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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세상을 위하여
1.
진실을 보기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이 책을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진실과 거짓 중, 어느 것이 더 옳은가는 굳이 묻을 것도 없다. 누구나 진실을 원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과 달콤한 거짓 중에서 우리는 무엇에 더 안도하는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는 진실과 마주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니,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자기 방어이자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 왔던 모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기대를 배반하는 법이다. 진실은 거짓 장막을 걷어내고 진짜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세계가 거짓 투성이였음을, 우리가 진짜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은 강자의 기만이었을 뿐임을 진실은 여과 없이 보여준다. 진실은 기어코 우리를 아프게 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불편하고 충격적인 진실일지라도 결코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을. 결국 진실은 드러나고 만다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불쾌하다. 숨겨왔던,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덮어두었던 진실들을 너무나도 태연스럽게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준엄하게 왜곡되었던 진실들을 바로 잡는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짓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들에게 그것은 충격, 아니 그보다 더한 공포가 된다. 이러한 충격을 견딜 자신이 있을 때에만 이 책을 들라. 그만큼 이 책은 믿어지지 않는 진실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타성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존재 기반들을 마구 뒤흔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이겨내고 나면 우리에겐 진실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생긴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과 놀랄 만한 통쾌함과 함께. 자유란 것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나는 그전 어떤 상태보다도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나의 눈을 가리고, 강대국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조종해왔던 거짓과 압제의 갑옷들을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벗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로소 자유란 것과 처음 만난 듯 하다. 선하든, 선하지 않든 강요된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곳에서 인간의 자유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세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즉 서구 강자들의 지배 논리에 점령당해 있다.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우리를 옥죄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털고 일어나, 어느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주체적·전지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데올로기에 경직된 사고를 역으로 접근하여 가공되지 않은 진실 그 자체를 캐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어려운 작업인가? 그런데 이것 참 다행이다.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지었단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이 어렵기만 한 과정들을 쉽게 체험하고 느끼며 깨달을 수 있다. "입학 시험도 등록금도 없으며, 모든 과정은 무료이다. 이 학교에서 납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법을, 코르크는 가라앉는 법을 배운다. 독사는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고, 구름은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법을 배운다."(15쪽) 사람들은 '거꾸로' 된 세상을 '거꾸로' 바라 보아 '똑바로' 볼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어찌 여기에 입학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이 곳에서 나는 서구 중심적으로 강요된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두터운 외투를 벗고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실은 진실을 찾아 나서는 떠남에 있지,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진실을 모색하는 것보다 더한 진실은 없다는 것을......"(342쪽)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나는 불쾌하고도 유쾌한 세상의 온갖 진실들을 찾아내었고 그것은 뜻밖에도 내게 '자유'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2.
세상은 거꾸로 되었다.
도둑놈이 좋은 집안 출신이면 도둑이 아니라 도벽이 있는 사람(52쪽)이 되고, 어떤 사람은 지배하기 위해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지배받기 위해 태어난다.(55쪽) 침공과 약탈 행위에 법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국제법이 탄생했고(57쪽), 국제연합은 평등권을 설교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는다.(88쪽) 사람들은 '빈민가 어린이 하나 죽이는 건 사회에 봉사하는 일'(103쪽)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은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며(45쪽), 결코 '처벌되지 않는다'(222쪽) 미국의 군수 산업은 테러리스트 정부에 무기를 팔면서 반테러 운동을 동시에 전개(133쪽)하며, 유엔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1달러를 들이면 세계는 전쟁을 유지하기 위해 2,000달러를 투자한다.(136쪽) 지구상에서 최대의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지구를 가장 많이 죽여 없애는 기업들이고,(229쪽) 지구의 주인들은 지구가 마치 일회용인 것처럼 사용한다.(283쪽) 물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지고,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덜 중요해지는 이 문명사회에서 목적은 수단에 납치됐다. 물건이 당신을 사고, 자동차가 당신을 조종하며, 컴퓨터가 당신을 프로그래밍하고, 텔레비전이 당신을 본다.(263쪽) '우리는 우리가 만든 도구의 도구'(322쪽)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94쪽)
이렇듯 우리는 거꾸로 되어도 한참 거꾸로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세상을 이토록 뒤집어 놓은 것일까. 비참하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다. 부조리와 불의가 대접받고 모든 것은 강대국의 논리로 재단되는 이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분명 잔인한 일이다. 오늘날 이 세상의 주인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것일진대 이상하게도 강대국과 그들이 운영하는 (다국적)기업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을 소유하기라도 한 것인 양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배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물건이자 소비자'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저자 에두아르노 갈레아노는 말한다. "비록 우리가 잘못 만들어졌어도 아직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현실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다"(343쪽) 그는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다 한다, 우리가 거꾸로 된 세상을 제대로 바꿔 놓을 수 있다 한다. 그러나 촌철살인적인 풍자로 가득한 두툼한 강의 노트에 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제까지 '사람이 희망이다, 우리가 해낼 수 있다!' 라는 말이 모든 대안을 갈음할 수 있겠는가.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 뿐이 없다는 것에 나 또한 동조하는 입장이지만, 그것만으로 대안을 찾기엔 그가 보여준 세계가 너무나 섬뜩했다, 너무나 아찔했다. 그렇기에 기본적이고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대안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회의가 든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참 나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잔인한 세상을 보여주기만 하고 해답은 명쾌하게 내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도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지독하리만큼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각자 새롭고 발전적인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한 힘들이 하나 하나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오노 요코가 이런 말은 하지 않았던가. '혼자서 꾸는 꿈은 꿈일 수밖에 없지만,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라고. 그렇다. 세상을 바로 잡고자 하는 개개인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강렬한 의지가 모이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가. 이래도 우리에게 쓰레기 같은 현실만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이래도 우리에게 이 비극의 시대를 헤쳐나갈 희망은 없다 할 것인가. 기억하자, 보고타의 담벼락에 씌어진 어느 누군가의 낙서를. "더 좋은 날들을 위해 염세주의는 내버려 둡시다"(334쪽)라는 이 위대한 격언을. 당장은 어렵지만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면 된다. 상황이 힘들다 해서 희망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힘의 논리대로 편집되고 짜여지는 세계라 해도 그것에 대항하는, 그것을 바꾸려는 작은 행동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큰 힘이 되어, 진정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해야만 하고,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칸트의 격언을 거꾸로 된 세상이라는 중대 문제에 봉착한 우리 인류에게 적용한다면‘우리는 해야만 하고,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세상은 환상일 수도, 믿음일 수도, 목표일 수도, 현실일 수도,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닥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좀더 나은, 좀더 살만한 세계와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것을 이룰 첫 발걸음은 바로 당신,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멋지지 않은가. 나의 의지가, 당신의 의지가 만나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평등하고 인간다운 전지구적인 세상을 지향하는 모든 발전적 사회운동과 인간의 행위들은 변혁을 이루어 가는 희망의 증거이다. 피하지 말자. 희망이 벌써 이만큼 다가왔다. 염세주의는 버려 두고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 하자.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세상을 신나게 꿈꿔보자. 들리는가, 희망이 현실로 바뀌는 이 소리가! 거꾸로 된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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