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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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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의 순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부르짖기 위해서는 필히 그래야만 한다. 과거는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다. 일본은 사과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길 22년째 반복 중이다. 그런데 일본만 그러한 게 아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국내에도 존재한다. 몇몇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오히려 우리가 발달
"현재진행형 아픔" 내용보기

오욕의 순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부르짖기 위해서는 필히 그래야만 한다. 과거는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다.

일본은 사과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길 22년째 반복 중이다. 그런데 일본만 그러한 게 아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국내에도 존재한다. 몇몇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오히려 우리가 발달했다는 등의 궤변을 펼친다. 처음엔 마냥 유치했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순간 권력을 손에 쥐었고, 현재는 물론 과거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태도가 역사적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들의 부와 권력이 과거의 부정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우린 발견하게 된다. 계속되는 프로파간다로 인해 엄연한 사실은 교묘하게 은닉되는 중이다. 게다가 단순히 암기하고 잊는 방식의 교육에 따분함을 호소해온 우리는 굳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세상이 이야기하니 그런가보다. 그렇게 망각의 배에 오른 우리는 역사 왜곡의 방조자가 되어갈 뿐이다.

많은 아이들이 역사는 싫어해도 만화는 좋아한다. 개성 넘치는 그림과 이해를 돕는 짤막한 글. 만화라는 도구를 활용하면 역사도 재미있어질 수 있다. 만화와 역사의 결합은 새로운 게 아니다.

프랑스 앙굴렘에서 앙굴렘 위안부 피해 만화전이라는 게 열렸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만화로 다루다니 처음에는 너무 가벼운 수단을 택한 게 아닐까란 우려가 일었다. 그렇지만 만화의 힘은 거대했다.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미처 역사를 알지 못했던 이들은 진실 앞에 목놓아 울었다. 되풀이 되어선 안 되는 역사가 안겨다준 서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측의 방해공작이 강렬했다. 전시작들이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평했고, 반대되는 입장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오로지 반대를 위해 탄생한 작품들이었기에 졸속에 불과했다. 주최 측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는 일본의 방해공작을 규탄했다. 극우주의는 투쟁하고 배척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반면 우리 측의 작품은 두 눈 부릅뜨고 응시해야만 하는 진실이었다. 불편할지라도 피해서는 결코 안 되는.

일본 측은 22년간 침묵했다. 피해자들이 고령이기에 버티다 보면 모든 문제가 없어질 거라는 계산에서이다. 오로지 사과 한 마디를 듣기 위해 거리 위에 서던 할머니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 측이 옳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열리는 집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초창기에는 눈물로 분노를 표출하던 이들이 이젠 밝고도 평온한 분위기로 집회를 진행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을 제외한 모두가 성숙했다. 아픔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를 올곧게 세우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힘이 없다 못해 주권마저 빼앗겼던 약한 나라. 다시 되지 말란 법 없다. 반대로 세계 위에 군림하는 위험한 가해자. 이 또한 절대 지향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지니는 시선은 곧 현재의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q*****2 2015.01.1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