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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경의 영원한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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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부터 완역판을 찾았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완역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용 도서로는 많이 출판되었지만 원작이 충실히 번역된 완역본은 구할 수가 없어 아쉬웠고 급한 마음에 외국에서 책을 사왔었는데, 워낙 옛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한페이지도 읽기 힘들더군요. '아이반호'는 실존했던 인물들도 등장하면서 중세 기사들과 성직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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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부터 완역판을 찾았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완역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용 도서로는 많이 출판되었지만 원작이 충실히 번역된 완역본은 구할 수가 없어 아쉬웠고 급한 마음에 외국에서 책을 사왔었는데, 워낙 옛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한페이지도 읽기 힘들더군요. '아이반호'는 실존했던 인물들도 등장하면서 중세 기사들과 성직자들의 사회를 잘 보여줍니다. 옛스러운 어투를 통해 올곧은 기사도,충정이 어느사회에나 존재하는 제 갈길을 안가는 타락한 수도사들 및 귀족들의 충돌 및 사건들을 듣게 되는것은 요즈음의 판타지에선 느낄 수 없는 묘미를 줍니다.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에 씌워진 책이고 그 배경은 더 이전의 영국이지만 서양의 유명한 고전 답게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대인들이 가진 가치를 소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무슨말인지 알겠다. 이 거룩한 사제에게 완클리프의 내 숲에 있는 채벌권과 수렵권을 허가하겠노라. 하지만, 잘 들어라, 그 수는 철마다 사슴 세마리로 한정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가 서른 마리를 죽이는데 대한 변명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리스도교 기사도 진정한 왕도 아닐테지."
u********e 2004.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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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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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월터 스콧  2007, 12  아람누리 도서관, 843 스825ㅇ   아주 오래 전, 내가 꼬마 아이였을 때 선아네 오빠가 하얀 달력 종이로 수학 참고서를 싸서는 검은 매직 글씨로 <아이반호>라고 써 놓은 걸 봤다. 우리 집 책꽂이에도 있는 책이었는데 읽지는 않았기에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선아가 제 발이 저려서 먼저 고백했었다. “우리 오빠 과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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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월터 스콧

 2007, 12

 아람누리 도서관, 843 스825ㅇ

 

아주 오래 전, 내가 꼬마 아이였을 때 선아네 오빠가 하얀 달력 종이로 수학 참고서를 싸서는 검은 매직 글씨로 <아이반호>라고 써 놓은 걸 봤다. 우리 집 책꽂이에도 있는 책이었는데 읽지는 않았기에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선아가 제 발이 저려서 먼저 고백했었다.

“우리 오빠 과외 하러 갈 때 가지고 다니는 책이야.. 수학책 들고 다니면 걸리니까..”

(바야흐로 과외금지조치가 내려진 시절이었던 거다.)

“응..” 대답하며, 그 책을 바라본 것이 괜히 미안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반호>라는 까만 매직펜 글씨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쨌거나 이런 바보 같은 이유로 이 책을 어딘가에서 발견할 때 마다 뭔가 빚을 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었다. 읽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런 알 수 없는 부채 감에 시달리다 이번에 결심을 하고 읽었는데,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쉽게 읽혔다. 시대의 추이에 따라 번역이 잘 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니벨룽겐의 반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몰입하기도 쉬워서 참 다행이었다.

그러나 역시, 별로 감상할만한 포인트는 없었기에 그냥 옮긴이의 말을 다시 옮겨 놓는다.

내가 기억해야 할 것과 알아야 할 것을 이 옮긴이가 다 정리 해 놓았기에..

그리고 덧붙여 <월터 스콧>이라는 작가의 연대기도 함께 붙여 놓는다.

이 사람의 다른 작품을 또다시 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인 듯 해서..

 

*옮긴이의 말

변호사 아버지와 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콧은, 어렸을 때부터 나이든 친척들이 들려주는 스코틀랜드 변경 지방 이야기를 즐겨 들으며 자라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역사, 극 작품, 옛날 이야기, 로맨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기억력이 뛰어나 시를 암송하여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또한 이웃 지방을 답사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고, 스코틀랜드 선조들의 역사적인 투쟁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1790년대 중반에 스콧은 독일 낭만주의, 고딕 소설, 스코틀랜드 변경의 발라드에 다양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관심은 마침내 「스코틀랜드 변경 지방의 민요」로 결실을 맺게 된다. 구전 과정에서 손상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그의 노력은 이따금 기교적인 낭만주의 취향의 힘찬 시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 스콧의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뒤이어 본격적인 이야기 체 시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로 첫 성공을 거둔다. 중판을 거듭한 이 시의 명쾌하고 활기찬 서술, 스코틀랜드의 토속적인 색채, 연민을 자아내는 고결한 힘, 생생한 풍경묘사는 그 뒤 「마미온」을 비롯한 시적 로맨스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1813년경 스콧은 이야기체 시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 깊이와 힘을 가진 바이런이 등장해 이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던 그를 위협했다. 그래서 다른 장르를 개척하던 스콧은 1850년에 쓰기 시작한 소설의 미완성본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마무리하여 1814년에 완성했는데, 이 소설이 바로 「웨이벌리」이다. 독창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 작품은 많은 독자들에게 즉시 인정을 받아 널리 읽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1745년의 재커바이트 반란에 대한 이야기로서, 사라져 버린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의 생활상과 충성심을 새롭게 해석하여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뒤이어 오늘날 “웨이벌리” 소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시리즈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에서 스콧의 특별한 문학적 재능이 그 가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스콧은 흥미진진한 격동기의 역사적 배경 속에 활기차고 다양한 수많은 인물들을 설정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 또한 표현이 풍부한 스코틀랜드 방언과 기사나 귀족 등 상류사회의 세련되고 공손한 어법에 모두 능통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생활양식과 관습을 예리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거지와 시골사람에서부터 중류층, 전문직업인, 지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통찰력 있게 스코틀랜드 사회를 묘사하여 사회사가로서의 면모도 보여 주었다. 스콧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임으로써 왕족에게만 집중했던 이전의 역사 소설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사건을 생생하게 그리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고지 사람들 특유의 성격과 17,18세기 스코틀랜드를 뒤흔든 격렬한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모두 실감나게 표현했다. 마침내 스콧은 강하면서도 단정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지니며 묘사가 명징하고, 풍부하고 화려한 자연스러운 문체의 대가가 되었다.

다양한 스코틀랜드 역사소설을 쓴 뒤 스콧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저자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자신이 만들어 낸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새롭고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동시대를 벗어난 다른 곳, 다른 시대의 역사에서 주제를 택했다. 그 결과 12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아이반호」를 발표했는데, 이 소설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소재의 영역 확대에 자신감을 얻은 스콧은 엘리자베스 시대 잉글랜드, 15세기 프랑스, 십자군 원정 당시의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뵌다.

스콧은 조국 스코틀랜드의 가까운 과거를 다룰 때는 허구적인 형식을 취하여 스코틀랜드에 대한 자신의 애매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즉,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합병으로 인한 상업의 발전과 근대화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성을 잃고 민족의식과 전통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웨이벌리” 시리즈에 속하는 소설들은 스코틀랜드의 재커바이트파가 이룩한 옛날의 영웅적인 전통이 근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실제로 스콧의 주인공은 무장을 갖춘 투사적인 기사가 아니라, 영웅적인 과거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것과 정서적인 유대감도 갖지 않은 채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변호사, 농부, 상인과 소박한 사람들이다.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과거에 대해 낭만적인 애착과 관심을 지닌 동시에 스코틀랜드의 미래가 영국의 상업적인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설가였다. 그는 문명을 환영했지만, 개인의 영웅적인 행위도 열망했다. 바로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그의 훌륭한 소설에는 활력과 긴장과 복합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

스콧은 당시의 이질적인 소설기법들을 한데 합쳐 스코틀랜드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옛 것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전지적인 서술기법, 지방어, 지방색을 가진 배경, 정교한 인물묘사, 사실적으로 다루어진 낭만적 주제는 모두 그에 의해 새로운 문학형식인 역사소설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다작에서 오는 문체의 소홀, 성격묘사의 세밀한 분석 결여, 여성에 대한 전형적 묘사 등이 흠이 되긴 하지만, 「아이반호」를 포함한 “웨이벌리 소설들”은 이후에 디킨스(Dickens), 세커리(Thackeray), 리드(Reade), 조지 엘리엇(Gerge Eliot)과 같은 많은 영국 소설가들뿐 아니라 뒤마()와 같은 유럽 작가들의 역사소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이반호」는 스콧의 특색을 매우 잘 나타낸 대표적 걸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룸 중 가장 널리 가장 오래도록 애독되고 있으며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최고 발행부수를 기럭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노르만 인의 점령 후 지배계급에 대한 앵글로색슨 인들의 반항과 기백을 묘사한 작품인데, 사실적(事實的)으로 군데군데 오류가 있고, 모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구성에 치밀함이 결여되어 있고 등장인물의 묘사가 겉모습에 치중되어 이야기에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광대 왐바, 돼지치기 거스, 로빈후드와 탁발승 턱 등 색슨 서민들과 유대처녀 레베카의 인물묘사가 뛰어나다.

이 작품은 12세기 잉글랜드의 색슨 인과 노르만 인들 사이의 대립을 배경으로 한 사랑과 무용(武勇)의 이야기이다. 아이반호는 정확히 말해서, 인명이 아니고 영지의 이름이다. 아이반호의 기사 월프레드가 원래 이름인데 이를 줄여서 아이반호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이반호는 아버지 세드릭의 피후견인으로 옛 앵글로색슨 왕족인 로웨나 공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색슨 족의 독립을 열망하여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공주를 색슨 왕족의 또 다른 후예인 애설스탠과 결혼시키려고 하는 아버지에 의해 의절당하여 쫓겨난다. 윌프레드는 사자심 왕 리처드를 따라 십자군에 참가했다가 성지 순례자로 위장하여 귀국한다. 한편, 리처드 왕의 동생 존 왕자가 일부 노르만 귀족을 규합하여 왕위 찬탈을 모의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슈비에서 열린 마상시합에 나가 존의 일파인 노르만 귀족들과 성전 기사를 이기고 로웨나 공주로부터 영예의 관을 받는다. 시합 중 입은 상처로 쓰러닞 아이반호는 노르만 족에 반감을 가진 유대인 부호 아이작의 딸 레베카의 간호를 받는다. 또한, 아슈비 시합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세드릭과 로웨나 공주 일행은 아이반호를 남몰래 데리고 가던 레베카 일행과 합류하게 되었다가 로웨나를 납치하려는 드 브라시 일당에게 모두 함께 포로로 잡혀 프롱 드 봬프의 성인 토퀼스톤에 감금된다. 세드릭의 일행 중 도망친 광대 왐바와 돼지치기 거스를 통해 그들의 감금 사실을 알게 된 록슬리(로빈 후드)와 흑기사로 위장해 입국해 있던 리처드 왕의 활약으로 로웨나 일행은 토퀼스톤 성에서 구출된다. 그러나 레베카만은 그녀에게 미친 듯한 연정을 품은 성전 기사 브리앙 드 봐 길메르에게 끌려갔다가, 성전 기사단장으로부터 마녀 혐의를 받고 재판을 받게 된다.

결투에 의한 재판에서 레베카의 대전사로 나선 아이반호는 길베르와 겨뤄 승리를 거두고 레베카를 구출한다. 결국 신분을 밝힌 리처드 왕은 존 왕자의 계획을 저지하고 아이반호를 아버지와 화해시킨 후 로웨나 공주와 결혼시킨다. 아이반호를 흠모했던 유대인 레베카는 아버지와 함께 그라나다로 떠난다.

 

「아이반호」는 스콧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6년, 열 권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전에 쓴 역사소설 아홉 권은 모두 스코틀랜드를 소재로 하여, 그것도 불과 2,3세대 전의 일을 취급한 것인데,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스코틀랜드가 아닌 잉글랜드를 소재로 하여 시대적으로도 먼 12세기 중세의 배경을 취급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보려는 예술가의 자연적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해서 스콧은 잉글랜드는 물론, 때로는 프랑스와 팔레스타인까지 그 배경을 넓힐 수 있었다.

「아이반호」가 그린 무대는 전술한 바와 같이 잉글랜드로서, 시대는 12세기다. 본문에도 군데군데 언급되어 있지만, 이 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관련된 역사와 사회상을 간단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본래, 잉글랜드는 브리튼 족이 살고 있던 곳인데 449년에 유럽의 북방으로부터 앵글로색슨 족이 쳐내려와 브리튼 족을 정복하여 왕국을 세우고 앵글로색슨 문화를 낳았다. 오늘날의 영국민의 특성, 영국 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 앵글로색슨 민족으로, 오늘날의 영어도 역시 앵글로색슨 어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1066년에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이 대군을 이끌고 영국 해협을 건너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앵글로색슨 족 최후의 왕 해럴드를 죽인 후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왕이 되었다. 윌리엄 1세, 즉 정복왕 윌리엄은 바로 이 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편, 노르망디는 프랑스의 서북부에 해당하며, 영국 해협에 마주한 지방으로서 당시는 이 지방에 왕국을 세운 무시 못할 세력이 있었다. 본래 노르망디 왕국을 건설한 노르만 인은 사실 전에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이었는데, 900년 경 슥선을 타고 세느 강을 거슬러 올라와 그 해안을 침략한 후 파리로 공격래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북서의 광막하고 풍요로운 지방을 그들에게 주고 화평을 체결하였다. 즉, 이들이 이 지방에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노르만이라고 칭했는데, 그들은 자기의 특징을 간직하면서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였다. 특히, 이들은 프랑스인과 결혼하여 민족을 발전시켰고, 프랑스의 풍속, 관습, 언어 등을 도입하여 불과 백 년 남짓한 사이에 야만의 북유럽 해적에서 가장 진화, 발전한 종족이 되었다. 즉, 본래 지니고 있던 북유럽의 무용을 여전히 보존하면서 남유럽의 유연성과, 융통성과, 예술문학에 대한 애호를 받아들이고 흡수하여, 정치를 조직하고 지배하는 재능을 발전시켰다.

이와 같은 민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자기들의 왕국으로 삼자, 그들은 프랑스의 문화, 문학, 언어, 풍속, 관습을 잉글랜드로 수입해 들여 왔다. 정복 후, 반세기도 채 되기 전에 앵글로색슨 귀족과 향사 등은 노르만 인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교회 역시 프랑스의 사제와 수도자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제까지 앵글로색슨 족이 사용하고 있던 영어는 학문과 문학에서 그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궁정이나, 병영, 성, 학교, 교회, 법정 등에서는 오로지 노르만 프랑스 어만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수도원이나 교회에서는 읽고 쓰는데, 심지어 대화에까지 라틴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1300년경까지는 영어로 쓴 산문이나 시가 거의 없으며, 대개는 프랑스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영어는 색슨 인, 특히 하층민 즉 일반 민중이 사용하는 언어로서, 후에는 귀족 계급에 속하는 노르만 인의 자손까지도 민중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게 되면서 점점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영어는 매우 변모된 것이었다. 즉 다수의 민중 어인 앵글로색슨 어가 근간이 되었지만 새로운 민족인 노르만 인이 사용하는 언어의 영향을 받아 문법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어휘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와 같이 해서 오늘날의 근대 영어가 생긴 것이다.

노르만 정복 후의 잉글랜드 사회상의 근본 특징은 봉건제도의 확립이었다. 봉건제도란 간단히 말하면, 국왕이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무공에 따라 그 신하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제도이다. 윌리엄 1세는 영국 정복 후 색슨인들의 모든 사유지를 몰수하여 국왕의 소유로 하였으며, 이것을 분할하여 신하인 노르만 귀족에게 봉토로 분배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유렵에서는, 그리스도 교도가 이슬람 교도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할 목적으로 총궐기하여 사라센 인과 전쟁을 시작했다. 잉글랜드 인들도 역시 그리스도 교도로서 이 집자군 전쟁에 참가하였다. 첫 번째 십자군이 시작된 것은 1095년 즉, 노르만 정복 후 30년도 채 못되어서이다. 정복 왕 윌리엄 1세의 맏아들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2세 역시 1차 십자군에 참가하여 공훈을 세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심 왕 리처드 역시 프랑스의 필리프 왕과 함께 3차 십자군에 참가한 주역이다. 리처드는 아크레까지 점령했지만 예루살렘 재탈환에는 실패하고 살라딘과 휴전 협정을 맺고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십자군 당시 적으로 만들었던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백작의 성에 유폐되어 수년을 보내게 된다. 그 사이 존 왕자는 형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야욕을 키우는데, 바로 이 시기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한편,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많은 종교 기사단이 생겨났는데, 그 효시가 바로 성전기사단이다. 십자군 전쟁 초기에 십자군은 몇몇 요새밖에 장악하지 못했으므로 성지 순례자들은 자주 이슬람교도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한 순례자들의 곤경을 보다 못해 8~9명의 프랑스 기사들이 1119년 말(또는 1120년 초) 에 순례자 보호에 헌신할 것과 이를 위해 종교단체를 구성할 것을 서약했다. 이로써 성전 기사단이 발족된 것인데 기사들만이 성전 기사단의 독특한 복장인 붉은 십자가가 표시된 흰색 겉옷을 입었다. 기사단은 기사단장이 이끌었고, 각 지부마다 기사단장에게 복종하는 지부장이 있었는데, 기사단원들은 청빈과 순결을 맹세했다. 그들은 성지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그 수가 급속히 불어났고 전성기에는 2만 명에 이르렀다. 또한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왕들과 대귀족들로부터 귀족지위, 성(城), 영주권, 영지 등을 받아 부를 축적한 12세기 중엽에는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 성지 전역에 걸쳐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이 된다.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며 구호 기사단과 마찰을 빚다가 결국에는 예루살렘을 잃은 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작품 속의 성전 기사 브리앙 드 봐 길베르가 그렇게 오만하고 제멋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전 기사단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도(Chivalry)는 ‘말’을 뜻하는 프랑스어 슈발(Cheval)에서 유래했다. 기사는 주로 가문이 좋고 부유한 젊은이들만이 될 수 있었다. 전쟁시에는 종자들과 함께 군주의 야영지에 머물며, 전투를 지휘하거나 군주를 위해 성을 지켰다. 평상시에는 군주의 조정과 연회에 자주 참석하고, 군주들이 베푸는 마상시합(tournament)에 참가하며 소일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험을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며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확립하며, 때로는 종교나 사랑의 서약을 이행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처럼 떠도는 기사들을 편력기사(knight-errant)라고 불렀다. 이들은 외떨어진 곳에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던 귀족들에게 활기를 되찾아 주었으므로 환영받았고, 수입의 많은 부분을 기사들의 후원에 의존하던 수도원에서도 정중하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근처에 성이나, 수도원, 수사들이 은둔하던 암자가 없을 경우에는 저녁도 거른 채 길가 십자가 아래에 누워 밤을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도 사자심왕 리처드가 흑기사로 신분을 위장하여 편력기사로 떠돌다 로빈 후드 패거리의 수도사 턱과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정의를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 그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불의를 바로잡는 것이 정당한 목적이었던 권력 때문에 도리어 기사들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작품에도 등장하다시피, 당시의 풍속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로맨스를 보면, 기사의 성이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성채의 감옥에 갇힌 수많은 기사와 귀부인들이 용감한 기사가 나타나 자기들을 석방해 주거나 몸값을 물고 석방되기를 기다리는 이야기, 정의나 법을 무시하고 군주의 명령을 시행하는 데만 급급한 못된 신하들, 힘없는 하층 계급의 권리를 무시한 사실 등도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속에서도 드 브라시와 성전 기사가 세드릭과 로웨나 공주 일행을 납치하여 프롱 드 봬프의 성인 토퀼스톤에 포로로 가두어 놓고 몸값을 요구하는 등 전횡을 일삼는 것이 잘 표현되어 있다.

기사들이 벌이는 볼거리 풍성한 마상시합에 적용하는 기사도적인 규칙과 화려한 각종 장신구, 마구 등은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합을 하다 보면 싸움이 벌어지기 쉽고 그로 인해 죽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마상창시합(joust, just)은 마상시합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마상 창시합은 창으로 싸우며, 주 목적은 상대방을 낙마시키는 것이었다. 작품 속 아슈비 드 라 주시의 무예 시합은 바로 이 마상 창시합의 전형이다. 반면에 마상 시합은 뛰어난 기량과 솜씨를 보여 줘야 했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다양했고 규칙도 더욱 엄격했다. 규칙상, 말을 해치거나 칼끝을 사용하거나 투구를 벗기거나 면갑을 올린 후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숙녀들은 기사들을 격려하고 상을 수여했다. 우승자의 공훈은 로맨스나 노래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기사들의 무장 중에서 투구는 두부와 면갑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두부는 안쪽에 몇 개의 둥근 쇠를 덧대어 강도를 높였고, 면갑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창살처럼 밖을 내다볼 수 있고 임의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고안되었다. 떨어지거나 타격으로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구를 사슬 갑옷의 그물에 끈으로 매어 놓았으므로 넘어진 기사를 죽이려면 투구의 끈을 풀어야만 했다. 이야기 속에서도 상대 기사가 말에서 떨어지면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발로 가슴을 누르고 단도로 투구의 끈을 벗긴 후 칼로 겨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의 재미는 역사 소설로서의 재미다. 특히 스콧은 역사를 한 편의 거대한 로맨스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소설 장르는 부단히 발전하고 많은 새로운 실험을 통하여 오늘날에는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심리묘사에 치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로 상황이나 사건의 전개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인물 묘사는 내면 묘사보다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에 의해 그 인물의 성격을 가늠하게 하고 있다. 아이반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그 성격이 상당히 뚜렷하다. 한마디로 친근하고 생동감이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주요 인물들인 윌프레드, 로웨나, 레베카, 세드릭의 정형화된 성격보다는 왐마, 애설스탠, 아이작 등 주변 인물의 성격이 더욱 재미있고 선명하게 부각되는 점이다. 특히 왐바는 상황을 절묘하게 비꼬는 재치로 이야기에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재물에 벌벌 떠는 아이작이나, 모든 화제가 먹는 것으로 귀결되는 애설스탠의 대화는 웃음이 절로 난다.

둘째로, 성경을 비롯하여, 각 신화에 등장하는 해박한 고전 지식의 접목이다. 시, 역사, 극 작품, 옛날 이야기, 로맨스 등의 작가의 지식이 축적되어, 작품 여기저기에 수없이 인용되어 작품 상황에 맞게 짜여져 있다. 이는 읽는 이들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각 장마다 그 장의 전체 내용을 미리 가늠할 수 있게 삽입된 인용문들은 희곡, 시, 옛 기록 등의 다양한 출전에 힘입어 상황을 일치시키는 짜임새가 놀랍다. 아마 이것이 이 작품을 읽으며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월터 스콧 연보>

1771년 에든버러에서, 월터 스콧과 앤 러더퍼드(Anne Rutherford) 사이에서 출생.

1772-73년 소아마비를 앓아 절름발이가 됨

1779-83년 에든버러에서 고등학교에 다님

1792년 변호사가 됨

1796년 뷔르거(Burger)의 작품을 번역하여 익명으로 <추적, 윌리엄과 헬렌 The Chase, and William and Helen> 발표

1797년 프랑스 왕족 출신 샤를로트 샤르팡티에(Charlotte Charpentier)와 결혼

1799년 괴테의 <철의 손 괴츠 Goetz of Berlichingen>를 번역하여 <공포 이야기 Tales of Terror>발표. 셀커크 주의 판사대리로 임명됨

1801년 루이스(M. G. Lewis)의 <신기한 이야기 Tales of wonder>에 기고함

1802-3년 <스코틀랜드 변경지방의 민요> 발표

1805년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 발표. 제임스 밸런타인 출판사를 공동 경영함. <웨이벌리> 시작

1806년 항소 법원의 서기로 임명됨

1808년 <마미온> 발표.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작품집 발간

1810년 <호수의 연인> 발표. <웨이벌리> 다시 시작했으나 중단함

1812년 애버츠퍼드로 이주

1813년 <로커비> 발표. 월계 시인으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함

1814년 <웨이벌리> 발표.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작품집 발간

1815년 <섬의 영주 The Lord of the Isles> 발표. <가이 매너링 Guy Mannering> 발표

1816년 <골동품 수집가 The Antiquary> 발표. <검은 난쟁이 The Black Dwarf>와 <옛 사람들 Old Mortality>, <나의 지주 이야기 Tales of My Landlord> 시리즈 1부 발표.

1817년 <로브 로이 Rob Roy> 발표.

1818년 <마들로디언의 중심부 The Heart of Midlothian>, <나의 지주 이야기> 시리즈 2부 발표. 준남작 작위 받음(1820년에 공고됨)

1819년 <래머무어의 신부 The Bride of Lammermoor>, <몬트로드의 전설 A Legend of Montrose>, <나의 지주 이야기> 시리즈3부 발표. <아이반호> 발표.

1820년 <수도원 The Monastery>, <대수도원장 The Abbot> 발표, 딸 소피아가 록하트와 결혼함

1821년 <케닐워스 Kenilworth>발표.

1822년 <해적 The Pirate>, <나이즐의 행운 The Fortunes of Nigel>, <절정의 패버릴 Peveril of the peak> 발표.

1823년 <켄틴 더워드 Quentin Durward> 발표.

1824년 <성 로난의 샘 St. Ronan’s Well>, <붉은 장갑 Redgauntlet> 발표

1825년 <약혼자 The Betrolthed>, <부적 The Talisman>, <십자군 이야기 Tales of the Crusaders> 발표.

        <<저널 Journal>> 창간.

1826년 아치발드 컨스터블스 출판사와 제임스 밸런타인 출판사의 파산으로 재정 위기. <우드스톡 Woodstock> 발표.

1827-28년 <캐논게이트연대기 Chronicles of the Canongate> 2부작 발표.

1828-31년 <어느 노인의 이야기 Tales of a Grandfather> 4부작 발표.

1829년 <가이어스타인의 앤 Anne of Geierstein>, 웨이벌리 소설의 걸작 시리즈 발간하기 시작함.

1830년 <악마 연구와 마법에 대한 편지 Letters on Demonology and Witchcraft> 발표. <아이반호> 걸작 발간

1831년 요양 차 지중해로 여행함.

1832년 <파리의 로버트 백작 Count Robert of Paris>, <위험한 성 Castle Dangerous>, <나의 지주 이야기> 시리즈 4부 발표.

        9월 21일 애버츠퍼드에서 사망함.

 

 

 

 

b****a 2007.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이반호, 그 유쾌한 이야기
"아이반호, 그 유쾌한 이야기" 내용보기
아이반호, 단번에 완독해버린, 간만에 정말 재밌게 읽은 유쾌한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월터 스콧 경의 열 번째 역사 소설로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그린 이전의 소설과는 달리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는 작가가 서문에서 직접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백작에 의해 구금되어 있던 사자심 왕 리처드 1세가 비밀리에 귀국한 시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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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단번에 완독해버린, 간만에 정말 재밌게 읽은 유쾌한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월터 스콧 경의 열 번째 역사 소설로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그린 이전의 소설과는 달리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는 작가가 서문에서 직접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백작에 의해 구금되어 있던 사자심 왕 리처드 1세가 비밀리에 귀국한 시점의 잉글랜드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아버지인 색슨의 호족 세드릭으로부터 의절당한 아이반호의 기사 윌프레드의 모험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장르의 특성상 작품 속에는 사자심 왕 리처드 1세와 그의 가신들, 존 왕자와 반역 도당들, 그리고 로빈 후드와 그 패거리 등 역사적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좇는 일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리처드 사자심 왕의 전설을 직접 듣기는 처음이라 흑기사 차림의 편력 기사로 위장한, 용맹무쌍한 이 잉글랜드 왕의 무용담엔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들 유명한 인물들 외의 등장인물도 대단히 매력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우직하고 충실한 돼지치기 거스, 재치있는 말솜씨로 웃음을 선사하는 삐에로 왐바, 자신의 돈 때문에 언제나 벌벌 떨기만 하는 아이작, 심각한 상황에서도 늘 먹을 것 타령인 옛 색슨 왕가 혈통의 애설스탠, 로빈 후드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저 우악스러운 탁발승 턱 등. 유쾌하기 그지 없는 이들 조연의 대화와 익살은 작품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띄게 만들어 시종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설 아이반호는 상위계급의 모습보다는 약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공 들였다. 이로 인해 당대의 민족 분쟁, 즉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대공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잉글랜드의 새로운 왕이 된 이래로 정복자인 노르만 족과 피정복민인 색슨 족 사이에 상존하던 갈등을 이해하고, 당시의 하급민들과 색슨인들의 생활상을 일견 엿보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또, 고전에 밝았던 작가는 작품 전반에 고전을 인용하고 있는데, 대개가 생소한 인용문들이었지만 어쩌다가 아는 구절이라도 나올라 치면 반갑기 그지 없었다. 이는 이 소설을 읽는 데 있어 부가적인 즐거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야기는 세드릭과 아이반호가 화해를 하고, 로웨나 공주와 아이반호가 결혼을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는 노르만-색슨의 두 적대적 민족이 앞으로 화해와 융합의 길로 들어섬을 암시함이다. 정말 간만에 즐겁게 읽은 책이라, 즉흥적으로 두서없는 감상을 짧게 남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