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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의 정체성과 주체성- 박태일,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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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의 정체성과 주체성- 박태일,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지역문학은 말 그대로 지역에 근거를 둔 문학이다. 서울=중심에만 문학이 있는 게 아니라 지역에도 문학이 있다. 중심에서 소외된 채 타자화되고 소수화된 지역문학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은 지역문학 연구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문제는 지역문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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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학의 정체성과 주체성

- 박태일,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지역문학은 말 그대로 지역에 근거를 둔 문학이다. 서울=중심에만 문학이 있는 게 아니라 지역에도 문학이 있다. 중심에서 소외된 채 타자화되고 소수화된 지역문학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은 지역문학 연구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문제는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가라는, 당연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우선 대답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책세상, 2000)에서 정체성과 동일성은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변화 속에서 남아 지속되는 그 무엇에 관한 것이다. 즉 변화, 지속, 동일함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정체성의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변화 속에서도 남아 지속되는 그 무엇이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언급에 주목해 보자. 지역의 정체성은 다른 지역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구별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 지역의 구체적 삶을 통해 구현되는 동질성-동일성의 미학이 지역문학의 미학적 조건을 형성한다. 대전·충청 지역의 미학이 느림과 여유, 선비정신에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그 지역민들의 삶의 현실과 조응되는 미적 조건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여유와 여백의 미학은 조선조 한시문학의 중요한 특성이었다. 고통스런(세속적인) 현실을 떠나 유유자적하는 선비들의 삶은 조선조의 시가문학을 훑어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인 바, 그런 점에서 느림과 여유의 미학은 사실상 한국문학의 보편적인 특성(특히 지배층 문학의)이라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느림과 여유가 대전·충청 지역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미학적 특성으로 제시되려면, 이전의 시가문학에 나타난 특성과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문제는 이곳에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거니와, 이러한 문제는 지역성을 고민하는 지역문학 연구자라면 피하지 못할 난제이기도 할 것이다.

 

탁석산은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 등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성은 정체성에 대한 모든 논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중성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인정하며 즐기는 노래가 한국의 정체성 탐구의 주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특성을 가리킨다. 요컨대 현재성과 대중성은 지금 이곳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정체성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논구하는 연구자라면 인정하는 바인데, 지역의 현안을 지역문학의 핵심적 과제로 성찰하는 최근의 지역문학 담론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겠다. 중요한 것은 현재성과 대중성의 문제를 지역문학의 주체성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지역(집단)의 정체성은, 탁석산의 지적대로 집단의 성향이며, “집단은 여러 가지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현상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정체성이 우리을 구분하는 것이라면, 주체성은 그러한 구분의 바탕 위에서 행해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지역민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지역의 정체성이 밝혀져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역문학의 정체성은 정체성과 주체성의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지역의 지리적인 특성과 역사적인 조건, 그리고 지역민들의 다양한 삶이 어울려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문학이 탄생한다면, 한 지역의 지역성을 형성하는 조건은 그만큼 그 지역의 지역민들이 살아온 삶의 역정과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지역문학의 정체성이 이미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정체성이라는 점은 그래서 마땅히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지역문학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박태일의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청동거울, 2004)를 주목할 수 있다. 박태일은 자신이 세운 지역문학의 논리를 경남·부산 지역의 문학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청동거울, 2004)이라는 단행본도 냈는데, 책 제목만큼이나 그는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표적인 지역문학 연구자이다. 그는 이제 지역은 더 이상 중앙·중심에 얽매여 있는 지방이나 변두리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지역 구심주의(local centripetalism)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역 구심주의는 경험 가능한 삶터를 인식의 중심에 세우는 수평적 틀이라는 의미대로, 지역민의 현재적 삶을 세계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은 중심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은 중심이되 다양한 중심을 인정하는 중심이며, 모든 지역이 중심이 되는 다층적인 중심을 그것은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에는 지역은 오랜 근대의 공간 경험과정에서 속겉으로 부서지고 일그러진 직접적인 피해자라는 저자의 뼈아픈 성찰이 스며들어 있다. 억압된 것의 복귀라 이름할 수 있는 지역의 중심화는 2000년대 들어 점차적으로 세력을 얻고 있는 소수성의 문학과도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 하겠다.

 

박태일이 세우려는 지역문학의 논리는 정체성의 문제를 둘러싼 앞서의 논의에서 밝혔듯, 지역의 현재성과 대중성, 그리고 주체성의 담론적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에서 굳건해지고 있다. 우선 그는 지역민들의 경험 가능한 삶터를 중시하고 있는데, 지역민들의 현재적 삶을 지역문학의 핵심으로 제시함으로써 그는 지역 구심주의의 이론적 틀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대중성은 지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적 사안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지역문학의 현재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지역민들의 구체적인 삶은, 특히 지역문학을 통해 구현되는 지역민들의 구체적인 삶은 현재성과 대중성을 담지해야만 지역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셈이다.

 

박태일이 고민하는 부분은 역시 지역문학의 주체성을 살피는 데서 나타나는데, 그는 세계화의 원심력과 지역화의 구심력은 순리라는 인식 아래, “모든 문학은 스스로 이미 장소문학이거나 지역문학이라는 핵심적인 주장을 이끌어낸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이 세상의 중심이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개인적·사회적 문제는 곧바로 세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지역문학은 민족문학이라는 인식은 이 지점에서 생성되거니와 지역문학에 대한 관심은 마침내 민족문학의 다양성을 되살리고 겨레문학의 가능성을 새롭게 찾으려는 학적 호기심과 모험심에 맞닿아 있는 일이라는 박태일의 생각은 이렇게 본다면, 지역문학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하려는 그 나름의 학문적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구심주의를 근간으로 펼쳐지는 지역문학의 논리는 주변부의 문학으로 몰리던 지역문학을 민족문학의 다양한 중심에 배치하는 장처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학의 주체성에 대한 논의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 경남·부산 지역의 문학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글에서도 이러한 점은 산견되어 나타나거니와, 그것은 주변부로 소외되어 있던 지역문학을 다양한 중심을 지닌 문학장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일 수도 있겠다.

 

요컨대 경남지역 계급주의 시문학 연구, 근대 통영지역 시문학의 전통등에서 박태일은 경남·부산 지역의 문학적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에는 지역의 구심성만 오롯이 부각될 뿐 세계화의 원심력은 구체적으로 분석되지 않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 문인들의 부왜(친일) 활동을 비판한 글들 역시 부왜 문인들로 평가되는 그들의 문학이 왜 하필 지금 이곳에서 지역문학의 과제로 연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지역문학을 향한 박태일의 지극한 관심을 고려한다면, 또 지역문학의 구체적 현장을 답사하는 그의 비평적 행보를 눈여겨본다면, 이러한 지적은 췌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역문학의 주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지역문학 연구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연구자의 문제의식을 새로이 정립하는 작업은 후임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필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o*****s 2017.12.08. 신고 공감 0 댓글 0