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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을 앓고 있는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이다. 아파트 청소원인 김씨, 관리소장, 과학학원 김 선생, 그리고 어머니가 죽어 안드로메다별로 돌아갔다는 아이, 집에는 한때 불곰이라고 불렸던 어머니가 있다. 장씨 아저씨의 말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룹알할리 사막에 가서 부은 몸의 물을 말리면 관절념이 낫는다 하여 3년 만기 적금을 부여 가며 여행을 준비하나.......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언니와 엄마가 있다. 병든 몸을 치료하기를 포기한 나는 결국 의료기판매업자의 해결사들의 독촉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하늘나라의 엄마에게 가고 싶다는 아이와 조금 모자라는 남자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욕망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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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 주인공'나'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여성이다. 몇 가지의 직간접적인 이유로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이미 내 마음속에는 작가 한수영씨가 말하고자 하는 '나'아닌 또다른 '그녀'가 있었으니 그것은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진행성 장애(활동에 있어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신체적인 상황을 너머서 '진행성'이라는 것으로 인한 심리적 상황, 그리고 아파트 관리소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사는 세상의 축소판인 아파트 사람들의 '주인 아닌 주인의 태도'를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그녀의 모습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게 되어 이 책에 너무 빠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관절염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에 그만큼 많은 200여개의 관절이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치 끝없는 고통과 고행을 다 겪은 인간이 인생이란 그다지 달콤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을 하는 장씨 아저씨로 부터 저 먼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룹알할리' 사막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곳의 강렬한 태양이 '나'의 몸에 고이는 물을 완전히 다 말려주고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그녀는 단 한번도 그곳을 가보지 못하였으나 진행성 관절염을 막아보고자 온갖 민간요법과 양방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5년 동안 더 나빠지고 별다른 진척이 없던 그녀에게 있어 '룹알할리'는 그야말로 삶의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요, 길 위를 걸어갈 인생의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이기도 하였고, 실제 그가 살아갈 인생의 희망과 같은 꿈이요, 이상향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치 한 번도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믿음'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마치 인간이 신에게 자신이 창조주의 절대적 사랑으로 완성된 피조물인 것을 믿는 것처럼 그러한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토피아가 유토피아 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아직은 현실의 삶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소설속에는 '나'와 또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갈 '남자'와 '아이'가 나온다. 대체로 이들은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만의 '누구(혹은 사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세계를 열어간다. 그 남자에게 있어 '수레'는 낙타와도 같았고, 아이에게 있어 '사슴벌레'와 '토끼'는 이미 죽어버린 엄마와의 추억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와도 같았다. 이 세사람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이 있다. 그녀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언니와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우악스럽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아버지를 결국 돌아가시게 만든 어머니, 개울가에서 개를 잡으며 칼을 내리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짙게 남아 있다.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는 이제 늙고 연약해져서 이전의 모습은 볼수가 없고 그녀는 오직 적금이 만기되면 룹알할리로 가고픈 마음 뿐이다. 그것은 비단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이라기 보다는 살아온 삶 자체에 대한 탈출구와도 같은 것이다. '남자'는 서울의 도심 아파트 뒷편 마을사람들이 오고가지 않은 격리된 공간속의 마을에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쳐진 보이지 않는 벽들은 가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자체도 부정하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아이는 몇 해전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저 먼 은하 '안드로메다'로 다시 돌아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네들의 주변에는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개개인에게는 특별한 삶일지언정,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특별하다기 보다는 제각각의 이야기임을, 그리고 한 사람의 시선에서 그저 그렇게 상대적으로 보여질 뿐, 사실상 사람들의 인생이란 타인에 의하여 규정되어지는 것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이요, 의미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나'의 이야기가 주의깊게 들려지는 것을 바로 그녀인'나'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특별히 타인에게 책잡힐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그녀가 앞에 있건 없건 인신에 관련된 말들을 한다. 그녀의 외모, 그녀가 써낸 답안, 그녀의 건강상태, 그것은 모두 그 사람들로 하여금 말이 많은 세상의 말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존재의 부재적인 메시지(아이에게도, 남자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말한마디 한마디가 때로는 너무도 매섭고, 목적없이, 그리고 의미없이 휘두르는 칼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속에는 작가가 그것을 너무도 현실속에서 자주 접하는 모습을 그려내어서 더더욱 리얼하다.
그녀가 마시는 소주는 그녀의 눈물빛과 비슷하다. 그녀야 말로 마신 소주가 다시금 눈물로 나온 것임이.. 친구도 떠나고 가족에게도 의지하기 힘들었던 그녀는 아이와 남자와는 하나가 되어 마음을 열고 함께 이야기를 한다. 아이와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아빠가 남자의 빰을 때렸을 때 나는 마치 실제 내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분개했다.)
결국 그녀는 룹알할리로 떠났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서 그곳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고통이 느껴진다. 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아이, 그리고 그 우주선을 만든 남자, 그리고 그녀를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기 어려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상적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누가 규정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영화 나의 장미빛 인생에서 남자아이가 여성성을 한때마나 느끼는 인생전체로 보면 그 아주 짧은 순간..)이다. 나는 누구나 인간에는 고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마지막 숲속길을 걸으면서 그 고통이 더더욱 심해질수록 그 마디마디 아픈 관절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녀는 절벽위를 날으면서 자신의 뼈인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삶, 그녀의 어머니가 지게 된 빚과 자신의 신체, 룹알할리로 가는 것이 막막하다고 느껴지던 즈음, 그녀가 택한 것은 '죽음'이었지만 그녀는 룹알할리로 간 것이다.
한수영님의 소설을 보고서 왜 그토록 빠져버렸는지는 알수가 없다. 오래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았을 때처럼, 에밀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그냥 웃다가 울다가 한 그런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여느 평론가의 말처럼 희망을 희미하게 그려놓은 마지막 부분.. 소설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희망은 원래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올라온 것이다. 설령 현실의 삶 속에서 '죽음'은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상깊은구절]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내 빛나던 사랑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마법의 돌이 떠오른다. 그렇게 함부로 버려지게 하는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지금 어느 곳을 구르고 있을까. 그 잃어버린 뼈 한 조각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몸 속의 남은 뼈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는 것인지도 몰라. 그래서 이렇게 아픈건지도 몰라. 내 몸속에 남이 있는 뼈들을 모두 뽑아내버리고 싶어. 하지만 아프지 않은 건 내 빼가 아니지. 내 뼈를 내가 껴안고 갈테니, 그러니 제발 날 그곳으로 보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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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공허의 1/4>을 읽게 되었는데 제목부터가 쉽지 않았다. 몇 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행 열차를 타던 기차역의 승강장 번호처럼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다. ‘어떤 마법이라도 보이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덕성여대 약학과를 졸업 하고,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소설부문에 <나비>로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으며, <공허의 1/4>로 2004년 제28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 여성이다. 가장인 주인공은 완치가 불가능한 관절염 치료를 포기했다. 진통제와 물 빼는 응급조치의 치료를 받는다. 젊을 때 불곰으로 불리기도 하고 개를 잡아 팔았던 엄마와 항상 다투면서 함께 살고 있다. 아파트 잡역부 김씨는 리어카를 낙타라 부르며 끌고 다니며 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죽어 안드로메다별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아이를 매일 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룹알할리 사막에 가서 부은 몸의 물을 말리면 관절염이 낫는다.’는 장씨 아저씨의 말을 듣고 3년 만기 적금을 부어 가며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들인 다단계 의료기 대금 때문에 궁지에 몰리게 되면서 주인공의 마음에 변화가 오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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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1/4 /한수영/민음사 담쟁이 잎새마다 내가 좋아했던 여류 소설가의 작품을 끝없이 베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선호하거나 일부 이름 있는 작가 외에는 외면하던 습성은 버려야 할 편견임을 깨우쳐 준다.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몸 속 200여개의 관절 마디마디까지 아픈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인 나는, 치료를 위해서는 고양이를 먹는 것 말고는 내가 해볼 수 있는 민간요법은 모두 해 보았지만 물이 찬 다리는 퉁퉁 부어서 무릎을 굽힐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류머티즘 관절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거기서도 룹알할리 사막의 쨍쨍한 햇볕이 최고라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장씨 아저씨의 말을 들은 후부터는 룹알할리에 가는 것을 꿈꾼다. 사우디아라비아 1/4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사막. 그저 사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이 눈 앞에 떠올랐고 그곳에 가 눕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락스 냄새에 찌든 반지하 집에서 엄마와 물고 뜯고 싸우는 것도, 수박 썩는 냄새를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소장의 히스테리를 견디면서 정신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언니를 위해 월급을 벌어야 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남들이 뒤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닮았다고 손가락질하며 놀리는 것도 무신경할 뿐이다. 약장사들한테 사온 옥매트 때문에 엄마와 싸우고 사무실에 들이닥친 젊은 남자들의 협박은 룹알할리로 떠나려하는 나의 일정을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자기가 끄는 수레를 낙타라고 부르는 아파트의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바아보라고 멸시를 받는 남자, 오줌을 누는 내 엉덩이를 보고 사진 속에 나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모래언덕이랑 닮았다고 어눌하게 말하는 그 남자에게 나는 룹알할리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같이 갈래요?”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나의 낙타가 되어줄 사람은 이 남자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남자를 꼭 껴안고 남자의 눈에 입을 맞춘다. 남자의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빗자루가 달린 우주선을 타고 안드로메다로 엄마를 만나러 갈 꿈을 꾸며, 어깨에 얹고 다니는 사슴벌레 역시 엄마가 자기에게 보낸 선물이라고 믿고 있는 어린왕자와 같은 아이, 실종되었던 아이로부터 우주선이 다 만들어지면 안드로메다로 데려다 달라는 전화를 받고 난 후 우주선을 만들고 있는 창고 안으로 찾아갔을 때 남자와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아이가 저렇게 활짝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둘과 마주치며 나도 웃어 보인다. “고마워요, 아줌마,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주선이 완성될 거예요. 그럼 나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게 해 주세요” “정말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었니?” 나는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묻는다. 나는 진지하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도 진지하다. 실종된 아이들 찾던 경찰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산속의 바위 끝까지 쫓긴다. 내 뼈를 내가 껴안고 갈 테니, 그러니 제발 날 그곳으로 보내줘. 나는 쉬지 않고 주문을 외운다. 룹알할리, 룹알할리......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 나는 오직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하늘 위 수 킬로미터의 구름층을 뚫고 날아오르고 싶을 뿐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서서히 내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룹알할리, 나는 지금 그 곳으로 간다. 그는 그렇게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룹알할리 사막으로 갔다. 그 순간이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우리도 룹알할리를 향한 주문을 외워보자. 룹알할리, 룹알할리......나도 룹알할리로 가고 싶다. |
|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로 갈 것이다" 룹알할리는 일명 '공허의 1/4'이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이다.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인 '나'에게 룹알할리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 이는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장씨 아저씨였다. 장씨에 따르면 사막의 열사(熱砂)에 눕기만 하면 몸 속의 습기가 말끔히 말라버린다는 것. 소설 <공허의 1/4>의 주인공인 '나'는 병원의 의사들조차 포기한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다. '나'의 몸에 있는 200여개의 관절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씩 일제히 통증을 유발한다. 통증이 심해지면 몸이 퉁퉁 부어오르고 다리나 손가락조차 마음대로 굽히거나 펼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면 그저 남몰래 책상서랍에 숨겨둔 소주병을 꺼내 병 채 들이 붙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장씨의 룹알할리 얘기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다. 이후 '나'의 삶의 목표는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룹알할리에 가는 것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것. 엄마와의 생활비와 정신병원에 입원중인 언니의 치료비를 대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지만 '나'는 지체 없이 여행을 위해 3년만기의 적금에 든다. 그러나 적금의 만기가 되기도 전에 엉뚱한 일에 휩싸이고 만다., 참기 힘든 관절염의 고통과 관리소장의 까탈스런 성격을 견뎌내며 오마불망 그 날을 기다렸던만 난데없는 복병이 출현한 것이다. 평소 소일 삼아 약장수들을 쫓아다니던 엄마가 덜컥 옥매트를 사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1년치 월급의 1/3이 넘는 옥매트 값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만다. 더이상 인생에 기대할 것이 남아있을까... 상고를 졸업하고 아파트 관리실 경리로 근무하는 '나'에겐 이렇다할 친구조차 없다.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곤 아파트에서 청소부아줌마들조차 꺼리는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좀 모자란 듯한 '남자'와 그 남자와 더불어 죽은 엄마가 살고 있다고 믿는 안드로메다에 가기를 꿈꾸는 말없는 '아이', 그리고 같은 건물에서 과학학원을 하는 '김선생' 정도다. 남몰래 키우던 룹알할리의 꿈이 수포로 돌아갈 처지에 놓인 '나'는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 따위가 없다. 이윽고 '나'는 '남자'와 '아이'가 만든 나무 우주선을 타고 가는 안드로메다 행 여행에 동참하기로 한다. 먼저 과학학원에 몰래 들어가 실험실에 갇혀 있는 햄스터를 풀어주고, 뒤이어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방송을 통해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남자'와 '아이'가 있는 산으로 향한다. 산 중턱 바위 위에서 우주로의 여행을 준비중일 때, '아이'의 실종신고를 받고 산으로 올라온 경찰과 주민들이 일제히 랜턴불빛을 비춘다. 그 불빛 속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주문을 외운 뒤 바위 아래로 비상한다.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로 갈 것이다.” ------------------------------------------------------------------------ 여기까지가 '제2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한수영의 <공허의 1/4>의 줄거리다. 작품의 완성도나 문체의 안정성에 더해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잘 연출한 근래 보기 드문 수작으로 보여진다. 특히 소외된 사람들의 부박한 삶에 천착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근래 '천운영'과 '한강'에 의해 복원된 우리나라 소설문학에 대한 관심이 당분간 지속될 조짐이다. 특히 한수영처럼 탄탄한 실력을 갖춘 신인작가들이 속속 등장한다면 나의 우리나라 소설 읽기는 더욱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한국 소설 화이팅! 한수영 화이팅!! |
| 난 개인적으로 여자 작가들이 쓴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문체엔 힘이 없고 너무 감성에 기대다보니 그냥 한줄로 끝나도 될 얘기가 몇줄씩 자리를 차지한다는 느낌때문에.. 일단,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난 이작가의 문체에 반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건조하지도 않으면서 머릿속에 선명하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떠올라 읽는내내 즐거웠다 도시의 주거 형태가 주택 보다는 아파트가 더 많아지고 있는 요즘, 아파트 관리실하면 떠오르는 어느 단지에나 한사람쯤은 있을법한 그 나른하고 일상에찌든 인간 군상들이 소설 속에선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내 눈앞에 그런 인물들이 있어 나와 어떠한 이해관계로 얽혔다면 무지 답답하고 짜증스러웠을테지만, 얘기 속의 그들이기에 이해도 되고 안타깝기도 했다 또 그런 시선으로 평범하다못해 소외받은 이들을 얘기할수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람을 알가가는 일이 왠지 그녀에겐 아주 수월할듯 싶어서.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사람을 보면 아직은 즐거울 일도 많고, 이해못할 일도 없을 거란 평범하 진리를 다시한번 느끼며 그래도 가끔은 나도 얘기속의 그녀처럼 작은 일탈을 해보고 싶어졌다 |
| 일단 재목이 좋았다. 화자와 남자와 아이의 성격설정도 특이하고 괜찮았다. 물론 과장된 측면이야 없지 않아 있지만, 문제가 있다면 작가가 인물들을 설정할 때 조금만 더 치밀했더라면 작위적이며 과장된 느낌이 훨씬 줄어 들었을 것 이라는 생각은 든다. 중간쯤 읽었을 때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안드로메다로 엄마를 찾아 떠나려은 아이와 사막에 몸을 덥히려 가려는 화자와 아버지의 잃어버린 꿈을 위해 사막으로 떠나려는 남자와의 절묘한 만남과 유리겔러를 통해 주문을 걸려는 화자의 꿈이 결국은 쫒기게 되고 어쩌면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지막이 좋았다. 이룰수 없는 꿈이, 단지 꿈으로만 끝나는 꿈이... 평범한 일상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만남이 가져다 주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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룹알할리, 룹알할리 ……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
라는 꿈을 꾸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이다. 통증보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이 견디기 힘든 그녀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다.
80%는 불치라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하면 더 나빠지는 건 막을 수 있죠.
20%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녀는 통원치료와 민간요법이란 요법은 모두 써보았지만, 남은 것은 부작용으로 엄청나게 불어난 몸 뿐이다. 그러던 중 사우디아라비아, 그중에서도 룹알할리 사막의 쨍쨍한 햇볕이 류마티즘 관절염에 최고라는 말을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장씨 아저씨에게서 듣게된다. 그 때부터 그녀는 룹알할리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과도한 노동으로 그악스럽고 사나워진 엄마와 월급의 1/3을 보내야하는 요양원에 있는 언니를 가진 그녀에게 룹알할리 사막으로 떠나는 꿈과 룹알할리, 룹알할리 ……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 라는 그녀의 주문은 구원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를 20% 차지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최대의 사막인 룹알할리, 그 사막의 또 다른 이름은 ''공허의 1/4.'' 이라고 한다. 이렇게 책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 풀린다.
" 고마워요, 아줌마,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주선이 완성될 거예요. 그럼 나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게 해 주세요. " " 정말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었니? "
여주인공과 또 다른 꿈을 꾸는 아이와 남자. 죽은 엄마가 단지 안드로메다로 되돌아갔다고 믿는 아이가 있다. 죽은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의 꿈인 세탁소를 함께 하고 싶다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아파트내 음식물쓰레기며 잡일을 담당하는 바아보 남자이다.
나는 한참동안 남자의 눈을 들여다본다. 낙타의 속눈썹처럼 남자의 그것도 길고 빽빽하다.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나의 낙타가 되어줄 사람은 이 남자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바아보 남자에게 결국 마음을 열 수 밖에 없는 여자와 아이.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제각각 꿈을 꾼다. 어쩌면 우리와 닮아 있는 그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타. 남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그들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그녀는 결국 해방과 자유를 선택한다.
2004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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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맛을 느끼려면, 이 책 <공허의 1/4>는 아니다. 한수영 작가는 칙칙한 줄거리를 이어간다. 소설속 장마가 그렇고, 관절염으로 무릎에 물이 차서 고통받은 주인공의 삶이 그렇다. 주변인물들의 삶도 뽀송뽀송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04년,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 이 주관하는 제28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사회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그려내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고통스러운 삶을 잘 표현한다. |
| 신문서평에 따르면 출판사가 흥분에 떨고 있다는데.. 출판사가 흥분하는 책이란게 어떤 것일까? 소설쓰기에 대한 과정을 이수해본 적도 없고해서, 읽는 것만은, 주머니에 책살 돈만 조금 있다면, 해주지 하고사는 나는 이런 광고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별로 없다. 조금은 내공이 쌓인 관계로, 서평이나 신문광고를 보고, 그 문면을 조금 신경쓰서 읽어보면, 마음에 들 법한 책과, 돈이 아까워 목놓아 울게될 가능성이 높은 소설책은 잘 가려내는 편이라고... 자화자찬.. 윤모, 말모 같은 친구들이 나를 울게 만든 적이 있어, 다시는 그들의 책이 꽂힌 쪽으로는 오줌도 안누고 산다. 밤늦게 까지 "공허의 1/4", 을 읽고 나서, 아침에 잠이 조금 일찍 깬 나는, 등장인물을 곱씹어보다가. 묘하게도 소설쓰는 법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다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등장인물은 그 개개가 특징이 있다. 관리소장은 꽤나 시건방지게 고지식한데다가, 냄새에 대한 반응이 민첩하고, 주인공(서술자)인 나는 삼십넘은 노처녀인데, 온 몸이 류마치스성 관절염때문에 부어오른데다가, 주변으로부터는 그 ''반몸짱"에 대한 힐난, 조소에 시달리면서도 내내 담담하고, 그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이라는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에 대한 희원을 내내 품고 있다. 그니의 에미는 개잡던 드센 여인, 술김에 남편을 집어던져 종내는 숨지게 한 적이 있을 만큼 강골이지만 세상의 속임수에는 어찌감당할 길이 없는 늙은노파이고, 동네의 아이는 어미의 갑작스런 사고사를 믿지 못하고 별을 꿈꾸는 어린 몽상가에다가, 김씨는 약간 덜떨어진데가, 그 애비가 사우디의 사막에서 끝내 귀환하지 못한 바, 이 세상 어디에 걸칠 데가 하나 없는 신세에, 그의 어미는 거의 정신이 흩빠져 나간, 반 귀신.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은 그 지위나 존재에 걸맞는 일반화된 보통의 특징, 즉, 부녀회장이라든가, 아파트에 기생하는 학원의 여선생이라든가, 청소하는 아줌마들이라든가..들이 갖게 마련인 그 특징적 행동,사고의 일반화된 양식. 이제, 소설쓰기는 , 개별적 특징을 강하게 가진 몇몇의-수습가능할 만큼의 숫자만 등장시킬 것- 주등장인물들과, 일반화된 특징을 가진 대여섯 그룹의 일단들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 레디 ~ 고! 사건1, 사건2, 회고1, 회고2, 사건3, 회고3, 중간 쯤에 약간의 섹스씬. 그 강도는 작가의 성격과 경험, 평소의 판타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정통 소설에서는 되도록 흐미하게, 비 직접적이게, 그리고 순수히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면 안된다. 무조건 담담하고.. 어느 정도 대담하되 독자를 격렬하게 자극하지 않아야한다. 약간 얼굴을 붉히거나, 옷매무새를 한번 쯤 추스리게 할 만큼..아니면, 약간만 자리를 바꿔 않게 만들정도의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아니면, 싱거워서 소금을 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무신경하게. 좀 있다가, 얽혀버린 사건의 급진전, 위기,모험, 클라이막스.. 다음.. 엔딩은 여러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 주인공은 바위산의 꼭지점에서 공허속으로 비상... 그 추론되는 결과는 당연히 ''죽음''일 것이고..... 혹, 얼굴에 큰 혹을 달고, 바위산을 끌려 내려올런 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말이없다. 아마, 죽었다고 독자가 믿기를 바라는 것 같다. 재미있으나, 너무 쉽게 분해된다. 아마 작가가 그 만큼 순수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앞섶을 다 풀어헤쳐 보여준 보람일 런지도 모르겟다. 다른 소설책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이다. 집중력이 있고. 전후의 일관성이 선을 그은 듯 뚜렷하게 보인다. 김형경이나 전경린의 소설과는 다르다. 앞의 양자의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욕이 튀어 나올 때도 있었고, '' 택도 아이다''라며 실소하기도 햇으나, 이 책만은, 그래도, 조금은 겸허하고 공손한 자세로 책상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