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출판사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를 보고 아동용 학습만화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그 조악한 그림과 현란하기만 한 색채. '아 그렇게 된 거로구나' 하는 문어체의 어색한 문장들. 그리고 성적 매력만 충만한 과장된 그림체를 쳐다보면서 혀를 찼던 일이 있다. 공교롭게 그 만화는 베스트셀러를 넘어 1천만부 돌파라는 '스테디셀러' 라는 자리에 올랐고, 상까지 받은 상태였다. 이는 이 나라의 만화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의 처절하고 슬픈 반증이 아닐까 한다. 우연히 만난 '호메로스가 간다' 는 의외였다. 그 전부터 그리스로마신화를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고, 제 멋대로이고 묘한 반항과 자기증오에 얽힌 복잡한 내면세계를 보여주기도 하는 이우일의 작품세계로 보아 어떤 만화가 나올지 매우 궁금했었다. 만화는 학습이니 교양이니 상업이니 하는 1차적인 만화 카테고리 분류 체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무언가 일반적인 시각으로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작가가 완전히 신화의 세계에 몰두해서 그것을 가지고 제 멋대로 싸우고 놀면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리고 최대한 자제한 채 색 자체에 몰두한 색. 그림. 그리고 마치 선문답처럼 보이면서도 철학의 깊은 곳을 마구 찔러대는 단원 말미의 대화들. 아쉽다. 이 만화가 기껏 '이우일의 그리스로마신화' 라는 이름에 묻혀버리지 않을까 해서. 서둘러 다음 권을 더 보고싶다. 이 만화는 계속 그렇게 완결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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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꽤나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 입장에서 무언가 다른 시각으로 신화의 세계를 조망하는 책이 나온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일인데, 그런 면에서 이 <호메로스가 간다>는 진작부터 리스트에 올려놓았던 책이다. 작가는 도날드닭이나 노빈손 시리즈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부터 <존나깨군>이나 <좀비 이야기>같이 기절초풍할만한 센스를 폭넓게 보여주는 이우일이다.
여는 글을 보니 무려 두권 분량을 그려낸 상태에서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했단다. 그렇게 10권 분량중 1권에 해당하는 이 <호메로스가 간다 1: 트로이아, 화살의 그늘>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오랜 시간을 끌었던 전쟁의 이야기이기 때문인가;) 책은 젊은 호메로스의 시선으로 트로이 전쟁에 실제로 참가하여 바로 옆에서 그리스의 영웅들을 바라보는 것 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해준다. 로맨틱한 감성으로 윤색된 이야기보다는 소위 영웅들이 보여주는 추잡한 현실들과 전쟁에 말려든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그럴듯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고, 영화 등에서는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신들의 이야기는 다소 과격한 시각으로 연출한다. 거침없는 그림체와 때론 거북할 정도의 대사 등이 다른 책들과는 사뭇 다른 맛을 주는데(이건 대학 재학시절부터 보여줬던 작가의 성향에 비추어 보면 아주 온건한 편이다), 그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개인적으로 난 언제가 되었건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결과물을 남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에둘러서나마 은근히 자주 피력하는 편인데(지금같이 안일한 모습이라면 이건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불었던 신화 붐을 보면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런 신화 특수가 또 찾아올 날이 있을까?'라며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만 하고 있는 동안, 작가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화를 그렸다.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 완결이 될 때까지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책은 계속 나와줄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일단 그런 생각들은 제쳐두고 다음 권을 기다려 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