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사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건대, 그야말로 흥미 위주로 읽고 말 책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서 뭔가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작가의 놀라운 지식과 통찰력을 느껴보고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단지 이 책이 '픽션'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허구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을 바라봤을 때에는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이 책을 내가 나서서 비난하는 이유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얄팍한 지식을 토대로 써내려간 이 책이 현실세계에 끼치고 있는 엄청난 영향 때문에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성당이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고 숨겨진 기독교의 '음모'를 캐내려 나서는 호기심많은 독자들도 상당수라고 들었다. 작가의 얄팍하고 허점 많은 지식들을 잘 포장해낸 이 소설 작품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매니아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책을 비판하는 관련 전문가들은 아무리 논리적인 증거를 가지고 이 작품의 오류를 지적하더라도 '보수적인 기독교인', '작가의 용감한 발상을 흠집내려고 하는 앞뒤가 꽉 막힌 인간'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단순한 소설작품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부풀려지고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장담하건대 '다빈치 코드'의 전작이 그랬고, '다빈치 코드'가 그러하듯 댄 브라운은 앞으로도 '다빈치 코드' 스타일의 작품들을 발표할 것이다. 그가 똑똑하고 진실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얄팍한 지식에 현혹된 독자들을 이미 확보했고 수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댄 브라운을 작품의 스타일에서 움베르토 에코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에코의 방대한 지적 스펙트럼과는 비교자체가 안되는 인물이다. 나는 차라리 한국의 김진명에 비교하고 싶다) 모두들, 이 소설을 단순한 소설로 읽자. 숨겨진 진실이니 음모 따위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식한 티 내지 말자, 제발 |
|
학창시절 읽었던 책이 내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이토록 무참하게 휘갈길 줄 누가 알았으랴? 당시 난 신실한 기독교 집안의 아들로서 주일에는 항상 교회에 가야했고, 모든 일에 앞서 기도를 올리는 아이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고 또한 들어보지도 못한 기독교의 뒤에 가려져있던 것들에 대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통해 경험해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이교도의 숭배자가 된 마냥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감당할 수 없었음이어라. 그렇게 10여년이 흘러... 수많은 미시사들과 흔히들 말하는 음모론에 탐닉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져들어 버렸다.
다빈치 코드에서 말하는 '사람의 아들'은 어딘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유대감에 있어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프리메이슨의 존재는 '그림자 정부'를 연상시켰으며 이 모든 조합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뭉쳐지자 이내 '다빈치 코드'는 엄청난 책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버렸다...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에코의 세례를 받았다는 따위는 표현하고 싶지 않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결말이랄지, 뻔한 내용의 음모론이다라고 표현하고도 싶지 않다. 어차피 이 시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가설과 이론들로 들끓고 있으며, 설령 그것이 이단이라 할 지라도 우리의 도전은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용기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연 우리는 '톨레랑스'의 의미를 아니, 어쩌면 이 글자가 보여주는 것에조차 존중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성배를 찾지마라, 성배가 너를 찾을 것이다. |
| 미국을 휩쓴 베스트셀러라 무척 기대를 하고 봤다. 푸코의 추와 비교가 들어가고 빅뱅이라는 별면까지 작가에게 붙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인지. 이미 숱하게 다루고 있었던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그렇게 충격으로 와닿지는 않았고 게다가 초보적인 암호해독술의 나열은 실망감까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최근의 작품들 중에서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볼 수있는 듯하다. 푸코의 추와 코드북을 이미 읽은 분이면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지 말고 보시기를... 그리고 급하게 이루어진 번역인 듯... 좀 무리가 가는 표현도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한번쯤 손을 더 보신느게 좋을 듯 싶다. |
|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책은 몇 권정도 읽었기에 이 책이 상대적으로 술술 읽혀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이 모호해져만 갔다. 새벽 5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책을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보려면 책에 나오는 그림이나 장소들을 보면서 읽으면 더욱 재밌다. 사물 묘사를 배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르브르 박물관에 내 자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의 묘미를 맛보기 위해 1권을 읽으면서 2권도 동시에 읽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장담하는데 이 책 정말 재미있다. |
| 추리소설의 형식을 택한「다빈치코드」를 읽으면서 우선 책에 대한 재미를 빼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재미만을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어. 우리들이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한 통념이나 고정관념들이 얼마나 우리의 유연한 사고를 막아버리는지 반성하는 계기를 주기도 했어. 고 3을 앞두고 있는 내 딸 윤정아, 흔히 사람들은 마음속에 정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그 근원을 따져 묻다보면 왜곡되고 변질된 것들이 참으로 많아.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 그 정답에 대해 되물으려고 하지 않지. 왜냐하면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된 정답을 되묻는다는 것은 그에 맞는 타당한 근거를 들이대야하고 정답에 익숙한 사람들의 비난까지도 감수할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이 책 역시 소설이라는 허구를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왔지만 사실과 허구사이에서 사람들의 심한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을 작가는 충분히 짐작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코드」를 세상 속에 당당히 발표했던 것은 우리 안에 편재해있는 정답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 예상했던대로 이 책이 발표되고 「다빈치코드」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어. 「다빈치코드뒤집기」,「다빈치코드 사기극」등 많은 종교인들의 출판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어. 윤정아, 나 역시 이 책을 연애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없었다. 「다빈치코드」와 관련이 있는 다른 책들을 구해보기도 하고 작가가 서문에 사실이라고 밝혀둔 비밀종교단체를 조사해가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마른침을 삼키며 책을 읽어냈단다. 또한 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권력과 대중의 의견에 길들여져 의식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단다.. 사실, 소설 「다빈치코드」의 모티브가 되었던 기독교에 관한 이설들, 다빈치의 생애와 그 작품에 나타난 상징과 비밀들은 작가의 순수한 창작은 아니었어. 그럼에도 그의 책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갖고 있는 역사학, 예술사, 종교기호학 등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우리가 진리라고 떠받드는 우상에 대해 과감한 메스를 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해. 윤정아, 이 책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었고 막달레나마리아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으며 우리가 술잔이라고 생각하는 성배는 예수의 피를 받은 여자의 자궁을 뜻한다는 무척이나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내용이었어. 그동안 진리처럼 믿어왔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의 순결을 일순간에 뒤집어버리고 예수의 신성까지를 부정해버리는 작가의 도발적인 자세에 혼비백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첫부분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장 쟈크소니에르가 총을 맞고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그는 박물관에서 총을 맞은 후 벌거벗은 채 배꼽부위에 자신의 피로 오각형의 별을 그려놓은 뒤 바닥엔 의문의 암호를 남기고 주변에 원호를 그려놓고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의 형상과 똑같은 모습의 상징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게 돼. 이 사건은 암호전문가인 쟈크소니에르의 손녀 소피누뵈와 종교기호학자 로버트랭던 교수가 소니에르의 암호를 해독하며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거야. 자크소니에르가 남긴 ‘13-3-2-21-1-1-8-5’는 연속된 숫자의 합을 다음 숫자로 나열한 피보나치수열‘1-1-2-3-5-8-13-21’이 되고 알파벳 철자를 재배열해 새로운 단어를 조합해내는 아나그램을 통해 ‘오 드라코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는 ‘레오나르도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되는거야. 그리고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는 ‘모나리자(The Mona Lisa!)’가 되는거지. 이 암호의 해독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돼. 그랬어 윤정아, 천재적인 레오나르도다빈치는 자신의 그림 속에 기독교의 이형들을 은밀하게 숨겨두고 있었던 거야. 이 소설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진리처럼 믿고 있는 성서가 기독교와 이교도의 투쟁이 격화된 시기에 정치적인 개입으로 많은 변형과 개정작업을 거치면서 진화해온 것이라고 폭로하고 있어. 태양숭배자였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단일 종교하에 로마를 통합할 수단으로 기독교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놀랍지 않니? 그래서 인간인 예수를 신격화해서 로마제국을 단일화시키고 새로운 바티칸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그 당시 사람들로부터 영향력있는 그리스도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의 세속적인 삶을 다루고 있는 복음서들과 그의 결혼문제는 그를 신격화하는데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었어. 그러는 과정에서 예수의 혈통을 품은 신성한 여성 막달라마리아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불결한 창녀가 되어버렸고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삶을 다루는 복음서는 모두 삭제되었다는 것이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는 초기 복음서들과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지. 그런데도 로마 교회는 예수의 생애를 자신들과 다르게 설명하는 이설은 이단이라는 명명하에 가차없이 박해하고 폐기처분 했어. 이런 기독교의 뒤틀린 음모로부터 위험에 처해진 성배를 보호해야할 임무 띤 비밀종교 단체가 바로 시온 수도회였던 것이야. 소설속의 다빈치나 살해당한 자그소니에르는 그런 대단한 사명을 띤 시온 수도회의 수장이었던 거고 말야. 윤정아, 레오나르도다빈치는 최후의만찬을 통해 왜곡되고 변질된 기독교를 비밀스럽게 폭로하고 있지. 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수를 포함해 열 두 제자라고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예수의 옆자리에는 분명 남자가 아닌 아름다운 여자, 즉 예수의 사업을 이어받을 신부 막달레나마리아가 있었어. 내가 호들갑을 떨며 너에게도 그 그림을 보여줬잖아. 그동안 우리는 성서의 선입관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그림 속의 차이를 알지 못했던 것이야. 작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최후의 만찬이라는 다빈치의 그림을 통해 기독교의 이형뿐 아니라 강력한 상징으로 인해 우리의 뇌가 눈을 막아버리는 현상까지도 증명해 보여.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때로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지적해주지. 윤정아, 분명 작가 댄브라운은 재미있는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세상에 불변하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 우리는 권력과 대중의 의견 그리고 관습이 진리인 것처럼 여길 때가 참으로 많아. 그것이 오랜 시간을 통해서 형성되고 고착화되면 그것에 대한 근원을 따져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지. 성서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신에 대한 불경으로 몰아 부치며 그 교리들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기를 강요받았고 그것을 따져 되묻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하지만 댄브라운은 신성불가침의 성서를 전복시키며 이렇게 고착화된 우리의 사고를 질책하는 듯 했어 윤정아,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와는 달리 원시종교는 출산을 하는 여성을 매우 신성시했다는 것이야. 즉 이브가 사과를 먹고 인류를 타락시켰다는 구약의 원죄의 개념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인간의 산물이라는 것이지. 예수 사후 400여년이 지나서 태양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대제는 자신의 권력바탕을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의 잠재적인 영향력과 중요성을 이용했고 그런 과정에서 성서는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윤정아, 그렇다고 본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따르는 것도 자주 문제의식을 가지고 따져봐야 되지 않겠니?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고 봐. 작가가 성서의 권위까지도 타파해야할 대상으로 우리에게 과감하게 일러주었듯이 말야.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권위라는 것들에 참으로 나약하고 비굴하게 굴 때가 참 많았던 것 같아. 특히 네가 지금 받고 있는 학교교육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교과서의 권위는 감히 어느 누구도 따지고 들려고 하지 않잖아. 교과서에 실린 많은 학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권위의 우상을 깰 때 가능하다고 봐. 베이컨이 주장한 타파해야 할 4가지 우상 중 권위를 상징하는 극장의 우상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싶다. 윤정아, 소설「다빈치코드」는 결국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권위에 대한 것들의 응징이었던 것 같아. 권위에 짓눌리다 보면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없고 그러다보면 자신의 삶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나는, 우리 윤정이가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적극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현재를 살아냈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제기는 반드시 실천의식을 전제로 하고 말야. 그래야만 진정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때문이지. 2004년 가을, 문제의식없이 살아가는 딸을 염려하는 엄마가. |
| 랭던이라는 기호학자교수의 이틀간의 내용이지만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신의 이야기로부터 끄집어냅니다. 모나리자가 고대 신의 남신과 여신의 이름을 섞은 아나그램이라는것부터 아주 흥미롭네요. 13일의 금요일에 실제 있었던 일들.. 마리아 막딜레나가 창녀가 아니라 왕족출신이라는점... 어찌보면 제가 아는 모든것을 뒤엎는 내용들인데 왠지 수긍이 가네요. 우리가 익히아는 기호들의 황금비율이라든가..기호학자가 펼치는 내용들이 흥미있으면서 이야기전개가 정말 계속 긴장감을 주기때문에 책을 단숨에 읽은것 같습니다. 언젠가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한참을 모나리자 앞에 서있을것 같습니다. 아니 루브르내에 있는 1980년대 미테랑이 만든 피라미드를 찾고 싶어질것 같네요.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서 그런지 거부감?없이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야기속에 완전히 빠져들어서인지 내용들이 소설이 아니라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번역도 아주 잘된 작품입니다.(참고로 전 외국어 전공임)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 더위를 잊기에 딱입니다. |
| 나는 다빈치 코드 파가 아니다. 정말이지 다빈치 코드는 나한테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할리우드적인 구성이 있을 수가 없다. 책을 펼치는 순간에 이 책이 책인지영화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만큼. 할리우드적 상업 영화의 라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매혹적인 여자와 똑똑한 대학 교수. 둘의 로맨스와 어우러지는 추리.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책이라고 생각할까? 처음은 굉장히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흐지부지해지는 끝부분 또한 실망의 연속이다. 게다가 지나친 반전을 주려고 너무 노력하다보니, 결국엔 아무것도 놀랄 것이 없게 되었다. 캐릭터도 빈약하고 이야기도 이상하다는 것이 나의 요지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아무리 시대의 조류라고 해도, 이 책은 내가 읽은 최악의 faction이다. 흥미 위주의 소설이라도 그렇지, 너무 심했다. |
| 이소설에 대해 많은 말들이 분분하다. 안타까운건 비판의 시각없이 이책을 읽는 이들이다...어떤분이 이런이야기를 했다. 단지....픽션일뿐인 추리 소설을 가지고...독자들에게 흥미를 부추키기 위해 실제 인물(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대 역사, 비밀단체, 암호 등을 소재로 삼아 정말 실제인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거기에다 그리스도교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서양 그리스도교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치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는것 같다. 사회적기류와 현상 때문인지 몰라도 이소설을 읽고 내용들을 공감하시는 분이라면...이 소설과 상반된 견해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 책들도 읽어 보시는 건 어떨지..... ☞ 허호익의 「예수 그리스도 바로보기」, 박진호의 「그런 예수는 없다」, 어윈 W 루처의 「다빈치 코드 사기」, 제임스 L 갈로의 「다빈치 코드 깨기」 가톨릭신문사「이것이 가톨릭이다: 진리는 흔들어 대도 진리」등의 책들이 있는걸루 안다. |
| 읽고 난지 시간도 꽤 지났으니 간단하게 쓰지요, 뭐. (이런 문제 제기가 없다는 것이 의아하여 씁니다. 끝까지 읽어보심 압니다..ㅋㅋ) 1. 디자인_ 원서 디자인을 따라 한 것이니, 왜 그랬냐고 하기도 그렇지만... 한글 타이포가 꽤나 성격이 있는(!) 타이포지요. 영어와 다르지요. 글자 교체에 따른 디자인 변형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김 식기 전에 내보내려면 바쁘셨겠지요?ㅋㅋ) 그래도 갖고 다니기 싫어질만한 표지라는 건 사실이군요! 2. 어쨌든 손을 뗄 수 없게 하긴 합니다. 헐리웃 영화가 갖는 장점을 잘 갖고 있군요. 영화화를 염두하고 쓴 듯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시퀀스 단위로 단락이 잘라져 있어서 더더욱 그런 느낌도... 3. 지적인(교양적인) 수준 전반 3/1는 뭔가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상당히 줍니다. 중반까지는 그냥 저냥 계속 읽어보자는 기분... 후반까지 달려가면... 이 사람이 실제로 아는 것은(주워들은 거 말고)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쾅! 쾅! 쾅! 머리에 도장을 찍습니다. 제발 에코를 비교하며 욕되게 하지 말아주세요-.-;; 서양 신비주의와 기독교 이전 종교의 역사, 프리메이슨류 신비 단체들에 약간(그저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는 저의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내용도 없더군요. 결국엔... 무슨... 지식소설... 언감생심? 딱 영화에서 주인공 대사 몇 개를 받쳐줄 수 있을 정도의 정보(지식이 아니라)로군요! 너무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대하지 말고 보시길! (그래도 우리나라 작가들의 공주병 왕자병 탄식을 들어주는 거보다는 참을만하니까요) 4. 결정적인 의아함 이런 문제입니다. A가 B에게 답을 말하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위협합니다. B는 생각합니다. "나는 답을 모르는데... 어쩌지?" 따라서 B가 답을 모른다는 사실도 독자에게는 추리를 위한 단서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일 수가 없습니다. B의 의식이니까요.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얼마나 공정한 트릭을 사용할 수 있느냐에 그 작품성이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갑자기 일란성 쌍둥이 형이었다든지, 비밀 계단이 있었다든지 해서... 사건을 종결시키는 건 참 치사한 일이죠. 페어플레이가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짜증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더 심하군요!!! 등장인물의 의식에서 일어난 사고 과정까지 다 적어놓고는 해명도 없이... 그것이 뒤집어버리다니... 그러려면 전지적 작가시점을 왜 택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 인물의 심리를 안 쓰기만 했어도 되는 문제일텐데...) 번역자의 실수라고 보기에도 그게 그럴 수가 없네요. 1~2곳에서 등장하는 게 아니니까요. 의외의 범인을 등장시키기 위한 트릭치고는 한심하고 치사하며, 스스로 정한 시점(전지적작가시점)까지 무시하는 무식함을 보여주는군요. 이해가 안 갑니다. 그가 정말 이렇게 썼을까요? |
| 정말 흥미로운 소제, 카톨릭과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아나그램과 수수깨끼(?)를 다르고 있다. 2권으로 되어있는데 1권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오랜만에 걸작 나왔구나... 그리고 2권에 펼쳐질 반전과 결말들을 나름대로 상상해보게 된다. 하지만 2권을 보면 정말 점점 내용이 삐걱거리며 점점 기운이 빠진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에 대한 예측이 너무 잘 맞아 들어간다. 기다리던 커다란 반전 같은 건 없다. 혹은 너무 약하달까? 미국의 작가의 작품답게 너무 미국적, 혹은 헐리우드 적이다. 어찌보면 스릴러 영화 처럼 어떤 일정한 공식에 따르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가까운 이를 믿지말아라.' 결국 전혀 새로울게 없다. 재료가 참신할 뿐.... 결론도 너무 뻔하다. 엄청난 결론이 기다릴줄 알았지만 너무 무책임한 결론, 혹은 살짝 진실을 보여주고 다시 감추는 결론... 결국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beyond there... 1권까지는 4개 이상을 줄만하지만 2권까지보면 3개도 간당간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