 책은 이렇듯 설명해 주는 것보다 보여준다. 그러기에 훨씬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내비치는 언행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독자들이 느끼고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자기 딸에게 가르쳐 주겠다니? 얼마나 깜찍한 상상력의 세계인가. 이 책은 이렇게 맑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린이들의 세계, 우리도 겪어 왔지만 모두 잊어버리고 있는 그 순수의 세계를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받은 대로 성장한다는 지론을 가진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존중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존중할 줄도 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존중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그래야 바로잡고 고쳐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그런 것들이 모두 성장하면서 자신이 받은 대로 느껴갈 수 있다고.
저자는 어린아이들이 학습 현장에 오면 코트 같은 것을 벗겨 주고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선생님이 코트를 벗겨주는 것을 어색해 하더니 익숙해지니 당연하게 어깨를 돌려대고 옷을 벗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들이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린아이를 대접하는 일이고, 아이는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읽기와 쓰기는 나란히 간다. 읽기 시작한 어린이가 힘것 글자를 쓰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대견하다. ‘ㄹ’를 그리다가 언제 끝낼지 몰라 본의 아니게 한자 ‘弓’을 쓰기도 하고, ‘ㄹ’에 익숙해질 무렵 잘 쓰던 ‘ㄷ’이 갑자기 ‘⊃’이 되는 때도 있다지만 결국 해낸다. 나는 어린이가 글을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면 되도록 책에서 찾아서 가르쳐 준다. ‘책에는 뭐가 많이 있다.’ ‘선생님도 책을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아이들의 세계가 잘 다가온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의 자세가 마음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으면 책을 찾아서 가르쳐 주는 일은 아이에게 책의 소중함을 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자가 이상해도, 잘못 되었어도 끈기 있게 참으면서 지켜주는 선생님의 태도는 많이 본받고 싶다. 아이들의 세계, 그 순수와 열정의 시간들이 너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생각이 여물어 지면서 성장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넉넉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다. 책 속에 우리들의 아이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 아이들에게는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줄곧 쓸 수도 있게 된다. 아마 지각 가운데 언어를 익히는 능력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어른들이 그렇게 안달 나게 가르친다고 하지 않아도 때가 그렇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의 언어 세계, 정말 신비롭다.
어린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 집에 빗댄 설명을 종종 한다. 단어를 벽돌로, 문장을 벽으로, 문단을 방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문단에는 하나의 생각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잠자는 방, 부엌, 화장실을 구분하는 데 비유하면 설명하기가 좋다. 집의 크기가 식구 수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지듯이, 글도 상황에 따라 단락 수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대는 어린이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내 경험을 덧붙인다.
글쓰기 교육이 참신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아이들이 집에 비유한 글쓰기를 잘 수용할 듯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유하는 것만큼, 무엇을 전달하려 할 때 적당한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런 방법이 아이들의 뇌리 속에 각인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어릴 적 기억된 것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특히 그것이 좋은 기억임에랴. 좋은 교육을 하고 있는 자리가 행복하게 보인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글쓰기에 먼저 접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아마 이것이 성장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이런 배움과 관련이 없이 자라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좋은 조건을 지녔다. 그만큼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언어를 다듬는 글쓰기는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수단도 된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하는 성장한 축복을 받은 성장이다. 책 속에서 만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잘 성장할까 기대가 된다.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간널 때 손을 드는 것은 운전자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몸집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까 봐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좌석에 않을 때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어린이도 있다. 어른이 한 걸음 걸을 때 어린이는 두 걸은 걸어야 한다. 어린이는 비 오는 날 투명 우산을 써서 시야를 확보한다. 어린이가 작은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생각의 자락을 쫓을 수 있다. 어린이를 어른처럼 생각해버리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역할이 있고, 활동 범주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기억이 좀 난다. 그때는 놀고, 먹고, 자고, 공부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정말 시간이 안 가는 것이었다. 긴긴 여름 날, 멱을 감기도 하고, 밭에 가서 과일들을 따 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놀아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해는 늘 중천에 있는 것 같았고 저녁이 오기까지 정말 시간이 길었던 듯하다. 아마 어린 마음에 어른들이 그렇게 커 보였고, 시간이 그렇게 긴 듯했다. 지금은 하루가 너무 빨리 흐른다. 어린이들의 세계, 규모가 작고 느린 세계다. 그 세계를 이해할 때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온전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의 꿈과 배움을 인지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맑고 고운 신비스러운 세계, 하지만 너무나 지혜로운 그들의 세계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도 복된 일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는 신묘막측 하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다. 그 세계가 곱게 그대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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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어의 어원은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운 한문을 배우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을 ‘어여삐’ 여긴 세종에 의해, 당시의 민중들은 우리의 문자가 없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리다’는 ‘어리석다’ 혹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어린이가 적절한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여겨, 신체적 발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어린이’라는 단어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어원은 ‘얼다’일 터이고, 더 알아봐야겠지만 그 의미는 ‘제대로 갖췄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린이보다 못한 어른’이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하겠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도 자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어떤’ 어른이 되고자 하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책에서는 여전히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또 다른 ‘어떤’ 어른도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늘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저자는 ‘어린이한테 자신만의 삶을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라는 경력을 거치고, 이제는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고 소개하는 저자의 책을 이전에도 접한 적이 있다. 어린이를 ‘당당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자는 주장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아이에게는 먼저 웃으면서 ‘안녕!’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 때로는 짓궂은 ‘악동’의 모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배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릇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어른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평소에 만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누군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상대의 진정이 담긴 마음을 읽어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미숙한 어른’들이 너무도 많고, 오히려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앞으로 우리가 대접받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아울러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나도 끝까지 나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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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편집자를 꽤 오래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는 한때 모두 어린이였다. 그 시절이 까마득하여 어린이였던 시절을 곰곰 생각해야 할 정도다. 주변의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는 어린이들이 하는 말 때문에 웃고 감탄을 하였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었다. 어린이들은 이렇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존재. 어른은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는데 아이들은 말을 하지. 뭐든 어른은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며 말을 하곤 하는데 오히려 어린이에게서 배우는 게 많지 않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다그치고 기다려 줄줄 몰랐던 어른들의 세계를 혼내는 것만 같다.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 스스로 운동화 끈을 잘 묶을 수 없어 밸크로(일명 찍찍이 테이프)로 된 신발을 사준다. 운동화 끈을 묶는 법을 몇 번이고 가르쳐주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까지 가르쳐주면 늦기는 해도 묶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한쪽 끈이 풀어져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느슨하게 묶어 생긴 결과다. 어른들은 운동화 끈이 풀어진 어린이의 신발을 보지 못하고 묶어 주려 한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18페이지)
독서교실에 축구화랑 비슷한 풋살화를 새로 신고 온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려웠던 일들도 쉬워진다고 말해 주었을 때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는 신발 끈을 묶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느린 동작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린이 같아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 아마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전해오는 따뜻함에 절로 애정이 솟구치고 말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시선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엔) 제 마음이 있어요. (72페이지)
라고 말했던 아이의 말을 생각해 보자. 아이가 마음을 담아 선물한 책이다. 그 마음이 선생님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책을 받은 선생님은 책을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저절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이 가득 담긴 책을 소중히 보관할 것이다.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잊고 있었던 내 어린이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만큼 감동적이었다.
최근 어린이 실종과 유괴관련 소설과 뉴스에 오르내리는 어린이 학대와 사망사건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저자도 책에서 어린이 학대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 모두가 유념해야할 주제다. 훈육한다는 명목하에 다섯 살 어린이를 학대한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아이에게 해소했던 것과 같다. 어린이는 어른의 보호와 배려로 자라는 법이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아이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어린이는 말 그대로 어린이인데 부모는 아직 어린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은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45~46페이지)
아이를 낳았거나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어린이들의 세계를 아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 어린이들이 가진 순수함. 교육과 나름의 생각에서 비롯된 순수함을 보며 잊었던 어린이 시절을 기억해볼 수 있다. 비록 서툴지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들을 아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른에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거. 어린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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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제보다 나은,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어떤 어른>을 읽고 나도 어린이였다. 지금은 한 어린이와 한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 이 어린이는 나를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종종 이렇게 부러워하거나 실망한다. 어른은 좋겠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서. 어른이 그것도 모르다니 엉터리다. 어른이라고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외쳐보려 하지만 나 역시 그랬던 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고 만다. 어린이의 마음을 그때 그 시절에 두고 오기라도 한 것인지 어린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몇 해 전, 아리송한 어린이의 속마음과 마음 속 목소리에 각각 돋보기와 청진기를 갖다 대어 보고 들으며 생각한 것들을 담은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 초대받아 기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언제 어디서든 함께하면서도 잘 보이지 않았던 어린이를 어른의 두 눈 앞으로 데려와 우리집뿐 아니라 '남의 집 어른'이 되어보자고 제안했던 김소영 작가, 그는 신작 <어떤 어른>을 통해 "어린이한테 어떤 어른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동시에 어른에게도 '어떤 어른'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소설 속 피터팬이 아닌 이상 현실 세계에서 어떤 어린이든 언젠가는 어른이 되게 마련이다. 어린이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어른의 세상으로 한순간 점프하듯 건너지 않고 열린 문 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보기를 거듭한다. 어린이는 어른이라는 유리창 혹은 거울을 통하여 '두 눈에 무엇을 담고 마음에 무엇을 남긴다.(75쪽)' 따라서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보면 좋겠다.(64쪽)'고 저자는 권한다. 어른의 좋거나 나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다 말다 하고, 거울에 비쳐 흔들리거는 그림자처럼 보일 테다. 유충이 나비가 되기 전에 번데기라는 성장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어린이가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도 청소년이라는 경계인이 되어야 한다. 이들을 우리 사회 구조에 비추어 거칠게 호명하자면 ‘학교 안팎 청소년’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입시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생활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니면 일찍부터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일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어른의 세계를 향해 한 발씩 자기만의 보폭으로 나아가는 이들에 대한 시선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어른대던 것들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감각하고 생각하면서 멈추게 되는 순간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보통 부모(어른)가 자식(어린이)을 키운다고 말한다. 이때 어른은 능동적이고 어린이는 수동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어린이가 '자란다'고 말하면, 어린이는 자발적인 존재로 새롭게 보인다.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낼 순 없지만 때로 어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스스로 해결해 나감으로써 어린이는 어른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현재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독서 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과의 일화들을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어서 그 어른스러움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른답지 못할 때가 있는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독서 교실에서 만난 어린이 가운데 못된 녀석도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이다. 그는 초창기 미숙한 운영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의 말에 상처를 받았던 이유를 어린 시절에 어른들에게 착한 어린이로 인정받고자 행동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찾아낸다.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에 어린이가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 또는 비난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생겨난 미움을 잘 처리하고 새 얼굴로 어린이를 보고 한 번 더 어린이를 다독이는 것이 어른의 몫(286쪽)'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어떤 어른은 어린이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어른이니까 참고 넘어가야 하냐고 따져 묻거나, 또 다른 어른은 세상 참 좋아졌다며 라떼 기억에 질투 한 숟가락 넣은 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커서 모르는 게 많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이에 저자는 어른들은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 일들이 어린이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는 충분한 연습과 다양한 경험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미래의 어른을 만든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런 인정과 이해의 과정에서 어린이와 어른은 “우리가 다 같이 더 좋은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연대 의식을 서로 나눠가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
어린이의 마음이 자라서 어른의 마음과 이어진다는 얘기다. 설령 조금 찌그러지거나 부풀어 예쁜 동그라미가 아니어도 괜찮을 테다. 그건 앞으로 살면서, 자라면서 메우거나 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년을 건너 훗날 노년이 되어도 계속 자라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나이 듦이 단순히 늙는 게 아니라 자라는 일로서 어린이에게 어른이 필요하듯이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른의 어른, 그 어른이 바로 그가 바라는 '어떤 어른'의 지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어떤 어른>이 내게는 '어른의 어른' 같은 책으로 여겨진다. 어른이 어른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른의 어른은 어른의 '품격'이 무엇인지 삶 곳곳에서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쉽지 않겠단 생각이 들지만 일단 '멋있는 어른인 척'부터 해야겠다. 저자가 일러준 꿀팁을 참고하여 생활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보려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우리집뿐 아니라 남의 집) 어린이와 차도 사이로 자리를 옮기는 어른, 차로 이동할 땐 무조건 서행하는 어른,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어린이에게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코를 찡긋하며 주의를 주는 어른,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어른, 어느 상점이든 직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어른, 그리하여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하는 어린이에게 기댈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어(제보다 나아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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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게 힘들기도 하다.. 그러다 발견한 어린이라는 세계 제목을 보자마자 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어른의 눈을 통해 본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따뜻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이 책의 어린이들처럼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순수하고 소중했던 마음을 잃고 살아간다.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어른들인데 커서 내가 그 어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은연 중 무시하고 있었다는 게 매우 부끄럽기만 하다. 아이들은 소중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쉽게 망각하는 듯... 나도 그랬고...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고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어린이였을까 궁금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따뜻한 존재가 되어준 적이 있을까? "연두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도 어 렸을 때 저만큼 부모를 사랑했을까? 처음 먹어 보는 작고 예쁜 초콜릿을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서 방법을 고민했을까? 손에 쥐고 가면 녹을까 걱정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연두처럼 나도, 엄마의 감기약이 식을까 봐 약국에서 집까지 약 봉투를 품에 안고 달려간 적이 있다.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린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마치 손에 쥔 채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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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살고 있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싶어서 구입했다. 나는 고요함과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저에너지형의 인간이라 평소 절전 모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우리집 어린이가 너무 질문이 많고 흥이 많아질때 나의 짜증이 올라가면서 화를 많이 내왔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집에 사는 어린이가 신나서 그런건데 그걸 못받아주는 어른이었구나 반성했다. 그리고 어른인 내 입장에선 화가날만한 상황도 어린이의 시선이 되어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흐름을 거쳐 나온 행동이라서 그동안 나는 한번도 진지하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없었구나 싶어서 우리집 어린이가 정말 외롭고 답답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처음본 나한테 다짜고짜 반말하면 기분나빠하던 나였으면서도 나역시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하는 내로남불을 더는 저지르지 않아야겠다. 우리집 어린이도 남의집 어린이들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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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어린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항상 부담스럽다. 더 어린 아기들은 귀엽긴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 막막해서 뭔가 몸과 표정이 굳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한 때는 어린이였다. 이런 나조차 어린이였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면서였다. 나에게도 김소영 작가같은 어른이 있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내 옆에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으로 기억에 남았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알 수 있다. 김소영 작가는 확실히, 그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영 작가처럼 어린이를 어른과 같은 '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은 당연한 것인데,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했듯 많은 어른들이 그 사실을 깜빡한다.
나는 어린시절에 항상 작은 아이였다. 지금도 보통 사람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어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낀다. 체구가 큰 사람들은 자주, 아무 의식없이 체구가 작은 사람들 앞에 끼어들고 밀치고 무시한다. 그리고 체구가 큰 사람들이 주변에 둘러싸여 있으면 시야가 가려지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무섭다. 어린이들은 항상 그런 것을 느낄 것이다. 어린이였던 우리는 그 마음을 헤아려 배려해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대할 때 귀여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나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이성'으로 가르치려고 한다는 부분이 인상깊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를 대할 때 사랑으로 가르친다고 하며, 심지어 내가 학교다닐 때는 '사랑의 매'라는 표현도 있었다. 신체적 체벌을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어른이 편한 방식의 훈육을 하는 것이 과연 정말로 어린이를 위한 것일까?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할 필요 없이 그저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적절히 대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어린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모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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